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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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기 (2)
나무위키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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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기 2.

나무위키 켜라





군대 선임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후임들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줬다. 자기 PMP에 케이블을 생활관 TV에 연결해서 다 같이 감상한 것이다. 그중에는 <기어와라! 냐루코양>이 있었다. 거기서 주인공 냐루코를 맡은 성우 아스미 카나의 목소리는 금방 나를 사로잡았다.

 

아스미 카나


아스미 카나는 중성적인 목소리가 매력인 성우다. 나무위키에 가면 아스미 카나의 출연작들을 거의 다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도 나무위키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래서 영어 웹도 찾아보고 아스미 카나 소속사 사이트까지 가 봤다. 그러나 나무위키만큼 아스미 카나의 출연작을 많이 늘어놓은 사이트는 없었다. 심지어 소속사 사이트는 몇 년째 아스미 카나 출연작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지금은 업데이트가 되어 있다).

 


여러분도 나도 인정하기 싫지만, 나무위키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방면으로는 꽤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진품(?) 위키인 위키피디아보다 자세하다. 위키피디아 아스미 카나 한국어 항목은 2014년까지만 출연작이 나오지만 나무위키는 2017년까지 정리되어 있다. 단순 텍스트 양도 차이가 난다. 위키피디아는 3430자인데 반해 나무위키는 12805자다. 나무위키가 거의 4배 많은 셈이다.

 


위키피디아 아스미 카나 문서와 나무위키 아스미 카나 문서



물론 위키피디아가 더 방대한 항목도 있다. 여러분 대학 리포트에 나무위키를 참고문헌으로 넣느니 위키피디아를 넣는 것이 훨씬 이롭다(물론 위키피디아도 넣으면 안 된다). 나무위키는 정확도도 떨어지고 사고도 많이 발생하고 게다가 조금 찐따같은 사이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무위키는 텍스트의 한계를 극복한 사이트다.

 

 


텍스트의 방향


글에는 방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일본은 위에서 아래로 쓴다(다는 아니지만).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알 자지라 같은 아랍 뉴스를 보면 뉴스 자막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간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텍스트는 방향이 있다. 거기다 순서가 있다. 글을 쓰려면 순서에 맞춰서 써야 한다. 철수 이야기를 하다가 영희 이야기로 갑자기 가면 독자는 어리둥절하다. 차선 변경할 때처럼 글을 쓸 때도 깜빡이를 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능 영어처럼 다음 문장 중 어색한 것은?’에 나오는 문장이 되어 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작법서 중 하나인 <한승원의 소설 쓰는 법>에서도 한승원 선생님은 문장과 문장은 서로 이어져야 한다며 문장의 밀도를 강조했다.

 


나도 꼴에 작가 지망생이라고 글을 쓰는데, 매 문장을 연결시키려니 죽겠다. 가끔은 아무 상관없는 문장으로 도망가고 싶다. 이럴 땐 나무위키가 부럽다. 나무위키에는 각주와 취소선이 있다. 각주와 취소선은 일방통행으로 나아가는 텍스트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각주는 텍스트의 선형성, 고정성, 유한성을 벗어나게 해 준다.



 

나무위키 아스미 카나 문서의 각주




내가 한 말 아니다. 김정운의 <에디톨로지>에 나온 말이다. 저자는 당연히 논문의 각주를 예로 들었다. 나무위키의 각주는 논문 각주에 비해 잡다하고 불필요하다. 일부 문서를 제외하면 아무나 고칠 수 있다. 심사 받다가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대학원생들이 쓰는 각주에 비하면 나무위키 각주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방통행 텍스트에 숨통을 트인다는 점에서 두 각주는 같다.

 


<에디톨로지>는 창조의 비결을 담은 책이다. 읽어봐라. 재밌다. 그런데 저 각주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나무위키가 떠올랐다. 불쾌했다. 김정운 선생의 말이 맞다면, 모두 나서서 꺼라고 하는 나무위키는 텍스트의 방향성을 극복함으로써 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사이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현실은 불쾌하고 씁쓸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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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왕성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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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기 1.

해왕성은 억울하다

 

 

 

2006년 세계천문협회는 새로운 행성의 기준을 발표한다. 첫째,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둘째, 충분한 자체 중량을 지닌 구 형태이며. 셋째, 공전 궤도 안에 비슷한 다른 천체가 없는 천체가 행성이라는 내용이었다. 명왕성은 세 번째 기준을 지키지 못했고, 따라서 행성에서 탈락해 왜행성이 되었다. 134340이라는 멋진 죄수번호(?)도 얻었다.

 

명왕성이 백의종군(?)을 하고 한동안 난리도 아니었다. 명왕성을 기리는 노래에 다큐멘터리에. 모두 명왕성이 궤도에서 사라지기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학생들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에서 한 글자를 덜 외워도 되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해왕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도 해왕성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해왕성의 기분을 헤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왕성이 행성에서 내려온 날, 해왕성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질량이 줄어든 것도 색이 바뀐 것도 아닌데, 오히려 계급이 강등되었는데도 더 애정을 받다니.

 

이제 해왕성이 꼴찌다.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한 1930년부터 2006년까지 해왕성은 자기보다 바깥인 행성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 손가락질하겠지만 세상 사람이 다 그렇다. 반대로 꼴등에게 박수를 치자는 놈이 위선자다. 그런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자기는 절대 꼴등할 일이 없거나, 절대 1등할 일이 없거나. 전자는 승자의 여유고 후자는 같이 죽자는 심보다.

 

패자에게 박수를’, ‘약자에게 온정을이라는 슬로건이 낳은 것들을 봐라. 소수자를 위한다는 원내정당이 벌인 짓과 여성이 약자라면서 페미니스트들이 벌인 짓들을 봐라. 이들은 탈락한 명왕성에 눈물을 흘릴 뿐이다. 이들, 아니 인류에게 마지막 궤도라는 프리미엄은 엄청나다. 과연 목성과 토성이 행성에서 탈락했어도 2006년만큼 격한 반응이 나왔을까.

 

해왕성은 억울하다. 명왕성은 궤도가 비틀어진 탓에 248년 중 20년은 해왕성보다 안에서 공전한다. 해왕성은 추측으로 모습을 드러낸 행성이다. 천왕성 궤도가 예상과 다른 것을 안 과학자들이 천왕성 바깥 행성을 추측했고 1846년 해왕성이 지구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해왕성 역시 예상과는 다르게 돌았고, 그렇게 명왕성을 가늠해서 찾아냈다. 다만 예상과 다른 궤도는 명왕성 책임까지는 아닌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유니세프나 난민기구 광고는 참 보기 불편하다. 늘 아사 직전의 여자아이가 펑펑 운다. 그 아이는 물론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저 광고에 몸 성한 아저씨가 전쟁으로 집을 잃었다고 펑펑 울어도 기부금이 그만큼 갈까. 여자, 아이들을 내세우는 광고는 아직 사람이 약자 컴플렉스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약자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저 사람이 진짜 약한지, 약자를 챙기느라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꼴찌만 동정하느라 뒤에서 2등은 놓치고 있지 않은지 다시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248년 중 20년은 꼴찌인데도 무관심을 한 몸에 받는 해왕성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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