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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3분 소설 (1)
[3분소설] 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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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부장


  김 부장은 조용히 살았고 죽어서도 조용했다. 김 부장 장례식은 간소했다. 살 적에도 지인이 몇 없었다. 게다가 하나뿐인 딸이 죽고 나서 더욱 연락을 끊고 살았다. 만약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딸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슬펐지만 울진 않았다. 영정사진에 두 번 절했다. 김 부장의 먼 친척과 악수했다. 부조금을 내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장례식은 처음이라 다 육개장을 먹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김 부장은 돈이 많지 않았다. 있던 돈도 딸이 죽고 정신이 나가서는 다 써버렸다. 돈이 된다 해도 이혼하고 딸마저 잃은 남자 장례식을 돌봐줄 이 누구인가. 비가 내렸다.


  김 부장은 딸을 사랑했다. 책상 위에는 딸 사진이 액자 속에 서 있었고, 회식이라고 갔다 하면 딸 자랑을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어야 했다. 그래서 김 부장은 더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14층에서 떨어진 딸이 아스팔트에 밟힌 지렁이처럼 으스러져 있는 모습을 봤을 때. 하필 오랜만에 정시 퇴근하는 그날, 주황색으로 타는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김 부장은 어깨에 양복을 걸치고 터덜터덜 돌아갔다. 한 손에는 딸에게 줄 치킨 한 마리를 든 채. 치킨은 따뜻했다. 김 부장이 방금까지 딸이었던 살덩어리를 발견하고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에도 치킨에선 흰 김이 났다.


  유서는 없었다. 하지만 일기장은 있었다. 그 일기장에도 입이 있었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하루도 빠짐이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학교위원회가 소집되었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 딸과 같은 반 '친구'들이 수사를 받았다. '친구'들은 김 부장 딸과 함께 화장실에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밤에 돈을 '빌리'는 친한 사이였다. '친구'들은 그러나 풀려났다. 물증이 없었다. 교장은 교양인답게 학교가 조용해지기를 바랐다. 교육청도 구청도 교양이 넘치는 곳이었다.


  사건은 흐지부지 끝났다. 살인사건도 아니고, 자살을 열심히 수사할 필요가 있을까? 친구들도 모두 딸과 잘 놀아 줬는데 말이다. '친구'가 많은 학생이 무엇이 아쉬워 죽는다는 말인가? 그렇다. 아마 아버지가 잘 놀아주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 밑에서 혼자 자라서 정신발달이 좀 늦지 않았을까. 원래 그 나이대는 예민하다잖아. 동네 아주머니들은 찜질방에서 맥반숙 계란을 까먹으며 앞으로 낮아질 집값을 걱정했다. '친구'들은 전부 훈방 조치되었다. 시의원 아들인 김 군이 제일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엔 중견기업 이사 딸인 박 양이 나왔다. 나머지는 경찰의 합리적이고 법치주의적인 원칙에 따라 사건이 여론에서 잊혀지고 나서 나왔다.




  김 부장은 경찰서 앞에서 1인시위를 하다가 쫓겨날 무렵에 정신이 나갔다. 김 부장은 재산을 집만 남기고 처분했다. 사내 서점에서 목격된 김 부장은 일본어 회화책을 고르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다른 가족처럼 외국으로 이민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밖에 김 부장은 점심시간 사무실에 남아 포장지 싸는 연습을 하는가 하면 이면지에다 각종 설계도를 그리며 시간을 때웠다. 컴퓨터로 삽과 곡괭이를 고르다가 들키기도 했다.


  "뭐라도 배워야지."


  참견쟁이 유 대리가 묻자 김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다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김 부장은 일본어를 중얼거렸다.


  하지메마시떼. 와따시노 나마에와...



  김 부장은 그렇게 일본어를 두 달 넘게 연습하더니 연차를 냈다. 평소 소처럼 일하던 김 부장이기에 사장도 휴가를 말리지 못했다. 연차를 낸 김 부장은 사라졌다. 문자를 보내도 반응이 없었다. 전화를 하니 해외전화로 연결되었다. 일본에 간 듯싶었다. 일본에 유명한 정신과 의사라도 있다면 모를까. 하필 성수기에 가서 돈은 돈대로 깨지고 시끄러울 텐데. 우리는 한 손에 커피를 쥐고 떠들었다.


  김 부장은 연차에 맞춰 돌아왔다. 생각보다 멀쩡했다. 오히려 평화로웠다. 저러다 총기난사라도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했다. 사장이 시켜서 나와 유 대리가 김 부장네 집으로 갔다. 문을 두드렸다. 김 부장은 문도 열지 않고 답했다.


  “지금은 안 돼. 내일 출근한다고 사장님한테 전해 줘.”

  “사장님이 얼굴도장 찍고 오라고 하셨는데요.”

  “미안해. 지금 울고 있어서.”


  우리는 하릴없이 돌아왔다.


  일본 여행이 정말 득이었는지 김 부장은 괜찮아졌다. 말도 잘 했고 일도 잘 했다. 사고 칠까 봐 걱정하던 사원들도 점점 평소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김 부장은 딸을 죽게 만든 '친구'들한테 기념품을 선물했다고 들었다. 아니, 아무리 착해도 저건 아니지 않나? 꼰대 사장마저 어이없어했다. 우리야 김 부장이 평상시대로 일한다면 기념품을 주든 돈을 주든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김 부장한테 감사했다. 이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일본 가서 깨달음이라도 얻고 용서를 배웠나 싶었다.


  하지만 하늘은 착한 사람을 싫어했다. 김 부장은 얼마 되지 않아 암 판정을 받았다. 김 부장은 바로 퇴사했고 두 달 만에 죽었다.


  장례식을 간 다음 날, 김 부장 친척한테서 전화가 왔다. 고인 소지품을 정리하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토요일에 김 부장이 살던 집으로 갔다. 나와 그 친척은 짐을 정리했다. 회사 서류나 물건이 있으면 내가 따로 뺐다. 재산을 처분했다더니 잡동사니가 많았다. 반나절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해가 지고 나서야 끝났다.


  일본 지도 세 장(김 부장은 일본 북부를 여행한 듯했다), 손전등, 위장 크림, 장화, , 두꺼운 장갑, 더 두꺼운 보호복, 나침반, GPS, 비상 식량, 침낭, 시계, 은빛이 나는 조그마한 상자, 끌과 공작용 칼, 줄자, 핀셋.


  “저 은색 상자는 뭘까요?”

  “뭔지는 모르는데 색이 납이랑 비슷하네요. 제가 화학 회사에서 일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서랍에서 주황색 탐지기가 나왔다. 무얼 탐지하는 기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스위치를 켜자 조금 치직대는 소리를 냈다. 뭘 탐지했길래 그런 불길한 소리를 내며 반응한 것일까? 하지만 이미 토요일을 다 보낸 나는 회사 것만 챙겨서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에서 조금 신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마 친하게 지낸 김 부장을 어이없게 잃은 데 대한 씁쓸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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