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왁굳과 재회했다. 복학하기 시간이 남아 충실한 잉여가 된 후였다. 피시방을 들락거리며 재미있는 것을 찾던 나는 다시 우왁굳 방송국을 들렀다. 우왁굳은 어느새 돌아와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우왁굳은 GTA 4를 했는데 다시 만난 우왁굳은 GTA 5를 했다. 그 외에도 유람선에서 사람을 죽이는 '더 쉽'이라는 게임도 했는데, 우왁굳은 그 게임을 아주 사랑했다.
사람들을 불러서 멀티플레이를 하는 일도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같은 방송인보다는 시청자들을 데리고 게임을 즐겼다. 시대가 변해서 시청자들도 접속하기 편해진 탓이었을까. 같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방송도 더 재미있어졌다. 물론 과거 아프리카TV를 주름잡던 시절보다는 시청자가 적긴 했지만.
아프리카TV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왁굳은 두 방송국을 지니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하나, 다음팟에 하나. 우왁굳은 두 방송국에서 동시 송출로 방송했다. 그래서 방송화면에는 채팅창이 둘 있었다. 나는 다음팟으로 봤다. 아프리카TV 아이디는 내 이름을 그대로 영어로 친 단어였고, 예전 조마문이라는 사람 방송에 들어갔다가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읽은 이후 난 아프리카 로그인을 꺼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팟은 돈을 쏘기도 더 쉬웠다. 초등학생이나 지을 법한 '별풍선'이라는 호칭보다야 그냥 현금을 쏘는 게 낫지. 거기다 프로그램도 더 안정적이었고 화질도 더 좋았다.
다시 만난 우왁굳은 게임 전문 스트리머가 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우왁굳은 GTA와 피파만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신작 게임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입수해서 플레이했다. 별풍선을 거절하던 우왁굳은 다음팟에서 만 원을 쏘면 '1억 원!'이라고 외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우왁굳에게 방송은 취미가 아니었다. 이제 공익의 몸도 아니었다. 하나의 직업이었다.
새로운 모습인가?
우왁굳이 아프리카와 다음팟에 방송을 동시 송출하던 시절이 그립냐고? 반반이다. 그립기도 하고 좀 별로기도 하다. 우왁굳이 여러 게임을 한다는 사실은 반가웠지만 신작 게임만 나오면 며칠만에 엔딩을 보는 방송인은 많았다. 그때는 대도서관을 재밌게 보던 터라 나에겐 우왁굳을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사라진 셈이다. 꼴에 '왁굳 부심'을 부렸다고나 할까.
거기다 채팅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시 송출 자체는 좋았다. 두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을 두 배로 끌어모았으니까. 문제는 두 플랫폼 시청자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프리카 시청자는 다음팟 시청자를 팟수라고 불렀다. 다음팟 시청자는 아프리카 시청자를 원시인으로 보았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듯이 반 장난으로 놀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리카와 다음팟은 반 장난으로 시작해서 안 장난으로 끝나며 서로 흙탕물을 뿌려 댔다. 게다가 말끝마다 '노'를 붙이는 인간들이 틈만 나면 튀어나왔다.
우왁굳은 정말 심한 경우가 아니면 채팅창을 관리하지 않았다. 채팅 자유방임주의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괜히 관리하려다가 욕 먹는 사람들도 많다. 우왁굳은 최소한 귀찮아서 손을 떼지 않았다. 막 나가는 시청자들도 우왁굳 방송의 매력이다. 나는 그러나 그 채팅창과 분위기 때문에 우왁굳을 이전처럼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선비라고 놀려도 좋다. 선비가 왜구보다는 낫지 않은가.
신대륙으로
어느 날부터 우왁굳은 동시 송출을 중단했다. 아프리카TV에서 중지를 시킨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도 아프리카로 이사를 갔다. 하는 수 없이 내 본명이 담긴 아이디로 로그인 하거나 아예 로그인을 안 했다. 그때 내 컴퓨터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프리카 플레이어를 실행하려면 몇 번이고 다시 켜야 했다.
그러더니 '그 사건'이 벌어졌다. 시노자키 아이가 쏘아올린 불꽃은 아프리카TV라는 대륙에 불길처럼 번졌다. 아프리카TV는 언젠가 터질 폭탄이었다. 우왁굳이 방송을 시작하던 때엔 신대륙이었지만, 이제는 구대륙이었다. 구대륙이 강대륙 코스프레를 하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방송인들은 플랫폼을 옮겼다. 이미 신대륙은 많았다. BJ도 따지고 보면 콩글리시였다. 다른 대륙이 없어서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을 뿐. 많은 이들은 BJ 대신 '유튜버'와 '스트리머'가 되었다.
아프리카TV라는 구대륙의 조상님이자 1세대 스타인 우왁굳. 우왁굳이 아프리카 조상님답게 구대륙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우왁굳을 모른다. 그는 시청자에게 툭하면 '닥쳐'를 외치는 까칠 노장이었다. 더 좋은 플랫폼이 있는데 무엇을 마다하리? 우왁굳은 다른 방송인과 비슷한 시기에 트위치로 새 둥지를 틀었다. 시청자들은 원래 좋았어야 할 화질에 감탄하고, 설치가 필요 없는 방송화면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이사 기념으로 집주인에게 자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러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았지만, 우왁굳은 떠났다.
다시 시작이다
우왁굳은 지금도 방송을 하고 있다. 사실 2009년보다 시청자 수는 적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지닌 충성도는 하늘을 찌른다. 이제 우왁굳은 GTA를 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 같은 게임만 할 건가. 30이 넘은 지금도 우왁굳은 새 게임을 찾아 나선다. 스팀 라이브러리를 감시하면서 재밌어 보이는 신작을 줍는다. 시청자들한테 '똥믈리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네이버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게임을 하는 우왁굳은 아직 젊다. 우왁굳보다 나이 든 인터넷 방송인들은 많지만, 우왁굳보다 먼저 방송을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시청자들은 '우왁굳이 하는 게임'을 보지 않고 '게임을 하는 우왁굳'을 본다. 인터넷 서핑을 하고 게임을 쇼핑하는 화면만 내보내도 시청자들은 좋아 죽는다. 좋은 소식이다. 이제 신작을 섭렵하는 방송인은 차고 넘친다. 다 똑같은 게임만 하는 세계에선 개성이 무기다. 우왁굳은 개성이 있다. 그렇다고 콜라에 밥을 비벼 먹거나 삭발쇼를 벌이지도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그는 '자본각'을 안전한 범위에서 지킬 줄 안다.
2017년, 유튜버와 스트리머가 쏟아지고 있다. 이미 인터넷 방송은 레드 오션이다. 끼어들 틈이 없다. 조만간 거의 다 나가떨어질 것이다. 실러캔스가 맛이 없는 이유를 아는가? 실러캔스는 진화를 하지 않아서 몸이 크레파스처럼 기름만 차 있다고 한다. 우왁굳은 실러캔스와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진화하면서도 본래의 맛을 잃지 않는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GTA를 그만 두어도 시청자들은 계속 우왁굳을 찾는다. 심심하면 쳐들어가는 친구네 자취방처럼 우왁굳은 언제나 시청자들 옆에 남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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