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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 (1)
[번역] 폭풍이 지나가고(After The Storm)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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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텍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3년 출판한 단편집 <Winner Take Nothing>에 수록된 단편 <After The Storm>을 번역한 글입니다.


※ 헤밍웨이는 1961년 사망했으므로 현재 이 작품은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After The Storm>은 미국소설학회 헤밍웨이 작품명 번역 통일안에서 <폭풍 후>라는 번역제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원본 텍스트는 fadedpage.com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역과 오역이 많습니다.


※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텍스트를 블로그, 사이트, 출판 등에 인용하실 때는 덧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덧글을 쓰지 않으신다면 최소한 이 글 링크나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 어니스트 헤밍웨이


 

주먹을 날릴 일이 전혀 아니었지만 우리는 맞붙었는데, 내가 넘어지자 그는 내 가슴팍에 무릎을 올려 눕히고는 양손으로 목을 졸랐다. 그는 날 죽일 기세였고 나는 내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풀려나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취해서 그를 떼어놓지 못했다. 그가 내 목을 조르고 머리를 바닥에 찧는 사이 나는 칼을 꺼내 펼쳤다. 그러고는 팔 근육을 제대로 그어버렸다. 그는 나를 풀어줬다. 잡고 싶어도 못 잡았을 것이다. 그가 몸을 굴리더니 베인 팔을 부여잡고 울기에 말했다.

내 목을 졸라서 어쩌려고?”

난 그를 죽일 뻔했다. 일주일은 뭘 못 삼켰다. 그도 내 목을 지독하게 아프게 했다.

, 난 거기를 나왔다. 많은 이가 그한테 붙었고 몇몇은 나를 쫓아 나왔다. 나는 방향을 바꾸어 부두로 내려갔다. 거기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거리에서 살인이 났다고 했다. 난 말했다. “누가 죽였대?” 친구는 말했다. “살인범은 몰라도 누가 죽긴 죽었나 봐.” 바깥은 어두웠다. 물기가 거리에 들끓었고 불빛은 다 나가고 창문은 박살 나고 선박은 죄다 마을까지 올라오고 나무는 터져 떠내려갔다. 만물이 다 터져 나갔고 나는 조각배를 얻어 타고 나갔다. 난 망고 키에 정박한 내 보트를 찾아냈고 보트는 물로 가득할 뿐 전부 괜찮았다. 그래서 난 물을 빼고 펌프로 배수했다. 달은 떴지만 수많은 구름도 떴고 아직 날씨는 아주 지독했다. 난 달을 따라 내려갔다. 햇빛이 비칠 즈음엔 동쪽 부두까지 나간 후였다.

형제여, 그 정도면 폭풍이라 부를 만했다. 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고 나간 사람이었다. 그런 물길은 너도 본 적이 없을 거다. 물은 잿물 담은 통처럼 뿌옜고 동쪽 부두에서 남동 만까지 해안선을 알아볼 수 없었다. 해변 정 가운데를 흐르던 큰 도랑도 터졌다. 나무고 뭐고 다 터져 나가 도랑은 잘려나가고 물은 분필처럼 허옜다. 그 위로 만물이 떠다녔다. 나뭇가지도 나무도 죽은 새도 뭐고 전부 떠다녔다. 삐져나온 모래톱에 전 세계 펠리컨이 모였고 온갖 새가 날았다. 폭풍을 예감하고 온 그곳에 틀어박힌 것이다.

난 남동쪽 모래톱에 종일 누웠다.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간 사람이었다. 돛대 하나가 떠내려가서 어디선가 난파선이 있다고 확신했다. 난 그 배를 찾아 나섰다. 그 배는 찾았다. 돛대가 셋인 스쿠너(범선의 종류)였고 부러진 돛대들만이 밑동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배는 너무 깊이 가라앉아서 내가 뭘 빼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걸 찾기로 했다. 내가 1번 타자였으니 뭘 발견하든 내 것이었다. 세 돛대짜리 스쿠너를 떠나 모래사장을 내려갔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미 꽤 멀리 나갔다. 난 갯벌로 나갔지만 역시 허탕이었다. 그래서 계속 찾았다. 레베카 등대(플로리다 남단에 있는 등대)가 보이는 곳까지 간 그때 온갖 새들이 뭉쳐 날았다. 난 그쪽으로 가서 뭔지 알아보았다. 그냥 날아다니는 새 무더기였다.

물 밖으로 삐져나온 돛대 비스름한 게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니 새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올라 내 주변을 감쌌다. 그곳 물은 맑았다. 정말 수면 위를 살짝 삐져나온 돛대였다. 나는 다가갔다. 물밑은 기다란 그림자처럼 컴컴했다. 바로 앞까지 가니 물밑에 있던 것은 정기선으로, 온 세상처럼 커다란 몸집을 하고 그저 물 아래에 드러누웠다. 난 배를 타고 그 정기선을 가로질렀다. 정기선은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웠고 후미는 깊숙이 잠긴 후였다. 관측창은 꽉 닫혔고 유리창이 물속에서 빛났다. 사실, 배 전체가 빛났다. 태어나서 본 배 중 가장 큰 놈이 그곳에 있었다. 난 정기선 전체를 따라서 갔다. 정기선 위를 넘어간 다음 닻을 내렸다. 선미에 둔 뗏목을 밀어내서 물에 띄우고 나를 덮어쓴 새들과 함께 노를 저었다.

설거지에나 어울리는 물안경이 있었는데, 손이 떨려서 들지도 못할 정도였다. 정기선 전체를 훑었고 보이는 관측창은 전부 닫혔지만, 바닥으로 내려가면 어딘가 열렸을 것이었다. 계속 물건들이 떠올랐으니. 무슨 물건인지는 아리송했다. 그냥 쪼가리들. 새들은 그 쪼가리들을 따라 날았다. 너는 그렇게 많은 새를 본 적이 없을 거다. 모든 새가 내 주변을 날며 미친 듯이 울었다.

모든 것이 뚜렷하고 선명했다. 시야에 정기선이 잠긴 끝부분이 들어왔는데 물밑 깊이가 1마일은 되는 것 같았다. 정기선은 맑은 흰 모래 둑 위에 누운 채였고 돛대는 앞돛대 같기도 하고 비스듬히 드러누워 물 밖으로 기울어진 낚싯대 같기도 했다. 정기선 뱃머리는 그렇게 깊진 않았다. 뱃머리에 새긴 배 이름에 발을 대어도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관측창까지 가려면 3, 4는 내려가야 했다. 이삭 터는 장대를 내리면 창에 닿기에 장대로 창을 깨보려 했지만 깨지지 않았다. 유리가 꽤 두꺼웠다. 그래서 난 배로 돌아가서 렌치를 꺼내 이삭 터는 장대 끝에 감아 붙였지만 그래도 깨지지 않았다. 정기선 창문 너머로 모든 것이 있었고 내가 처음으로 이 배에 도착했는데도 들어가지를 못했다. 분명 속에 있는 것들은 5백만 달러는 나갈 것이었다.

정기선이 분명 품었을 것들을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제일 가까운 관측창을 보니 뭔가 있었지만 내 물안경으로는 정체를 알지 못했다. 장대는 소용이 없어서 난 옷을 벗고 몸을 편 다음 두 번 숨을 들이마시고 뱃머리에서 다이빙했다. 손에는 렌치를 들고 헤엄쳐 내려갔다. 관측창 끝부분에 가니 잠깐 여유가 생겨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한 여자가 머리칼 전체를 둥둥 띄웠다. 여자는 가만히 떠다녔다. 나는 렌치로 유리창을 두어 번 힘껏 후려쳤다. 빠직하는 소리가 났지만 창문은 부서지지 않았고 나는 물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난 뗏목에 몸을 걸치고 숨을 골랐다. 다시 올라가 두 번 숨을 들이마시고 뛰어들었다. 아래로 헤엄쳐 내려가 관측창 모서리를 손으로 잡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렌치로 창을 때렸다. 물안경 너머로 여인이 떠다녔다. 여인의 머리칼은 잠깐 머리에 달라붙더니 다시 사방으로 퍼졌다. 한 손은 반지 여럿을 꼈다. 여인은 관측창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나는 두 번 더 창을 때렸지만, 창은 금도 가지 않았다. 수면으로 올라갈 때는 숨을 쉬어야 하기 전에 못 올라가는 줄 알았다.

나는 다시 잠수했다. 이번엔 창에 금을 냈다. 금만. 수면으로 올라오니 코피가 났다. 난 맨발로 정기선 뱃머리 배 이름 위에 서서 머리만 물 위로 내놓았다. 거기서 쉬고 뗏목으로 헤엄쳐 돌아갔다. 뗏목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두통이 멎기를 기다리며 물안경을 쓴 채 바닥을 내려보았다. 그러나 피가 나서 물안경을 씻었다. 그런 다음 난 뗏목에 누운 채 손으로 코를 쥐고 코피를 막았다. 머리를 뒤로 기울이고 누우니 수백만 새들이 내 주위를 날았다.

코피가 멎고 나는 다시 물안경을 썼다. 이번엔 내 배로 돌아가서 렌치보다 무거운 놈을 찾았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해면 캐는 갈고리조차. 정기선으로 돌아가니 물은 훨씬 맑아졌다. 흰 모래 제방 위를 떠다니는 모든 것이 보였다. 난 상어가 있는지 살폈지만, 상어는 없었다. 정말 멀리 나가면 상어를 만났을 것이다. 물은 꽤 맑았고 모래는 하얬다. 뗏목에는 닻을 다는 고정장치가 있었다. 난 장치를 떼고 갑판으로 나와 장치를 들고 잠수했다. 장치 덕분에 나는 곧장 가라앉았다. 나는 관측창을 지났다. 창을 잡았지만 잡을 곳이 없어서 나는 계속 가라앉았다. 둥근 정기선 옆면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장치를 놔야 했다. 장치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내가 수면으로 올라오기까지 평생이 걸리는 것 같았다. 뗏목은 조류를 따라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는 코피를 바다에 흘리며 뗏목으로 헤엄쳤다. 상어가 안 나타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난 지쳐 버렸다.

머리통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난 뗏목에 누워 쉬다가 다시 정기선으로 돌아갔다. 슬슬 오후였다. 난 렌치를 쥐고 다시 잠수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렌치는 너무 가벼웠다. 큰 망치, 쓸만할 만큼 무거운 게 아니면 다이빙해 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난 렌치를 다시 장대에 감고 물안경으로 물속을 보면서 창을 내리치고 찍어댔다. 그러다 렌치가 사라졌다. 물안경으로 보니 아주 확실하게 렌치는 정기선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다 정기선에서 떨어지고는 진흙 속으로 잠겼다. 이제 하릴없었다. 렌치도 없었고 고정장치도 잃어버렸다. 난 배로 돌아갔다. 뗏목을 배에 올리기엔 너무 피곤했다. 해는 꽤 기울었다. 새들은 정기선을 떠났고 나는 뗏목을 데리고 남동쪽 모래톱으로 갔다. 새들은 내 위와 뒤에서 날았다. 정말 노곤했다.

그날 밤, 폭풍이 불었다. 폭풍은 일주일을 불었다. 정기선을 다시 찾으러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나한테 내가 벨 수밖에 없던 녀석은 팔만 빼면 괜찮다고 알려주었다. 난 마을로 돌아갔고 벌금 5백 달러가 선고되었다. 나중엔 다 잘 풀렸다. 그 녀석이 도끼를 들고 날 쫓아갔다고 증언한 몇몇 친구 덕분이다. 그러나 증기선에 다시 돌아가 보니 이미 그리스인들이 배를 열어젖히고 속을 비워낸 후였다. 그리스인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써서 금고를 빼냈다. 얼마나 챙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기선은 금을 날랐는데 그들이 다 가져갔다. 그들은 배를 홀라당 벗겨 먹었다. 나도 정기선을 뒤졌지만, 동전 하나 챙기지 못했다.

알고 보니 정기선은 아주 진국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정기선이 허리케인이 몰아치던 날, 하바나 항구에서 겨우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정기선은 항구에 들어갈 여지가 없었거나 항구 쪽에서 선장한테 들어올 기회를 주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선장은 시도라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기선은 폭풍과 함께 나아갔다. 캄캄한 바다에서 그들은 레베카 등대와 토르투가스 등대 사이로 만을 통과하려 기를 쓰고 달렸다. 그때 정기선은 펄에 끼었다. 방향타가 빠졌을 수도 있다. 방향키로 조종 중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뱃사람들은 그곳이 펄임을 알 방법이 없었다. 배가 멈추자 선장은 분명 밸러스트 탱크를 열어서 자세를 가다듬으려 했을 거다. 그러나 배가 닿은 바닥은 펄이었다. 선원들이 탱크를 열자 배는 후미부터 꺼졌고 앞머리까지 가라앉았다. 배에 탄 승객과 선원은 450명이었고, 그들은 내가 배를 발견할 즈음에도 모두 탑승 중이었다. 분명 선원들은 정기선이 갇히자마자 탱크를 열었을 것이고, 바닥에 닿자마자 펄은 배를 잡아당겼다. 그다음 화덕이 폭발하고 조각들이 나왔을 것이다. 상어가 없었다니 조금 웃기다. 아예 물고기도 없었다. 있었다면 맑고 하얀 모래를 배경으로 내가 봤겠지만.

지금은 물고기가 잔뜩이다. 제일 큰 것은 돔이다. 정기선은 몸체를 대부분 모래 밑에 묻었지만, 제일 큰 돔들이 정기선 안에 산다. 몇몇은 150에서 180이나 나간다. 가끔 우리도 가서 몇 마리 잡는다. 정기선이 가라앉은 곳에 가면 레베카 등대를 볼 수 있다. 지금 정기선이 있는 곳에는 부표를 띄웠다. 만 끝자리 펄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 정기선이 있다. 배는 겨우 100도 안 되는 거리를 남기고 만을 통과하지 못했다. 폭풍 속 암흑에서 선원들은 등대를 놓쳤다. 그렇게 비가 내렸으니 레베카 등대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그런 폭풍에 젬병이었다. 정기선 선장은 그처럼 재빨리 나아가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다. 정기선은 늘 경로가 있고, 정기선 선원들이 방향만 맞추면 배는 알아서 가니까. 폭풍이 불던 날 그들은 자기 위치를 몰랐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다. 그래 보았자 방향타를 잃었을 테지만. 여하튼 걸프만까지 온 이상 멕시코로 가기까지 펄 말고 부딪힐 건 없었다. 그런 비바람에 갇힌다면 혹시 모를까. 결국, 선장은 선원에게 탱크를 열라고 시켰다. 그 폭풍과 빗속에선 갑판을 지키고 설 수도 없다. 모두 갑판 아래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선원이라고 갑판 위에 살림을 차릴 수는 없다. 안쪽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 같았을 것이다. 알다시피 정기선은 재빨리 멈췄으니까. 내 렌치도 그렇게 모래에 빠졌다. 선장이 이곳 물속을 모르는 이상 밑에 있는 것이 펄임을 알기란 불가능했다. 최소한 바위는 아니라고만 인지했을 것이다. 선장은 함교에서만 보고 들었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을 때쯤 진짜 상황을 알아챘겠지. 난 정기선이 가라앉던 빠르기가 궁금하다. 선장에게 저승길 동무가 있었을까. 선원들은 함교에서 죽었을까, 아니면 바깥에서 운명을 받아들였을까. 사람들은 시체를 못 찾았다. 하나도. 아무도 둥둥 뜨지 않았다. 그들도 구명튜브와 함께 먼 길을 떠났다. 분명 배 안에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 그리스인들이 다 가져갔다. 말 그대로 전부. 엄청 서둘러 왔음이 분명하다. 그리스인들은 정기선을 비워냈다. 처음엔 새들이, 다음엔 내가, 그다음엔 그리스인들이 왔는데, 새가 나보다 정기선에서 얻어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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