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저녁의 공통점이 있다면, TV에서 나오는 방송일 것이다. 아침 정보방송과 저녁 정보방송은 소름이 끼치도록 비슷하다. 특히 트렌드뉴스가 그렇다. 요즘 학생들에게 유행한다는 트렌드를 잔뜩 설명하고(실제 학생들한테는 거의 끝물이다) 꼭 마지막에 문화평론가라는 직함들이 나와서 설명을 하지 않는가. 이 현상은 대중의 무엇무엇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사실 욕구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좋기 때문이다. 좋은 데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우에하라 아이의 매력을 엑셀 표로 분석하며 바지를 내리는 남자는 없다. 곱씹어야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만나자마자 좋은 것도 있다. 보고 듣는 그 순간부터 좋은 영화와 음악처럼. 오래 보아야 이쁘다고? 풍월량은 보자마자 이쁘다.
우가우가
작년만 해도 보겸 방송을 자주 보던 나였다. 보겸은 아프리카TV 오버워치 대회에 출전했고, 그 출전자 중에 풍월량이 있었다. 풍월량 팀은 꼴찌를 했고 풍월량은 디바 코스프레를 한 채 PC방 청소를 해야 했다.
당시엔 풍월량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배 나온 아저씨가 내가 본 전부였다. 나는 풍월량을 오해했다. 그때만 해도 아프리카TV는 소돔과 고모라였으니까. 그저 '대도서관의 유치함에 대한 반발로 인기를 얻은, 키보드 옆에 소주병을 까고 샷건을 내리치는 중년 철구'가 내 예상이었다. 내 예상이 깨지려면 시간이 좀 걸렸는데, 나는 재빨리 우왁굳과 머독 방송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대도서관이 일으킨 파도는 쓰나미가 되어 아프리카를 휩쓸었다. 그 와중에 홍쉐풍이 아프리카를 떠났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디바 쫄쫄이를 입던 아저씨가 삼대장 중 하나였다고? 그렇게 나는 풍월량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편-안
풍월량 방송의 매력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오후 8시에 방송을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9시에 게임을 시작한다. 우왁굳은 저녁에 시작해서 내가 늘 놓치고 머독은 10시에 게임을 시작해서 조금 졸린데, 풍월량은 나한테 딱 좋은 시간에 방송을 켠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고, 시청자들에게 풍월량은 편안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풍월량은 고수가 아니다. 롤 티어는 브론즈고 방향감각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핑핑 도는 나침반과 같다. 그러나 그것이 매력이다. 다함께 웃고 즐길 만큼만 게임 실력이 떨어지는 풍월량은 서모 씨처럼 어금니가 갈릴 만큼 못하지는 않는다(오해는 말라. 나도 서모 씨 좋아한다).
풍월량 방송은 '아재'라는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1세대 덕후를 자청하는 풍월량은 90년대 추억만 나오면 좋아 죽는다. 아재다운 컨트롤, 아재다운 단어 선택. 엽엽! 시꾸러! 공중파 개그맨이 했다면 참 유치할 대사지만 풍월량이라는 캐릭터에게는 잘 어울린다. 명예로운 베이비붐 세대에서 취업과 사회의 지옥문에 떨어진 트수들에게 이보다 편안한 방송인이 어디 있을까. 아, 나도 대중의 무엇무엇하고자 하는 욕구를 대는 문화평론가가 되고 말았군...
트통령
풍월량은 트위치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있다. 본인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 듯하고 시청자들도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만큼 풍월량은 트위치계의 대물이며 시청자 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트수들이 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번듯한 사회생활을 하는 그날까지 풍월량의 트통령 임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풍월량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다행이다. 작년 바이오하자드7 방송 중에 스포하지 말라는 말에 가짜 스포로 드립을 쳤다가 영구 채팅정지를 당하고, 지난달에 메일을 보냈지만 풀리지 않은 채금이 풀린다면 더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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