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혼밥하는 찐따라 잘 안들리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 만화 ‘혼밥툰’의 대사입니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나요. 이전에도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혼밥툰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혼자 밥 먹기, 이른바 ‘혼밥’이라는 단어도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개인주의니 뭐니 때문에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혼밥에 대한 안 좋은 시선들이 혼밥과 부딪히던 와중에 혼밥툰은 그 현상을 캐치했고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티셔츠까지 나왔죠. 혼밥 현상이 없었다면 혼밥툰도 없었고, 혼밥이라는 단어도 생기지 않았겠죠. 혼밥이라는 단어 자체가 혼밥 현상이 늘어난다는 걸 스스로 증명합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시간에 쫓겨서 혼밥조차 하지 못한다면?
논문 사이트를 탐색하다가 신기한 논문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간헐적 점심 결정장애 증후군 환자입니다. 따라서 혹시 점심 결정을 다룬 논문이 없을까 싶던 거죠. 검색창에 점심을 쳤는데 이 논문이 나왔습니다.
대학생의 점심식사 방식과 점심식사에 부여하는 의미
-문화기술적 연구
이용숙, 이수현
비교문화연구 제 22집 제2호, 2016.7, 329-390
제목을 보시다시피 대학생들이 어떻게 점심을 먹고 점심에 무슨 마음을 품는지 조사한 논문이었습니다. 연구진들은 설문조사, 수도권 30여 대학 참여관찰과 60여 학생들을 심층면담을 실시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이전 대학 식사 연구는 영양학과 보건학 측면으로만 다뤘다고 합니다. 논문 부제에 달린 ‘문화기술적’이라는 단어는 바로 그런 뜻이겠죠. ‘우린 영양학과 보건학으로 다루지 않았음’.
논문을 보니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꽤 되었습니다. 복수응답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혼자 점심식사를 하는 대학생은 25.5%, 2명은 49.0%, 3명은 50.0%였습니다. 혼밥이 일등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혼밥 실태가 심각하군요. 하지만 논문이 주목한 쪽은 혼밥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밥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였죠.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학생 중에서 하루 세 끼 이상을 먹는 사람은 33.3%였습니다.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못 하거나 안 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가 18.5%였고 ‘학교에서 거의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다’가 13.0%였습니다. 이들한테는 학교에서 점심을 못 먹거나 안 먹는 이유를 조사했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수업으로 인해서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였고 그 다음은 ‘학교에는 먹고 싶은 메뉴가 없어서’였습니다. 즉 못 먹는 것이 일등이고 안 먹는 것이 이등이었죠. 정말 특이한 사실은 바로 학년별 조사였습니다. 먹고 싶은 메뉴가 없어서 점심을 안 먹는다고 한 비율은 1학년에서 4학년으로 갈수록 줄어들었습니다. 반면에 시간이 없어서 점심을 못 먹는다고 한 비율은 4학년으로 갈수록 상승해서, 4학년에서 80%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복수응답이지만, 점심을 넘긴 4학년 중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 먹는 학생들이 많음을 의미합니다.
감히 4학년으로 갈수록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지는 이유를 생각하자면, 그 이유는 바로 취업준비일 겁니다. 토익, 한국사, 한국어, 공시, 공기업 등등. 일자리는 희생을 요구하고 대학생들은 시간과 노력을 희생합니다. 자연히 몸과 마음이 바빠지고 여유는 사라지죠. 점심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쯤 되면 혼밥 대신에 ‘노밥’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는 게 이상하죠. 유행은 사람 입에 달려서 제가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노밥 이야기를 할까요?
노밥은 혼밥보다 넓습니다. 혼밥도 밥이니만큼 배를 채울 수는 있죠. 하지만 노밥은 아예 밥을 먹지 않는 겁니다. 노밥이 더 심각하죠. 여러분이 다이어트를 하거나 단식수행을 겪는 게 아니라면, 점심 거르기가 좋을 리 없습니다. 그리고 노밥은 강제적입니다. 물론 누가 숟가락을 억지로 뺏지는 않지만 일종의 반강제적인 포기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에너지가 나야 돈도 벌고 시간을 벌 텐데. 누구보다 힘을 내야 할 인생의 시기에 오히려 힘을 채울 기회를 뺏기는 겁니다. 악순환이죠.
아까 노밥은 혼밥만큼 유명해지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래서 더 사안이 심각합니다.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 모르기 때문이죠. 혼밥은 차라리 재미라도 있습니다. 혼자 밥을 먹는 쓸쓸함, 식당에 가서 1인분을 시키면 날아오는 싸늘한 시선. 풍자할 거리가 있었고 그래서 혼밥툰이 태어났죠. 하지만 죽을 만큼 굶지 않는 이상 노밥은 얘기할 거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화장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까먹는 이야기, 얼마나 비참합니까. 노밥은 비참함도 이끌어내기 힘듭니다. 사람들한테 ‘나 오늘 시간이 없어서 점심을 걸렀어.’라고 말하면, 그냥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어떤 어른들은 ‘옛날엔 그만큼도 못 먹었어!’라며 소리를 지를지 모르겠군요. 노밥은 혼밥보다 ‘꺼리’가 적습니다.
어떤 분은 저보고 억지로 유행어를 밀어붙인다고 하시겠지만, 정말 밀어붙인다면 ‘노밥’보다 더 좋은 단어를 떠올렸을 겁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지를 못하는 세상이 답답합니다. 이러다가는 잠도 줄이고 샤워도 줄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결론까지 왔으니 평론가 코스프레를 해 보죠. 혼밥이 개인주의와 단절된 관계를 상징한다면 노밥은 살기 위해 자기 삶을 케밥처럼 깎아 버리는 청춘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논문 말대로 '이러한 대학생 문화의 변화는 공부 시간만이 아니라 점심식사 시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들에게 모든 시간은 '밝은 미래를 위해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자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331p). 위 논문 중간에 나오는 한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마칩니다.
“만약 12시과 1시 사이에는 모두 공강으로 만든다면 내 점심식사 방식이 달라질까” 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다. 지금도 소위 점심시간 대에 공강이 만들어져 있는데도 나는 이렇게 허술하게 밥을 먹고 있는 상태이다. 내 식사방식이 달라지려면 시간이 달라지기보다는 다른 생활방식들이 달라져야 할 것 같다.(35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