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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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1)
<추억의게임> 롤러코스터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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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 괴물은 사람들은 늪에 빠뜨렸습니다. 사람들은 늪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늦었습니다. 빠졌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목구멍까지 잠긴 후였죠. 괴물은 끊임없이 공격했습니다. 지금도 괴물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괴물의 이름은 바로 롤러코스터 타이쿤입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1999년 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최고로 많이 팔린 PC게임이 되었죠.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우리는 놀이공원을 만들고 운영합니다. 길을 닦고 놀이기구를 짓고 사람들을 모으죠. 새 놀이기구를 연구하고 각종 주전부리 상점을 길목에 배치합니다. 놀이기구 수리공과 청소부를 배치해서 공원을 관리하고 땅을 깎고 나무를 심어서 정원을 짓습니다. 솔직히 손님들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원을 보는 저희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죠. 크리스 소이어가 만든 이 괴물은 중독자들을 낳았습니다.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단순하지만 아기자기한 그래픽, 놀이공원 사장이 된다는 대리만족이 게임엔 엔딩이 없습니다. 시나리오가 있어서 깨야 할 목표가 있지만 다 깨면 계속 할 수 있어요. 손을 마우스에서 놓을 수가 없습니다. 문명 시리즈가 한 턴만 더!를 외친다면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한 기구만 더!를 외치게 만듭니다. 이 놀이기구만 연구하고! 여기 사거리에 정원과 쉼터 하나만 짓고!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흐리지만 그날은 크리스마스 직전이었을 겁니다. 저와 가족들은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용산 전자상가를 지나갔죠. 지금이야 용산 전자상가 하면 손님 맞을래요?’나 다 망해가는 가게들이 떠오르지만, 그때만 해도 전자상가는 잘 나갔습니다. 오리진도 없었고 스팀도 없었고 국전은 아는 사람만 알았고 인터넷으로 게임을 산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전자상가에는 도깨비 상가라는 곳이 있는데, 도깨비 상가는 저한테는 천국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게임이 다 모인 보물창고였죠. 도깨비 상가 건너편은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쪽은 콘솔게임이 많았거든요. 저는 그때 콘솔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가족들과 함께 전자상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도깨비 상가 문 앞에서 게임을 파는 아저씨를 보았습니다. 아저씨는 게임 패키지들을 진열한 채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게임 패키지 말입니다. 게임 패키지 안에는 CD와 설명서가 들어갑니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패키지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겠군요. 스팀 같은 곳에서 물리적 형태 없이 게임을 받으니까요. 그땐 온라인으로 게임을 구매해서 다운로드하는 일은 상상불가였습니다. 인터넷으로 게임을 받으려면 와레즈 같은 불법 사이트에 가서 500조각으로 나뉜 게임을 받아야 했습니다. PC 게임은 책 한 권보다 큰 종이 상자에 넣어서 팔았죠. 상자를 뜯으면 설명서랑 CD키랑 CD가 나왔습니다. 용량이 큰 게임은 CD가 여러 장이었습니다. 아직 블루레이는커녕 DVD 디스크가 태어나기 전이었거든요. 예전에 매트릭스 게임을 샀는데 그 게임은 CD가 무슨 네다섯 장은 되었습니다. 배틀필드 1942CD가 네 장은 되었나요? PC 게임을 포장하던 종이 상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플라스틱 케이스로 바뀌었고, 나중 들어서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도깨비 상가 앞에서 게임을 팔던 아저씨는 저한테 게임을 권했습니다. 게임은 할인 행사 중이라 쌌습니다. , 안 팔리니까 가격을 깎고 굳이 추운 밖에서 게임을 팔던 것이겠지만 제가 뭘 알았겠습니까. 게임=좋다, 할인하는 게임=아주 좋다. 제 머리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게임을 사 달라고 졸랐습니다. 부모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금방 사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게임을 골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 눈에 띈 패키지가 보였습니다. . 그건 바로 롤러코스터 타이쿤이었습니다. 제가 산 패키지는 롤러코스터 타이쿤과 확장팩 루피 랜드스케이프를 합친 합본이었습니다. 할인까지 하면서 확장팩이 포함된 게임=아주아주아주 좋다. 저는 바로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골랐습니다. 가격은 만 얼마이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저씨는 비닐봉지에 게임을 포장해서 주었고, 저는 봉투를 애지중지하며 집으로 왔습니다.

 

 

세상에, 예수를 본 세 동방박사도 저보다는 기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런 갓겜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다니. 정맥주사를 처음 맞은 대통령 기분이 이랬을까요? CD를 넣고, CD키를 입력하고 인스톨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CD-ROM도 거의 멸종했군요. 요즘 컴퓨터 본체는 CD 넣는 구멍도 없고요. 게임을 켜자 하스브로 로고가 덜덜덜 롤러코스터 체인 소리를 내며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메인메뉴부터 환상이었죠. 여러분도 기억하십니까, 롤러코스터 메인메뉴 음악을? 지금도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그 놀이공원 음악을 배경으로 화면 뒷부분에서 온갖 놀이기구들이 돌아갔습니다. 롤러코스터가 내려가면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재밌는 기구를 즐기고 나오며 하하하 웃고.

바로 첫 시나리오를 시작했습니다. 평평한 초록 벌판이었죠. 제 임무는 기간 내로 이 놀이공원 수준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입구 근처에는 회전목마를 설치했죠. 입구와 출구를 짓고 입구는 입구 전용 도로를 깝니다. 손님들이 들어오고 돈이 벌립니다. 회전목마 옆에는 미끄럼틀이랑 귀신의 집이랑 바이킹을 깝니다. 손님들이 더 들어옵니다. 조금 대담해져서 떨어진 곳에 롤러코스터를 짓습니다. 다행히 제작진들이 만들어 놓은 코스가 있었죠. 롤러코스터를 짓자 사람들은 더 몰려옵니다. 이건 끝이 없었어요! 짓고 짓고 또 짓고! 마치 제가 신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공원이 되는 물아일체, 제가 공원인지 공원이 저인지 헷갈리는 호접지몽의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심장은 전율하지 않았습니다. 암요, 심장이 전율하는 중독성은 하수죠. 중독하는 줄도 모르고 서서히 사람을 잠기게 하는 중독성이야말로 무서운 중독성이고,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중독성 고수였습니다.

 

 

할 수 있는 짓, 해보고 싶은 짓이 너무 많았습니다. 다음엔 입구 근처부터 롤러코스터를 지어야지, 이번엔 공원을 가로질러 손님들을 안내하는 수송기차를 지을 거야. 어라 수송기차를 지으려면 어느 정도 계획공원을 세워야 하잖아. 그럼 어디 보자. 여기에는 온순한 놀이기구들만, 여기는 땅을 내려서 물을 깔고 카누를 둬야지. 이곳은 과격한 기구들이 많아서 꼭 벤치와 화장실을 지어야 해. 저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롤러코스터 타이쿤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사이트는 신세계였죠. 저는 그때 정원과 쉼터는 만들 줄도 몰랐습니다. 꽃이나 나무는 그냥 장식물로 여겼죠. 하지만 사이트에서 본 사거리 정원은 예술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저도 짓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이트 고수들만큼 잘 만들지는 못하지만, 비주얼도 또다른 재미죠. 놀이공원은 멋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지마의 행복한환상같은 사이트는 살아 있습니다.

사막 시나리오도 나오고 탄광 시나리오도 나왔지만 저한테는 그 첫 시나리오, 평평한 초원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가장 많이 즐긴 시나리오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롤러코스터 타이쿤에 샌드박스 모드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2도 성황리에 출시했지만 전작과 다른 것이 거의 없었죠. 롤러코스터 타이쿤 3는 실망했습니다. 언젠가 게임이 3차원이 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99년의 2차원 픽셀이 더 좋습니다. 심지어 새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악평을 들었죠. 플래닛 코스터라는 게임이 롤러코스터 타이쿤의 직계후손보다 더 선조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저는 예전처럼 미친 듯이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이 나면 실행합니다. 크리스마스 직전에 산 CD는 이제 제 컴퓨터에서 인식을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스팀에서 구매해서 실행 중이죠. 스팀에서 파는 추억을 지금도 무시 못 할 수의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3D? 코옵? VR? 다 필요없습니다. 우리를 즐겁게 한 건 그저 아기자기함과 제한된 픽셀에서 온 아름다움이었죠. 이제는 휴대폰 게임보다 사양이 낮은 게임이 되었지만,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여전히 갓겜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언제 본인 이름을 딴 놀이공원을 짓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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