설찬범의 파라다이스
글쓰기와 닥터후, 엑셀, 통계학, 무료프로그램 배우기를 좋아하는 청년백수의 블로그
설찬범의 생각 (5)
5화 - 당신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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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읽지도 않은 <장미의 이름>으로 입 털기.

 

  솔직히 말해서, 아직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두께도 두께거니와 초반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요. 에코는 자기 작품 초반을 일부러 어렵게 썼다고 합니다. 독자를 자기 작품에 적응시키려 했다죠. 어쨌든 장미의 이름은 명작이라 불립니다. 아름답고, 철저하고, 깊은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언젠가 그걸 느껴보겠죠.

 

  그런데 오늘 할 얘기는 이게 아닙니다. 오늘은 저를 포함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습니다.

 

  누구든 장미의 이름이나 장미의 이름 수준으로 좋은 작품을 쓰는 건 불가능합니다. 천재로 태어나고 열심히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움베르토 에코한테는 아주 불가능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기호와 해석을 주제로 삼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50년대부터 중세 철학으로 책을 썼으며, 기호학자로도 유명합니다. 등장인물 이름 일부는 이미 있는 소설에서 따왔고요. 남자라면 군대 시절을 놓고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할 수 있듯이, 에코가 연구로 밥 먹고 살던 주제를 소설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죠.

 

  네, 압니다. 에코 수준에 올라야 <장미의 이름>이 가능하겠죠. 에코가 그 소설을 쓰느라 얼마나 힘을 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손쉽게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글을 쓸 때 여러분 근처를 뒤질 수밖에. 분명 여러분만이 지닌 지식, 경험, 감정이 있습니다. 고향이 어디입니까? 어느 풍경을 보며 아침을 맞이했습니까? 살면서 무슨 실수를 했고 무슨 장난을 쳐봤습니까? 어느 과목을 좋아했습니까? 어느 과를 전공했고 어느 부대를 어느 보직으로 나왔습니까? 여러분만 아는 특이한 지인, 사건, 아르바이트가 있습니까? 저는 취사병으로 복무했고 대검찰청 연구소에서 거짓말탐지기 시험대상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아무리 에코라도 취사병으로 복무하거나 거짓말탐지기 아르바이트는 못 해봤겠죠?

 

  여기에 증거 하나를 더 첨부합니다. 얼마 전에 들은 TED 강의입니다. 비토리오 로레토라는 수학자의 강연입니다. 이 수학자는 한 분야가 새로워지는 과정을 수학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Adjacent possible(가깝고 가능한)'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우리한테는 멀고 먼 이야기지만, 뉴턴과 아인슈타인한테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만유인력과 상대성이론이 가깝고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두 과학자 모두 공부와 연구를 거듭해서 그 상태에 도달했다고 비토리오 로레토는 말합니다.

 

  결론. 걸작도 만든 당사자한테는 불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쓸 수 있습니다. 그 쓴 글이 악취가 나는 쓰레기일 수는 있지만, 아무튼 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생각만 하고 안 쓰는 게으름뱅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라도 쓰면 그 많은 작가(진)보다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계속 찌르고, 2보 후퇴하는 한이 있어도 1보씩 전진하면 글은 완성됩니다. 글이 술술 써질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천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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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현실과 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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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가상현실. 그리고 현실을 보는 시각과 감정.



  예전엔 가상현실이 눈앞에 다가올 것만 같았습니다. 전극을 뇌에 꽂든 몸을 신기한 빛과 함께 뿅 하고 날아가든, 컴퓨터로 만든 세계에서 놀고 자고 먹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컴퓨터 게임과 3D 애니메이션은 예산과 시간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현실과 흡사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죠. 그러나 현실처럼 보이는 것과 현실 같은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가상현실은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듣고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세상입니다. VR, 4D 영화관도 현실을 모방해서 화면을 띄우고 좌석을 흔들 뿐, 구별되지 않는 세상을 마련해주진 않습니다.


  가상현실 하면 아직도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릅니다. 가히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의 정점이죠. 먼 미래, 인류는 인공지능 기계에게 사육당하는 한우 신세. 인류가 반항하지 않게 하려고 기계는 인간들 머리에 장치를 꽂아 가상현실에서 살게 합니다. 주인공 네오는 어느 날 반란군을 만나 이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되죠. 지금껏 자기가 살아온 도시와 삶이 전부 가짜였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현실이라 믿은 꿈에서 깨어나서 기계과 맞서 싸우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유명하지만 좀 된 영화다 보니 못 보신 분도 계실 겁니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번쯤 생각합니다. 과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현실이 진짜인가? 아니면 진짜라고 믿는 감각인가? 인간이 외부세계를 지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감각입니다. 따라서 감각만 통제하면 인간은 현실과 전혀 다르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꾸는가? 나비가 장자 꿈을 꾸는가?


  이런 궁금증은 며칠 지나면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우리 눈앞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죠. 일을 해야 하고,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4호선 지하철에 몸을 우겨넣어야 하는데 현실 운운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현실입니다. 설령 지금이 꿈이라 해도, 현실이 이것보다 더 잔인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예전 SF소설이 하나 떠오릅니다.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요. 주인공이 가상현실 체험 서비스를 접합니다. 주인공은 그러나 현실에 남아서 가족과 평범한 삶을 삽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평범한 삶이 가상현실 체험이었고, 깨어나 보니 현실은 더욱 끔찍했더라, 는 반전이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저는 현실을 조리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낙관적이거나 너무 비관적이며 중간이 거의 없습니다. 대책 없이 뒹굴다가도 곧 죽을 듯이 당황합니다. 그나마 심리상담을 받고 나서 제 이런 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엔 제가 이상하게 받아들인다 생각하는 대신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 차가 미칠 듯이 커서 뭔가 반응하기도 전에 휩쓸린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모래성을 지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이 멀어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라 가만히 있었고, 뒤늦게 지은 모래성은 이때다 하고 들어오는 밀물에 부서졌습니다.


  심리상담이 제 이런 면을 알게 해줬습니다. 알게 해준 거지 해결책을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는 게 어디입니까. 상담사는 말했습니다. 상담이 아픔을 없애지는 않지만 아픔을 참을 수 있는 범위로 조절할 수는 있다고 말입니다. 그전엔 동굴에 숨어 밤마다 습격하는 짐승에 무자비하게 뜯겼지만, 이제는 무기를 쥐고 있다고. 짐승이 습격을 그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 감정에 맞설 수는 있다고 말입니다. 큰 발전이었습니다. 이제껏 저는 감정이란 마음에 일어나는 불길과 같아서 이성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하지만 마음이란 제멋대로인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가 서로 견제하듯이 이성의 말을 들으며 이성에도 영향을 주는 기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심리학자가 아니라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법부 관계자님들, 꼬우신가요?)


  지금은 힘들긴 해도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강을 직접 건너가고자 합니다.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전 감정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흡사 눈을 감고 비빔밥을 먹으며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맞추는 것 같습니다. 감정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여기는 분노하고, 여기는 기뻐하고, 저기는 슬플 수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전엔 감정은 자동차 기어처럼 기쁠 땐 백 퍼센트 기쁘고 슬플 땐 백 퍼센트 슬퍼야만 감정인 줄 알았습니다. 백 퍼센트가 아니라면 그냥 중립기어인 줄 알았죠. 그러나 중립기어 상태에도 감정은 존재했고, 그걸 너무 무시한 나머지 저는 감정에 한해서는 일종의 신용불량자가 되어 어느 감정도 제대로 표현하고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이코패스가 된 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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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마인드셋과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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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

마인드셋, 노력하는 자세, 러시아어.


마인드셋


  어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자기개발서를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깜빡 잊고 캐럴 드웩의 '마인드셋'을 넣지 못했습니다.


  마인드셋은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사람이 있다. 노력을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노력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 전자는 재능이 전부라고 믿기 때문에, 노력은 재능이 없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후자는 재능은 출발점일 뿐이며, 언젠가 노력이 빛을 발한다고 믿는다.


  전자를 고정 마인드셋, 후자는 성장 마인드셋이라 책은 불렀습니다. 물론 연구 결과 성장 마인드셋이 성공에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정 마인드셋을 지닌 사람은 재능과 운의 힘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성장하지만, 성장이 막히면 뚫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죠. 성장 마인드셋을 지닌 사람은 그와 반대로 언제나 성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도 실패하면 낙담하고 좌절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낸다는 점이 다르다고 책은 설명합니다.


  '재능은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 이 문구가 유달리 기억에 남습니다. 어릴 때 영재 소리를 듣는 아이들 중에 커서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아이를 TV에서 자주 봅니다. 그들은 엄청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재능으로만 올라가는 높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몰락한 영재들은 재능이 아닌 방법으로 성장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인지조차 못할지도 모릅니다.


  책 마인드셋은 아주 기묘한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폰더의 위대한 하루'는 일곱 가지 결단을 소개하는데, 그중 하나가 '지식을 구하는 결단'입니다. 늘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고 더 잘할 방법을 찾을 거라는 다짐입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르침을 무시하는 사람이 얼마나 답답하고 분노를 일으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결단을 실천하고자 책도 읽고 TED 강의도 봤습니다. TED에서 우연히 캐럴 드웩의 강의를 보고, 더 알고 싶어서 '마인드셋'을 읽었습니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가 없었더라면 마인드셋도 몰랐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폰더의 위대한 하루의 원제는 'The traveler's gift'입니다. 원제는 간결해서 좋고 번역 제목은 직접적이어서 좋습니다.)



마음 속 방해꾼


  마인드셋을 읽고 생각해 보니 제 마음에도 고정 마인드셋이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속삭임이 저를 옭아매더군요.


  첫째는 '이왕 망친 거 다 망치자'라는 속삭임입니다. 다이어트를 시도하면 늘 들리는 소리죠. '오늘 실수로(정말 실수였을까요?) 핫도그를 먹었으니, 그냥 오늘은 먹고 싶은 것 먹고 내일부터 제대로 하자.'


  이런 속삭임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목적지가 정해진 이상, 조금이라도 덜 밀리는 것이 이득입니다. 내일부터 제대로 한다고 목적지가 이쪽으로 와주지는 않습니다. 제가 직접 가야 합니다. 내일부터 제대로 해서 괜찮다면, 오늘 저녁부터 제대로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 길이 험난할수록, 빨리 목적지에 도달해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두 번째 속삭임은 '제대로 된 방법이 나타날 때까지 하지 말자'입니다. '분명 더 쉽고 좋은 방법이 있겠지. 그동안은 힘 빼지 말고 기다리자.' 세상에는 어설프게 하느니 안 하는 게 나은 활동도 있습니다. 뇌종양 수술이나 지뢰 제거 등. 그러나 여러분이 하려는 일도 그럴까요? 느리게라도 나아가는 것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처음엔 다 어설픕니다. 어설프니까 배우고 연습하는 겁니다.


  쓰다 보니 제 찌질함이 떠오릅니다. 한때 러시아어를 배우겠다고 나댔습니다. 하지만 외국어 배우기가 원래 만만치 않죠. 그래서 좌절하고 또 좌절했습니다. 이 방법도 시도하고 저 방법도 시도했습니다. 나중엔 좌절하기 싫어서 아예 시작을 관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인드는 방금 말한 두 가지 속삭임에 모두 해당합니다. 이왕 실패했으니 관두자는 생각이 첫 속삭임이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 죽치고 있자는 것이 두 번째 속삭임이네요. 정말 러시아어를 배우기 싫다면 그냥 포기하고 마음에서 잊으면 됩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1) 마음을 비우고 러시아어 놔 주기.

2) 마음을 못 비우겠으면 그냥 닥치고 시작하기.


(1시간 동안 썼는데, 컴퓨터 전원이 나가서 다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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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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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필명을 지은 계기, 닥터후 더빙, 자기계발서를 은근히 좋아하는 나.


설찬범이라는 필명


  설찬범은 본명이 아닙니다. 언젠가 쓰려고 만든 필명인데 블로그에 쓰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구글에 검색했지만 설찬범이라는 유명인은 없어서 옳다구나 하고 사용했습니다. 실제 설찬범들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설찬범은 성우 설영범과 성우 안찬이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닥터후의 팬입니다. 설영범과 안찬이는 닥터후에서 12대 닥터와 클라라 오스왈드를 더빙했습니다. 클라라 오스왈드 다음 컴패니언 빌 포츠는 오인실 성우가 더빙했으니, 블로그를 6달만 늦게 만들었으면 제 필명은 설인범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라라 오스왈드와 안찬이


  클라라 오스왈드는 시즌 7부터 나왔습니다. 2012년으로 기억합니다. 시즌 7은 2013년에 끝났고, 11월에 닥터후 50주년 기념 에피소드를 방송했습니다. 문제는 한국 방영이었습니다. 50주년 에피소드는 여러 나라에서 방송했고, 한국도 방송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전 군대에 있어서 영상 자체는 겨우 봤지만 KBS에서 늦은 밤에 방송해서 더빙을 보진 못했습니다.


  아무튼 KBS에서 11월에 50주년 에피소드를 방송했는데, 정작 그전 이야기인 시즌 7을 방송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KBS는 11월에 50주년 에피소드를 방송하고 좀 있다 시즌 7을 방송해서 순서가 꼬여 버렸습니다.


  클라라 오스왈드를 더빙한 안찬이 성우는, 그러니까 시즌 7을 녹음하기 전에 50주년 에피소드를 녹음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안찬이 성우의 부족한 연기력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50주년 더빙을 본 사람들 말로는 녹음 상태도 불안불안했지만 특히 클라라 오스왈드의 연기력이 귀에 거슬렸다는군요. 성우 팬들은 이전부터 계속 안찬이의 연기력을 지적해 왔고요.


  2014년 닥터후는 월드 투어를 돕니다. 투어 장소엔 한국도 포함이어서 팬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타디스 모형을 시내 여러 군데 설치했습니다. 저도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 갔는데 떡하니 있어서 놀랐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줄 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에 두 번 놀랐고요. 인터넷에서 닥터후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데, 정작 오프라인에선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드디어 피터 카팔디와 제나 콜먼이 한국에 왔고, 행사를 치렀습니다. 전 못 갔지만 사정을 들어 보니 차라리 안 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금하면 나무위키라도 찾아보시고. 아무튼 두 주연 배우는 두 성우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피터 카팔디는 설영범 성우와, 제나 콜먼은 안찬이 성우와. 벌써 닥터 성우를 정하다니 의외였습니다.


  시즌 8을 봤는데, 일단 안찬이 성우의 연기력이 크게 늘었더군요. 소리지르는 장면이나 속사포처럼 내뱉는 장면은 조금 어색했지만, 들어줄 만했습니다. 시즌 9는 괜찮았고요. 시즌 10에서 클라라는 나오지 않는데 안찬이 성우가 마지막화에서 어린이를 더빙했더군요. 어린이 연기는 좋았습니다. PD가 일부러 부른 걸까요?


  언젠가 KBS가 2017년 스페셜을 방송할 텐데, 그때 클라라가 잠시 나오는 장면은 어떻게 더빙할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해, 그냥 아무 성우나 쓸 거라는 우려가 지워지지 않는군요. 그래도 KBS를 탓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기대를 걸어 봅시다.



자기계발서


  자기계발서가 맞나요 자기개발서가 맞나요?


  아무튼 이 장르는 한때 극한의 지지를 받았다가 지금은 극한의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녀 보면(죄송하지만, 거리를 돌아다니며 남의 대화를 귀동냥 할 수는 없잖아요?) 사람들은 자기개발서를 욕합니다.


  자기개발서를 욕하는 근거는 크게 넷입니다. 첫째, 내용이 부실하다. 툭하면 노오오력을 하라고 하질 않나. 옛날에 비해 요즘이 살기 좋다고 하지 않나. 둘째, 자기만의 사례를 들고 와서 씨부린다. 다른 직종, 다른 문화, 다른 시대에 어울릴 이야기만 한다.  셋째, 일반화가 심하다. 인생의 길은 하나가 아닌데, 자꾸 하나만 강요한다. 넷째, 모든 것을 개인 탓으로 돌린다. 사회가 어찌되었든 개인이 잘 하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미국 SF작가 스터전은 일명 '스터전의 법칙'을 만든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법칙에 따르면 SF의 대부분은 쓰레기이며, 사실 세상의 대부분도 쓰레기입니다. 스터전은 SF를 비난하려고 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터전은 오히려 SF를 옹호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SF가 싸구려에 쓰레기가 많다고 비난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다른 장르에도 싸구려 쓰레기는 많지 않느냐, 그저 질 낮은 작품이 많다는 이유로 장르를 깎아내릴 순 없다, 이런 뉘앙스였죠.


  저도 대학에 올라와서 자기개발서를 많이 읽었습니다. 전 성공하고 싶었거든요. 여러 권을 읽으며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자기개발서는 쓰레기가 아주 많다. 그러나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쓰레기 자기개발서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수요가 많다는 점이겠죠. 저처럼 성공하고 싶고, 인생에 해답과 길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암 치료한다는 책이 잘 팔리는 이유와 같을 겁니다. 다른 이유는, 세상와 삶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제 딴에는 인생의 진리라고 믿고 썼는데 알고 보니 그 작가가 겪고 배운 것은 세상 크기에 비해 너무 작고 소소해서 다른 것들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겁니다.


  세상에는 객관적이려고 노력한 책도 많습니다. 여러 사례를 들춰보고 실험과 연구로 객관성을 보장받은 책들이죠. 저는 그런 책이라면 환영합니다. 물론 그런 책도 맞는다는 보장이 없죠. A대학에서는 아침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를 내는데, B대학에서는 나쁘다는 연구를 내기도 하잖아요? 그래도 읽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추천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읽어서 도움이 좀 되었습니다. 여러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하며 지었다고 합니다. 뭐, 제가 연구하고 싶지는 않으니 이 사람 말을 믿어 볼까요.


  <오리지널스> : 창의력과 혁신을 다룬 책입니다. 일단 알아뒀다가, 진짜 필요한 순간이 오면 써먹을 예정입니다. 모든 책을 읽자마자 실천할 필요는 없잖아요?


  <타이탄의 도구들> : 표지에 연장들이 그려져 있는데 정말 내용과 맞습니다. 여러 명사들의 가르침을 잔뜩 담은 책입니다. 책에 어떤 구조가 있지 않으니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괜찮습니다.



  벌써 3천 자나 써버렸네요. 내일 이어서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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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블로그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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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설찬범입니다.

  사실 설찬범은 본명이 아닙니다. 본명은 따로 있는데,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껏 블로그를 쓰면서 여러 컨텐츠를 시도했습니다. 소설도 썼고 엑셀 가이드라든가 추억의 게임을 써서 올렸습니다. 아마 제일 성공적인 건 '엑셀 할머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무튼 그 모든 글은 어떤 '화자'를 지니고 쓴 글입니다. 엑셀 할머니는 주인공과 증조할머니의 입을 빌려 엑셀을 설명했습니다. 주어가 '나'인 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전 그런 글을 쓰면서 일종의 '선생'이나 '이야기꾼'이 된다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평소에 말이 없다가도 단상에 서면 다른 목소리와 말투로 연설하는 사람처럼요. 에세이들도 내용은 제 본심이지만, 스타일은 제가 되고싶은 누군가였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에는 검색 유입 서비스가 있어서, 사람들이 무슨 검색어로 들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 블로그는 엑셀 관련 검색어로 유입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엑셀 첨도나 엑셀 공분산 등. 꼴에 인지도가 생겨서 그런지 제 블로그 이름을 검색창에 쳐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더군요. 블로그를 꾸리는 사람으로서 블로그 이름이 알려진 것 같아 기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내 목소리로 얘기한 게 얼마나 될까?' 블로그야말로 자기 목소리를 전달하기 좋은 곳인데, 저는 주인공과 증조할머니가 무슨 대사를 칠지만 고민한 것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설찬범의 생각'이라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이 코너는, 그냥 일기장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평소 제 생각을 줄줄 쓸 계획입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 프라이버시를 위해 일부러 말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틀린 말은 남기지 않겠습니다. 이 코너에서 거짓인 건 제 필명인 설찬범 세 글자뿐일 겁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


  블로그는 돈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서점을 걷는데, 구글 애드센스로 돈 버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훑어봤습니다. 글만 써서 돈을 번다니. 꿈 같은 일이 아닙니까.


  그때 전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도서관에 없는 책을 신청하면 도서관에서 비치해 줍니다. 물론 만화책이나 문제집 같은 책은 신청이 거절됩니다. 저는 호기심으로 애드센스 책을 신청했고, 한 달 후에 책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어본 결과, 용돈벌이로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니, 거짓말입니다. 전 용돈벌이 그 이상을 꿈꿨습니다. 블로그로 생계를 잇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취직하느라 개고생을 하지 않고, 취직 후 개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저한테는 취직이란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가려고 그렇게나 많은 고생을 하면서, 회사에서 또 다른 고생을 한다는 것은 끔찍합니다. 네, 알아요. 월급을 주지요. 그러나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토익을 공부하고 봉사활동에 나가고 인적성시험과 면접에 대비하고, 나아가 회사에서 맞닥뜨릴 수많은 제약과 활동을 다른 곳에 쏟아부을 순 없을까?취업이 그 모든 쏟아부을 대상 중에서 제일 가성비가 높을까? 전 의심스러웠습니다.


  압니다. 블로그질이 돈이 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이란 쉽게 현혹되고 또 쉽게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블로그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존재하는 이상 제가 되지 말란 법은 없잖습니까? 그래서 시도했습니다.


  책에서 말하길, 애드센스 허가를 받으려면 글이 많아야 한다 했습니다. 저는 글을 잔뜩 썼습니다. 하루에 세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정보보다는 제 경험담이나 번역물을 올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취사병 시절 일화를 올리기도 했는데, 너무 낯부끄러워서 지금은 삭제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쓰고서야 애드센스가 저를 받아줬습니다. 바로 광고를 올렸죠. 첫 두 달은 거의 클릭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하루에 0.01달러만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운이 좋아서 하루에 5~6달러를 벌었습니다.


  애드센스 책은 블로그는 한 번 쓰면 글이 쌓이기 때문에 수익은 점차 증가한다고 했습니다(그때쯤 아예 그 책을 사서 집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거짓말입니다. 먼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은 당신 말고도 많습니다. 처음 글을 쓰면 검색 결과 상단에 오를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당신 글은 결과에서 밑으로 내려갑니다. 포털이 보기에 다른 글이 더 중요하고 좋다고 판단한 거겠죠. 심지어 당신 이후로 글을 쓰는 사람이 없어도, 글은 저절도 내려갑니다. 기준은 사람마다 말이 많으니 한번 검색해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익이 다시 곤두박질할 때 기분을 이해하시겠죠. 수익은 점점 불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쪼그라들었습니다.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그즈음에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개발서를 거르라고 하는데, 이 책만은 거르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거기엔 일곱 가지 결단이 나오는데 그중 두 가지가 '행동'과 '물러서지 않기'였습니다. 전 책에 감명을 받았고 어느 정도는 실천했습니다. 글을 쓰기 싫을 때마다 저를 몰아세웠고 아무 글이나 쓰도록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블로그 글은 300을 넘었고, 최소한 수익이 0.01 나는 날은 없습니다.


  초반엔 검색량이 많은 주제를 골랐는데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관뒀습니다. 라이벌이 너무 많고 강력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어떤 주제를 고르든, 그 주제에 빠삭한 사람들이 잔뜩 글을 써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여러분이 수학 게시물을 쓴다면 수학과 학부생이나 학위 소유자의 글과 싸워야 합니다. 이들을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이런 의심 속에서 저는 '엑셀 할머니'를 만들었습니다. 엑셀 블로그와 게시물은 수천 가지나 됩니다. 네이버는 사진이 많을수록 검색순위를 올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제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용과 관련 있는 사진을 여러 장 올릴까 고민하다가, 캐릭터를 떠올렸습니다. 캐릭터 얼굴을 사진으로 올린다면 게시물에 사진이 많아질 것 아닙니까? 거기에 대화체로 등장인물이 설명하는 형식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전문가가 쓴 엑셀 포스팅을 이기진 못했지만, 엑셀 할머니 시리즈는 나름대로 선방했습니다. 그래도 초반 포스팅은 라이벌 게시물이 적은 주제로 잡아서 해야 했죠.


  그다음엔 조합을 이용했습니다. 엑셀을 그대로 쓰면 묻히니, 다른 분야와 조합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엑셀로 통계하기'를 썼습니다. 엑셀+통계인 것입니다. 도서관에 들어가 통계를 공부하고, 엑셀에 그런 기능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엑셀로 통계하기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음 조합을 무엇으로 할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엑셀에 무얼 더해야 개성적이면서 쓸모 있는 게시물이 나올까요?


  어제는 3.86달러가 들어왔고, 오늘 이 시각까지 1.73달러가 모였습니다. 한 달에 약 3~40달러가 들어오고 세 달에 한 번 입금이 됩니다. 월급 4만원 인생인 거죠. 뭐, 블로그질에 뭘 바라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언젠가는 돈이 되리라 생각중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즐거움도 없진 않습니다. 닥터후 게시물은 들어오는 사람이 전무하지만 닥터후를 좋아하다 보니 계속 씁니다. 예전에 우왁굳, 풍월량에 대해 썼는데 그쪽 팬카페에서 링크를 세워서 사람이 많이 들어왔죠. 무엇이든 쓰고 있으니, 언젠가 하나가 심지를 건드려 불이 붙었으면 합니다.


  쓰다 보니 지칩니다. 내일 계속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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