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지뢰찾기가 있었습니다. 지뢰찾기의 역사는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초기 컴퓨터 시절 Cube라는 퍼즐게임이 나왔습니다. 이후 80년대에 Yomp나 Mined Out 같은 이름을 달고 만들어진 게임은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모음집에서 지뢰찾기라는 이름으로 태어납니다. 윈도우즈 3.1부터 지뢰찾기는 윈도우즈 기본 게임으로 자리잡죠. 이후 지뢰찾기는 윈도우즈의 상징 비스무리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빌 게이츠 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지뢰찾기 규칙은 간단합니다. 게임을 켜면 회색 칸들과 노란 대가리가 나타나는데, 회색 칸들을 클릭해 갑니다. 단, 지뢰가 있는 칸을 밟으면 안 됩니다. 지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지뢰 위치를 알까요? 바로 칸에 적힌 숫자를 보고 지뢰 위치를 추론합니다. 칸에 적힌 숫자는 주변 여덟 칸에 있는 지뢰 개수입니다. 만약 숫자가 3이면 여덟 칸 중 세 칸에 지뢰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뢰가 묻힌 칸은 오른쪽 마우스 클릭으로 깃발을 꽂습니다. 지뢰가 없는 모든 칸을 클릭해서 드러나게 하고 지뢰 칸은 깃발을 꽂으면 게임을 이깁니다. 반대로 지뢰가 있는 칸을 한 번이라도 클릭하면 집니다. 사실 개인이 만든 다양한 지뢰찾기도 많습니다. 멀티플레이 지뢰찾기, 3D 지뢰찾기 등등.
여러분이 학교 컴퓨터 시간에 자리에 앉았는데, 그 컴퓨터에 아무 게임도 없다고 칩시다.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립버전이나 피카츄 배구나 눈싸움 플래시 게임마저 없다면? 웬만큼 선생이 빡세지 않은 이상 모든 윈도우즈에는 지뢰찾기가 깔립니다. 프리셀과 카드 게임은 솔직히 어렵죠. 윈도우즈 기본 게임 중에는 지뢰찾기가 제일 재밌습니다. 학생뿐입니까. 시간을 때워야 하는 직장인들도 몰래 지뢰찾기를 켭니다. 난이도 쉬움 지뢰찾기는 창 크기가 명함보다 작으니, 지나가던 부장님이 볼 확률도 낮죠.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지뢰찾기가 유명해서 유명한 게임일까요? 윈도우즈 기본 게임이라서 명성이 높은 걸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뢰찾기는 사실 웬만한 게임 못지않은 게임성이 있습니다. 지뢰찾기에는 첫째, 목표가 존재합니다. 샌드박스, 자유도 운운하지만 출시하자마자 푹 식는 게임들이 있습니다. 물론 목표가 없어도 좋은 게임일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 게임들은 지향점이나 과제를 플레이어에게 줍니다. 플레이어는 과제를 해결하면서 재미를 느끼죠. 레이싱 게임에서는 1등으로 들어와야 하고 축구 게임에서는 골을 더 많이 넣어서 이겨야 합니다. 대전격투 게임에서는 상대방 체력을 먼저 0으로 만들어야 하고 RPG 게임에서는 모험을 완수해야 합니다. 심지어 샌드박스 게임도 플레이어들은 자신만의 목표를 만듭니다. 이번엔 여기로 가 봐야지, 이번엔 이걸 지어 봐야지. 지뢰찾기의 목표는 말 그대로 지뢰를 전부 찾는 겁니다.
둘째, 지뢰찾기에는 도전이 있습니다. 목표가 너무 쉽거나 어렵다면 게임을 할 맛이 안 나겠죠. 목표가 쉬워지지 않으려면 일종의 방해자가 플레이어를 방해해야 합니다. 지뢰찾기에서 방해자는 바로 지뢰죠. 밟으면 게임이 끝납니다.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하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플레이어는 집중하게 됩니다. 특히 지뢰찾기 속 도전에는 다른 요소가 적습니다. 지뢰찾기를 플레이하려면 무조건 어느 한 칸은 운에 맡기고 밟아야 합니다. 가끔 게임 막바지에 운으로 찍어야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 상황만 빼면 지뢰찾기에는 운이 없습니다. 오직 플레이어가 발휘하는 논리뿐입니다. 게임과 플레이어가 순수한 대결을 펼치는 것이죠. 현질유도도 가챠도 지뢰찾기에서는 다른 세계 이야기입니다. 좀 무섭군요. 5만 원을 들이부어서 상자를 까야 지뢰를 찾는 게임이라니…
이렇듯 목표와 방해자, 순수한 도전이 잘 어우러진 지뢰찾기는 게다가 가볍습니다. 제가 방금 윈도우즈 시스템 폴더를 찾아봤습니다. 지뢰찾기 용량은 117KB였습니다. 117MB도 아니고 117KB였단 말입니다. 옛날 플로피 디스켓 기억하시나요? 지금 저장 아이콘의 유래가 된 저장 매체죠. 아주 커서 펄럭거리는 버전과 작아져서 단단한 버전이 있었는데, 단단한 플로피 디스크 용량이 1.44MB였을 겁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하죠. 그거보다 가벼운 USB 플래시 저장장치가 1GB는 넘을 텐데. 아무튼 그 옛날 디스크에도 지뢰찾기가 들어갑니다. 1.44MB는 약 1470KB니까, 그 디스켓 하나에 지뢰찾기가 12개 들어가죠. 117KB라니! 현재 휴대폰으로 모바일 전용 페이지를 접속해도 쓰는 데이터만큼도 안 될 겁니다. 카카오톡으로 올리는 사진 한 장 용량보다 작겠죠.
종이 한 장처럼 작은 용량이지만 있을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이 절 전율케 합니다. 지뢰라는 컨셉을 생각해 보세요. 지뢰찾기에는 줄거리도 등장 인물도 세계관도 없지만 지뢰가 있습니다. 지뢰가 있다, 지뢰를 없애면 이긴다.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무거운 주제입니까? 컨셉은 게임에 아주 맛있는 양념이 됩니다. 바둑이나 스도쿠 같은 추상게임을 제외한 게임에서 컨셉을 없애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에 스토리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조엘도 엘리도 없고 그냥 아저씨와 어린애가 좀비 잡으면서 돌아다니는 게임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컨셉이 살아야 게임이 빛납니다. 네, 지뢰찾기에 심오한 스토리는 없죠. 하지만 지뢰라는 컨셉은 지뢰찾기와 잘 어울립니다. 지뢰는 땅 속에 설치하죠, 육안으로는 안 보입니다. 지뢰찾기도 지금은 안 보이지만 어딘가에 숨은 것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만약 지뢰찾기가 아니라 전단지찾기, 잡초찾기였어도 지금처럼 재미있었을까요.
이처럼 지뢰찾기는 목표가 분명하고 순수 플레이어의 실력에 승패가 달렸으며 게임 내용과 맞물리는 컨셉을 지녔습니다. 좋은 게임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죠. 단점이 있긴 합니다. 단순해서 오래 하면 질리고 액션 게임 같은 쾌감은 없습니다. 결국 지뢰찾기는 수학게임이니까요. 하지만 지뢰찾기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좋은 게임이란 무엇인가.’ 같은 진지빠는 질문에 답합니다. 컴퓨터실에서 몰래 게임을 하던 저희에게 지뢰찾기는 게임의 기본 개념을 주입한 셈이죠. 흔히 말하는 갓겜의 ‘갓’이 기독교 신이라면, 지뢰찾기는 무위자연의 신이 들어간 ‘갓’겜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