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무엇인가. 왜 지금은 어릴 때처럼 책에 푹 빠지지 못할까. 요즘 들어서 독서가 정말 힘들어졌다. 책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다. 성공하려면 책을 읽으라고들 한다. 인터넷은 넓지만 딱히 깊지 않은 데다 거짓이 넘친다. 영상은 밀도가 낮다. 망해도 삼 대라고, 책은 아직 굳건한 정보의 왕이다. 문제는 책읽기가 참 지루하다는 것이다. 허리와 눈이 아프고 마음은 자꾸 딴생각을 먹는다. 어떻게 읽어야 오래 읽을까? 또 잘 읽을까? 독서법을 다룬 책 셋을 모았다.
1. 책은 신하다
처음 볼 책은 사이토 에이지의 <부자나라 임금님의 성공 독서전략>이다. 독서법 책이지만 읽다 보면 자기개발서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책은 우화 형식을 빌렸다. 부자나라를 시기하는 어두운 나라 스파이가 부자나라 임금과 만나 독서법을 배운다는 우화다.
부자나라 임금한테 책이란 신하다. 책은 정보화 시대 최고의 정보 제공자인데, 독서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심지어 문학도 감동이 목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책은 신하다. 따라서 필요할 때만 불러야 하고 모두 공평하게 예뻐할 필요도 없다.
"책은 날 위해 읽는 거야. 내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책은 안 보면 그만이지."
사이토 에이지는 책에서 '사이토식 시스템 속독술'을 가르친다. 연습을 통해 책 하나를 30분 동안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책 모든 부분을 정독하지 않고 중요한 부분만 읽는 것이다. 즉 눈알을 굴리는 속독술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 빼서 읽는 효율 중심 속독술이다. 시스템 속독술은 프리뷰, 포토리딩, 스키밍 과정을 거친다. 첫 프리뷰 단계에서는 5분 동안 표지, 차례, 저자 정보 등을 보며 대강 구성을 파악하고 어떻게 읽을지 구상해 둔다. 다음 포토 리딩 단계에서는 5분 동안 페이지를 재빨리 넘기며 책 속살을 읽지 말고 '본다'. 마지막으로 스키밍 단계에 들어가면 앞 단계에서 구상한 전략과 읽기로 결심한 분량에 따라 20분 동안 필요한 부분만 읽는다.
2. 책은 재밌으면 그만이다
다음 볼 책은 이동진의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다. 이동진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영화평론가라 아는 사람이 많다. 영화평론가는 책을 어떻게 읽을까.
이동진은 독서를 두고 아주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이동진에 따르면 책을 사는 것도 독서다. 있어 보이려고 하는 독서도 독서다(있어 보이려는 태도가 '없다'는 걸 전제하므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 빨리 읽어야 한다는 부담, 기억해야 한다는 부담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메모하고 접어도 돼며, 책을 숭배하지 말자고도 한다.
이동진은 독서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독서는 읽으면서 고독해지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읽은 책을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기억을 위해서는 메모나 글을 써보라고 이동진은 추천한다. 들어갔으면 나가야 어느 정도 완성된다는 것일까.
확실히 독서는 게임과 영화보다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이동진은 일단 오래 읽어보라고 말한다. 게임, 영화보다 진입장벽을 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보상을 해준다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3. 책은 소통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책은 채석용의 <나를 성장시키는 독서법>이다. 철학박사라는 타이틀에서 믿음이 생긴다. 한때 고전 열풍이 불어서 나도 철학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걸 읽느니 고대 수메르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 더 쉽고 재밌지 않을까 하고. 그런 철학책의 참호를 뚫은 사람이 말하는 독서법은 무얼까.
채석용은 독서란 소통이라고 말한다. 좁게 보면 독자와 작가의 소통이고, 넓게 보면 독자와 세상의 소통이다. 작가와 소통하려면 낑낑대며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질문하고 대화하듯이 읽어야 한다. 읽었으면 남과 공유해야 한다. 자기 의견을 올리고 남의 의견을 봐야 한다. 토론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골방에서 혼자 읽는 책은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자기 고집을 굳힐 뿐이다.
채석용도 독서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얼마나 잘 읽었느냐다. 채석용은 히틀러와 스탈린을 예로 든다. 둘도 책은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결국 책으로 자기 광기만 재확인하고 강화했다.
"비싼 돈 주고 산 책인데 내가 그 주인이 되지 못하고 책에게 휘둘린다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대화하라. 메모하라. 생각하라. 반대하라. 질문하라. 구기고 더럽혀라. 찢고 태워라. 책은 저자의 생각 모음일 뿐이다.
그리고 책을 잘 읽으려면 써 봐야 한다. 역지사지 정신이다. 채석용은 감히 주장한다. 글과 말 실력이 좋은데 독서를 싫어한다고? 그 사람은 실력이 껍데기거나 이미 소통하는 독서를 실천하면서 겸손하게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다.
프리하게
세 책 모두 책을 숭배하지 말라고 시킨다. 사이토 에이지는 책을 신하로 본다. 이동진도 책은 물리적 형태보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이 중요하다면서 더러워지는 것에 개의치 말라고 한다. 채석용은 찢고 불태우라 시킨다. 어느 쪽을 따르든 책은 주인이 아니다. 읽는 내가 주인이다.
반면 목적을 두고 두 책이 대립각을 세운다. 부자나라 임금님은 철저히 목적에 따라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동진은 독서는 행위만으로 가치가 있으며 지식과 통찰은 기분 좋은 부산물로 본다. 나를 성장시키는 독서법은 독서는 사람을 만나는 일로 비유했는데, 친해서 만나는 사람도 있고 비즈니스 목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있으니 그냥 즐기는 독서와 성공하는 독서를 구분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세 책을 뒤진 원래 목적, 그러니까 독서에 재미를 붙이는 방법에서도 방향이 갈린다. 이동진은 기대치를 낮추고, 재밌는 책을 골라 천천히 눈덩이를 굴리듯 재미를 붙이라고 말한다. 채석용은 미용실에서 머리 깎이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있지 말고 적극 참여하라 권한다(채석용도 책 선정은 전문가를 믿어보라고 조언한다). 자기개발서를 보면 반응하는 삶이 아니라 능동적인 삶을 살라고 한다. 그런데 '우두커니 독서'는 반응도 하지 않으니 반응하는 독서보다 더 소극적이다. 어쩌면 둘 다 맞을지 모른다. 소통하는 독서법이라면 더욱 진득한 독서가 가능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