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글쓰기와 닥터후, 엑셀, 통계학, 무료프로그램 배우기를 좋아하는 청년백수의 블로그
영화채널 (1)
나는 벌써 꼰대가 되었는가?
반응형




  트위치에 들어갑니다. 스트리머 방송을 봅니다. 풍월량, 머독, 꽃빈, 소니쇼, 연두는말안드뤄. 못 본 방송은 유튜브에서 봅니다. 제 휴대전화에서 유튜브 앱을 켜면 추천 영상으로 스트리머 게임 실황만 주르륵 나옵니다. 유튜브에 로그인한 채 영상을 보면, 유튜브가 사용자 기록을 토대로 추천 영상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PC방 같은 곳에서 유튜브에 접속하면 로그인하지 않았으니 그냥 현재 인기 영상만 보여줍니다.

 

  인기 영상은 종류가 여러 가지입니다. 게임 실황도 있지만, 예능 채널과 사회 이슈 채널, 화장품 채널이나 순위 정하는 채널도 보입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영화 추천 채널입니다. 영화 채널이 내건 동영상 제목은 비슷비슷합니다. ‘XXYY하는 영화’, ‘AA해서 BB해버린 남자.’ 섬네일은 사람의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사진을 넣습니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오히려 칭찬하고 싶습니다. 이목을 끄는 일은 모든 예술가와 정치가가 바라마지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클릭하고 싶은 제목과 섬네일을 정하는지. 저는 이런 영화 채널 영상 목록을 보면 클릭하고픈 마음을 억누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 그런 영상 제목과 섬네일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질투를 느낀 걸까요? 조회 수와 채널 수익이 높아 배가 아픈 걸까요? 확실히 인기 있는 영화 채널은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고요. 합법적으로 구했을 리 만무한 영화 영상을 편집해 넣고, 거기에 자막과 음성을 넣어 저작권법에 가까스로 걸리지 않는 영상에 불만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 기분 나쁨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 왜일까? 곰곰이 생각하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영화가 그 채널에 오른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화잡지를 구독하지 않는 이상 오로지 텔레비전에서만 영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최신 소식이나 그랬고, 몇 년만 지난 영화는 제 또래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유일하게 영화를 과거에서 끄집어내 보려면 주말 밤마다 텔레비전을 켜고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를 봐야 했습니다. 저는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봤고, 재밌으면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또 봤습니다. 비디오 대여비도 엄연히 돈이었기에 아무거나 빌릴 수는 없어서 텔레비전이라는 검증 매체를 사용한 셈이죠.

 

  인터넷이 널리 퍼지고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급되면서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영화를 손쉽게 보게 되었습니다. 늘 방송국이 고른 영화만 보다가 선택권을 쥐게 된 것이죠. 예전엔 개인주의 문화가 퍼지면 영화처럼 다수를 겨냥한 매체가 고꾸라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서로 영화, 드라마를 찍겠다면서 뛰어들고 있습니다. 무게중심이 방송국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갔을 뿐이죠.

 

  이런 상황에서 90년대 후반 출생자를 상상해 봅니다. 지금 청소년인 그들은 저처럼 매주 주말의 명화를 기다리면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영화, 드라마를 고를 선택권이 많았죠. 그들에게 영화는 영화관에 가거나 골라서 보는 것이지 기다리면서 보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지금 아이들이 플로피 디스켓, 게임보이, 비둘기호를 본 적 없듯이 말이죠.

 




  그래서 영화 추천 채널은 인기가 많습니다. 수많은 영화 중에서 재밌는 것만 골라서 보여주는데 안 보고 배기겠습니까? 게다가 현재 젊은 세대는 80년대와 90년대 황금기를 누리던 영화를 잘 모릅니다. 터미네이터, 나 홀로 집에, 인디아나 존스는 지금 봐도 재밌는 영화입니다. 이걸 모르고 자란 세대는 유튜브를 제외하면 이런 영화를 알 기회가 적습니다.

 

  명작이 알려지는 건 기쁜 일입니다. 유튜브 채널이 알린다는 점에서는 기분이 조금 상하네요. 특히 영화 전체 줄거리와 큰 상관이 없는 섬네일과 제목을 보면 말이죠. 이러다가는 터미네이터 2무쇠 로봇과 액체 로봇이 한탕 싸우는 영화라든가 날라리 소년이 사실 인류의 지도자!?’라는 제목으로 올라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불만을 빼면 유튜브 영화 채널이 거슬릴 이유가 없으니, 아무래도 저는 30살도 차기 전에 꼰대가 된 모양입니다.

반응형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실험  (0) 2018.08.15
갤럭시S9 배경화면 - WATCHING YOU  (0) 2018.07.25
우리는 이상한 것을 믿는다  (0) 2018.06.24
외로운 중간, 고독한 중간  (0) 2018.05.18
끌어당김의 법칙? - 18/04/18  (0) 2018.04.18
  Comments,     Trackba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