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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1)
(1)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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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만 해도 귀신을 보는 사람은 적었다. 무당들, 심령술사들, 정신병자들.

하지만 그날부터 귀신은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해가 지고 밖이 어둑해지면 그들은 나타난다. 창백한 피부, 까뒤집힌 눈, 풀어헤친 머리칼. 첫날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경찰력과 군사력이 총동원되고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사람들은 문을 잠갔고 창문을 가렸다. 하지만 귀신들은 문과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공포의 연속이었다. 비명 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계엄령이 떨어지고 주식시장은 무너졌다. 이론물리학 책은 불탔고 민속신앙이 활개를 쳤다. 혼령을 부정하는 모든 종교는 무시당했고 무신론은 자취를 감췄다.

 

그들은 새벽 새가 울면 돌아갔다. 그리고 해가 지면 돌아왔다. 매일 이랬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적응했다. 귀신은 최소한 물리적인 힘은 없었다. 컵을 엎지르거나 사람을 넘어뜨리지는 못했다. 까뒤집힌 눈은 안 쳐다보면 그만이었다. 풀어헤친 머리칼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목욕을 하거나 섹스를 할 때 좀 불쾌하긴 했지만 그들은 프라이버시나 알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두자. 시민단체와 소수 정당이 외친 메시지는 급격히 퍼졌다. #투명하지않은공기일뿐. 무시하자. 무시하고 생업에 복귀하자. 기업연합과 보수정당도 열심히 외쳤다.

 

작년에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귀신을 차로 치었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차에 치인 건 귀신이 아니었다. 사람이었고 운전자의 전 여자친구였다. 운전자는 피해자가 귀신 놀이를 즐겼으며, 그날도 귀신인 척 했기에 그냥 페달을 밟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CCTV가 근처에 있었다. 모든 배심원과 판사는 여자가 귀신 흉내를 내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징역 15년으로 기억한다.

 

귀신을 반기는 집도 많았다. 우연히 자기 집에 들어온 귀신이 돌아가신 어머니인 집들. 눈이 까뒤집혔지만 죽은 가족을 본 그들은 행복했다. 가족, 친구, 남편, 부인, 자식이 그리운 사람들은 길을 나섰다. 생전 사진을 올리며 귀신을 찾았다. 아예 돈을 받고 원하는 귀신을 찾아 주는 서비스가 횡행했다. 귀신 사진을 찍어 올리고 귀신과 사진을 대조해서 찾는 앱을 개발한 개발자가 돈방석에 앉았다. 혹시 미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경찰은 실제로 미제 살인사건 피해자 귀신, 수배자 귀신을 찾아냈다. 하지만 귀신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왜 아무 말도 없을까? 눈길도 주지 않고 왜 돌아다니려고 할까?

 

지난 달 나는 이상한 제보를 받았다. 그 사람은 귀신이 자기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사람 집에 가서 며칠 묵었다. 정말 그랬다. 귀신은 이 집 근방에는 얼씬도 안 했다. 집주인은 불안했다. 귀신이 찾아오던 초기에는 기뻤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따로 노는 기분이 든다면서 몸서리쳤다.

 

조사 결과 귀신이 접근하지 않는 사람이 꽤 되었다. 나는 그들을 귀신 면역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불안해했다. 왕따 피해자들처럼. 사람들은 어느새 귀신을 바랐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귀신은 사람을 괴롭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누군가를 찾아가지 않는 것이 더 괴롭다고 생각하고 작전을 바꾼 것이 아닐까?


며칠 전부터 내 근처에도 귀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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