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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픽션 (1)
<행성패> 1968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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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 이 글은 픽션입니다

 

 

이 사진은 본 도서와 관련이 없습니다

 

행성패


출판연도 - 1968년

글쓴이 - 이화산

출판사 - 도서출판 화산

장르 - 공상과학, 모험 소설


글쓴이 약력

- 1943년 충북 청주시 출생, 청주 천명고등학교 졸업

- 1966년 도서출판 화산 설립

- 1968년 <행성패> 출간

- 1979년 화산 출판사 폐업

- 1981년 심장병으로 사망




[귀해서 더 귀한 이야기]


  금과 다이아몬드는 빛깔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귀하다. 귀해서 더욱 비싸다. 과학자들은 멀리 우주에서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행성을 찾았다고 한다. 만일 인간이 그 다이아몬드 행성까지 날아가서 행성을 통째로 가져온다면 다이아몬드는 비싸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골목길에 다이아몬드로 금을 그리고 그 위에서 땅따먹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다이아몬드와 반대로 귀할수록 싸다. 독자들이 많이 찾고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며 손이 안 닿고 서점에 재고로만 남는 데다가 2판 3판이 나오지 않는 소설은 나쁜 소설이다. 나쁜 소설은 끽해야 시립 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여생을 보낸다. 귀한 대접 같지만 아무도 대출하지 않고 책꽂이에서 뽑지 않는다. 신간이 들어오면 자리를 내주고 지하 창고로 처박히고, 도서관이 정리사업이라도 하면 책에서 폐지로 신분이 떨어진다. 운이 좋아 헌책방에 쌓여 엣헴 소리를 내 보지만 소용이 없다.



  국내 유명대학 도서관과 시립 도서관과 심지어 국회 도서관에서도 이화산의 소설 <행성패>는 찾을 수가 없다. ISBN 번호 등 출판을 증명해줄 아무런 증거도 없다. 하지만 <행성패>는 엄연히 출판사가 출판한 도서다. 지금 내 책장에 꽂혀 있다. 헌책방에서 구한 물건이다. 책을 펼치면 나무 썩는 냄새가 나고 페이지는 갈변한 데다 일부 활자는 희미하지만 아직은 살아 있다. 표지는 의외로 멀쩡하다. 페이지도 색과 냄새만 이상할 뿐 찢어진 곳이나 젖은 흔적은 없다. 이런 책이야말로 아까 말한 ‘헌책방에 쌓여 엣헴 소리를 내는 책’들이다. 멀쩡하지만 오히려 멀쩡함이 부끄러운 책들.


  <행성패>가 특이한 점은, 도서관에도 없고 출판기록도 없지만 출판사를 거친 책이라는 점이다. ‘도서출판 화산’이라는 문구가 표지 아래에 있다. 누가 장난을 치지 않았다면 실제로 존재한 출판사일 것이다. 다행히 기록이 없는 책과 다르게 출판사는 기록이 있다. 1966년 충북 근방 지역신문에는 대형 양조장 가문의 3대 독자가 양조장을 일부 매각해 출판사를 세운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양조장 3대 독자의 이름이 이화산이며 이화산이 세운 출판사가 도서출판 화산이며 이화산이 도서출판 화산에서 낸 책이 바로 <행성패>다.

 



 

[우주를 떠도는 나그네]


  <행성패>는 공상과학에 서부극을 버무린 소설이다. 배경은 인간이 우주로 나가 행성마다 사는 시대. 주인공 ‘브라운 박’은 총잡이처럼 행성을 떠돈다. 광선총 쏘는 실력만은 최강인 브라운 박은 행성을 오가며 현상수배범을 잡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운 박은 행성 ‘바이타민’에 도착한다. 뜨거운 기후로 온 동네가 사막인 바이타민 행성. 브라운 박은 그곳에서 소꿉친구를 만난다. 기쁜 재회도 잠시, 브라운 박은 자기 소꿉친구가 은하 절반을 공포에 떨게 한 약탈자 ‘쉐도우’임을 알게 된다. 이미 다른 곳에서 여성을 성폭행하려는 쉐도우의 부하들을 죽인 브라운 박은 고민한다. 우정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브라운 박. 심지어 그때 구한 여성과 브라운 박 사이에 사랑이 싹트면서 우정에 난 금은 더욱 깊어지고, 소꿉친구도 점점 브라운 박을 의심하게 되는데...



  <행성패>는 50~60년대 공상과학 모험담을 듬뿍 담은 소설이다. 정의로운 주인공, 폭력이 판치는 세계, 섹시한 여성, 우정과 정의 사이의 갈등 등 남자들의 로망을 전부 버무린 작품이다. 1968년에 지구 건너편 유행을 따라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화산은 거부 집안의 아들이었으니 어떻게든 미국 잡지나 소설책을 구했을 것이고 영어도 배웠을 것이다. 이화산은 영어뿐 아니라 과학 지식에도 밝았다. 브라운 박이 소꿉친구가 거의 늙지 않았음을 지적하자 소꿉친구는 젊어지는 약물의 힘을 빌렸다고 둘러댄다. 그러나 후반부에 진실이 드러나는데, 소꿉친구는 ‘쉐도우’로서 광속에 가까운 우주선으로 약탈을 일삼는 사이 시간이 느려져서 동갑인 브라운 박보다 젊어 보인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쓰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수박 겉핥기라도 알아야 하는데, 이화산은 60년대 한국 교육 환경을 생각하면 매우 앞서간 사람이었다.


  그러나 <행성패>의 초반 내래이션만큼 지금 독자의 소름을 돋게 하는 구절은 없다. <행성패>는 인류가 어떻게 우주로 뻗어나가고 지금처럼 몰락했는지 알려주는 글로 시작한다. 내가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읽는 것이 어울릴 것 같아 조금 옮겨 적는다.


  “... 사람이 수성으로부터 시작하여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을 차례로 집을 삼아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뿐인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여러 빛깔의 별들이 보인다. 사람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이야기하고 편지를 보내는 기계를 발명했다. 기계가 편리해서 사람은 걱정 없이 이별 저별로 나갔다. 그런데 우주에 나간 사람이 모두 기계로 자기 생각과 말을 전하다 보니 싸우기 시작했다.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고 목소리를 들려줄 필요가 없으니 서서히 친절하지 않은 말을 건넸다. 실제로는 돌쇠인 사람이 기계에는 춘향인 척을 했다. 산적떼와 도적떼가 착한 척 거드름을 피웠다. 기계로 오가는 말들은 황폐해졌고 사람은 기계를 쓰지 않았다. 곧 여러 별들은 연락을 끊고 저마다 분열한 삶을 살았다. ...”


  이 구절에 나오는 기계라는 단어를 인터넷으로만 바꾸면 지금 상황과 귀신처럼 맞아떨어진다. 세계를 연결해 준다는 기대를 받았지만 그만큼 많은 분열을 일으킨 인터넷.인터넷에서 익명성을 무기로 악플을 쓰고 무고한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들. 정말 <행성패> 초반 내래이션처럼 사람들이 인터넷을 버리고 저마다 담을 쌓고 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지경이다. 이화산이 사회, 문화적으로 미래를 예측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재미를 주려고 저렇게 썼을 테지만 저 구절은 읽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실패한 우주 활극]


  이 책이 도서관에 없고 2판 3판도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행성패>는 팔리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인터넷을 검색해도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도서출판 화산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1979년 지역 신문 단신이 내가 찾은 모든 정보다. 도서출판 화산은 다른 책을 출판했을까? 이화산은 <행성패> 말고도 다른 소설을 썼을까? 만약 <행성패>가 유일한 화산 출판사의 책이고 이화산의 유일한 저서라면 <행성패>는 부잣집 도련님이 자비로 출판사를 세우고 낸 자비 출판서적일 것이다. 사실 이게 유력하다.


  재벌 3세가 그냥 책을 내고 싶었다. 자기가 취미로 구한 미국 책 등지를 섞어서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모험담을 썼다. 집안 돈으로 출판사를 차려서 자기 돈으로 책을 출판했다. 광고도 없었고 홍보도 없었다. 출판한 책은 자기 친구들과 이웃들한테 나눠주었다. 60년대 한국 상황을 생각하면 양조장 인부들은 웬 우주에서 남자가 광선총 쏘는 이야기를 탐독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은 대부분 책장 구석에 꽂혀 잊혔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사 가는 도중에 책을 놓고 가거나 헌책방에 팔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결국 사라졌지만 운이 좋은 한 권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귀한 소설, 귀중할 뻔한 이야기]


  귀하다고 해서 다 귀중하진 않다. <행성패>는 재밌고 시간 때우기에는 좋은 소설이나, 스토리에 구멍이 많고 설정이 이랬다 저랬다 바뀐다. 그런데, 인정하기는 정말 싫지만, 나는 <행성패>를 읽으면서 웃었다. 화끈한 주인공, 화끈한 사랑. 나는 책을 다 읽고 조금 재밌는 상상을 했다. 만일 이 책이 전국에 출판되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생각보다 질기게 살아남아 후속작이 나오지는 않았을까. 그러다 2017년에 ‘기계’를 인터넷으로 바꾼 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까. <행성패>는 너무 일찍, 너무 엉뚱한 곳에서 태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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