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이야기
한밤중, 칠흑 같은 바다가 일렁인다. 조명을 켜놓은 항구는 분주하다.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짐을 나르고 있다. 컨테이너에서 박스를 꺼내 화물차에 싣는다. 이 일은 밤에 해야만 한다. 박스 속에 있는 건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게 뭐냐고? 알면 안 된다. 위험하다니까...
"사장님."
양복쟁이 하나가 검은 세단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말한다. 진한 선팅을 씌운 창문이 내려간다. 그곳 뒷좌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사장님이라 불린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는다. 애초에 한밤중에 선글라스는 왜 쓴 것일까. 역시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사람답다.
"뭔데?"
사장은 목에 힘을 준다. 이 세계는 멋이 힘이다.
"작업 끝났습니다."
사장이 창문 틈으로 보니 벌써 화물차가 상자로 가득하다. 이제 마무리하고 뜨기만 하면 된다.
"갯수는 확인했고?"
"그게..."
"무슨 일 있어?"
차 밖에 선 남자가 식은땀을 흘린다. 조짐이 심상치 않다.
"중국 쪽에서 상자 수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몇 박스인지도 안 말하고 보내주다니. 그쪽에서 삥땅이라도 치면 어쩔 셈이야!"
"큰형님, 아니 회장님께서 이번 일은 믿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회장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사장은 선글라스를 고쳐 쓴다.
"그래도 빼돌린 게 있는지는 알아야지. 정말 중국 쪽에서 아무 말도 없었어?"
"조심히 배송했다고 그랬습니다. 세 박스씩 묶어 보내려니 두 박스가 남고, 다섯 박스씩 보내려니 세 박스가 남고, 일곱 박스씩 보내려니 두 박스가 남았답니다. 그래서 그냥 공안에 돈 좀 찔러 한 번에 보냈다면서 말입니다."
"이게 뭔 개 같은 수학 문제냔 말이야."
많은 사람은 이런 '사장님'과 '회장님'은 학창시절에 놀기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사람 중에는 고학력자가 의외로 많다. 이 일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법이다. 사장도 서울에 있는 이름 있는 대학교를 나와 수학에는 자신이 있다.
"어디 보자. 일곱 박스씩 보내면 두 박스가 남는다 그랬지? 7에 2를 더하면 9. 9는 세 박스로 딱 떨어지니까 아니야. 14에 2를 더하면 15. 15는 다섯 박스로 딱 떨어지니까 아니야. 21에 2를 더하면 23. 23은 세 박스로 나누면 2가 남고 다섯 박스로 나누면 3이 남아. 그래, 23박스다. 내 말 맞지?"
"사장님, 죄송하지만 그보다는 많이 왔습니다."
"뭐야? 아 씨. 계속 구해야 하잖아. 28에 2를 더하면 30. 이것도 아니고. 35에 2를 더하면 37. 이것도 아니고…."
칠흑 같은 밤. 바다는 계속 일렁이고 사장은 검은 세단에 앉아 7의 배수에 2를 더해간다….
이 문제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서기 440년 경 남북조 시대(출처 : Ian Kiu, Wikipedeia Commons)
고구려 장수왕이 재위하던 서기 5세기. 중국은 한족의 남조와 유목민족의 북조가 땅을 갈라 살았다. 이때를 남북조 시대라고 하는데, 이 글은 중국 역사 교과서가 아니므로 자세한 건 다른 사람한테 묻기 바란다. 아무튼, 이 5세기 즈음 중국에서 손자산경孫子算經이라는 책이 나온다. 글쓴이는 손자인데 손자병법을 쓴 손자와는 동명이인이다.
청나라 때 나온 손자산경
손자산경은 상권, 중권, 하권으로 총 세 권이 있다. 이중 하권 26번 문제는 다음과 같다.
3으로 나누어 2가 남고, 5로 나누어 3이 남고, 7로 나누어 2가 남는 수는?
언뜻 보기에는 쉽다. 나눗셈과 나머지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아는 것이다. 복잡한 수식도 없고 이상한 그리스어 문자도 없다. 기쁜 마음에 답을 찾으려니 곧 아리송해진다. 3으로 나누어 2가 남는 수는 구하기 쉽다. 3의 배수에 2를 더하면 된다. 5로 나누어 3이 남는 수도, 7로 나누어 2가 남는 수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세 조건을 전부 만족하는 수를 구하는 일이다.
검은 세단에 앉은 사장처럼 7의 배수에 2를 더한 다음 나머지 조건에 맞는지 계속 확인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런 방법은 어떤가?
손으로 이 문제를 푸는 방법 1) 3의 배수에서 2를 더한 수들을 쓴다. 많이. 2) 5의 배수에서 3을 더한 수도 쓴다. 3) 7의 배수에서 2를 더한 수도 쓴다. 4) 이 수 중 겹치는 수를 찾는다. |
사장은 23을 발견했다. 여러분이 숫자를 잔뜩 쓴다면 128도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그다음은? 또 그다음은?
23이라는 답이 일찍 나와 망정이지, 첫 답이 19473이면 어쩔 뻔했을까? 사장은 다음 날 아침까지 계산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 방법은 '수학적'이지 않다. 여기서 '수학적'이란 모범생이 칠판에 온갖 수식을 뽐내는 짓을 뜻하지 않는다. 사장처럼 하나하나 수를 알아보는 대신, 논리적 과정을 거쳐서 어떤 답을 딱 하고 내놓는 걸 말한다. 규칙을 찾는다면 23과 128 다음 수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동식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 나쁜 소식은, 여러분이 괴로운 학창 시절처럼 무언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소식은, 여러분 앞에는 나무판자에 절연테이프를 감고 휘두르는 수학 선생이 없다는 것이다.
3으로 나누어 2가 남는 수를 생각해보자. 2, 5, 7, 11… 이 있다. 예를 들어 11을 보자. 11은 3으로 나누어 2가 남는 수다. 소리쳐도 될 만큼 정확한 사실이다.
"11은 3으로 나누어 2가 남는 수다!"
와. 띄어쓰기 포함 무려 21자다. 효율을 좋아하는 수학자들이 이걸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이들은 기어코 합동식이란 걸 발명하고 말았다.
이 글을 쓰는 사람도 공대생인 건 함정
'11은 3으로 나누어 2가 남는 수다'는 합동식으로 이렇게 쓴다.
11≡2 (mod 3)
≡ 양옆에 있는 수는 mod 뒤에 있는 수로 나눈 나머지가 같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써도 맞는 말이다.
11 ≡ 5 (mod 3)
11 ≡ 19 (mod 4)
이때 이 식은 '11과 2는 법(modulo) 3에 대해 합동'이라고 읽는다.
알아두면 좋을 내용 ≡는 트리플 바(Triple bar)라고 부른다. 확실히 작대기가 셋이다.
≡를 쉽게 쓰고 싶으면 ㄷ에 한자 버튼을 눌러 세 번째 창에 들어가면 나온다. |
합동식 정수 a, b, m에 대해 a≡b (mod m) → a랑 b는 m으로 나눈 나머지가 같다. a= mp+r , b= mq+r → a≡b(mod m) 예) '17은 6으로 나누어 나머지가 5다'는 17≡5(mod 6)으로 쓰면 된다. |
합동식의 성질
벌써 졸릴 것이다. 조금(아주) 졸리겠지만, 이걸 짚고 넘어가야 진행이 된다. 합동식을 통성명만 하고 끝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합동식의 고향과 직업과 연봉도 물어봐야 한다.
1
자기 자신과는 무조건 합동이다
a≡a(mod m)
2
좌우 바꿔도 된다.
a≡b(mod m)이면 b≡a(mod m)
3
친구의 친구는 친구다.
a≡b(mod m)이고 b≡c(mod m)면
a≡c(mod m)다.
4
양옆으로 서로 더하고 뺄 수 있다.
a≡b(mod m)이고 c≡d(mod m)면
a±c≡b±d(mod m)다
5
양옆으로 서로 곱할 수 있다.
a≡b(mod m),c≡d(mod m)이면
ac≡bd(mod m)다
6
양옆으로 같이 제곱할 수 있다.
a≡b(mod m)면 a^k≡b^k(mod m)다.
7
mod 뒤 숫자를 좀 나누는 조건으로
양옆 숫자를 나눌 수 있다.
ab≡ac(mod m)이고 d=gcd(a, m)이면
b≡c(mod m/d)다.
* gcd : 최대공약수
* 특히 중요하니 눈여겨보도록
8
mod 뒤 숫자의 약수는 꿀빤다.
a≡b(mod m)고, n이 m의 약수라면
a≡b(mod n)다.
9
모든 이의 약수로 세계평화를 실천할 수 있다.
a≡b(mod m)고, 0보다 큰 d가 a, b, m의 공약수라면
a/d≡b/d (mod m/d)다.
과연 이런 것들이 1500년 전 중국 사람이 낸 문제와 사장이 ‘위험한 물건’이 몇 상자인지 벌이는 고민과 무슨 상관일까? 당연히 상관이 있다.
다음 시간에 계속…….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일러의 정리(Euler's theorem) (0) | 2018.08.06 |
---|---|
개나 소나 이해하는 중국인의 나머지 정리 (2부) (0) | 2018.08.06 |
네모네모로직 만들기 (0) | 2018.07.22 |
무료 우쿨렐레 악보 사이트들 (1) | 2018.07.05 |
티스토리 플래시 올리기(swf, 플짤, 플래쉬 업로드) (1) | 2018.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