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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3)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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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텍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3년 출판한 단편집 <Winner Take Nothing>에 수록된 단편 <The Light of the World>를 번역한 글입니다.

 

※ 헤밍웨이는 1961년 사망했으므로 현재 이 작품은 한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The Light of the World>는 미국소설학회 헤밍웨이 작품명 번역 통일안에서 <이 세상의 광명>라는 번역제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원본 텍스트는 fadedpage.com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역과 오역이 많습니다.

 

※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텍스트를 블로그, 사이트, 출판 등에 인용하실 때는 덧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덧글을 쓰지 않으신다면 최소한 이 글 링크나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 어니스트 헤밍웨이


  바텐더는 우리가 문으로 들어오는 걸 보더니 손을 뻗어 공짜 점심냄비 위로 유리뚜껑을 덮었다.
  "맥주 줘." 내가 말했다. 바텐더는 맥주를 가져와 주걱으로 뚜껑을 따고 손에 잔을 들었다. 난 나무판 위에 동전을 놓았고 그는 맥주잔을 나한테 줬다.
  "그쪽은?" 그가 톰한테 물었다.
  "맥주."
  바텐더는 맥주를 가져와 뚜껑을 따고, 돈을 보고서야 맥주잔을 톰한테 넘겼다.
  "뭐 문제 있어?" 톰이 물었다.
  바텐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머리 너머를 보더니 "그쪽은요?" 하며 방금 들어온 남자한테 말했다.
  "호밀 위스키". 남자가 말했다. 바텐더는 병과 잔과 물 한 잔을 꺼냈다.
톰이 몸을 기울여 공짜점심 냄비 뚜껑을 열었다. 족발 한 냄비에 가위 비스무리한 나무 도구가 있었는데, 끝이 나무포크라 족발을 집을 수 있었다.
  "안 돼." 바텐더가 말하더니 유리덮개를 다시 얹었다. 톰은 나무 가위포크를 집었다. "도로 놔." 바텐더가 말했다.
  "어디다 놓으라고." 톰이 말했다.
  바텐더는 바 아래로 손을 뻗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내가 나무판 위에 50센트를 놓자 그는 몸을 폈다.
  "너 뭐였지?" 그가 말했다.
  "맥주." 난 말했다. 그는 맥주를 주기 전에 두 냄비를 열어주었다.
  "이 족발은 썩은 냄새가 나." 톰이 말하며 입에 있던 걸 바닥에 뱉었다. 바텐더는 말이 없었다. 호밀 위스키를 다 마신 남자는 돈을 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나갔다.
  "냄새는 네가 나는 거고." 바텐더가 말했다. "너네 같은 양아치 냄새가 다 그렇지."
  "얘가 우리보고 양아치래." 토미가 나한테 말했다.
  "야." 내가 말했다. "그냥 가자."
  "어서 꺼지라고, 양아치들아." 바텐더가 말했다.
  "나간다고 했잖아." 난 말했다. "네가 시킨 게 아니야."
  "또 올 거거든." 토미가 말했다.
  "아니, 못 와." 바텐더가 톰한테 말했다.
  "저놈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네가 좀 말해봐." 토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자니까." 내가 말했다.
  밖은 선선하고 컴컴했다.
  "뭐 이딴 데가 다 있냐?" 토미가 말했다.
  "낸들 아냐." 내가 말했다. "기차역이나 가자."
  마을 한쪽 끝으로 들어왔는데 반대편 끝으로 나가게 생겼다. 마을은 생가죽과 타닌수피(가죽 가공에 쓰는 몇몇 나무껍질)와 톱밥 무더기 냄새가 났다. 마을로 들어올 때만 해도 하늘이 어두워지는 중이었는데, 이제는 어둡고 추워서 길가 물웅덩이가 언저리부터 얼어갔다.
  기차역으로 내려가니 갈보 다섯이 들어오는 기차를 기다렸다. 또 백인 여섯에 인디언 넷이 역사에 있었다. 역사는 붐볐고 스토브 때문에 후끈한 데다가 눅눅한 연기로 가득했다. 우리가 들어오니 아무도 말이 없었고 매표소 문을 내린 뒤였다.
  "문 좀 닫지?" 누가 말했다.
  누가 말하나 봤더니 백인 중 하나였다. 다들 끝단 자른 바지를 입고 목수처럼 고무장화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다. 그 백인 하나만 모자를 쓰지 않았고, 얼굴은 창백한 데다 손가락이 희고 가늘었다.
  "안 닫을 거냐고?"
  "알았어요." 난 말하고 닫았다.
  "고맙다." 그는 말했다. 동행 중 하나가 끅끅 웃었다.
  "요리사 일하는데 끼어든 적 있어?" 동행이 나한테 말했다.
  "아뇨."
  "얘 좀 끼어들어 봐," 그는 요리사를 보았다. "얘는 이런 거 좋아하거든."
  요리사라 불린 청년은 입을 앙다물더니 동행의 시선을 피했다.
  "얘는 손에 레몬주스를 붓나 봐." 그가 말했다. "죽어도 설거지 물에는 손을 안 넣지. 손 하얀 것 좀 봐."
  갈보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살면서 그렇게 비대한 갈보, 그렇게 비대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알록달록한 실크 옷을 입은 여자였다. 그 여자처럼 큰 갈보가 둘이나 있었지만, 그 여자야말로 무게가 160킬로그램은 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당신도 보면 실존인물이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비대한 셋은 알록달록 실크 드레스를 입었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셋은 거대했다. 다른 둘은 평범한 갈보처럼 생겼다. 과산화수소로 염색한 금발머리였다.
  "쟤 손 좀 보라고." 남자가 말하며 턱짓으로 요리사를 가리켰다. 갈보는 또 웃고는 몸을 떨었다.
  요리사는 몸을 돌려 여자한테 나지막이 말했다. "토 나오는 살덩어리 주제에."
  여자는 그저 웃고 떨기만 했다.
  "아, 너무 웃겨.."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예뻤다. "웃겨 죽겠네."
  다른 두 창녀, 그러니까 두 비대한 여자들은 그쪽으로 무심하다는 듯 조용하고 침착한 척을 했다. 그래도 그 둘은 거대했고 제일 큰 쪽과 비등했다. 못해도 110킬로그램은 넘었다. 나머지 둘은 기품이 있었다.
남자들을 보자면, 요리사와 떠드는 남자 옆에는 목수 둘이 서 있었다. 하나는 대화를 들으며 관심이 있는 듯 했지만 쑥스러운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자기도 뭔가 말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거기에 스웨덴 사람 둘.. 인디언은 둘은 벤치 끄트머리에 앉았고 하나는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말할 준비를 하던 남자가 낮은 음으로 나한테 말했다. "건초더미라도 올라갔나 봐."
  난 웃었다. 같은 걸 토미한테 말했다.
  "뻥 안 치고 이런 동네는 난생처음이야." 그가 말했다. "쟤네 셋 좀 봐봐." 그런데 요리사가 말을 꺼냈다.
  "야, 너넨 몇 살이냐?"
  "전 예순여섯이고 얘는 예순아홉인데요." 토미가 말했다.
  "허! 허! 허!" 거대 창녀가 떨리는 몸으로 웃었다. 목소리가 정말 예뻤다. 다른 창녀들은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좀 싸가지 있게 말하지?" 요리사가 말했다. "그냥 친절하게 물어본 건데."
  "열일곱이랑 열아홉이요." 내가 말했다.
  "야, 왜 그래?" 토미가 내 쪽을 봤다.
  "괜찮아."
  "난 앨리스라고 해." 거대 창녀가 말하며 다시 몸을 떨었다.
  "그쪽 이름이에요?" 토미가 물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앨리스. 맞지 않아?" 그녀는 요리사 옆에 앉은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앨리스. 맞는데."
  "원래 그런 이름을 쓰지." 요리사가 말했다.
  "내 본명 맞거든." 앨리스가 말했다.
  "다른 여자들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톰이 물었다.
  "헤이즐과 에델.," 앨리스가 말했다. 헤이즐과 에델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밝은 미소는 아니었다.
  "그쪽은요?" 나는 금발한테 물었다.
  "프란시스." 그녀가 말했다.
  "프란시스 뭔데요?"
  "프란시스 윌슨. 알아서 뭐 하게?"
  "그쪽은요?" 나는 다른 여자한테도 물었다.
  "들이대지 마." 그 여자가 말했다.
  "얘는 그냥 다 친구 먹고 싶어서 저래." 한 남자가 말을 꺼냈다. "친구 먹기 싫어?"
  "싫은데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특히 그쪽이랑은."
  "아주 앙칼져." 남자가 말했다. "흔한 앙칼진 소녀."
  금발은 반대편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꼰대새끼." 그녀가 말했다.
  앨리스는 또 웃음을 터뜨리고 몸을 떨었다.
  "하나도 재미 없거든." 요리사가 말했다. "재미없는데도 맨날 웃어제낀다고. 거기 꼬마 둘.. 어디 가는데?"
  "그쪽은 어디 가세요?" 톰이 그한테 물었다.
  "난 캐딜락 가려고." 요리사가 말했다. "안 가봤어? 내 누이가 거기 살아."
  "자기가 누이면서." 끝단 자른 바지 사내가 말했다.
  "그딴 소리 집어치울래?" 요리사가 말했다. "우리 싸가지 있게 좀 말하지?"
  "캐딜락은 스티브 케첼이 살던 곳이고 애드 울가스트(1888~1955) 고향인데." 말 적은 남자가 말했다.
  "스티브 케첼은요," 그 이름에 반응이라도 한 듯 목소리가 높은 금발 하나가 말했다. "아버지한테 총 맞아 죽었대요. 맞아요. 미친, 자기 아빠가요. 이제 스티브 케첼 같은 남자는 없겠죠."
  "그 사람 이름은 스탠리 케첼(1886~1910) 아닌가?" 요리사가 물었다.
  "아, 시끄러워요." 금발이 말했다. "스티브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스탠리라니. 스탠리가 아닌데요. 스티브 케첼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멋진 남자였어요. 스티브 케첼처럼 깨끗하고 희고 아름다운 남자는 본 적이 없네요. 그와 비슷한 남자도 못 봤죠. 움직이는 모습은 호랑이 같았죠. 정말 훌륭하고 자유롭고 돈도 팍팍 쓰는 남자였어요."
  "아는 사이였어?" 남자 하나가 물었다.
  "제가 아냐고요? 제가 아냐고요? 제가 사랑했냐고요? 질문이 그거예요? 당신 같은 사람이 누군갈 아는 것보다 더 잘 그를 알았고, 당신 같은 사람이 신을 사랑하듯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세상 누구보다 위대하고 훌륭하고 가장 하얗고 아름다운 남자, 스티브 케첼. 그런 그분을 자기 아비가 개처럼 쏴 죽였죠."
  "그 사람 경기라도 챙겨 줬어?"
  "아뇨. 그전부터 알았어요. 제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였는데."
  과산화수소 금발은 계속 높은 음으로 배우처럼 말했고, 모두 그 말을 깊이 새겨들었다. 그런데 앨리스가 다시 몸을 떨었다. 옆에 앉은 나한테도 그 떨림이 느껴졌다.
  "그럼 결혼했어야지." 요리사가 말했다.
  "그분 경력에 흠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과산화수소 금발이 말했다. "그분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죠. 그분은 아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 정말 남자다웠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요리사가 말했다. "잭 존슨(1878~1946)이 그 사람을 눕히지 않았나?"
  "그건 반칙이었어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그 큰 검둥이가 느닷없이 덤볐다고요. 그분도 그 시꺼먼 놈을 때려눕힐 수 있었는데. 깜둥이 놈이 운발로 이긴 거죠."
  매표소 창문이 올라갔다. 인디언 셋이 그리로 들어갔다.
  "그분도 그놈을 때려눕혔어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절 보고 미소까지 지었다고요."
  "경기 챙긴 적 없다고 한 것 같은데." 누군가 말했다.
  "그날 경기만 빼고요. 스티브가 절 보고 미소를 짓는데 갑자기 그 흑인 새끼가 확 뛰어올라서 갑자기 후렸다니까요. 스티브라면 그런 흑인놈은 백 명은 눕힐 텐데."
  "참 잘 싸우던 사람이었지." 한 목수가 말했다.
  "그렇고 말고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요즘엔 그런 격투가가 없어요. 그분은 신과 마찬가지였어요. 아주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빠르고 호랑이 같았고 번개 같았어요."
  "나 그 사람이 싸우는 영상을 봤어." 톰이 말했다. 우리는 꽤 감동을 받은 것이었다. 앨리스는 계속 온몸을 떨었다. 내가 보니 그녀는 울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이미 승강장으로 나간 뒤였다.
  "그분은 최고의 남편감이었어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우리는 신의 눈길 속에서 결혼했고 지금 전 그분과 함께고 언제까지나 그렇겠죠. 제 모든 건 그이 것이죠. 제 육신은 상관없어요. 몸이야 가져가라죠. 제 영혼이야말로 스티브 케첼 것이에요. 그래요, 그이는 진짜 사나이였죠."
  우리는 몸둘 바를 몰랐다. 슬프면서도 낯부끄러웠다. 그때 계속 덜덜 떨던 앨리스가 말했다. "이 더러운 사기꾼아." 그녀는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스티브 케첼이랑 절대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요?" 과산화수소가 보란 듯이 말했다.
  "사실이니까 나오지." 앨리스가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나만 스티브 케첼을 알아. 난 맨셀로나에서 태어났어. 거기서 스티브를 알게 됐어. 진짜야. 너도 인정할걸. 이게 거짓말이면 하느님이 나한테 벼락을 내릴 거다."
  "제가 틀리면 저한테도 벼락을 내리라죠."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정말, 정말, 정말이야. 너도 알잖아. 지어낸 게 아냐. 그 사람이 나한테 한 말도 기억해."
  "뭐라고 했는데요?" 과산화수소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었다.
앨리스는 아직 우는 중이어서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사람은 말했지. '넌 정말 아름다워, 앨리스.' 토씨 하나까지 이렇게 말했어."
  "거짓말."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진짜야." 앨리스가 말했다. "정말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
  "거짓말." 과산화수소가 보란 듯이 말했다.
  "아냐. 진짜, 진짜, 진짜야. 예수님과 성모님을 걸고 진짜야."
  "스티브가 그리 말했을 리 없어요. 그분 말투가 아닌데요." 과산화수소가 낭랑하게 말했다.
  "진짜라니까." 앨리스가 그 예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믿든 말든 그점은 변하지 않아." 앨리스는 이제 울지도 않았고 차분했다.
  "스티브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니까요." 과산화수소가 선을 그었다.
  "그렇게 말했어." 앨리스가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나도 그 사람 말대로 사랑스러운 여자였어. 지금도 너보다는 나은 여자야. 이 말라붙은 보온 물주머니야.."
  "누가 누구보고 욕을 해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그쪽은 고름덩어리면서. 나도 기억을 한다고요."
  "아니." 앨리스는 달곰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탯줄을 빼낸 거랑 이것저것 살던 걸 빼면 넌 기억하는 게 없어. 나머지는 전부 신문에서 읽은 거지. 너도 알지만 난 깨끗해. 너도 알지만 내 몸이 커도 남자들은 날 좋아해. 너도 알지만 난 거짓말을 안 해."
  "내 기억을 건들지 마요." 과산화수소가 말했다. "진짜 기억이고 대단한 기억들이에요."
  앨리스는 그녀를 보고, 그다음 우리를 보았다. 가슴 아파하던 표정이 얼굴에서 사라지더니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태어나서 본 것 중 제일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얼굴도 아름다웠고 살갗도 부드러웠고 목소리도 사랑스러운 데다 쭉 예의가 발랐고 진짜 살가웠다. 하지만 세상에 그녀는 정말이지 거대했다. 세 여자를 합친 듯 거대했다. 톰이 그녀를 보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야, 가자."
  "잘 가." 앨리스가 말했다. 정말 좋은 목소리였다.
  "잘 있어요." 내가 말했다.
  "너네 어느 방면으로 가는데?" 요리사가 물었다.
  "아저씨 반대 방향이요." 톰이 요리사한테 말했다.

 

 

 


* 스탠리 케첼은 '미시건 암살자'라는 별명을 지닌 복싱선수였다. 케첼은 1909년 10월 16일 잭 존슨을 상대로 월드 헤비급 경기를 펼쳤는데, 케첼이 존슨을 쓰러뜨리자 존슨이 일어나 케첼을 어퍼컷으로 녹아웃시켰다. (지금도 영상이 남아있다) 케첼은 1910년 10월 4일 자기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앙심을 품고 쏜 총에 맞아 다음날 사망한다. 과산화수소 여자가 '자기 아비한테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 말은 잘못 알았거나 거짓말인 것 같다. 인터넷 검색 결과 동시대에 스티브 케첼이라는 복싱선수도 살았음이 기록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일행은 둘을 헷갈리는 듯하다. 헤밍웨이는 복싱을 즐겼으니 작가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헷갈려한다고 믿고 싶다. 본문에 나오는 애드 울가스트도 미국 복싱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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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깨끗하고 조명 밝은 곳(A Clean, Well-Lighted Place)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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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텍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3년 출판한 단편집 <Winner Take Nothing>에 수록된 단편 <A Clean, Well-Lighted Place>를 번역한 글입니다.


※ 헤밍웨이는 1961년 사망했으므로 현재 이 작품은 한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A Clean, Well-Lighted Place>는 미국소설학회 헤밍웨이 작품명 번역 통일안에서 <정결하고 조명이 잘 된 장소>라는 번역제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원본 텍스트는 fadedpage.com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역과 오역이 많습니다.


※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텍스트를 블로그, 사이트, 출판 등에 인용하실 때는 덧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덧글을 쓰지 않으신다면 최소한 이 글 링크나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깨끗하고 조명 밝은 곳

- 어니스트 헤밍웨이

 

 

날이 늦어 모두 카페를 떠났지만 한 노인만이 전등빛이 나뭇잎을 비춰 나타난 그림자 속에 앉아 있었다. 낮 거리는 먼지가 날렸지만, 밤이 되자 이슬이 먼지를 가라앉혔고 노인은 밤까지 앉아 지내기를 좋아했다. 노인은 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용했고 노인은 그 다름을 감지했다. 카페에선 웨이터 둘이 노인의 미약한 취기를 눈치챘다. 노인은 단골이었기에 웨이터들은 노인이 너무 취하면 돈도 안 내고 나갈까 봐 예의주시했다.

지난주에 저 사람 자살을 시도했다는데,” 한쪽 웨이터가 말했다.

?”

절망했나 보지.”

뭐에?”

그냥.”

그냥인 줄 어떻게 알아?”

저 사람은 돈이 아주 많거든.”

웨이터들은 카페 현관 옆 벽을 맞댄 탁자에 같이 앉아 테라스를 쳐다보았다. 테라스에는 노인이 앉은 걸 빼면 모든 테이블이 휑했다. 노인이 속에 앉은 나뭇잎 그림자는 바람에 살살 움직였다. 소녀와 군인이 거리를 지나갔다. 거리의 불빛이 군인이 소매에 단 장식을 빛냈다. 아무것도 머리에 쓰지 않은 소녀는 헐레벌떡 군인 옆을 따랐다.

경비대가 저 사람을 데려가겠지,” 한쪽 웨이터가 말했다.

가던 곳에 도착하면 무슨 소용이야?”

슬슬 거리에서 비켜나야 할걸. 경비대가 잡아낼 거야. 5분 전에 경비대가 지나갔거든.”

그림자 속에 앉은 노인은 잔으로 받침을 두들겼다. 둘 중 어린 웨이터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노인이 웨이터를 보았다. “브랜디 더.” 노인이 말했다.

이러다 취하시겠어요,” 웨이터가 말했다. 노인이 웨이터를 바라보았다. 웨이터는 물러났다.

밤새 지낼 작정인가 봐,” 웨이터는 동료 웨이터한테 말했다. “이제 졸리는데. 세 시 전에 자긴 글렀어. 지난주에 자살이나 성공할 것이지.”

웨이터는 브랜디 병과 카페 계산대에 있는 다른 컵 받침을 집어서 노인이 앉은 테이블로 진군했다.

지난주에 자살하셨어야죠.” 웨이터는 귀머거리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조금만 더.” 노인이 말했다. 웨이터는 잔에 브랜디를 부었다. 브랜디가 살짝 넘쳐 쌓아놓은 받침으로 흘러내렸다. “고맙네.” 노인이 말했다. 웨이터는 병을 원래 자리에 갖다 놓았다. 다시 직장동료 옆에 가서 앉았다.

이제 취했네.” 웨이터가 말했다.

맨날 밤마다 취하잖아.”

왜 자살 시도했대?”

내가 어떻게 알아.”

무슨 방법을 썼대?”

밧줄로 목을 맸대.”

밧줄을 잘라 구한 쪽은?”

조카.”

뭐하러 구했대?”

노인 영혼이 타락할까 봐.”

노인 재산이 얼마라고?”

아주 많아.”

노인 나이가 여든은 될 텐데.”

어찌 되었든 여든은 되었겠지.”

이제 집에 좀 가지. 세 시 전에 자긴 글렀네. 나처럼 자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저 노인은 저 좋으라고 깨어 있는데.”

저쪽은 홀몸이고. 난 아니라고. 난 침대에서 기다리는 마누라가 있어.”

저쪽도 아내는 있었겠지.”

지금 아내가 있어도 쓸모없었을걸.”

그건 모르지. 아내가 있으면 더 나았을지도.”

조카가 저 사람을 보살핀대.”

나도 알아. 아까 조카가 밧줄을 잘랐다면서.”

그렇게까지 늙고 싶진 않아. 늙으면 추해져.”

다 추해지진 않지. 이 할아범은 깨끗해. 술도 안 흘리지. 지금 취했는데도. 봐봐.”

보기도 싫어. 빨리 저 노인이 집에 갔으면 좋겠어. 일해야 하는 사람을 배려하질 않아.”

노인은 술잔 너머로 광장을 바라보았고, 곧 웨이터들을 보았다.

브랜디 더.” 노인이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나온 웨이터가 다가왔다.

끝났습니다.” 웨이터는 멍청한 사람이 취객이나 외국인을 상대할 때 말하는 방식을 티 냈다. “오늘 밤은 안 돼요. 영업 끝입니다.”

한 잔 더.” 노인이 말했다.

안 돼요. 끝났다고요.” 웨이터는 수건으로 테이블 끄트머리를 닦아내고 고개를 저었다.

노인은 일어섰다. 느릿느릿 받침 수를 세고 가죽 동전지갑을 주머니에서 꺼내 술값을 냈다. 반 페세타(스페인 옛 통화)는 팁이었다.

웨이터는 노인이 거리를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주 많이 늙은 남자는 불안정했지만, 품위가 있었다.

그냥 마시게 두지 그랬어?” 느긋한 쪽 웨이터가 물었다. 둘은 셔터를 내리기 시작했다. “두 시 반도 안 됐어.”

집에 가서 잘래.”

한 시간도 못 기다려?”

늙은이보다 나한테 시간이 중해.”

모두 같은 한 시간이야.”

너도 그 할아범처럼 말하네. 그 할아범은 술 한 병 사서 집에서 마시면 되잖아.”

둘은 다르지.”

다르긴 해.” 유부남 웨이터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쁜 사람이 될 맘은 없었다. 그저 성급했을 뿐이었다.

그러는 너는? 보통 시간보다 일찍 퇴근하는 게 무섭지 않나 봐?”

기분 나빠지라고 한 소리냐?”

아냐, 인마. 그냥 농담한 거야.

아니지.” 급한 쪽 웨이터가 금속 셔터를 내린 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난 자신 있는데. 난 자신감으로 가득하니까.”

넌 젊고, 자신만만하고, 취직도 했지.” 형인 웨이터가 말했다. “넌 모든 걸 갖췄어.”

그쪽은 뭐가 부족한데?”

일자리 빼고 다.”

나한테 있으면 다 너한테도 있어.”

아니. 난 자신감도 없고 젊지도 않아.”

어서 가자. 헛소리는 그만하고 마감하자고.”

난 카페에 늦게 남는 파거든.” 형인 쪽 웨이터가 말했다. “잠들기 싫어하는 사람과 같은 편이야. 밤에도 빛이 필요한 사람과 같은 편이고.”

우리는 서로 다른 편이지.” 나이를 더 먹은 웨이터는 말했다. 웨이터는 집에 갈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젊음과 자신감이 엄청 아름다운 존재지만, 이건 젊음과 자신감 문제가 아니야. 매일 밤 난 마감하기가 꺼려져. 카페가 필요한 사람이 어딘가 있을 수 있거든.”

형씨, 온종일 여는 보데가(스페인 구멍가게)가 있잖아.”

말귀를 못 알아듣네. 여긴 깨끗하고 즐거운 카페야. 조명도 밝고. 조명도 아주 좋고, 지금은 나뭇잎 그림자도 있어.”

잘 자.” 동생인 쪽 웨이터가 말했다.

너도 잘 자.” 상대는 말했다. 웨이터는 전등을 끄고 자기와 대화를 이었다. 물론 조명도 중요하지만, 장소는 깨끗하고 즐거워야지. 음악은 안 돼. 음악은 안 되고말고. 이 시간에 갈 수 있는 곳이 바밖에 없다 해도 품위를 지키면서 바에 갈 수는 없지. 그 노인은 뭐가 무서워서 그랬을까? 무섭거나 불안한 건 아니야. 그건 노인이 너무 잘 아는 것, 였어. 모든 것은 무였고 사람도 무였어. 오직 그뿐이었지. 필요한 것은 빛과 어느 정도의 깨끗함과 질서였지. 어떤 사람은 그 안에 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지만, 노인은 알아챘어. 모든 것이 고 따라서 고 그래서 . 에 계신 우리 , 이름이 를 받으시오며 나라가 하옵시며, 뜻이 에서 이룬 것 같이 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날 우리에게 일용할 르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자를 하여 준 것 같이 우리 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하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에서 구하옵소서. 웨이터는 미소를 짓고는 바 앞에 섰다. 증기 커피추출기가 윤기를 빛냈다.

뭐 드시겠소?” 바 주인이 물었다.

.”

“Otro loco mas(또 미친 사람이군).” 주인은 말하고 돌아섰다.

작은 컵으로 하나요.” 웨이터가 말했다.

주인이 웨이터에게 한 컵 따랐다.

조명도 꽤 밝고 분위기도 즐겁지만, 바가 더럽네요.” 웨이터가 말했다.

주인은 웨이터를 슬쩍 보았지만 대답하진 않았다. 얘기하기엔 너무 늦은 밤이었다.

한 잔 더 드릴까?” 주인이 물었다.

아닙니다.” 웨이터는 말하고 나갔다. 웨이터는 바도 보데가도 좋아하지 않았다. 깨끗하고 밝은 카페는 이들과 다른 존재였다. 이제 웨이터는 딴생각 없이 집과 방으로 들어갈 것이다. 침대에 누워 마침내 햇빛과 함께 잠에 들 것이다. 애초에 웨이터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아마 불면증만 걸린 거라고. 많은 사람이 걸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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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폭풍이 지나가고(After The Storm)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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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텍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3년 출판한 단편집 <Winner Take Nothing>에 수록된 단편 <After The Storm>을 번역한 글입니다.


※ 헤밍웨이는 1961년 사망했으므로 현재 이 작품은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After The Storm>은 미국소설학회 헤밍웨이 작품명 번역 통일안에서 <폭풍 후>라는 번역제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원본 텍스트는 fadedpage.com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역과 오역이 많습니다.


※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텍스트를 블로그, 사이트, 출판 등에 인용하실 때는 덧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덧글을 쓰지 않으신다면 최소한 이 글 링크나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 어니스트 헤밍웨이


 

주먹을 날릴 일이 전혀 아니었지만 우리는 맞붙었는데, 내가 넘어지자 그는 내 가슴팍에 무릎을 올려 눕히고는 양손으로 목을 졸랐다. 그는 날 죽일 기세였고 나는 내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풀려나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취해서 그를 떼어놓지 못했다. 그가 내 목을 조르고 머리를 바닥에 찧는 사이 나는 칼을 꺼내 펼쳤다. 그러고는 팔 근육을 제대로 그어버렸다. 그는 나를 풀어줬다. 잡고 싶어도 못 잡았을 것이다. 그가 몸을 굴리더니 베인 팔을 부여잡고 울기에 말했다.

내 목을 졸라서 어쩌려고?”

난 그를 죽일 뻔했다. 일주일은 뭘 못 삼켰다. 그도 내 목을 지독하게 아프게 했다.

, 난 거기를 나왔다. 많은 이가 그한테 붙었고 몇몇은 나를 쫓아 나왔다. 나는 방향을 바꾸어 부두로 내려갔다. 거기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거리에서 살인이 났다고 했다. 난 말했다. “누가 죽였대?” 친구는 말했다. “살인범은 몰라도 누가 죽긴 죽었나 봐.” 바깥은 어두웠다. 물기가 거리에 들끓었고 불빛은 다 나가고 창문은 박살 나고 선박은 죄다 마을까지 올라오고 나무는 터져 떠내려갔다. 만물이 다 터져 나갔고 나는 조각배를 얻어 타고 나갔다. 난 망고 키에 정박한 내 보트를 찾아냈고 보트는 물로 가득할 뿐 전부 괜찮았다. 그래서 난 물을 빼고 펌프로 배수했다. 달은 떴지만 수많은 구름도 떴고 아직 날씨는 아주 지독했다. 난 달을 따라 내려갔다. 햇빛이 비칠 즈음엔 동쪽 부두까지 나간 후였다.

형제여, 그 정도면 폭풍이라 부를 만했다. 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고 나간 사람이었다. 그런 물길은 너도 본 적이 없을 거다. 물은 잿물 담은 통처럼 뿌옜고 동쪽 부두에서 남동 만까지 해안선을 알아볼 수 없었다. 해변 정 가운데를 흐르던 큰 도랑도 터졌다. 나무고 뭐고 다 터져 나가 도랑은 잘려나가고 물은 분필처럼 허옜다. 그 위로 만물이 떠다녔다. 나뭇가지도 나무도 죽은 새도 뭐고 전부 떠다녔다. 삐져나온 모래톱에 전 세계 펠리컨이 모였고 온갖 새가 날았다. 폭풍을 예감하고 온 그곳에 틀어박힌 것이다.

난 남동쪽 모래톱에 종일 누웠다.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간 사람이었다. 돛대 하나가 떠내려가서 어디선가 난파선이 있다고 확신했다. 난 그 배를 찾아 나섰다. 그 배는 찾았다. 돛대가 셋인 스쿠너(범선의 종류)였고 부러진 돛대들만이 밑동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배는 너무 깊이 가라앉아서 내가 뭘 빼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걸 찾기로 했다. 내가 1번 타자였으니 뭘 발견하든 내 것이었다. 세 돛대짜리 스쿠너를 떠나 모래사장을 내려갔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미 꽤 멀리 나갔다. 난 갯벌로 나갔지만 역시 허탕이었다. 그래서 계속 찾았다. 레베카 등대(플로리다 남단에 있는 등대)가 보이는 곳까지 간 그때 온갖 새들이 뭉쳐 날았다. 난 그쪽으로 가서 뭔지 알아보았다. 그냥 날아다니는 새 무더기였다.

물 밖으로 삐져나온 돛대 비스름한 게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니 새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올라 내 주변을 감쌌다. 그곳 물은 맑았다. 정말 수면 위를 살짝 삐져나온 돛대였다. 나는 다가갔다. 물밑은 기다란 그림자처럼 컴컴했다. 바로 앞까지 가니 물밑에 있던 것은 정기선으로, 온 세상처럼 커다란 몸집을 하고 그저 물 아래에 드러누웠다. 난 배를 타고 그 정기선을 가로질렀다. 정기선은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웠고 후미는 깊숙이 잠긴 후였다. 관측창은 꽉 닫혔고 유리창이 물속에서 빛났다. 사실, 배 전체가 빛났다. 태어나서 본 배 중 가장 큰 놈이 그곳에 있었다. 난 정기선 전체를 따라서 갔다. 정기선 위를 넘어간 다음 닻을 내렸다. 선미에 둔 뗏목을 밀어내서 물에 띄우고 나를 덮어쓴 새들과 함께 노를 저었다.

설거지에나 어울리는 물안경이 있었는데, 손이 떨려서 들지도 못할 정도였다. 정기선 전체를 훑었고 보이는 관측창은 전부 닫혔지만, 바닥으로 내려가면 어딘가 열렸을 것이었다. 계속 물건들이 떠올랐으니. 무슨 물건인지는 아리송했다. 그냥 쪼가리들. 새들은 그 쪼가리들을 따라 날았다. 너는 그렇게 많은 새를 본 적이 없을 거다. 모든 새가 내 주변을 날며 미친 듯이 울었다.

모든 것이 뚜렷하고 선명했다. 시야에 정기선이 잠긴 끝부분이 들어왔는데 물밑 깊이가 1마일은 되는 것 같았다. 정기선은 맑은 흰 모래 둑 위에 누운 채였고 돛대는 앞돛대 같기도 하고 비스듬히 드러누워 물 밖으로 기울어진 낚싯대 같기도 했다. 정기선 뱃머리는 그렇게 깊진 않았다. 뱃머리에 새긴 배 이름에 발을 대어도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관측창까지 가려면 3, 4는 내려가야 했다. 이삭 터는 장대를 내리면 창에 닿기에 장대로 창을 깨보려 했지만 깨지지 않았다. 유리가 꽤 두꺼웠다. 그래서 난 배로 돌아가서 렌치를 꺼내 이삭 터는 장대 끝에 감아 붙였지만 그래도 깨지지 않았다. 정기선 창문 너머로 모든 것이 있었고 내가 처음으로 이 배에 도착했는데도 들어가지를 못했다. 분명 속에 있는 것들은 5백만 달러는 나갈 것이었다.

정기선이 분명 품었을 것들을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제일 가까운 관측창을 보니 뭔가 있었지만 내 물안경으로는 정체를 알지 못했다. 장대는 소용이 없어서 난 옷을 벗고 몸을 편 다음 두 번 숨을 들이마시고 뱃머리에서 다이빙했다. 손에는 렌치를 들고 헤엄쳐 내려갔다. 관측창 끝부분에 가니 잠깐 여유가 생겨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한 여자가 머리칼 전체를 둥둥 띄웠다. 여자는 가만히 떠다녔다. 나는 렌치로 유리창을 두어 번 힘껏 후려쳤다. 빠직하는 소리가 났지만 창문은 부서지지 않았고 나는 물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난 뗏목에 몸을 걸치고 숨을 골랐다. 다시 올라가 두 번 숨을 들이마시고 뛰어들었다. 아래로 헤엄쳐 내려가 관측창 모서리를 손으로 잡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렌치로 창을 때렸다. 물안경 너머로 여인이 떠다녔다. 여인의 머리칼은 잠깐 머리에 달라붙더니 다시 사방으로 퍼졌다. 한 손은 반지 여럿을 꼈다. 여인은 관측창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나는 두 번 더 창을 때렸지만, 창은 금도 가지 않았다. 수면으로 올라갈 때는 숨을 쉬어야 하기 전에 못 올라가는 줄 알았다.

나는 다시 잠수했다. 이번엔 창에 금을 냈다. 금만. 수면으로 올라오니 코피가 났다. 난 맨발로 정기선 뱃머리 배 이름 위에 서서 머리만 물 위로 내놓았다. 거기서 쉬고 뗏목으로 헤엄쳐 돌아갔다. 뗏목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두통이 멎기를 기다리며 물안경을 쓴 채 바닥을 내려보았다. 그러나 피가 나서 물안경을 씻었다. 그런 다음 난 뗏목에 누운 채 손으로 코를 쥐고 코피를 막았다. 머리를 뒤로 기울이고 누우니 수백만 새들이 내 주위를 날았다.

코피가 멎고 나는 다시 물안경을 썼다. 이번엔 내 배로 돌아가서 렌치보다 무거운 놈을 찾았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해면 캐는 갈고리조차. 정기선으로 돌아가니 물은 훨씬 맑아졌다. 흰 모래 제방 위를 떠다니는 모든 것이 보였다. 난 상어가 있는지 살폈지만, 상어는 없었다. 정말 멀리 나가면 상어를 만났을 것이다. 물은 꽤 맑았고 모래는 하얬다. 뗏목에는 닻을 다는 고정장치가 있었다. 난 장치를 떼고 갑판으로 나와 장치를 들고 잠수했다. 장치 덕분에 나는 곧장 가라앉았다. 나는 관측창을 지났다. 창을 잡았지만 잡을 곳이 없어서 나는 계속 가라앉았다. 둥근 정기선 옆면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장치를 놔야 했다. 장치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내가 수면으로 올라오기까지 평생이 걸리는 것 같았다. 뗏목은 조류를 따라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는 코피를 바다에 흘리며 뗏목으로 헤엄쳤다. 상어가 안 나타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난 지쳐 버렸다.

머리통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난 뗏목에 누워 쉬다가 다시 정기선으로 돌아갔다. 슬슬 오후였다. 난 렌치를 쥐고 다시 잠수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렌치는 너무 가벼웠다. 큰 망치, 쓸만할 만큼 무거운 게 아니면 다이빙해 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난 렌치를 다시 장대에 감고 물안경으로 물속을 보면서 창을 내리치고 찍어댔다. 그러다 렌치가 사라졌다. 물안경으로 보니 아주 확실하게 렌치는 정기선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다 정기선에서 떨어지고는 진흙 속으로 잠겼다. 이제 하릴없었다. 렌치도 없었고 고정장치도 잃어버렸다. 난 배로 돌아갔다. 뗏목을 배에 올리기엔 너무 피곤했다. 해는 꽤 기울었다. 새들은 정기선을 떠났고 나는 뗏목을 데리고 남동쪽 모래톱으로 갔다. 새들은 내 위와 뒤에서 날았다. 정말 노곤했다.

그날 밤, 폭풍이 불었다. 폭풍은 일주일을 불었다. 정기선을 다시 찾으러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나한테 내가 벨 수밖에 없던 녀석은 팔만 빼면 괜찮다고 알려주었다. 난 마을로 돌아갔고 벌금 5백 달러가 선고되었다. 나중엔 다 잘 풀렸다. 그 녀석이 도끼를 들고 날 쫓아갔다고 증언한 몇몇 친구 덕분이다. 그러나 증기선에 다시 돌아가 보니 이미 그리스인들이 배를 열어젖히고 속을 비워낸 후였다. 그리스인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써서 금고를 빼냈다. 얼마나 챙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기선은 금을 날랐는데 그들이 다 가져갔다. 그들은 배를 홀라당 벗겨 먹었다. 나도 정기선을 뒤졌지만, 동전 하나 챙기지 못했다.

알고 보니 정기선은 아주 진국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정기선이 허리케인이 몰아치던 날, 하바나 항구에서 겨우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정기선은 항구에 들어갈 여지가 없었거나 항구 쪽에서 선장한테 들어올 기회를 주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선장은 시도라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기선은 폭풍과 함께 나아갔다. 캄캄한 바다에서 그들은 레베카 등대와 토르투가스 등대 사이로 만을 통과하려 기를 쓰고 달렸다. 그때 정기선은 펄에 끼었다. 방향타가 빠졌을 수도 있다. 방향키로 조종 중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뱃사람들은 그곳이 펄임을 알 방법이 없었다. 배가 멈추자 선장은 분명 밸러스트 탱크를 열어서 자세를 가다듬으려 했을 거다. 그러나 배가 닿은 바닥은 펄이었다. 선원들이 탱크를 열자 배는 후미부터 꺼졌고 앞머리까지 가라앉았다. 배에 탄 승객과 선원은 450명이었고, 그들은 내가 배를 발견할 즈음에도 모두 탑승 중이었다. 분명 선원들은 정기선이 갇히자마자 탱크를 열었을 것이고, 바닥에 닿자마자 펄은 배를 잡아당겼다. 그다음 화덕이 폭발하고 조각들이 나왔을 것이다. 상어가 없었다니 조금 웃기다. 아예 물고기도 없었다. 있었다면 맑고 하얀 모래를 배경으로 내가 봤겠지만.

지금은 물고기가 잔뜩이다. 제일 큰 것은 돔이다. 정기선은 몸체를 대부분 모래 밑에 묻었지만, 제일 큰 돔들이 정기선 안에 산다. 몇몇은 150에서 180이나 나간다. 가끔 우리도 가서 몇 마리 잡는다. 정기선이 가라앉은 곳에 가면 레베카 등대를 볼 수 있다. 지금 정기선이 있는 곳에는 부표를 띄웠다. 만 끝자리 펄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 정기선이 있다. 배는 겨우 100도 안 되는 거리를 남기고 만을 통과하지 못했다. 폭풍 속 암흑에서 선원들은 등대를 놓쳤다. 그렇게 비가 내렸으니 레베카 등대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그런 폭풍에 젬병이었다. 정기선 선장은 그처럼 재빨리 나아가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다. 정기선은 늘 경로가 있고, 정기선 선원들이 방향만 맞추면 배는 알아서 가니까. 폭풍이 불던 날 그들은 자기 위치를 몰랐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다. 그래 보았자 방향타를 잃었을 테지만. 여하튼 걸프만까지 온 이상 멕시코로 가기까지 펄 말고 부딪힐 건 없었다. 그런 비바람에 갇힌다면 혹시 모를까. 결국, 선장은 선원에게 탱크를 열라고 시켰다. 그 폭풍과 빗속에선 갑판을 지키고 설 수도 없다. 모두 갑판 아래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선원이라고 갑판 위에 살림을 차릴 수는 없다. 안쪽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 같았을 것이다. 알다시피 정기선은 재빨리 멈췄으니까. 내 렌치도 그렇게 모래에 빠졌다. 선장이 이곳 물속을 모르는 이상 밑에 있는 것이 펄임을 알기란 불가능했다. 최소한 바위는 아니라고만 인지했을 것이다. 선장은 함교에서만 보고 들었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을 때쯤 진짜 상황을 알아챘겠지. 난 정기선이 가라앉던 빠르기가 궁금하다. 선장에게 저승길 동무가 있었을까. 선원들은 함교에서 죽었을까, 아니면 바깥에서 운명을 받아들였을까. 사람들은 시체를 못 찾았다. 하나도. 아무도 둥둥 뜨지 않았다. 그들도 구명튜브와 함께 먼 길을 떠났다. 분명 배 안에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 그리스인들이 다 가져갔다. 말 그대로 전부. 엄청 서둘러 왔음이 분명하다. 그리스인들은 정기선을 비워냈다. 처음엔 새들이, 다음엔 내가, 그다음엔 그리스인들이 왔는데, 새가 나보다 정기선에서 얻어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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