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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2)
닐 게이먼의 'Make Good Art'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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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국의 유명 작가 닐 게이먼이 2012년 미국 University of the Arts(UArts) 졸업식에 초대받아 남긴 기조 연설을 번역한 글입니다. 일명 'Make Good Art' 연설로 불립니다. 이 연설 영상과 대본은 유튜브와 UArts 홈페이지에서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고등 교육기관을 졸업하는 분들께 직접 조언을 드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런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입학하지도 못했죠. 전 탈출이 가능한 나이가 되자마자 학교를 나갔습니다. 제가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기 전, 제 앞에 놓인 4년의 강제 교육이 아직 지루할 때였습니다.

 

  저는 이 업계에 들어와서 글을 썼고, 쓸수록 좋은 작가가 되어갔고, 그렇게 글을 더 썼는데, 제가 점점 살아가는 모습이 언짢은 사람은 없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제 글을 읽고 돈을 냈죠. 안 내기도 했습니다. 종종 자기를 위해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전 친구와 가족이 받은 고등 교육에 건전한 존중과 애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다닌 친구와 가족들은 그 존중과 애정을 오래 전 치료받았는데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전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걸 경력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경력이라는 말에는 제가 어떤 경력을 계획했다는 뜻이 있는데, 전 그런 일은 전혀 한 적 없습니다. 제가 그나마 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건 15살에 쓴 소원 목록이었습니다. 어른 소설을 쓴다. 아이들 책을 쓴다. 만화를 그린다. 영화를 찍는다. 오디오북을 녹음한다. 닥터후 에피소드를 쓴다 등. 전 경력이랄 게 없습니다. 그저 리스트 목록을 해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전부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는 줄로 착각하던 것도요. 제가 받은 최고의 조언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전 절대 실천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첫째. 여러분이 경력을 시작하면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실 겁니다.

 

  이건 대단한 겁니다. 자기가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규칙을 압니다. 뭐가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압니다. 여러분은 모르죠. 몰라야 합니다. 뭐가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정하는 규칙들은 가능성의 경계를 넘어 시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겁니다. 여러분은 시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불가능한지 아닌지 모른다면 더 쉽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걸 막을 규칙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무얼 만들고 싶은지 떠오르고, 무얼 재료로 할지도 정했다면 그냥 시작하세요.

 

  말이야 쉽겠지만, 가끔 마지막에 가 보면 예상보다는 훨씬 쉬울 겁니다. 대개 여러분이 가고 싶은 곳에 가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 만화와 소설과 스토리와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널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저널리스트는 질문할 권리도 있었고, 그냥 찾아가서 업계가 돌아가는 방식도 알 수 있었고, 게다가 글을 쓰거나 잘 쓰려면 알아야 할 것도 배울 수 있었고, 효율적이고 사무적이고 가끔은 불리한 상황이거나 시간제한이 있을 때 글을 쓰는 법을 배우며 돈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에 직선으로 길이 났을 수도 있고, 여러분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절대 모를 때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가능한 것을 얻기 위해 먹고 살고, 빚을 갚고, 일감을 찾고, 정착하면서 목표와 희망 사이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제가 가고 싶은 곳을 상상만 해도 되었습니다. 작가, 주로 소설가가 되어 좋은 책을 쓰는 모습. 좋은 만화를 만들고 말과 글로 제 자신을 떠받는 것. 그건 산이었습니다. 먼 산. 제 목표였습니다.

 

  전 깨달았습니다. 산을 향해 걷는 동안에는 괜찮을 거라고. 나중에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면, 멈춰서 그 산에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만 따지면 되니까요. 전 잡지 편집 일, 돈깨나 주는 적당한 일자리를 거절했습니다. 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매력적이었지만, 저를 그 산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 제안이 그때보다 일찍 왔다면 저는 수락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이른 시절 저한테는 그 일이 저를 산에 더 가까이 가게 해줬을지도 모르니까요.

 

  전 글을 쓰며 글쓰기를 익혔습니다. 전 모험 같았다면 뭐든지 했고, 일 같았다면 뭐든 관뒀습니다. 제 인생은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셋째, 여러분이 무언가 시작하면 실패라는 문제를 처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프리랜서의 삶, 예술가의 삶은 가끔 무인도에서 메시지를 넣은 병을 띄우고 누군가 그 병을 찾고, 열고, 읽고, 다시 돌아갈 무언가를 넣기를 바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넣는 것은 칭찬이나 의뢰나 돈이나 사랑이겠죠. 돌아오는 병 하나를 위해 백 가지 병을 띄울지도 모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실패라는 문제는 좌절의 문제, 절망의 문제, 굶주림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이 지금 당장 이뤄지기를 바라고, 모든 것은 잘못됩니다. 제가 처음으로 낸 책은 돈 때문에 쓴 저널리즘 책이었고, 저는 미리 전자 타자기를 사 두었습니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했지요. 저한테 많은 돈을 안겨야 했어요. 첫 판본이 다 팔리고 인세가 나오기 전에 출판사가 강제로 망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됐겠죠.

 

  전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전자 타자기와 두 달 정도 집세를 낼 돈이 있어서, 전 다음부터는 돈을 위한 책은 최선을 다해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돈을 받지 못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만약 제가 보람있는 일을 해냈는데 돈을 받지 못한다면, 최소한 작업물은 남겠죠.

 

  가끔 제가 이 규칙을 잊으면 우주는 저를 걷어차서 일깨워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맞는지 모르겠는데 저한테는, 돈만 보고 한 일이 거기에 맞게 돈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쓰라린 경험만 남았죠. 돈을 받은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신이 나서, 현실에 만들어지는 걸 보고 싶어서 한 일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거기에 들인 시간도 절대 아깝지 않았습니다.

 

  실패라는 문제는 어렵습니다.

 

  성공이라는 문제는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성공은 경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한적인 성공조차 문제가 있는데, 첫 번째는 여러분이 도망자가 되어서, 언제든 누군가 여러분을 찾아낼 거라는 굳은 확신입니다. 이걸 가면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제 부인 아만다는 이걸 가짜 경찰이라고 불렀습니다.

 

  제 사례를 보죠. 전 곧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클립보드를 든 사람이 들어와서(왜 클립보드를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저한테 모든 일이 다 끝났다고 말하고는 저를 데려가서 진짜 직업을 하게 만들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그 진짜 직업은 무언가를 지어내거나 쓰거나 원하는 책을 읽지 못하는 직업이었죠. 그렇게 되면 전 순순히 끌려가서 아무것도 지어낼 필요가 없는 일을 맡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공이라는 문제. 이건 실존하고, 운이 좋다면 여러분도 겪게 됩니다. 이때 여러분은 모든 일에 '예'라고 말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바다에 던진 병들이 전부 돌아왔으니, 이제 '아니'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동료들과 친구들과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몇몇 지인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봤습니다. 그들은 하루종일 있고 싶다고 한 그 세계를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는 데에만 몇 달을 들이부어야 했으니까요. 그저 자리를 박차고 중요한 일과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실패라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큰 비극으로 보였습니다.

 

  그걸 지나면, 성공의 제일 큰 문제가 있는데 바로 세상이 성공한 여러분이 하던 일을 못 하도록 작당하는 겁니다. 어느 날 저는 고개를 들어 메일에 답신하는 일로 먹고 살고, 글은 취미로 쓰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전 메일 답신을 줄였고,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안심했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실수를 저질렀으면 좋겠습니다.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은 밖에 나가 무언가 함을 뜻합니다. 실수 자체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캐롤린(Caroline)의 철자를 잘못 쳐서 o와 i가 바뀌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코렐라인(Coraline)도 진짜 이름 같다고.

 

  그리고 명심하세요. 어느 학과에 계시든, 음악가든 사진사든 교양이든 만화가든 작가든 댄서든 디자이너든, 뭘 하든 유일한 하나를 가지세요. 그럼 예술을 할 줄 아는 겁니다.

 

  저한테,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한테 그 하나는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습니다. 최강의 구조대원입니다. 그건 여러분에게 좋은 시절을 줄 것이고, 나쁜 시절은 빠져나가게 해 줄 겁니다.

 

  인생은 가끔 힘이 듭니다. 삶에서 사랑에서 일에서 우정에서 건강에서, 인생 속 모든 것에서 상황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는 게 어려워지면,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좋은 예술을 만드세요.

 

  농담 아닙니다. 남편이 정치인과 바람이 났다? 좋은 예술을 만드세요. 돌연변이 보아뱀이 다리를 으스러뜨리고 집어삼켰다? 좋은 예술을 만드세요. 국세청에 쫓긴다? 좋은 예술을 만드세요. 고양이가 폭발했다? 좋은 예술을 만드세요. 인터넷에서 여러분 작품이 바보 같거나 악하다거나 세상에 이미 있는 것이라 한다? 좋은 예술을 만드세요. 상황은 어떻게든 나아질 거고, 언젠가 시간이 박힌 가시를 빼낼 겁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만 하세요. 좋은 예술을 만드세요.

 

  만들 거면 좋은 날에 만드시고요.

 

  다섯째, 만드는 동안에는 여러분의 예술을 만드세요. 여러분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남을 따라하려는 충동이 나오겠죠. 그건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남의 목소리를 따라하고 나서야 자기 목소리를 찾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가졌지만 다른 사람이 갖지 않은 유일한 한 가지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목소리, 마음, 이야기, 비전. 그러니 여러분만 할 수 있는 걸 쓰고 그리고 짓고 연기하고 추고 사세요.

 

  아마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올 겁니다. 여러분이 나체로 길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걸 너무 많이 노출해서, 여러분 자신을 너무 많이 보여주지 않나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여러분이 제 갈길을 찾은 순간일 겁니다.

 

  제가 가장 크게 해낸 일들은, 제가 제일 확신하지 못하던 일이었습니다. 남들한테 통할지 몰랐고 오히려 세간에서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떠들지도 모르는, 부끄러운 실패가 될 것 같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작품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작품들을 돌아보며 이게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전 그 당시에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만들면서 성공할지 못 할지 안다면 무슨 재미겠어요?

 

  물론 가끔은 진짜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2판이 나오지도 않던 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몇은 제 집을 떠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작품만큼이나 그런 작품에서도 저는 무언갈 배웠습니다.

 

  여섯째, 프리랜서의 비밀 비법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비밀 비법은 늘 도움이 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예술을 만들어주거나 어느 분야든 프리랜서 세계에 입문하고 싶을 때 유용할 겁니다. 전 만화업계에서 이걸 배웠지만 다른 분야에도 적용됩니다. 그 비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고용되는 이유는, 어떻게든 고용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시에 저지른 일은 요즘이라면 들키기도 쉽고 난처해지기도 쉽지만, 그때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꽤 센스 있는 경력 전략이었습니다. 편집자들이 제가 어디서 일했나 물어보면, 전 거짓말을 쳤습니다. 그럴듯한 잡지들을 자신있는 말투로 대고 일을 땄습니다. 첫 직장을 얻을 때 글을 썼다고 한 잡지사들한테는 약속을 지켰으니, 엄밀히 거짓말은 아닙니다. 시간 순서가 문제였을 뿐... 일을 해봐서 일을 하게 된 셈입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은 늘 있었는데, 요즘 세상은 프리랜서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을 잘하기도 하고, 접근하기도 쉽고 시간에 맞추어 제출하니까요. 어려분한테는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하진 않습니다. 셋 중 둘만 있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일을 잘하고 시간에 맞춰 내준다면 여러분 성격이 불쾌해도 사람들은 참을 겁니다. 여러분이 일을 잘 하고 사근사근하면 늦게 내도 용서해 줄 겁니다. 여러분이 시간을 잘 맞추고 여러분과 일하는 것이 언제나 즐겁다면, 그렇게 실력이 좋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연설을 수락할 때, 오랜 시간 동안 제가 받은 최고의 조언이 뭐였을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건 바로 20년 전 스티븐 킹이 남긴 말이었습니다. 그때 전 <샌드맨>으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진지하게 읽던 만화를 집필하고 있었죠. 스티븐 킹은 제 만화 샌드맨과, 테리 프레쳇과 같이 쓴 소설 <좋은 징조들>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 열기와 긴 사인행렬 등등을 보던 그분은 이런 조언을 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이걸 즐기세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최고의 조언인데 전 무시해 버렸습니다. 전 즐기는 대신 걱정했습니다. 다음 제출기한, 다음 아이디어, 다음 줄거리를 걱정했습니다. 그후 14, 15년을 머릿속에서 무언가 써내리고 따져보기만 했습니다. 잠깐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정말 재밌는 일이야'라고 하질 않았죠. 더 즐겼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환상적인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잘못될까 봐, 다음에 뭐가 올지 걱정하느라 즐기지 못하고 놓친 시간도 있습니다.

 

  저한테는 이게 제일 지키기 어려운 조언이었다 생각합니다. 놓고 흐름을 즐기는 것. 그 흐름은 여러분을 특별하고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연단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전 지금 엄청 몰입해서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모든 분께 저는 행운을 빌어 드립니다. 행운은 쓸만한 겁니다. 여러 경우에서 알게 되실 겁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할수록, 똑똑하게 일할수록 행운이 더 찾아옵니다. 하지만 순수 운도 있고, 운은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어느 예술에 몸을 담든, 지금 세계는 변하고 있습니다. 유통 성질이 바뀌고 있고,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지붕 있는 곳에서 예술을 하며 샌드위치를 사게 되는 모델이 전부 바뀌고 있습니다. 전 출판, 도서 판매, 기타 여러 분야에서 정점에 선 사람들과 이야기해 봤지만 10년은 고사하고 2년 후 풍경도 예측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출판에서 시각예술에서 음악에서 모든 창조적인 일에서 사람들이 지난 세기, 아니면 그 이상 만들어 온 유통경로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일이지만, 달리 보면 아주 자유롭기도 합니다. 작품을 세상에 보여줄 때 필요한 태도와 행동에 필요한 규칙과 가정과 의무가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문지기가 문을 떠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작품을 보이기 위해 얼마든지 창조적이 될 수 있습니다. 유튜브와 인터넷(과 다음 세대에 올 아무거나)은 텔레비전이 평생 모은 사람보다 더 많은 시청자를 여러분께 줄 수 있습니다. 예전 규칙이 무너지고 있고 아무도 새 규칙을 모릅니다.

 

  그러니 자신만의 규칙을 만드세요.

 

  최근에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렵게 생각되는 일을 어떻게 해내야 하냐고 말이죠. 그 질문에서는 오디오북 녹음이었습니다. 전 그분한테 일을 할 수 있는 누군가인 척하라는 조언을 남겼습니다. 할 수 있는 척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인 척을 하라. 그분은 효과를 내기 위해 녹음실 벽에 글귀를 써 붙였고,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현명해지세요. 세상엔 지혜가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명해질 수 없다면, 현명한 누군가인 척 하시고, 그 사람처럼 행동하세요.

 

  이제 가셔서 재밌는 실수를, 대단한 실수를, 위대하고 환상적인 실수를 저지르세요. 규칙을 깨세요. 이 세상 속 여러분을 위해 세상을 더 재밌는 곳으로 남기세요. 좋은 예술을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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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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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텍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3년 출판한 단편집 <Winner Take Nothing>에 수록된 단편 <The Light of the World>를 번역한 글입니다.

 

※ 헤밍웨이는 1961년 사망했으므로 현재 이 작품은 한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The Light of the World>는 미국소설학회 헤밍웨이 작품명 번역 통일안에서 <이 세상의 광명>라는 번역제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원본 텍스트는 fadedpage.com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역과 오역이 많습니다.

 

※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텍스트를 블로그, 사이트, 출판 등에 인용하실 때는 덧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덧글을 쓰지 않으신다면 최소한 이 글 링크나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 어니스트 헤밍웨이


  바텐더는 우리가 문으로 들어오는 걸 보더니 손을 뻗어 공짜 점심냄비 위로 유리뚜껑을 덮었다.
  "맥주 줘." 내가 말했다. 바텐더는 맥주를 가져와 주걱으로 뚜껑을 따고 손에 잔을 들었다. 난 나무판 위에 동전을 놓았고 그는 맥주잔을 나한테 줬다.
  "그쪽은?" 그가 톰한테 물었다.
  "맥주."
  바텐더는 맥주를 가져와 뚜껑을 따고, 돈을 보고서야 맥주잔을 톰한테 넘겼다.
  "뭐 문제 있어?" 톰이 물었다.
  바텐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머리 너머를 보더니 "그쪽은요?" 하며 방금 들어온 남자한테 말했다.
  "호밀 위스키". 남자가 말했다. 바텐더는 병과 잔과 물 한 잔을 꺼냈다.
톰이 몸을 기울여 공짜점심 냄비 뚜껑을 열었다. 족발 한 냄비에 가위 비스무리한 나무 도구가 있었는데, 끝이 나무포크라 족발을 집을 수 있었다.
  "안 돼." 바텐더가 말하더니 유리덮개를 다시 얹었다. 톰은 나무 가위포크를 집었다. "도로 놔." 바텐더가 말했다.
  "어디다 놓으라고." 톰이 말했다.
  바텐더는 바 아래로 손을 뻗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내가 나무판 위에 50센트를 놓자 그는 몸을 폈다.
  "너 뭐였지?" 그가 말했다.
  "맥주." 난 말했다. 그는 맥주를 주기 전에 두 냄비를 열어주었다.
  "이 족발은 썩은 냄새가 나." 톰이 말하며 입에 있던 걸 바닥에 뱉었다. 바텐더는 말이 없었다. 호밀 위스키를 다 마신 남자는 돈을 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나갔다.
  "냄새는 네가 나는 거고." 바텐더가 말했다. "너네 같은 양아치 냄새가 다 그렇지."
  "얘가 우리보고 양아치래." 토미가 나한테 말했다.
  "야." 내가 말했다. "그냥 가자."
  "어서 꺼지라고, 양아치들아." 바텐더가 말했다.
  "나간다고 했잖아." 난 말했다. "네가 시킨 게 아니야."
  "또 올 거거든." 토미가 말했다.
  "아니, 못 와." 바텐더가 톰한테 말했다.
  "저놈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네가 좀 말해봐." 토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자니까." 내가 말했다.
  밖은 선선하고 컴컴했다.
  "뭐 이딴 데가 다 있냐?" 토미가 말했다.
  "낸들 아냐." 내가 말했다. "기차역이나 가자."
  마을 한쪽 끝으로 들어왔는데 반대편 끝으로 나가게 생겼다. 마을은 생가죽과 타닌수피(가죽 가공에 쓰는 몇몇 나무껍질)와 톱밥 무더기 냄새가 났다. 마을로 들어올 때만 해도 하늘이 어두워지는 중이었는데, 이제는 어둡고 추워서 길가 물웅덩이가 언저리부터 얼어갔다.
  기차역으로 내려가니 갈보 다섯이 들어오는 기차를 기다렸다. 또 백인 여섯에 인디언 넷이 역사에 있었다. 역사는 붐볐고 스토브 때문에 후끈한 데다가 눅눅한 연기로 가득했다. 우리가 들어오니 아무도 말이 없었고 매표소 문을 내린 뒤였다.
  "문 좀 닫지?" 누가 말했다.
  누가 말하나 봤더니 백인 중 하나였다. 다들 끝단 자른 바지를 입고 목수처럼 고무장화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다. 그 백인 하나만 모자를 쓰지 않았고, 얼굴은 창백한 데다 손가락이 희고 가늘었다.
  "안 닫을 거냐고?"
  "알았어요." 난 말하고 닫았다.
  "고맙다." 그는 말했다. 동행 중 하나가 끅끅 웃었다.
  "요리사 일하는데 끼어든 적 있어?" 동행이 나한테 말했다.
  "아뇨."
  "얘 좀 끼어들어 봐," 그는 요리사를 보았다. "얘는 이런 거 좋아하거든."
  요리사라 불린 청년은 입을 앙다물더니 동행의 시선을 피했다.
  "얘는 손에 레몬주스를 붓나 봐." 그가 말했다. "죽어도 설거지 물에는 손을 안 넣지. 손 하얀 것 좀 봐."
  갈보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살면서 그렇게 비대한 갈보, 그렇게 비대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알록달록한 실크 옷을 입은 여자였다. 그 여자처럼 큰 갈보가 둘이나 있었지만, 그 여자야말로 무게가 160킬로그램은 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당신도 보면 실존인물이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비대한 셋은 알록달록 실크 드레스를 입었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셋은 거대했다. 다른 둘은 평범한 갈보처럼 생겼다. 과산화수소로 염색한 금발머리였다.
  "쟤 손 좀 보라고." 남자가 말하며 턱짓으로 요리사를 가리켰다. 갈보는 또 웃고는 몸을 떨었다.
  요리사는 몸을 돌려 여자한테 나지막이 말했다. "토 나오는 살덩어리 주제에."
  여자는 그저 웃고 떨기만 했다.
  "아, 너무 웃겨.."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예뻤다. "웃겨 죽겠네."
  다른 두 창녀, 그러니까 두 비대한 여자들은 그쪽으로 무심하다는 듯 조용하고 침착한 척을 했다. 그래도 그 둘은 거대했고 제일 큰 쪽과 비등했다. 못해도 110킬로그램은 넘었다. 나머지 둘은 기품이 있었다.
남자들을 보자면, 요리사와 떠드는 남자 옆에는 목수 둘이 서 있었다. 하나는 대화를 들으며 관심이 있는 듯 했지만 쑥스러운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자기도 뭔가 말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거기에 스웨덴 사람 둘.. 인디언은 둘은 벤치 끄트머리에 앉았고 하나는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말할 준비를 하던 남자가 낮은 음으로 나한테 말했다. "건초더미라도 올라갔나 봐."
  난 웃었다. 같은 걸 토미한테 말했다.
  "뻥 안 치고 이런 동네는 난생처음이야." 그가 말했다. "쟤네 셋 좀 봐봐." 그런데 요리사가 말을 꺼냈다.
  "야, 너넨 몇 살이냐?"
  "전 예순여섯이고 얘는 예순아홉인데요." 토미가 말했다.
  "허! 허! 허!" 거대 창녀가 떨리는 몸으로 웃었다. 목소리가 정말 예뻤다. 다른 창녀들은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좀 싸가지 있게 말하지?" 요리사가 말했다. "그냥 친절하게 물어본 건데."
  "열일곱이랑 열아홉이요." 내가 말했다.
  "야, 왜 그래?" 토미가 내 쪽을 봤다.
  "괜찮아."
  "난 앨리스라고 해." 거대 창녀가 말하며 다시 몸을 떨었다.
  "그쪽 이름이에요?" 토미가 물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앨리스. 맞지 않아?" 그녀는 요리사 옆에 앉은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앨리스. 맞는데."
  "원래 그런 이름을 쓰지." 요리사가 말했다.
  "내 본명 맞거든." 앨리스가 말했다.
  "다른 여자들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톰이 물었다.
  "헤이즐과 에델.," 앨리스가 말했다. 헤이즐과 에델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밝은 미소는 아니었다.
  "그쪽은요?" 나는 금발한테 물었다.
  "프란시스." 그녀가 말했다.
  "프란시스 뭔데요?"
  "프란시스 윌슨. 알아서 뭐 하게?"
  "그쪽은요?" 나는 다른 여자한테도 물었다.
  "들이대지 마." 그 여자가 말했다.
  "얘는 그냥 다 친구 먹고 싶어서 저래." 한 남자가 말을 꺼냈다. "친구 먹기 싫어?"
  "싫은데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특히 그쪽이랑은."
  "아주 앙칼져." 남자가 말했다. "흔한 앙칼진 소녀."
  금발은 반대편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꼰대새끼." 그녀가 말했다.
  앨리스는 또 웃음을 터뜨리고 몸을 떨었다.
  "하나도 재미 없거든." 요리사가 말했다. "재미없는데도 맨날 웃어제낀다고. 거기 꼬마 둘.. 어디 가는데?"
  "그쪽은 어디 가세요?" 톰이 그한테 물었다.
  "난 캐딜락 가려고." 요리사가 말했다. "안 가봤어? 내 누이가 거기 살아."
  "자기가 누이면서." 끝단 자른 바지 사내가 말했다.
  "그딴 소리 집어치울래?" 요리사가 말했다. "우리 싸가지 있게 좀 말하지?"
  "캐딜락은 스티브 케첼이 살던 곳이고 애드 울가스트(1888~1955) 고향인데." 말 적은 남자가 말했다.
  "스티브 케첼은요," 그 이름에 반응이라도 한 듯 목소리가 높은 금발 하나가 말했다. "아버지한테 총 맞아 죽었대요. 맞아요. 미친, 자기 아빠가요. 이제 스티브 케첼 같은 남자는 없겠죠."
  "그 사람 이름은 스탠리 케첼(1886~1910) 아닌가?" 요리사가 물었다.
  "아, 시끄러워요." 금발이 말했다. "스티브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스탠리라니. 스탠리가 아닌데요. 스티브 케첼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멋진 남자였어요. 스티브 케첼처럼 깨끗하고 희고 아름다운 남자는 본 적이 없네요. 그와 비슷한 남자도 못 봤죠. 움직이는 모습은 호랑이 같았죠. 정말 훌륭하고 자유롭고 돈도 팍팍 쓰는 남자였어요."
  "아는 사이였어?" 남자 하나가 물었다.
  "제가 아냐고요? 제가 아냐고요? 제가 사랑했냐고요? 질문이 그거예요? 당신 같은 사람이 누군갈 아는 것보다 더 잘 그를 알았고, 당신 같은 사람이 신을 사랑하듯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세상 누구보다 위대하고 훌륭하고 가장 하얗고 아름다운 남자, 스티브 케첼. 그런 그분을 자기 아비가 개처럼 쏴 죽였죠."
  "그 사람 경기라도 챙겨 줬어?"
  "아뇨. 그전부터 알았어요. 제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였는데."
  과산화수소 금발은 계속 높은 음으로 배우처럼 말했고, 모두 그 말을 깊이 새겨들었다. 그런데 앨리스가 다시 몸을 떨었다. 옆에 앉은 나한테도 그 떨림이 느껴졌다.
  "그럼 결혼했어야지." 요리사가 말했다.
  "그분 경력에 흠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과산화수소 금발이 말했다. "그분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죠. 그분은 아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 정말 남자다웠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요리사가 말했다. "잭 존슨(1878~1946)이 그 사람을 눕히지 않았나?"
  "그건 반칙이었어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그 큰 검둥이가 느닷없이 덤볐다고요. 그분도 그 시꺼먼 놈을 때려눕힐 수 있었는데. 깜둥이 놈이 운발로 이긴 거죠."
  매표소 창문이 올라갔다. 인디언 셋이 그리로 들어갔다.
  "그분도 그놈을 때려눕혔어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절 보고 미소까지 지었다고요."
  "경기 챙긴 적 없다고 한 것 같은데." 누군가 말했다.
  "그날 경기만 빼고요. 스티브가 절 보고 미소를 짓는데 갑자기 그 흑인 새끼가 확 뛰어올라서 갑자기 후렸다니까요. 스티브라면 그런 흑인놈은 백 명은 눕힐 텐데."
  "참 잘 싸우던 사람이었지." 한 목수가 말했다.
  "그렇고 말고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요즘엔 그런 격투가가 없어요. 그분은 신과 마찬가지였어요. 아주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빠르고 호랑이 같았고 번개 같았어요."
  "나 그 사람이 싸우는 영상을 봤어." 톰이 말했다. 우리는 꽤 감동을 받은 것이었다. 앨리스는 계속 온몸을 떨었다. 내가 보니 그녀는 울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이미 승강장으로 나간 뒤였다.
  "그분은 최고의 남편감이었어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우리는 신의 눈길 속에서 결혼했고 지금 전 그분과 함께고 언제까지나 그렇겠죠. 제 모든 건 그이 것이죠. 제 육신은 상관없어요. 몸이야 가져가라죠. 제 영혼이야말로 스티브 케첼 것이에요. 그래요, 그이는 진짜 사나이였죠."
  우리는 몸둘 바를 몰랐다. 슬프면서도 낯부끄러웠다. 그때 계속 덜덜 떨던 앨리스가 말했다. "이 더러운 사기꾼아." 그녀는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스티브 케첼이랑 절대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요?" 과산화수소가 보란 듯이 말했다.
  "사실이니까 나오지." 앨리스가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나만 스티브 케첼을 알아. 난 맨셀로나에서 태어났어. 거기서 스티브를 알게 됐어. 진짜야. 너도 인정할걸. 이게 거짓말이면 하느님이 나한테 벼락을 내릴 거다."
  "제가 틀리면 저한테도 벼락을 내리라죠."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정말, 정말, 정말이야. 너도 알잖아. 지어낸 게 아냐. 그 사람이 나한테 한 말도 기억해."
  "뭐라고 했는데요?" 과산화수소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었다.
앨리스는 아직 우는 중이어서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사람은 말했지. '넌 정말 아름다워, 앨리스.' 토씨 하나까지 이렇게 말했어."
  "거짓말."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진짜야." 앨리스가 말했다. "정말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
  "거짓말." 과산화수소가 보란 듯이 말했다.
  "아냐. 진짜, 진짜, 진짜야. 예수님과 성모님을 걸고 진짜야."
  "스티브가 그리 말했을 리 없어요. 그분 말투가 아닌데요." 과산화수소가 낭랑하게 말했다.
  "진짜라니까." 앨리스가 그 예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믿든 말든 그점은 변하지 않아." 앨리스는 이제 울지도 않았고 차분했다.
  "스티브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니까요." 과산화수소가 선을 그었다.
  "그렇게 말했어." 앨리스가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나도 그 사람 말대로 사랑스러운 여자였어. 지금도 너보다는 나은 여자야. 이 말라붙은 보온 물주머니야.."
  "누가 누구보고 욕을 해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그쪽은 고름덩어리면서. 나도 기억을 한다고요."
  "아니." 앨리스는 달곰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탯줄을 빼낸 거랑 이것저것 살던 걸 빼면 넌 기억하는 게 없어. 나머지는 전부 신문에서 읽은 거지. 너도 알지만 난 깨끗해. 너도 알지만 내 몸이 커도 남자들은 날 좋아해. 너도 알지만 난 거짓말을 안 해."
  "내 기억을 건들지 마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진짜 기억이고 대단한 기억들이에요."
  앨리스는 그녀를 보고, 그다음 우리를 보았다. 가슴 아파하던 표정이 얼굴에서 사라지더니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태어나서 본 것 중 제일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얼굴도 아름다웠고 살갗도 부드러웠고 목소리도 사랑스러운 데다 쭉 예의가 발랐고 진짜 살가웠다. 하지만 세상에 그녀는 정말이지 거대했다. 세 여자를 합친 듯 거대했다. 톰이 그녀를 보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야, 가자."
  "잘 가." 앨리스가 말했다. 정말 좋은 목소리였다.
  "잘 있어요." 내가 말했다.
  "너네 어느 방면으로 가는데?" 요리사가 물었다.
  "아저씨 반대 방향이요." 톰이 요리사한테 말했다.

 

 

 


* 스탠리 케첼은 '미시건 암살자'라는 별명을 지닌 복싱선수였다. 케첼은 1909년 10월 16일 잭 존슨을 상대로 월드 헤비급 경기를 펼쳤는데, 케첼이 존슨을 쓰러뜨리자 존슨이 일어나 케첼을 어퍼컷으로 녹아웃시켰다. (지금도 영상이 남아있다) 케첼은 1910년 10월 4일 자기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앙심을 품고 쏜 총에 맞아 다음날 사망한다. 과산화수소 여자가 '자기 아비한테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 말은 잘못 알았거나 거짓말인 것 같다. 인터넷 검색 결과 동시대에 스티브 케첼이라는 복싱선수도 살았음이 기록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일행은 둘을 헷갈리는 듯하다. 헤밍웨이는 복싱을 즐겼으니 작가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헷갈려한다고 믿고 싶다. 본문에 나오는 애드 울가스트도 미국 복싱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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