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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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1)
[SF] 4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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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3차대전으로 부를 전쟁. 인류는 이 전쟁을 오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록하기엔 종이가 없고 기억하기엔 희망이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난 방공호를 나섰다. 어차피 죽는다면 바깥을 보고 싶었다. 밤마다 들리는 폭음, 멀리서 은은하게 오는 진동.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감각이 없었다. 죽더라도 고통스럽게 죽고 싶었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다 죽는 게 아니라.


  이유는 또 있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고 싶었다.





  '4분의 기적'.



  뉴스가 남아 있던 시절엔 그렇게 불렀다. 수십 년 전, 전쟁이 멈춘 적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도 마이애미에서도 카이로에서도 뭄바이에서도 오사카에서도. 단 4분. 4분 동안 세계는 평화로웠다. 어떤 병사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관자놀이에 총을 쐈고 방공호에 박힌 누구는 조용한 주위에 청력을 멀었다고 착각해 귀를 뜯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세계는 조용했고 그 4분은 확실히 일어났다는 것이다.


  폭격으로 많은 자료가 증발했다. 무슨 이유로 전쟁이 멈췄는지 아는 사람은 죽었다. 내가 사는, 아니 갇힌 방공호는 운이 좋아 자료가 보존되었다. 알 수 있는 사실은, 50km 떨어진 한 건물이 기적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건물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포탄이 만든 구덩이에, 콘크리트 조각과 철근, 탱크와 장갑차들로 가득했다. 유리조각과 뾰족한 쇠에 방호복이 스쳐 찢어졌다. 상관없었다. 오히려 기뻤다. 드디어 죽을 수 있었다.


  건물은 조그만했다. 무너진 문에 몸을 비집고 들어간다. 연구복을 입은 시체는 이미 미라화가 완료되었다. 이 건물은 연구소인 모양이다. 방마다 박살난 현미경과 플라스크가 흩뿌려져 있다. 지하로 내려간다. 기록이 살아있는 층은 지하 7층.


  컴퓨터를 찾아냈다. 방공호에서 가져온 전력공급장치를 연결한다. 컴퓨터를 켜고 기록을 추적한다. 기적의 4분. 그날의 기록.





  전쟁이 시작되기 전, 그들은 우주망원경을 쏘아올렸다. 지구상 가장 강력한 망원경. 우주 초기 모습까지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기술을 지닌 망원경이었다. 망원경은 몇 년 동안 우주 구석구석을 찍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날, 우주선이 결과를 냈다.


  조용한 우주. 그것이 망원경이 내린 결론이었다.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과 항성과 혜성이 있었다. 그러나 생명의 흔적은 없었다. 측정에 따르면, 우주에 생명을 지닌 행성은 지구뿐이었다.


  그랬다. 우주에 유일한 생명이 지구 위에만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전쟁을 멈추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손으로 우주 유일 생명을 파괴한다는 사실에 무기를 내려놓은 것이다.





  그럼 누가 전쟁을 재개했을까? 아마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4분의 기적을 깨뜨린 누군가도 기록에 남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컴퓨터를 뒤졌다.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4분의 기적을 깨뜨린 쪽도 연구소였다. 우주에 생명이 지구에만 있다는 결과를 낸지 4분 후, 망원경이 새로운 외계 문명의 징후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렇게 인류는 안심하고 다시 상대를 죽일 수 있었다.


  뭐야, 나는 호기심을 채웠다는 안도감에 드러누웠다. 이제 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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