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글쓰기와 닥터후, 엑셀, 통계학, 무료프로그램 배우기를 좋아하는 청년백수의 블로그
우왁굳 (3)
1화 - 블로그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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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설찬범입니다.

  사실 설찬범은 본명이 아닙니다. 본명은 따로 있는데,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껏 블로그를 쓰면서 여러 컨텐츠를 시도했습니다. 소설도 썼고 엑셀 가이드라든가 추억의 게임을 써서 올렸습니다. 아마 제일 성공적인 건 '엑셀 할머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무튼 그 모든 글은 어떤 '화자'를 지니고 쓴 글입니다. 엑셀 할머니는 주인공과 증조할머니의 입을 빌려 엑셀을 설명했습니다. 주어가 '나'인 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전 그런 글을 쓰면서 일종의 '선생'이나 '이야기꾼'이 된다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평소에 말이 없다가도 단상에 서면 다른 목소리와 말투로 연설하는 사람처럼요. 에세이들도 내용은 제 본심이지만, 스타일은 제가 되고싶은 누군가였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에는 검색 유입 서비스가 있어서, 사람들이 무슨 검색어로 들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 블로그는 엑셀 관련 검색어로 유입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엑셀 첨도나 엑셀 공분산 등. 꼴에 인지도가 생겨서 그런지 제 블로그 이름을 검색창에 쳐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더군요. 블로그를 꾸리는 사람으로서 블로그 이름이 알려진 것 같아 기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내 목소리로 얘기한 게 얼마나 될까?' 블로그야말로 자기 목소리를 전달하기 좋은 곳인데, 저는 주인공과 증조할머니가 무슨 대사를 칠지만 고민한 것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설찬범의 생각'이라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이 코너는, 그냥 일기장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평소 제 생각을 줄줄 쓸 계획입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 프라이버시를 위해 일부러 말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틀린 말은 남기지 않겠습니다. 이 코너에서 거짓인 건 제 필명인 설찬범 세 글자뿐일 겁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


  블로그는 돈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서점을 걷는데, 구글 애드센스로 돈 버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훑어봤습니다. 글만 써서 돈을 번다니. 꿈 같은 일이 아닙니까.


  그때 전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도서관에 없는 책을 신청하면 도서관에서 비치해 줍니다. 물론 만화책이나 문제집 같은 책은 신청이 거절됩니다. 저는 호기심으로 애드센스 책을 신청했고, 한 달 후에 책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어본 결과, 용돈벌이로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니, 거짓말입니다. 전 용돈벌이 그 이상을 꿈꿨습니다. 블로그로 생계를 잇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취직하느라 개고생을 하지 않고, 취직 후 개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저한테는 취직이란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가려고 그렇게나 많은 고생을 하면서, 회사에서 또 다른 고생을 한다는 것은 끔찍합니다. 네, 알아요. 월급을 주지요. 그러나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토익을 공부하고 봉사활동에 나가고 인적성시험과 면접에 대비하고, 나아가 회사에서 맞닥뜨릴 수많은 제약과 활동을 다른 곳에 쏟아부을 순 없을까?취업이 그 모든 쏟아부을 대상 중에서 제일 가성비가 높을까? 전 의심스러웠습니다.


  압니다. 블로그질이 돈이 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이란 쉽게 현혹되고 또 쉽게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블로그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존재하는 이상 제가 되지 말란 법은 없잖습니까? 그래서 시도했습니다.


  책에서 말하길, 애드센스 허가를 받으려면 글이 많아야 한다 했습니다. 저는 글을 잔뜩 썼습니다. 하루에 세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정보보다는 제 경험담이나 번역물을 올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취사병 시절 일화를 올리기도 했는데, 너무 낯부끄러워서 지금은 삭제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쓰고서야 애드센스가 저를 받아줬습니다. 바로 광고를 올렸죠. 첫 두 달은 거의 클릭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하루에 0.01달러만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운이 좋아서 하루에 5~6달러를 벌었습니다.


  애드센스 책은 블로그는 한 번 쓰면 글이 쌓이기 때문에 수익은 점차 증가한다고 했습니다(그때쯤 아예 그 책을 사서 집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거짓말입니다. 먼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은 당신 말고도 많습니다. 처음 글을 쓰면 검색 결과 상단에 오를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당신 글은 결과에서 밑으로 내려갑니다. 포털이 보기에 다른 글이 더 중요하고 좋다고 판단한 거겠죠. 심지어 당신 이후로 글을 쓰는 사람이 없어도, 글은 저절도 내려갑니다. 기준은 사람마다 말이 많으니 한번 검색해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익이 다시 곤두박질할 때 기분을 이해하시겠죠. 수익은 점점 불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쪼그라들었습니다.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그즈음에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개발서를 거르라고 하는데, 이 책만은 거르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거기엔 일곱 가지 결단이 나오는데 그중 두 가지가 '행동'과 '물러서지 않기'였습니다. 전 책에 감명을 받았고 어느 정도는 실천했습니다. 글을 쓰기 싫을 때마다 저를 몰아세웠고 아무 글이나 쓰도록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블로그 글은 300을 넘었고, 최소한 수익이 0.01 나는 날은 없습니다.


  초반엔 검색량이 많은 주제를 골랐는데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관뒀습니다. 라이벌이 너무 많고 강력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어떤 주제를 고르든, 그 주제에 빠삭한 사람들이 잔뜩 글을 써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여러분이 수학 게시물을 쓴다면 수학과 학부생이나 학위 소유자의 글과 싸워야 합니다. 이들을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이런 의심 속에서 저는 '엑셀 할머니'를 만들었습니다. 엑셀 블로그와 게시물은 수천 가지나 됩니다. 네이버는 사진이 많을수록 검색순위를 올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제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용과 관련 있는 사진을 여러 장 올릴까 고민하다가, 캐릭터를 떠올렸습니다. 캐릭터 얼굴을 사진으로 올린다면 게시물에 사진이 많아질 것 아닙니까? 거기에 대화체로 등장인물이 설명하는 형식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전문가가 쓴 엑셀 포스팅을 이기진 못했지만, 엑셀 할머니 시리즈는 나름대로 선방했습니다. 그래도 초반 포스팅은 라이벌 게시물이 적은 주제로 잡아서 해야 했죠.


  그다음엔 조합을 이용했습니다. 엑셀을 그대로 쓰면 묻히니, 다른 분야와 조합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엑셀로 통계하기'를 썼습니다. 엑셀+통계인 것입니다. 도서관에 들어가 통계를 공부하고, 엑셀에 그런 기능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엑셀로 통계하기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음 조합을 무엇으로 할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엑셀에 무얼 더해야 개성적이면서 쓸모 있는 게시물이 나올까요?


  어제는 3.86달러가 들어왔고, 오늘 이 시각까지 1.73달러가 모였습니다. 한 달에 약 3~40달러가 들어오고 세 달에 한 번 입금이 됩니다. 월급 4만원 인생인 거죠. 뭐, 블로그질에 뭘 바라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언젠가는 돈이 되리라 생각중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즐거움도 없진 않습니다. 닥터후 게시물은 들어오는 사람이 전무하지만 닥터후를 좋아하다 보니 계속 씁니다. 예전에 우왁굳, 풍월량에 대해 썼는데 그쪽 팬카페에서 링크를 세워서 사람이 많이 들어왔죠. 무엇이든 쓰고 있으니, 언젠가 하나가 심지를 건드려 불이 붙었으면 합니다.


  쓰다 보니 지칩니다. 내일 계속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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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계의 화석, 우왁굳(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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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오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왁굳과 재회했다. 복학하기 시간이 남아 충실한 잉여가 된 후였다. 피시방을 들락거리며 재미있는 것을 찾던 나는 다시 우왁굳 방송국을 들렀다. 우왁굳은 어느새 돌아와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우왁굳은 GTA 4를 했는데 다시 만난 우왁굳은 GTA 5를 했다. 그 외에도 유람선에서 사람을 죽이는 '더 쉽'이라는 게임도 했는데, 우왁굳은 그 게임을 아주 사랑했다.

 

사람들을 불러서 멀티플레이를 하는 일도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같은 방송인보다는 시청자들을 데리고 게임을 즐겼다. 시대가 변해서 시청자들도 접속하기 편해진 탓이었을까. 같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방송도 더 재미있어졌다. 물론 과거 아프리카TV를 주름잡던 시절보다는 시청자가 적긴 했지만.

 

아프리카TV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왁굳은 두 방송국을 지니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하나, 다음팟에 하나. 우왁굳은 두 방송국에서 동시 송출로 방송했다. 그래서 방송화면에는 채팅창이 둘 있었다. 나는 다음팟으로 봤다. 아프리카TV 아이디는 내 이름을 그대로 영어로 친 단어였고, 예전 조마문이라는 사람 방송에 들어갔다가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읽은 이후 난 아프리카 로그인을 꺼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팟은 돈을 쏘기도 더 쉬웠다. 초등학생이나 지을 법한 '별풍선'이라는 호칭보다야 그냥 현금을 쏘는 게 낫지. 거기다 프로그램도 더 안정적이었고 화질도 더 좋았다.

 

다시 만난 우왁굳은 게임 전문 스트리머가 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우왁굳은 GTA와 피파만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신작 게임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입수해서 플레이했다. 별풍선을 거절하던 우왁굳은 다음팟에서 만 원을 쏘면 '1억 원!'이라고 외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우왁굳에게 방송은 취미가 아니었다. 이제 공익의 몸도 아니었다. 하나의 직업이었다.

 

 

새로운 모습인가?

 

우왁굳이 아프리카와 다음팟에 방송을 동시 송출하던 시절이 그립냐고? 반반이다. 그립기도 하고 좀 별로기도 하다. 우왁굳이 여러 게임을 한다는 사실은 반가웠지만 신작 게임만 나오면 며칠만에 엔딩을 보는 방송인은 많았다. 그때는 대도서관을 재밌게 보던 터라 나에겐 우왁굳을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사라진 셈이다. 꼴에 '왁굳 부심'을 부렸다고나 할까.

 

거기다 채팅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시 송출 자체는 좋았다. 두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을 두 배로 끌어모았으니까. 문제는 두 플랫폼 시청자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프리카 시청자는 다음팟 시청자를 팟수라고 불렀다. 다음팟 시청자는 아프리카 시청자를 원시인으로 보았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듯이 반 장난으로 놀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리카와 다음팟은 반 장난으로 시작해서 안 장난으로 끝나며 서로 흙탕물을 뿌려 댔다. 게다가 말끝마다 ''를 붙이는 인간들이 틈만 나면 튀어나왔다.

 

우왁굳은 정말 심한 경우가 아니면 채팅창을 관리하지 않았다. 채팅 자유방임주의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괜히 관리하려다가 욕 먹는 사람들도 많다. 우왁굳은 최소한 귀찮아서 손을 떼지 않았다. 막 나가는 시청자들도 우왁굳 방송의 매력이다. 나는 그러나 그 채팅창과 분위기 때문에 우왁굳을 이전처럼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선비라고 놀려도 좋다. 선비가 왜구보다는 낫지 않은가.

 

 

신대륙으로

 

어느 날부터 우왁굳은 동시 송출을 중단했다. 아프리카TV에서 중지를 시킨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도 아프리카로 이사를 갔다. 하는 수 없이 내 본명이 담긴 아이디로 로그인 하거나 아예 로그인을 안 했다. 그때 내 컴퓨터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프리카 플레이어를 실행하려면 몇 번이고 다시 켜야 했다.

 

그러더니 '그 사건'이 벌어졌다. 시노자키 아이가 쏘아올린 불꽃은 아프리카TV라는 대륙에 불길처럼 번졌다. 아프리카TV는 언젠가 터질 폭탄이었다. 우왁굳이 방송을 시작하던 때엔 신대륙이었지만, 이제는 구대륙이었다. 구대륙이 강대륙 코스프레를 하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방송인들은 플랫폼을 옮겼다. 이미 신대륙은 많았다. BJ도 따지고 보면 콩글리시였다. 다른 대륙이 없어서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을 뿐. 많은 이들은 BJ 대신 '유튜버''스트리머'가 되었다.

 

아프리카TV라는 구대륙의 조상님이자 1세대 스타인 우왁굳. 우왁굳이 아프리카 조상님답게 구대륙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우왁굳을 모른다. 그는 시청자에게 툭하면 '닥쳐'를 외치는 까칠 노장이었다. 더 좋은 플랫폼이 있는데 무엇을 마다하리? 우왁굳은 다른 방송인과 비슷한 시기에 트위치로 새 둥지를 틀었다. 시청자들은 원래 좋았어야 할 화질에 감탄하고, 설치가 필요 없는 방송화면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이사 기념으로 집주인에게 자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러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았지만, 우왁굳은 떠났다.

 

 

다시 시작이다

 

우왁굳은 지금도 방송을 하고 있다. 사실 2009년보다 시청자 수는 적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지닌 충성도는 하늘을 찌른다. 이제 우왁굳은 GTA를 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 같은 게임만 할 건가. 30이 넘은 지금도 우왁굳은 새 게임을 찾아 나선다. 스팀 라이브러리를 감시하면서 재밌어 보이는 신작을 줍는다. 시청자들한테 '똥믈리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네이버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게임을 하는 우왁굳은 아직 젊다. 우왁굳보다 나이 든 인터넷 방송인들은 많지만, 우왁굳보다 먼저 방송을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시청자들은 '우왁굳이 하는 게임'을 보지 않고 '게임을 하는 우왁굳'을 본다. 인터넷 서핑을 하고 게임을 쇼핑하는 화면만 내보내도 시청자들은 좋아 죽는다. 좋은 소식이다. 이제 신작을 섭렵하는 방송인은 차고 넘친다. 다 똑같은 게임만 하는 세계에선 개성이 무기다. 우왁굳은 개성이 있다. 그렇다고 콜라에 밥을 비벼 먹거나 삭발쇼를 벌이지도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그는 '자본각'을 안전한 범위에서 지킬 줄 안다.

 

  2017, 유튜버와 스트리머가 쏟아지고 있다. 이미 인터넷 방송은 레드 오션이다. 끼어들 틈이 없다. 조만간 거의 다 나가떨어질 것이다. 실러캔스가 맛이 없는 이유를 아는가? 실러캔스는 진화를 하지 않아서 몸이 크레파스처럼 기름만 차 있다고 한다. 우왁굳은 실러캔스와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진화하면서도 본래의 맛을 잃지 않는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GTA를 그만 두어도 시청자들은 계속 우왁굳을 찾는다. 심심하면 쳐들어가는 친구네 자취방처럼 우왁굳은 언제나 시청자들 옆에 남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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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계의 화석, 우왁굳(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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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남아프리카 연안을 항해하던 어선은 신기한 물고기를 낚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물고기였다. 이 물고기는 곧바로 세계에 대서특필되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본 적 없는 물고기는 사실 인류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던 물고기였기 때문이다. 바로 실러캔스. 실러캔스는 3억 7천 5백만 년 전부터 바닷속을 살아왔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었다. 참고로 맛은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이 자기소개 시간에 장래희망을 인터넷 방송인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왔다. 유튜브 방송인, 유튜버들 중에는 연봉이 몇 억인 사람이 있다. 인터넷 방송인이 말을 하면 학생들의 유행어가 되고 공중파 방송국이 인터넷 방송 콘셉트를 가져와서 프로그램을 만든다. 인터넷 방송이 뜨긴 떴나 보다. 지금 이 시기에 나는 인터넷 방송의 실러캔스를 생각한다. 인터넷 방송의 살아있는 화석, 바로 우왁굳이다.

 

 

아이스크림 트럭

 

나에게 우왁굳은 한 게임 영상으로 다가왔다. 영상에서 우왁굳이라는 사람은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경주했다. 아이스크림 트럭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더니 바퀴에서 불이 났다. 그 게임에서 바퀴에 난 불은 폭발을 의미했다. 운전자는 차를 멈출 타이밍을 찾았다. 가까스로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그러나 연쇄폭발로 숨을 거뒀다.

 

그 차가 아이스크림 트럭이 맞았나?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영상은 확실히 아이스크림 트럭이었다. 우왁굳은 그 영상에서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고가도로 옆을 벽 타듯이 돌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꾸만 애꾸킹 토네이도!’를 외쳤다. 지금이야 인터넷 방송인마다 자기만의 유행어나 대사가 있다. 그때는 그러나 인터넷 방송의 초창기인 2009년이었다. 방송으로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벌 수단조차 없었다. 인터넷 방송은 직업이 아니라 취미였다. 지금이야 이름처럼 원시적인 몰골을 보여주는 아프리카TV가 당시로서는 최첨단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지금 20대 후반에 접어든 내가 그 영상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분명 요즘 애들은 이걸 보면서 웃는구나.'하며 쓴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애였고, 그 영상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사람들과 모여서 멀티플레이를 하다니. 피시방에 가면 스타 무한맵, 워크 영웅 키우기나 하던 나에게 시끌벅적한 멀티플레이는 신세계였다. 우왁굳은 GTA 4를 주로 했는데, GTA 4를 돌리던 엑스박스 360부터 콘솔시장에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점에서 우왁굳은 행운아였다. 아무도 하지 않은 신세계를 개척해 버렸으니.

 

게임 영상이 나와서 말인데, 우왁굳이 노숙자를 쫓아가다가 죽이는 일명 우왁굳 노숙자동영상도 유명하다. 지금 보면 정말 재미없는 동영상이고 심지어 보기조차 어렵다. 너무 오래 전 영상이라서 우왁굳 본인조차 소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행히 유튜브에 시청자가 올린 영상이 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재미없다. 이 영상이 아프리카TV의 전설로 남았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게임 스트리머 지망생 여러분. 여러분은 8년 일찍 태어나셨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게임이나 기타 영상에서 노숙자가 보이면 회자되는 일명 '노숙자의 도망'

 

 

 

 

전설

 

우왁굳이라는 사람은 유명했다. 방송을 시작하는 순간 방이 꽉 찼다. 돈이 없는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계방을 들어갔다. 그 중계방도 꽉 찼다. 우왁굳이 방송을 켜면 중계방이 몇 개는 줄줄이 생겼다. 가히 당시 1위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진짜 1위였는지는 몰라도 우왁굳은 1위 할 자격이 있었다. 지금처럼 콘솔기기가 많지 않은 때에 최신기종인 엑스박스360을 들고, PC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GTA4, 그것도 다른 방송인과 시청자를 불러서 대규모 멀티 플레이어를 하지 않았는가. 섬 뺏기, C4로 터뜨리면서 싸우기, OX 퀴즈 등. GTA가 자유로운 게임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성우를 연상하게 만드는 굵고 멋있는 목소리도 매력 포인트였다. 우왁굳이 떴다 하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먹었고 아프리카 TV 운영자가 방송에 들어왔다. 그때 네이버에 우왁굳을 치면 우왁굳 얼굴이라면서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의 사진이 나왔다. 진짜인지는 불확실하다.

 

우왁굳은 대기업이었다. 같이 방송하는 방송인들을 하청업체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 방송인들은 대부분 지금도 방송한다. 개복어, 크헐헐, 노지, 천양, 모아드 등. 아프리카TV는 방송 클럽 제도를 운영했는데, 왁굳 클럽은 거대했고 유명했다. 하지만 우왁굳이 더 유명했다. 개복어 방송, 크헐헐 방송을 보다가도 우왁굳이 방송을 켜면 시청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우왁굳은 시청자들에게 별풍선을 쏘지 말라고 했다. ‘이건 돈벌이가 아니다같은 이유로 기억한다. 그때는 유튜브도 안 유명했으니 별풍선을 제외하면 인터넷 방송을 하며 돈을 벌 방법은 별풍선뿐이었다. 하지만 우왁굳은 별풍선을 거절했다. 청렴한 사람이라 별풍선을 거절했다면 거짓말이다. 확실한 사실은, 별풍선을 받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더럽게 많았다는 거다. 그 시청자들한테서 동전 하나씩만 받아도 외제차를 살 수 있었을 거다. 지금이야 자본이 낳은 괴물 소리를 듣지만 그때 우왁굳은 인기가 높은 괴물이었다.

 

우왁굳은 공익이기도 했다. 실제 당시 아프리카TV에는 방송을 하던 공익이 많았다. 공익은 출퇴근이 가능하고 취미 핑계로 집안 눈치를 보지 않는 인터넷 방송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우왁굳이 별풍선을 받지 않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왁굳을 아직 잘 모르나 보다. 모르는 점은 또 하나 있다. 나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

 

 

 

일본으로

 

 

우왁굳은 공익을 끝내고 방송도 끝냈다. 그러고는 기독교에 빠졌다. 그러고는 일본으로 떠났다. 나는 당황했다. 물론 우왁굳이 GTA4 현실모드를 방송하고 시도 때도 없이 피파를 하던 즈음에는 좀 질리긴 했다. 그래서 좀 떠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허무했다. 우왁굳은 말했다. ‘논리를 떠난 영역에서 종교를 이해하게 되었다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일본이야 유학 갈 수 있다. 가지 말란 법 없다. 그래도 황당했다.

 

나는 며칠을 습관처럼 우왁굳 방송국에 들렀다. 회색 빈 화면과 방송 준비 이라는 문구를 클릭했다. 그리고 점점 우왁굳을 잊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바쁜 날을 보냈다. 인터넷 방송은 유치해 보였다. 서서히 여자들이 옷을 벗으며 별풍선을 받았다. 우왁굳 클럽원들의 방송을 좀 보긴 했다. 하지만 우왁굳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따지고 보면 우왁굳 방송 콘텐츠는 다른 방송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다는 정도? 다만 우왁굳에게는 타 BJ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냥 그뿐이다. 이게 무슨 자동차 사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방송은 콘텐츠와 매력이 같은 비중을 지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프리카TV를 잊고 살았다. MT를 가고 기말고사를 보고 군대에 들어갔다 나왔다. 세월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우왁굳을 만나게 되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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