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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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 (1)
<블랙 팬서>와 평론 - 개인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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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이언맨>이 나올 때만 해도 다른 영화 주인공들이 뭉친다는 개념은 떠올리기 힘들었습니다. 이윽고 <인크레더블 헐크>가 개봉하고,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이 <어벤저스>라는 영화에 동반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 신기해하던 생각이 납니다. 슈퍼히어로는 배트맨, 슈퍼맨 등 DC코믹스 출신이 한국에서 지명도가 높았고 마블 쪽으로는 헐크가 고작이어서 더 신선했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십 년 전 아이언맨을 하는 한국인이 코믹스 팬 빼고 몇이나 되었을까요?

 

  저는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캡틴 아메리카>(한국에서는 퍼스트 어벤저로 개봉했죠)를 보고 어벤저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어벤저스는 추석 특집 영화로 봤습니다. 역시 재밌더군요. <윈터 솔저>와 <토르 : 다크 월드>는 케이블 채널로 봤습니다. <어벤저스 2>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놓치고 나니 뭐랄까, 조금 버거워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 본 마블 영화가 하나둘 쌓이고 지금은 어벤저스 3 예고편까지 나와 버렸습니다. 세계관이 이어지는 영화의 단점 중 하나가, 나중 영화를 잘 이해하려면 처음 영화를 봐야 한다는 거죠. 영화에 '진도'가 생겨서 따라잡아야 하는 겁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아무튼 이번엔 <블랙 팬서>가 개봉했습니다. <블랙 팬서>는 와칸다라는 가상의 왕국의 왕이 직접 히어로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산에서 촬영하기도 해서 한국 관객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 외적으로 인터넷에서는 <블랙 팬서>에 대한 평론이 화제입니다.

 

  <블랙 팬서>는 말씀드렸다시피 와칸다라는 왕국이 배경입니다. 와칸다는 아프리카에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주인공은 물론 흑인이고 주, 조연 중에도 흑인이 많다고 합니다. 포스터만 보아도 거의 흑인들입니다. 문제는 시네21이라는 영화잡지 평론입니다. 평론가들이 <블랙 팬서>에 한 줄 논평을 달았는데, 대부분 '흑인이 해냈다'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이 화를 냈습니다. 영화가 재미있는지보다 오로지 피부색만 놓고 영화를 평가했다는 점이 네티즌들의 심기를 거슬렀습니다.

 

  사람들은 왜 영화 평론을 볼까요? 일단 제일 직접적인 목적은 판단을 위한 정보겠죠. 새로 개봉한 영화가 재미있는지, 배우가 연기는 잘 하는지, 음악과 미술은 훌륭한지, 감동적인지, 무서운지, 액션이 스릴 넘치는지, 반전이 기가 막힌지, 스태프롤이 다 올라가고 보너스 장면은 있는지. 저를 포함해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전에 평론이나 별점을 보고 볼지 말지 고민합니다. 영화표는 공짜가 아니며, 설령 공짜라 해도 2시간에 달하는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에 질이 낮은 영화를 보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블랙 팬서>는 엄연히 오락 영화입니다. 관객들은 <블랙 팬서>가 얼마나 오락을 가져다줄지 궁금해하며 평론을 보았을 테죠. 그런데 재밌는지 아닌지는 온데간데없고 흑인이라는 소재에만 매달리니 짜증이 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먼저 평론가들을 변명하자면, 사회적인 눈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본인이 그렇게 보자는데 누가 탓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주인공이 영화에서 눈을 많이 깜빡일수록 좋은 영화다. 왜냐하면 나는 눈 깜박임에 페티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평론가가 있다고 해서 여러분이 뭐라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나중에 저 사람 앞에서는 눈을 부릅떠야지' 하면 끝입니다. 오락영화 속 재미를 발굴해서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메시지만 발굴하는 사람도 있을 법합니다. 이건 불법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행동도 아닙니다.

 

  영화 속 메시지나 사회적 상징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닐까요? 그것도 아닐 겁니다. <블랙 팬서>가 흑인의 권리나 사회상을 담은 예술영화, 다큐멘터리라면 저런 평론도 이해가 갑니다. 오락영화라 해도 감동적인 메시지를 주입해서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령 터미네이터 2는 어떤가요? 터미네이터2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오락영화입니다. 그리고 여러 번 보다 보면(세상에. 터미네이터2를 어떻게 한 번만 볼 수 있겠습니까) 그 속에서 '인간성이란 뭘까.'라든가 '과연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까.' 같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관객들이 1차로 원하는 것은 재미입니다. 재미가 없다면 아무리 웅장한 메시지라도 무슨 소용일까요? 재미가 없으면 돈을 못 벌고 영화가 망하게 됩니다. 영화는 한두 푼 드는 장사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더욱 재미있게 찍으려 노력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술영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관객들을 붙잡을 수 있도록 편집하고, 음악과 효과음을 삽입합니다. 세상에는 재미없는 영화라도 메시지만 좋다면 참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 안 그런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영화 배급사와 제작사는 자선단체가 아니고, 배우와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짜증 나는 점은(오락에 대한 평가가 없음을 제외하고) 바로 평론에서 느껴지는 평론가들의 태도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영화 평론가들의 이미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자꾸만 사회적으로 보는 시선 때문입니다. 영화의 재미, 퀄리티를 전부 제치고 한 가지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잣대가 도마 위로 오르고 있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자꾸 '여자가 많은 분량을 차지했는가'만으로 영화를 평가합니다.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암수감별사로 불러야 할 지경입니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주말엔 무슨 영화로 여가를 보낼까 인터넷을 들어갔는데 이런 평론을 보면 참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런 평론가들은 말합니다. '영화는 메시지를 담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회적인 편견이나 고정관념들이 영화에 담기므로 지적할 수밖에는 없다'고 말입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확실히 옛날 영화 중에는 인종, 성별, 국가에 대한 편견이 담긴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평론가들은 단순히 '부재'나 '존재'만으로도 영화를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 여자가 나오지 않으면(부재) 여성을 차별하는 영화라고 합니다. 영화에 웃긴 여자가 나오면(존재) 여성을 깔보는 영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엔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배경이나 웃긴 여자가 충분히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는 가상을 다루므로 설령 실존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차별일까요? 그리고 지금 평론가들이 차별이라고 내세우는 증거들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요?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평가를 평가하는 것도 자유인데, 어째서 그런 평론가들은 자신을 향한 비난도 '차별'이나 '혐오'로 규정할까요.

 

  영화가 클리셰를 깨고 실험적이라고 해서 꼭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까요? 실험은 말 그대로 실험이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한 실험도 가상하다면서 높게 평가해야 할까요? 영화에 들어간 '의도'도 평가 대상일까요? 적어도 많은 관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욕하는 평론가들은, 늘 '다양성'이니 '진보'니 중얼대면서 재미는 없는데 의도가 좋은 영화들을 추켜세웁니다. 그런데 관객은 의도를 보려고 티켓과 팝콘을 사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의도는 좋은데 재미가 없다면,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한테는 진지하게 다른 미디어(책이나 만화 등)를 권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일부 평론가들은 마치 '가르치려는' 태도로 평론을 씁니다. 우리는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을 뿐인데 자꾸만 철학책과 사회과학책을 인용합니다. 자신에게 덤비는 관객들은 어린아이 취급합니다. '이럴 거면 영화평론을 쓰지 말고 '영화로 배우는 사회'를 쓰라고!'라 외치고 싶습니다.

 


 

 

  본론도 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평론가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여가가 아닌 프로파간다로 보는 시각과 '메시지가 좋으면 좋은 영화야'라고 말하는 데서 풍겨지는 선민의식은 요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평론가들은 많은 영화를 보고 아는 것도 많습니다. '알수록 보인다'고 하죠. 그러나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감히 예상합니다. '메시지'와 '차별'을 말하는 평론가들 마음속에는 아직 '재미회로'가 있다고. 그들도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 분명 재미를 느끼겠죠. 머리로는 '저건 차별이야'라고 말하면서 클라이막스에서 주먹을 쥐고 영화에 맞춰 흥분하는 평론가를 상상하면 재미있어집니다. 그럼 그 '재미회로'를 막는 '저항'은 무엇일까요? 그건 제가 건드릴 분야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 '저항'을 치우지 않는다면 평론가들이 내리는 평론은 '도체'에서 '부도체'가 될 겁니다. 관객들이 평론을 외면하게 되겠죠. 영화잡지와 영화사이트가 그 사실을 아는 순간 평론가들은 '차별'보다는 수입을 걱정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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