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글쓰기와 닥터후, 엑셀, 통계학, 무료프로그램 배우기를 좋아하는 청년백수의 블로그
우리는 이상한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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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동네를 걷다가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녁이었고 하늘은 슬슬 주황빛인데 갑자기 빗방울이 쏟아졌습니다. 비는 몇 분 만에 그쳤지만, 어디에도 구름은 없었습니다. 비란 먹구름에서 떨어지는 것이고 먹구름이 끼면 사방이 어둑해지는데 맑은 하늘에서 비가 떨어진 거였죠. 저는 집에 가서 어머니께 물어봤습니다. 어머니는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현상은 여우비였습니다. 먹구름이 없는데 비가 내리는 이 신기한 현상은 사실 먹구름이 있는 현상입니다. 하늘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면 비가 땅에 내리기 전에 먹구름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리거나 빗방울이 먹구름이 없는 곳까지 날아갑니다. 제가 여우비를 맞던 날 하늘은 맑았으니까 아마 다른 곳에서 내린 비가 바람을 타고 제 동네까지 날아왔을 겁니다. 그나저나 여우비인데 왜 장가는 호랑이가 갈까요.

 



 

  어머니도 실제 호랑이의 혼인과 여우비라는 자연현상이 무관하다고는 믿으십니다. 그냥 옛날 속설이고 살짝 로맨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엔 이만큼이나 이상한 생각을, 그것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거나 영혼과 교감할 수 있다거나 악마가 세상을 멸망하리라는 내용 등이죠. 굳이 종교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이상한 믿음이 널렸습니다. 제일 유명한 것이 선풍기 괴담이죠. 선풍기를 켜고 자면 죽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제 주위 친구들은 다 그 이야기를 믿었습니다. 발명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사람이 잠들면 선풍기를 끄는 장치를 소개하며 이런 속설을 소개했죠. 이외에도 문지방을 밟으면 재수가 없다든가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의견이 틀렸다는 걸 알지만, 선풍기를 켜놓으면 자기가 껄끄럽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지만 힘들 땐 신이 있다고 가정하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 당신이 있다면, 이 개 같은 상황을 좀 처리해 줘요. 그 정도 능력이 없을 리 없으니까.’ 믿지 않으시겠지만 이런 가정법 기도도 어느 정도 마음을 안정시켜줍니다. 반의반만 신을 믿고 기도해도 이 정돈데 매주 교회를 나가며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 구절을 달달 외는 사람은 종교가 얼마나 소중한가 싶습니다.


  중학교 시절 학원 물리 선생은 이와는 다른 이유로 신을 믿었습니다. 선생은 어느 날 칠판에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습니다. 하나는 과학이 설명하는 세상, 다른 하나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선생 왈,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어딘가에 신이 있을 수 있다. 아직 신이 없다고 말하긴 이르다. 선생의 논리라면 신이 있다고 말하기도 이르지 않을까 싶네요. 그때는 과학을 잘 아는 사람이라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글쎄요.

 




  어디서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크레도 콘솔라스. 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에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상한 믿음은 확실히 믿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믿으면 내세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종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옳고 그름을 넘어 무언가 설명하기만 해도 우리는 편안합니다. 기상학이 없던 시절 여우비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불편함은 의외로 컸을 겁니다. 세계 많은 신화가 그래서 세계 탄생과 원리를 설명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늘과 땅은 누가 만들었는지, 해와 달은 왜 뜨는지 비는 왜 오는지 나무는 어떻게 자라는지. 드라마 엑스파일에 나오는 명대사 우리는 믿고 싶다.’는 멀더 요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 통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에 믿는다. 이 문장을 뜯어보면 색다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문장에는 나는 이게 사실이 아님을 알지만 믿는다는 뉘앙스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게 사실이 아님을 안다, 사실인지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나는 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에 믿는다. 믿기는 쉽지만 반박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충 개연성과 사실성만 있으면, 아주 살짝 마음에 힘을 써서 믿을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믿음을 깨려면 수많은 증거와 자기 설득이 필요하죠. 사람은 믿고 싶은 동물일 뿐만 아니라 믿기 쉬운 동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정보는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겁니다. 부모, 선생, 교과서, 친구, 인터넷, 신문, 뉴스 등에서 들은 정보는 곧 우리 머리에서 기정사실로 됩니다.

 




  불행히도 세상엔 틀린 것이 가득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있고 잘못임을 알면서도 거짓말하는 사기꾼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걸 의심하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죠. 사기꾼은 우리한테 이익을 준다고 거짓말하니 듣기 좋은 말은 일단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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