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가상현실. 그리고 현실을 보는 시각과 감정.
예전엔 가상현실이 눈앞에 다가올 것만 같았습니다. 전극을 뇌에 꽂든 몸을 신기한 빛과 함께 뿅 하고 날아가든, 컴퓨터로 만든 세계에서 놀고 자고 먹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컴퓨터 게임과 3D 애니메이션은 예산과 시간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현실과 흡사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죠. 그러나 현실처럼 보이는 것과 현실 같은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가상현실은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듣고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세상입니다. VR, 4D 영화관도 현실을 모방해서 화면을 띄우고 좌석을 흔들 뿐, 구별되지 않는 세상을 마련해주진 않습니다.
가상현실 하면 아직도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릅니다. 가히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의 정점이죠. 먼 미래, 인류는 인공지능 기계에게 사육당하는 한우 신세. 인류가 반항하지 않게 하려고 기계는 인간들 머리에 장치를 꽂아 가상현실에서 살게 합니다. 주인공 네오는 어느 날 반란군을 만나 이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되죠. 지금껏 자기가 살아온 도시와 삶이 전부 가짜였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현실이라 믿은 꿈에서 깨어나서 기계과 맞서 싸우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유명하지만 좀 된 영화다 보니 못 보신 분도 계실 겁니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번쯤 생각합니다. 과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현실이 진짜인가? 아니면 진짜라고 믿는 감각인가? 인간이 외부세계를 지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감각입니다. 따라서 감각만 통제하면 인간은 현실과 전혀 다르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꾸는가? 나비가 장자 꿈을 꾸는가?
이런 궁금증은 며칠 지나면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우리 눈앞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죠. 일을 해야 하고,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4호선 지하철에 몸을 우겨넣어야 하는데 현실 운운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현실입니다. 설령 지금이 꿈이라 해도, 현실이 이것보다 더 잔인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예전 SF소설이 하나 떠오릅니다.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요. 주인공이 가상현실 체험 서비스를 접합니다. 주인공은 그러나 현실에 남아서 가족과 평범한 삶을 삽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평범한 삶이 가상현실 체험이었고, 깨어나 보니 현실은 더욱 끔찍했더라, 는 반전이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저는 현실을 조리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낙관적이거나 너무 비관적이며 중간이 거의 없습니다. 대책 없이 뒹굴다가도 곧 죽을 듯이 당황합니다. 그나마 심리상담을 받고 나서 제 이런 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엔 제가 이상하게 받아들인다 생각하는 대신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 차가 미칠 듯이 커서 뭔가 반응하기도 전에 휩쓸린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모래성을 지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이 멀어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라 가만히 있었고, 뒤늦게 지은 모래성은 이때다 하고 들어오는 밀물에 부서졌습니다.
심리상담이 제 이런 면을 알게 해줬습니다. 알게 해준 거지 해결책을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는 게 어디입니까. 상담사는 말했습니다. 상담이 아픔을 없애지는 않지만 아픔을 참을 수 있는 범위로 조절할 수는 있다고 말입니다. 그전엔 동굴에 숨어 밤마다 습격하는 짐승에 무자비하게 뜯겼지만, 이제는 무기를 쥐고 있다고. 짐승이 습격을 그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 감정에 맞설 수는 있다고 말입니다. 큰 발전이었습니다. 이제껏 저는 감정이란 마음에 일어나는 불길과 같아서 이성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하지만 마음이란 제멋대로인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가 서로 견제하듯이 이성의 말을 들으며 이성에도 영향을 주는 기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심리학자가 아니라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법부 관계자님들, 꼬우신가요?)
지금은 힘들긴 해도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강을 직접 건너가고자 합니다.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전 감정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흡사 눈을 감고 비빔밥을 먹으며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맞추는 것 같습니다. 감정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여기는 분노하고, 여기는 기뻐하고, 저기는 슬플 수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전엔 감정은 자동차 기어처럼 기쁠 땐 백 퍼센트 기쁘고 슬플 땐 백 퍼센트 슬퍼야만 감정인 줄 알았습니다. 백 퍼센트가 아니라면 그냥 중립기어인 줄 알았죠. 그러나 중립기어 상태에도 감정은 존재했고, 그걸 너무 무시한 나머지 저는 감정에 한해서는 일종의 신용불량자가 되어 어느 감정도 제대로 표현하고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이코패스가 된 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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