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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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 (1)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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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팔트는 고체인가? 많은 사람은 이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승합차와 트럭, 심지어 이삿짐 센터 차량과 장갑차까지 끄떡없이 지나가는 아스팔트가 고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폭염에 녹아버린 아스팔트와 갓 깔아 뜨듯한 아스팔트를 밟으면 생각이 조금 바뀐다. 신발에 쩌적 달라붙는 모습이 고체라고 하기엔 조금 의심스럽다. 그런데 이건 고열에 녹아서, 아직 굳지 않았다는 핑계가 있지 않은가.



The University of Queensland Archives



  아스팔트, 타르, 송진 같은 물질을 피치(Pitch)라고 한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피치는 고체인가? 91년 전인 1927년,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 물리학 교수 토마스 파넬은 고체처럼 보이는 물질도 액체처럼 흐를 수 있음을 보이는 실험을 시작한다. 실험 과정은 간단하다.



1) 피치를 유리 깔대기에 담는다.

2) 기다린다.

3) 언젠가 방울이 떨어질 것이다.



  만약 방울이 떨어진다면 피치는 고체가 아니라 아주아주아주 점성이 높은 액체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아주아주아주 점성이 높기 때문에, 방울이 떨어지는 데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피치를 담은 건 1927년이지만 3년 후인 1930년에 깔대기 출구를 열었으므로 피치는 이때부터 흘러나왔다. 첫 방울은 1938년 떨어졌다. 이후 1947년, 1954년, 1962년, 1970년, 1979년, 1988년, 2000년, 2014년에 떨어졌다. 간격은 약 8년~12년이며 이 추세대로 간다면 다음 방울은 2022~2026년에 떨어질 것이다.


  아스팔트가 떨어지는 이 귀중한 순간은 그러나, 실험을 시작한 파넬 교수도, 실험을 이어받은 존 메인스톤 교수도 보지 못했다. 파넬 교수는 1948년 사망했다. 메인스톤 교수도 주말에 방울이 떨어지거나 물을 마시러 자리를 뜬 사이에 떨어지는 등 불운이 겹쳐 '그 순간'을 놓쳤다. 이후 카메라까지 설치했지만 2000년 8번째 떨어지는 모습은 기술 문제로 찍는 데 실패했다. 메인스톤 교수는 2013년 사망하고, 현재는 앤드류 화이트 교수가 실험을 맡는다.


  다행히 2014년 아홉 번째 방울은 카메라로 촬영에 성공했다. 아스팔트기 때문에 방울이 떨어진다기보다는 그냥 방울이 밑면과 닿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2000년 8번째 방울이 떨어지면서 물질의 점성이 계산 가능해졌다. 계산 결과 아스팔트는 물보다 2천 300억 배 점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정확성에 의문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온도나 습도를 계절과 날씨에 고스란히 맡긴 이 실험이 과연 정확하냐는 것이다.


  정확성이 어찌되었든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실험은 듣기만 해도 재밌는 이야기다. 이 실험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진행한 실험실 실험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실험기구는 퀸즐랜드 건물에 전시해 놓았으며, 이곳에 들어가면 생방송으로 실험을 지켜볼 수 있다(오류가 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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