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글쓰기와 닥터후, 엑셀, 통계학, 무료프로그램 배우기를 좋아하는 청년백수의 블로그
추억의 게임 (3)
<추억의게임> GTA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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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제가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면 장의사가 될 겁니다. 게임은 죽음으로 가득하죠. 스타크래프트 한 판만 뛰어 보세요. 게임세상 살인이야 일상다반사인데 유독 피에 민감한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GTA(Grand Theft Auto) 시리즈입니다.

 

위대한 차 도둑을 뜻하는 건전한 게임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알던 후배가 추천해 주더군요. 후배는 GTA지타라고 읽었습니다. 절대 지티에이라고 읽지 않았죠. 후배는 다 쏴 죽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켰습니다. 사실 GTA2가 어떤 게임일지는 몰랐습니다. 즐기던 게임들 중에 외국 게임은 적었고, 있다 해도 남들이 다 즐기는 게임이었죠.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이나 포트리스를 했고 족보를 켜놓고 퀴즈퀴즈를 했습니다(이 게임들도 언젠가 다루겠군요).

 

기억하시나요? GTA2를 실행하면 저격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사람 얼굴이 나오죠. 실행을 했더니대단했습니다! 주인공은 어떤 남자고 우리는 남자를 하늘에서 바라봅니다. 남자는 총을 들었는데, 그걸 지나가던 사람에게 쐈죠. 나쁜 놈도 아니고 적도 아닌 시민을 쏴 죽였습니다. 지나가던 자동차도 뺏어서 탔고요. 그래서 위대한 차 도둑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위대해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아무튼 저는 GTA2에 빠져들었습니다. 솔직히 미션이 뭔지 스토리가 어떤지 초등학교 4학년이 알았겠습니까? 영어는 쥐뿔도 모르는데 밑에 자막으로 쏼라쏼라거린들 제가 해석했겠습니까? 그냥 쏘고 놀았죠. 시민들한테 쏘고 경찰이 출동하면 경찰도 쏘고 그러다 총 맞아 죽고. GTA2는 제가 처음으로 맛본 오픈월드 게임이었습니다. 시간제한도 없었고 공간제한도 없었습니다. 그저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놀았습니다. 스테이지나 보스도 없었습니다. 마치 세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았죠.

 

나중에는 치트키를 배웠습니다. 무적 치트키를 쳐서 죽지 않는 몸이 되고 모든 무기를 얻는 치트를 쳐서 바주카포와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탱크를 소환하는 치트키를 쳐서 탱크로 도심을 휘저었습니다. 탱크를 타고 지나가면 모든 차량이 깔려서 폭발하죠. 아무도 저를 막지 못했습니다. 다만 경찰이 달려와서 차문을 열고 저를 체포하면 저는 바닥에 누워서 당해야 했습니다. 무적 치트키도 공권력의 직접 침입을 막지는 못하더군요. 솔직히 GTA2를 하루에 몇 시간이고 즐겼지만 갓겜이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탑뷰 방식이 불편하긴 했죠. 위에서 쳐다보다 보니 주인공 앞에 뭐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경찰차를 뺏어 타서 전속력으로 달려가다 앞을 지나가던 승용차에 들이받거나 강으로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또 생각은 안 나지만 너무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보니 어디가 어딘지 몰랐습니다. 이것도 역시 위에서 쳐다보는 탑뷰방식의 단점이죠. 건물은 옥상만 보이고 자동차는 차체 위만 보였으니까요. 게임에서 눈에 익은 것이라고는 아스팔트 도로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재밌었어요.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재밌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지만 무작정 사람만 죽이다 보면 게임불감증에 걸렸죠.



 

그렇게 1~2년이 지났습니다. GTA2를 향한 제 애정은 식었습니다. 슬슬 질린 거지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놀랄 만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GTA2가 후속작을 낳는다는 소문이었지요. , 바로 GTA3였습니다. 전작은 후배가 추천해서 알았지만 이번엔 저 혼자 알아냈지요. 그때만 해도 게임정보 사이트가 많지 않았습니다. GTA3가 어떤 게임인지 보려고 검색해서 게임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아마 게임스팟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맙소사. GTA3는 넘버 값을 했습니다. 바로 3차원 그래픽으로 바뀐 것이었죠. 정확히는 3차원 TPS 스타일로 게임이 바뀐 겁니다. 역시 게임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주인공이 트럭을 하고 호송되다가 공격을 받아서 탈출하고 다리가 끊기게 됩니다. 어떤 여자가 나와서 재수 없는 말을 하고 도망가는데 솔직히 누가 신경이나 씁니까. 그냥 놀면 됩니다. 스토리는 엿이나 먹으라고 하고 저는 GTA2와 똑같이 게임을 즐겼습니다. 바로 무차별 살인을 하는 거지요. 3차원 그래픽은 길거리 총기난사를 더 재밌게 바꿔주었습니다. 이번에도 치트를 썼지요. 무적이 되어 모든 무기 탄약을 9999로 바꾼 다음 사거리 한복판에 나와 자동차에 총알을 쏘는 겁니다. GTA3만 해도 자동차 바퀴를 터뜨리거나 창문을 쏴서 운전자를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많이 쏴서 터뜨려야 했죠. 경찰 헬기는 어찌나 안 터지던지. RPG가 아니면 상대가 안 되었습니다. 그때도 경찰이 제 차문을 열면 BUSTED라는 글귀와 함께 게임이 끝났지만, 그건 운전만 잘 하면 되는 일이죠. 끊긴 다리도 치트로 넘었습니다. GTA3 주인공은 수영을 못 했거든요. 자동차에 걸리는 중력을 약하게 만드는 치트를 치면 자동차가 빨라질수록 조금씩 떠올랐습니다. 퀘스트를 해결하고 스토리를 진행하면 자동으로 풀리는 지역도 치트로 갔지요. 어차피 퀘스트를 줘도 해결 못 했습니다. 영어를 알아야지요.

 

GTA 시리즈는 해가 갈수록 발전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문제도 많이 제기했죠. 폭력성 논쟁이 대표적인데요. 길 가던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게임이 시끄럽지 않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겠네요. 사실 초등학생이던 저한테도 GTA는 잔인한 편에 속했습니다. GTA3에서 저격총으로 사람 머리를 쏘면 머리가 날아가지요. 잘린 목에서 핏방울이 톡톡 튀고 시체는 풀썩 드러누웠습니다. 당시 공중파 뉴스에서도 게임의 폭력성을 다뤘는데요. 그때 자료화면으로 GTA 시리즈와 일본에서 만든 미행 시리즈를 보여줬죠. 사실 미행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도 좀 미친 게임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운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바로 했을 거라는 사실은 안 비밀입니다. 지금 게임들이 보여주는 폭력성을 보면 GTA3는 애교지만, 그 당시만 해도 사안이 심각했습니다. 걱정하는 쪽도 일리가 있고 무심한 쪽도 일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찬반을 가르고 싶지는 않네요.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되도록 게임은 이용가에 맞춰서 하라는 겁니다. 그럼 초등학생인데 GTA를 즐긴 저는 뭐냐고요? 뭐긴 뭡니까, 급식충이었지.

 

이후로도 GTA 시리즈는 계속되었지요. 바이스 시티나 산 안드레아스는 더 발전했습니다. 바이스 시티부터는 바퀴에 펑크도 났고 창문을 쏴서 운전자를 죽일 수도 있었죠. 산 안드레아스는 국내 멀티 서버도 생겼고 그놈의 핫커피 모드도 생겼습니다(해본 적은 없어요. 정말입니다). GTA4는 처음 콘솔로 나온 데다가 그래픽 사양이 높아서 즐기질 못했습니다. 시리즈 최신작 GTA5는 이름에 걸맞게 완벽한 그래픽, 완벽한 액션, 완벽한 스토리, 완벽한 폭력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마 GTA6가 나온다면 5년은 기다려야겠죠. 그동안은 GTA5가 오픈월드 범죄 게임의 끝판왕으로 남을 겁니다. 혹시 압니까? 지금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후배가 선배에게 GTA5를 추천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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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찾기, 게임의 본질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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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지뢰찾기가 있었습니다. 지뢰찾기의 역사는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초기 컴퓨터 시절 Cube라는 퍼즐게임이 나왔습니다. 이후 80년대에 YompMined Out 같은 이름을 달고 만들어진 게임은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모음집에서 지뢰찾기라는 이름으로 태어납니다. 윈도우즈 3.1부터 지뢰찾기는 윈도우즈 기본 게임으로 자리잡죠. 이후 지뢰찾기는 윈도우즈의 상징 비스무리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빌 게이츠 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지뢰찾기 규칙은 간단합니다. 게임을 켜면 회색 칸들과 노란 대가리가 나타나는데, 회색 칸들을 클릭해 갑니다. , 지뢰가 있는 칸을 밟으면 안 됩니다. 지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지뢰 위치를 알까요? 바로 칸에 적힌 숫자를 보고 지뢰 위치를 추론합니다. 칸에 적힌 숫자는 주변 여덟 칸에 있는 지뢰 개수입니다. 만약 숫자가 3이면 여덟 칸 중 세 칸에 지뢰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뢰가 묻힌 칸은 오른쪽 마우스 클릭으로 깃발을 꽂습니다. 지뢰가 없는 모든 칸을 클릭해서 드러나게 하고 지뢰 칸은 깃발을 꽂으면 게임을 이깁니다. 반대로 지뢰가 있는 칸을 한 번이라도 클릭하면 집니다. 사실 개인이 만든 다양한 지뢰찾기도 많습니다. 멀티플레이 지뢰찾기, 3D 지뢰찾기 등등.

 

여러분이 학교 컴퓨터 시간에 자리에 앉았는데, 그 컴퓨터에 아무 게임도 없다고 칩시다.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립버전이나 피카츄 배구나 눈싸움 플래시 게임마저 없다면? 웬만큼 선생이 빡세지 않은 이상 모든 윈도우즈에는 지뢰찾기가 깔립니다. 프리셀과 카드 게임은 솔직히 어렵죠. 윈도우즈 기본 게임 중에는 지뢰찾기가 제일 재밌습니다. 학생뿐입니까. 시간을 때워야 하는 직장인들도 몰래 지뢰찾기를 켭니다. 난이도 쉬움 지뢰찾기는 창 크기가 명함보다 작으니, 지나가던 부장님이 볼 확률도 낮죠.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지뢰찾기가 유명해서 유명한 게임일까요? 윈도우즈 기본 게임이라서 명성이 높은 걸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뢰찾기는 사실 웬만한 게임 못지않은 게임성이 있습니다. 지뢰찾기에는 첫째, 목표가 존재합니다. 샌드박스, 자유도 운운하지만 출시하자마자 푹 식는 게임들이 있습니다. 물론 목표가 없어도 좋은 게임일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 게임들은 지향점이나 과제를 플레이어에게 줍니다. 플레이어는 과제를 해결하면서 재미를 느끼죠. 레이싱 게임에서는 1등으로 들어와야 하고 축구 게임에서는 골을 더 많이 넣어서 이겨야 합니다. 대전격투 게임에서는 상대방 체력을 먼저 0으로 만들어야 하고 RPG 게임에서는 모험을 완수해야 합니다. 심지어 샌드박스 게임도 플레이어들은 자신만의 목표를 만듭니다. 이번엔 여기로 가 봐야지, 이번엔 이걸 지어 봐야지. 지뢰찾기의 목표는 말 그대로 지뢰를 전부 찾는 겁니다.

 

둘째, 지뢰찾기에는 도전이 있습니다. 목표가 너무 쉽거나 어렵다면 게임을 할 맛이 안 나겠죠. 목표가 쉬워지지 않으려면 일종의 방해자가 플레이어를 방해해야 합니다. 지뢰찾기에서 방해자는 바로 지뢰죠. 밟으면 게임이 끝납니다.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하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플레이어는 집중하게 됩니다. 특히 지뢰찾기 속 도전에는 다른 요소가 적습니다. 지뢰찾기를 플레이하려면 무조건 어느 한 칸은 운에 맡기고 밟아야 합니다. 가끔 게임 막바지에 운으로 찍어야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 상황만 빼면 지뢰찾기에는 운이 없습니다. 오직 플레이어가 발휘하는 논리뿐입니다. 게임과 플레이어가 순수한 대결을 펼치는 것이죠. 현질유도도 가챠도 지뢰찾기에서는 다른 세계 이야기입니다. 좀 무섭군요. 5만 원을 들이부어서 상자를 까야 지뢰를 찾는 게임이라니

 

이렇듯 목표와 방해자, 순수한 도전이 잘 어우러진 지뢰찾기는 게다가 가볍습니다. 제가 방금 윈도우즈 시스템 폴더를 찾아봤습니다. 지뢰찾기 용량은 117KB였습니다. 117MB도 아니고 117KB였단 말입니다. 옛날 플로피 디스켓 기억하시나요? 지금 저장 아이콘의 유래가 된 저장 매체죠. 아주 커서 펄럭거리는 버전과 작아져서 단단한 버전이 있었는데, 단단한 플로피 디스크 용량이 1.44MB였을 겁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하죠. 그거보다 가벼운 USB 플래시 저장장치가 1GB는 넘을 텐데. 아무튼 그 옛날 디스크에도 지뢰찾기가 들어갑니다. 1.44MB는 약 1470KB니까, 그 디스켓 하나에 지뢰찾기가 12개 들어가죠. 117KB라니! 현재 휴대폰으로 모바일 전용 페이지를 접속해도 쓰는 데이터만큼도 안 될 겁니다. 카카오톡으로 올리는 사진 한 장 용량보다 작겠죠.

 

종이 한 장처럼 작은 용량이지만 있을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이 절 전율케 합니다. 지뢰라는 컨셉을 생각해 보세요. 지뢰찾기에는 줄거리도 등장 인물도 세계관도 없지만 지뢰가 있습니다. 지뢰가 있다, 지뢰를 없애면 이긴다.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무거운 주제입니까? 컨셉은 게임에 아주 맛있는 양념이 됩니다. 바둑이나 스도쿠 같은 추상게임을 제외한 게임에서 컨셉을 없애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에 스토리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조엘도 엘리도 없고 그냥 아저씨와 어린애가 좀비 잡으면서 돌아다니는 게임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컨셉이 살아야 게임이 빛납니다. , 지뢰찾기에 심오한 스토리는 없죠. 하지만 지뢰라는 컨셉은 지뢰찾기와 잘 어울립니다. 지뢰는 땅 속에 설치하죠, 육안으로는 안 보입니다. 지뢰찾기도 지금은 안 보이지만 어딘가에 숨은 것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만약 지뢰찾기가 아니라 전단지찾기, 잡초찾기였어도 지금처럼 재미있었을까요.

 

  이처럼 지뢰찾기는 목표가 분명하고 순수 플레이어의 실력에 승패가 달렸으며 게임 내용과 맞물리는 컨셉을 지녔습니다. 좋은 게임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죠. 단점이 있긴 합니다. 단순해서 오래 하면 질리고 액션 게임 같은 쾌감은 없습니다. 결국 지뢰찾기는 수학게임이니까요. 하지만 지뢰찾기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좋은 게임이란 무엇인가.’ 같은 진지빠는 질문에 답합니다. 컴퓨터실에서 몰래 게임을 하던 저희에게 지뢰찾기는 게임의 기본 개념을 주입한 셈이죠. 흔히 말하는 갓겜의 이 기독교 신이라면, 지뢰찾기는 무위자연의 신이 들어간 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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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게임> 롤러코스터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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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 괴물은 사람들은 늪에 빠뜨렸습니다. 사람들은 늪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늦었습니다. 빠졌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목구멍까지 잠긴 후였죠. 괴물은 끊임없이 공격했습니다. 지금도 괴물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괴물의 이름은 바로 롤러코스터 타이쿤입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1999년 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최고로 많이 팔린 PC게임이 되었죠.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우리는 놀이공원을 만들고 운영합니다. 길을 닦고 놀이기구를 짓고 사람들을 모으죠. 새 놀이기구를 연구하고 각종 주전부리 상점을 길목에 배치합니다. 놀이기구 수리공과 청소부를 배치해서 공원을 관리하고 땅을 깎고 나무를 심어서 정원을 짓습니다. 솔직히 손님들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원을 보는 저희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죠. 크리스 소이어가 만든 이 괴물은 중독자들을 낳았습니다.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단순하지만 아기자기한 그래픽, 놀이공원 사장이 된다는 대리만족이 게임엔 엔딩이 없습니다. 시나리오가 있어서 깨야 할 목표가 있지만 다 깨면 계속 할 수 있어요. 손을 마우스에서 놓을 수가 없습니다. 문명 시리즈가 한 턴만 더!를 외친다면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한 기구만 더!를 외치게 만듭니다. 이 놀이기구만 연구하고! 여기 사거리에 정원과 쉼터 하나만 짓고!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흐리지만 그날은 크리스마스 직전이었을 겁니다. 저와 가족들은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용산 전자상가를 지나갔죠. 지금이야 용산 전자상가 하면 손님 맞을래요?’나 다 망해가는 가게들이 떠오르지만, 그때만 해도 전자상가는 잘 나갔습니다. 오리진도 없었고 스팀도 없었고 국전은 아는 사람만 알았고 인터넷으로 게임을 산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전자상가에는 도깨비 상가라는 곳이 있는데, 도깨비 상가는 저한테는 천국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게임이 다 모인 보물창고였죠. 도깨비 상가 건너편은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쪽은 콘솔게임이 많았거든요. 저는 그때 콘솔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가족들과 함께 전자상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도깨비 상가 문 앞에서 게임을 파는 아저씨를 보았습니다. 아저씨는 게임 패키지들을 진열한 채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게임 패키지 말입니다. 게임 패키지 안에는 CD와 설명서가 들어갑니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패키지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겠군요. 스팀 같은 곳에서 물리적 형태 없이 게임을 받으니까요. 그땐 온라인으로 게임을 구매해서 다운로드하는 일은 상상불가였습니다. 인터넷으로 게임을 받으려면 와레즈 같은 불법 사이트에 가서 500조각으로 나뉜 게임을 받아야 했습니다. PC 게임은 책 한 권보다 큰 종이 상자에 넣어서 팔았죠. 상자를 뜯으면 설명서랑 CD키랑 CD가 나왔습니다. 용량이 큰 게임은 CD가 여러 장이었습니다. 아직 블루레이는커녕 DVD 디스크가 태어나기 전이었거든요. 예전에 매트릭스 게임을 샀는데 그 게임은 CD가 무슨 네다섯 장은 되었습니다. 배틀필드 1942CD가 네 장은 되었나요? PC 게임을 포장하던 종이 상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플라스틱 케이스로 바뀌었고, 나중 들어서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도깨비 상가 앞에서 게임을 팔던 아저씨는 저한테 게임을 권했습니다. 게임은 할인 행사 중이라 쌌습니다. , 안 팔리니까 가격을 깎고 굳이 추운 밖에서 게임을 팔던 것이겠지만 제가 뭘 알았겠습니까. 게임=좋다, 할인하는 게임=아주 좋다. 제 머리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게임을 사 달라고 졸랐습니다. 부모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금방 사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게임을 골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 눈에 띈 패키지가 보였습니다. . 그건 바로 롤러코스터 타이쿤이었습니다. 제가 산 패키지는 롤러코스터 타이쿤과 확장팩 루피 랜드스케이프를 합친 합본이었습니다. 할인까지 하면서 확장팩이 포함된 게임=아주아주아주 좋다. 저는 바로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골랐습니다. 가격은 만 얼마이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저씨는 비닐봉지에 게임을 포장해서 주었고, 저는 봉투를 애지중지하며 집으로 왔습니다.

 

 

세상에, 예수를 본 세 동방박사도 저보다는 기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런 갓겜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다니. 정맥주사를 처음 맞은 대통령 기분이 이랬을까요? CD를 넣고, CD키를 입력하고 인스톨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CD-ROM도 거의 멸종했군요. 요즘 컴퓨터 본체는 CD 넣는 구멍도 없고요. 게임을 켜자 하스브로 로고가 덜덜덜 롤러코스터 체인 소리를 내며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메인메뉴부터 환상이었죠. 여러분도 기억하십니까, 롤러코스터 메인메뉴 음악을? 지금도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그 놀이공원 음악을 배경으로 화면 뒷부분에서 온갖 놀이기구들이 돌아갔습니다. 롤러코스터가 내려가면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재밌는 기구를 즐기고 나오며 하하하 웃고.

바로 첫 시나리오를 시작했습니다. 평평한 초록 벌판이었죠. 제 임무는 기간 내로 이 놀이공원 수준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입구 근처에는 회전목마를 설치했죠. 입구와 출구를 짓고 입구는 입구 전용 도로를 깝니다. 손님들이 들어오고 돈이 벌립니다. 회전목마 옆에는 미끄럼틀이랑 귀신의 집이랑 바이킹을 깝니다. 손님들이 더 들어옵니다. 조금 대담해져서 떨어진 곳에 롤러코스터를 짓습니다. 다행히 제작진들이 만들어 놓은 코스가 있었죠. 롤러코스터를 짓자 사람들은 더 몰려옵니다. 이건 끝이 없었어요! 짓고 짓고 또 짓고! 마치 제가 신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공원이 되는 물아일체, 제가 공원인지 공원이 저인지 헷갈리는 호접지몽의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심장은 전율하지 않았습니다. 암요, 심장이 전율하는 중독성은 하수죠. 중독하는 줄도 모르고 서서히 사람을 잠기게 하는 중독성이야말로 무서운 중독성이고,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중독성 고수였습니다.

 

 

할 수 있는 짓, 해보고 싶은 짓이 너무 많았습니다. 다음엔 입구 근처부터 롤러코스터를 지어야지, 이번엔 공원을 가로질러 손님들을 안내하는 수송기차를 지을 거야. 어라 수송기차를 지으려면 어느 정도 계획공원을 세워야 하잖아. 그럼 어디 보자. 여기에는 온순한 놀이기구들만, 여기는 땅을 내려서 물을 깔고 카누를 둬야지. 이곳은 과격한 기구들이 많아서 꼭 벤치와 화장실을 지어야 해. 저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롤러코스터 타이쿤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사이트는 신세계였죠. 저는 그때 정원과 쉼터는 만들 줄도 몰랐습니다. 꽃이나 나무는 그냥 장식물로 여겼죠. 하지만 사이트에서 본 사거리 정원은 예술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저도 짓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이트 고수들만큼 잘 만들지는 못하지만, 비주얼도 또다른 재미죠. 놀이공원은 멋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지마의 행복한환상같은 사이트는 살아 있습니다.

사막 시나리오도 나오고 탄광 시나리오도 나왔지만 저한테는 그 첫 시나리오, 평평한 초원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가장 많이 즐긴 시나리오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롤러코스터 타이쿤에 샌드박스 모드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2도 성황리에 출시했지만 전작과 다른 것이 거의 없었죠. 롤러코스터 타이쿤 3는 실망했습니다. 언젠가 게임이 3차원이 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99년의 2차원 픽셀이 더 좋습니다. 심지어 새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악평을 들었죠. 플래닛 코스터라는 게임이 롤러코스터 타이쿤의 직계후손보다 더 선조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저는 예전처럼 미친 듯이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이 나면 실행합니다. 크리스마스 직전에 산 CD는 이제 제 컴퓨터에서 인식을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스팀에서 구매해서 실행 중이죠. 스팀에서 파는 추억을 지금도 무시 못 할 수의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3D? 코옵? VR? 다 필요없습니다. 우리를 즐겁게 한 건 그저 아기자기함과 제한된 픽셀에서 온 아름다움이었죠. 이제는 휴대폰 게임보다 사양이 낮은 게임이 되었지만, 롤러코스터 타이쿤은 여전히 갓겜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언제 본인 이름을 딴 놀이공원을 짓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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