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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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계의 화석, 우왁굳(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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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남아프리카 연안을 항해하던 어선은 신기한 물고기를 낚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물고기였다. 이 물고기는 곧바로 세계에 대서특필되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본 적 없는 물고기는 사실 인류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던 물고기였기 때문이다. 바로 실러캔스. 실러캔스는 3억 7천 5백만 년 전부터 바닷속을 살아왔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었다. 참고로 맛은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이 자기소개 시간에 장래희망을 인터넷 방송인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왔다. 유튜브 방송인, 유튜버들 중에는 연봉이 몇 억인 사람이 있다. 인터넷 방송인이 말을 하면 학생들의 유행어가 되고 공중파 방송국이 인터넷 방송 콘셉트를 가져와서 프로그램을 만든다. 인터넷 방송이 뜨긴 떴나 보다. 지금 이 시기에 나는 인터넷 방송의 실러캔스를 생각한다. 인터넷 방송의 살아있는 화석, 바로 우왁굳이다.

 

 

아이스크림 트럭

 

나에게 우왁굳은 한 게임 영상으로 다가왔다. 영상에서 우왁굳이라는 사람은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경주했다. 아이스크림 트럭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더니 바퀴에서 불이 났다. 그 게임에서 바퀴에 난 불은 폭발을 의미했다. 운전자는 차를 멈출 타이밍을 찾았다. 가까스로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그러나 연쇄폭발로 숨을 거뒀다.

 

그 차가 아이스크림 트럭이 맞았나?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영상은 확실히 아이스크림 트럭이었다. 우왁굳은 그 영상에서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고가도로 옆을 벽 타듯이 돌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꾸만 애꾸킹 토네이도!’를 외쳤다. 지금이야 인터넷 방송인마다 자기만의 유행어나 대사가 있다. 그때는 그러나 인터넷 방송의 초창기인 2009년이었다. 방송으로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벌 수단조차 없었다. 인터넷 방송은 직업이 아니라 취미였다. 지금이야 이름처럼 원시적인 몰골을 보여주는 아프리카TV가 당시로서는 최첨단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지금 20대 후반에 접어든 내가 그 영상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분명 요즘 애들은 이걸 보면서 웃는구나.'하며 쓴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애였고, 그 영상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사람들과 모여서 멀티플레이를 하다니. 피시방에 가면 스타 무한맵, 워크 영웅 키우기나 하던 나에게 시끌벅적한 멀티플레이는 신세계였다. 우왁굳은 GTA 4를 주로 했는데, GTA 4를 돌리던 엑스박스 360부터 콘솔시장에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점에서 우왁굳은 행운아였다. 아무도 하지 않은 신세계를 개척해 버렸으니.

 

게임 영상이 나와서 말인데, 우왁굳이 노숙자를 쫓아가다가 죽이는 일명 우왁굳 노숙자동영상도 유명하다. 지금 보면 정말 재미없는 동영상이고 심지어 보기조차 어렵다. 너무 오래 전 영상이라서 우왁굳 본인조차 소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행히 유튜브에 시청자가 올린 영상이 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재미없다. 이 영상이 아프리카TV의 전설로 남았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게임 스트리머 지망생 여러분. 여러분은 8년 일찍 태어나셨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게임이나 기타 영상에서 노숙자가 보이면 회자되는 일명 '노숙자의 도망'

 

 

 

 

전설

 

우왁굳이라는 사람은 유명했다. 방송을 시작하는 순간 방이 꽉 찼다. 돈이 없는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계방을 들어갔다. 그 중계방도 꽉 찼다. 우왁굳이 방송을 켜면 중계방이 몇 개는 줄줄이 생겼다. 가히 당시 1위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진짜 1위였는지는 몰라도 우왁굳은 1위 할 자격이 있었다. 지금처럼 콘솔기기가 많지 않은 때에 최신기종인 엑스박스360을 들고, PC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GTA4, 그것도 다른 방송인과 시청자를 불러서 대규모 멀티 플레이어를 하지 않았는가. 섬 뺏기, C4로 터뜨리면서 싸우기, OX 퀴즈 등. GTA가 자유로운 게임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성우를 연상하게 만드는 굵고 멋있는 목소리도 매력 포인트였다. 우왁굳이 떴다 하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먹었고 아프리카 TV 운영자가 방송에 들어왔다. 그때 네이버에 우왁굳을 치면 우왁굳 얼굴이라면서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의 사진이 나왔다. 진짜인지는 불확실하다.

 

우왁굳은 대기업이었다. 같이 방송하는 방송인들을 하청업체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 방송인들은 대부분 지금도 방송한다. 개복어, 크헐헐, 노지, 천양, 모아드 등. 아프리카TV는 방송 클럽 제도를 운영했는데, 왁굳 클럽은 거대했고 유명했다. 하지만 우왁굳이 더 유명했다. 개복어 방송, 크헐헐 방송을 보다가도 우왁굳이 방송을 켜면 시청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우왁굳은 시청자들에게 별풍선을 쏘지 말라고 했다. ‘이건 돈벌이가 아니다같은 이유로 기억한다. 그때는 유튜브도 안 유명했으니 별풍선을 제외하면 인터넷 방송을 하며 돈을 벌 방법은 별풍선뿐이었다. 하지만 우왁굳은 별풍선을 거절했다. 청렴한 사람이라 별풍선을 거절했다면 거짓말이다. 확실한 사실은, 별풍선을 받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더럽게 많았다는 거다. 그 시청자들한테서 동전 하나씩만 받아도 외제차를 살 수 있었을 거다. 지금이야 자본이 낳은 괴물 소리를 듣지만 그때 우왁굳은 인기가 높은 괴물이었다.

 

우왁굳은 공익이기도 했다. 실제 당시 아프리카TV에는 방송을 하던 공익이 많았다. 공익은 출퇴근이 가능하고 취미 핑계로 집안 눈치를 보지 않는 인터넷 방송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우왁굳이 별풍선을 받지 않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왁굳을 아직 잘 모르나 보다. 모르는 점은 또 하나 있다. 나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

 

 

 

일본으로

 

 

우왁굳은 공익을 끝내고 방송도 끝냈다. 그러고는 기독교에 빠졌다. 그러고는 일본으로 떠났다. 나는 당황했다. 물론 우왁굳이 GTA4 현실모드를 방송하고 시도 때도 없이 피파를 하던 즈음에는 좀 질리긴 했다. 그래서 좀 떠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허무했다. 우왁굳은 말했다. ‘논리를 떠난 영역에서 종교를 이해하게 되었다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일본이야 유학 갈 수 있다. 가지 말란 법 없다. 그래도 황당했다.

 

나는 며칠을 습관처럼 우왁굳 방송국에 들렀다. 회색 빈 화면과 방송 준비 이라는 문구를 클릭했다. 그리고 점점 우왁굳을 잊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바쁜 날을 보냈다. 인터넷 방송은 유치해 보였다. 서서히 여자들이 옷을 벗으며 별풍선을 받았다. 우왁굳 클럽원들의 방송을 좀 보긴 했다. 하지만 우왁굳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따지고 보면 우왁굳 방송 콘텐츠는 다른 방송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다는 정도? 다만 우왁굳에게는 타 BJ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냥 그뿐이다. 이게 무슨 자동차 사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방송은 콘텐츠와 매력이 같은 비중을 지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프리카TV를 잊고 살았다. MT를 가고 기말고사를 보고 군대에 들어갔다 나왔다. 세월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우왁굳을 만나게 되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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