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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단편 (2)
[번역] 깨끗하고 조명 밝은 곳(A Clean, Well-Lighted Place)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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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텍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3년 출판한 단편집 <Winner Take Nothing>에 수록된 단편 <A Clean, Well-Lighted Place>를 번역한 글입니다.


※ 헤밍웨이는 1961년 사망했으므로 현재 이 작품은 한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A Clean, Well-Lighted Place>는 미국소설학회 헤밍웨이 작품명 번역 통일안에서 <정결하고 조명이 잘 된 장소>라는 번역제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원본 텍스트는 fadedpage.com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역과 오역이 많습니다.


※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텍스트를 블로그, 사이트, 출판 등에 인용하실 때는 덧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덧글을 쓰지 않으신다면 최소한 이 글 링크나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깨끗하고 조명 밝은 곳

- 어니스트 헤밍웨이

 

 

날이 늦어 모두 카페를 떠났지만 한 노인만이 전등빛이 나뭇잎을 비춰 나타난 그림자 속에 앉아 있었다. 낮 거리는 먼지가 날렸지만, 밤이 되자 이슬이 먼지를 가라앉혔고 노인은 밤까지 앉아 지내기를 좋아했다. 노인은 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용했고 노인은 그 다름을 감지했다. 카페에선 웨이터 둘이 노인의 미약한 취기를 눈치챘다. 노인은 단골이었기에 웨이터들은 노인이 너무 취하면 돈도 안 내고 나갈까 봐 예의주시했다.

지난주에 저 사람 자살을 시도했다는데,” 한쪽 웨이터가 말했다.

?”

절망했나 보지.”

뭐에?”

그냥.”

그냥인 줄 어떻게 알아?”

저 사람은 돈이 아주 많거든.”

웨이터들은 카페 현관 옆 벽을 맞댄 탁자에 같이 앉아 테라스를 쳐다보았다. 테라스에는 노인이 앉은 걸 빼면 모든 테이블이 휑했다. 노인이 속에 앉은 나뭇잎 그림자는 바람에 살살 움직였다. 소녀와 군인이 거리를 지나갔다. 거리의 불빛이 군인이 소매에 단 장식을 빛냈다. 아무것도 머리에 쓰지 않은 소녀는 헐레벌떡 군인 옆을 따랐다.

경비대가 저 사람을 데려가겠지,” 한쪽 웨이터가 말했다.

가던 곳에 도착하면 무슨 소용이야?”

슬슬 거리에서 비켜나야 할걸. 경비대가 잡아낼 거야. 5분 전에 경비대가 지나갔거든.”

그림자 속에 앉은 노인은 잔으로 받침을 두들겼다. 둘 중 어린 웨이터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노인이 웨이터를 보았다. “브랜디 더.” 노인이 말했다.

이러다 취하시겠어요,” 웨이터가 말했다. 노인이 웨이터를 바라보았다. 웨이터는 물러났다.

밤새 지낼 작정인가 봐,” 웨이터는 동료 웨이터한테 말했다. “이제 졸리는데. 세 시 전에 자긴 글렀어. 지난주에 자살이나 성공할 것이지.”

웨이터는 브랜디 병과 카페 계산대에 있는 다른 컵 받침을 집어서 노인이 앉은 테이블로 진군했다.

지난주에 자살하셨어야죠.” 웨이터는 귀머거리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조금만 더.” 노인이 말했다. 웨이터는 잔에 브랜디를 부었다. 브랜디가 살짝 넘쳐 쌓아놓은 받침으로 흘러내렸다. “고맙네.” 노인이 말했다. 웨이터는 병을 원래 자리에 갖다 놓았다. 다시 직장동료 옆에 가서 앉았다.

이제 취했네.” 웨이터가 말했다.

맨날 밤마다 취하잖아.”

왜 자살 시도했대?”

내가 어떻게 알아.”

무슨 방법을 썼대?”

밧줄로 목을 맸대.”

밧줄을 잘라 구한 쪽은?”

조카.”

뭐하러 구했대?”

노인 영혼이 타락할까 봐.”

노인 재산이 얼마라고?”

아주 많아.”

노인 나이가 여든은 될 텐데.”

어찌 되었든 여든은 되었겠지.”

이제 집에 좀 가지. 세 시 전에 자긴 글렀네. 나처럼 자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저 노인은 저 좋으라고 깨어 있는데.”

저쪽은 홀몸이고. 난 아니라고. 난 침대에서 기다리는 마누라가 있어.”

저쪽도 아내는 있었겠지.”

지금 아내가 있어도 쓸모없었을걸.”

그건 모르지. 아내가 있으면 더 나았을지도.”

조카가 저 사람을 보살핀대.”

나도 알아. 아까 조카가 밧줄을 잘랐다면서.”

그렇게까지 늙고 싶진 않아. 늙으면 추해져.”

다 추해지진 않지. 이 할아범은 깨끗해. 술도 안 흘리지. 지금 취했는데도. 봐봐.”

보기도 싫어. 빨리 저 노인이 집에 갔으면 좋겠어. 일해야 하는 사람을 배려하질 않아.”

노인은 술잔 너머로 광장을 바라보았고, 곧 웨이터들을 보았다.

브랜디 더.” 노인이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나온 웨이터가 다가왔다.

끝났습니다.” 웨이터는 멍청한 사람이 취객이나 외국인을 상대할 때 말하는 방식을 티 냈다. “오늘 밤은 안 돼요. 영업 끝입니다.”

한 잔 더.” 노인이 말했다.

안 돼요. 끝났다고요.” 웨이터는 수건으로 테이블 끄트머리를 닦아내고 고개를 저었다.

노인은 일어섰다. 느릿느릿 받침 수를 세고 가죽 동전지갑을 주머니에서 꺼내 술값을 냈다. 반 페세타(스페인 옛 통화)는 팁이었다.

웨이터는 노인이 거리를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주 많이 늙은 남자는 불안정했지만, 품위가 있었다.

그냥 마시게 두지 그랬어?” 느긋한 쪽 웨이터가 물었다. 둘은 셔터를 내리기 시작했다. “두 시 반도 안 됐어.”

집에 가서 잘래.”

한 시간도 못 기다려?”

늙은이보다 나한테 시간이 중해.”

모두 같은 한 시간이야.”

너도 그 할아범처럼 말하네. 그 할아범은 술 한 병 사서 집에서 마시면 되잖아.”

둘은 다르지.”

다르긴 해.” 유부남 웨이터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쁜 사람이 될 맘은 없었다. 그저 성급했을 뿐이었다.

그러는 너는? 보통 시간보다 일찍 퇴근하는 게 무섭지 않나 봐?”

기분 나빠지라고 한 소리냐?”

아냐, 인마. 그냥 농담한 거야.

아니지.” 급한 쪽 웨이터가 금속 셔터를 내린 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난 자신 있는데. 난 자신감으로 가득하니까.”

넌 젊고, 자신만만하고, 취직도 했지.” 형인 웨이터가 말했다. “넌 모든 걸 갖췄어.”

그쪽은 뭐가 부족한데?”

일자리 빼고 다.”

나한테 있으면 다 너한테도 있어.”

아니. 난 자신감도 없고 젊지도 않아.”

어서 가자. 헛소리는 그만하고 마감하자고.”

난 카페에 늦게 남는 파거든.” 형인 쪽 웨이터가 말했다. “잠들기 싫어하는 사람과 같은 편이야. 밤에도 빛이 필요한 사람과 같은 편이고.”

우리는 서로 다른 편이지.” 나이를 더 먹은 웨이터는 말했다. 웨이터는 집에 갈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젊음과 자신감이 엄청 아름다운 존재지만, 이건 젊음과 자신감 문제가 아니야. 매일 밤 난 마감하기가 꺼려져. 카페가 필요한 사람이 어딘가 있을 수 있거든.”

형씨, 온종일 여는 보데가(스페인 구멍가게)가 있잖아.”

말귀를 못 알아듣네. 여긴 깨끗하고 즐거운 카페야. 조명도 밝고. 조명도 아주 좋고, 지금은 나뭇잎 그림자도 있어.”

잘 자.” 동생인 쪽 웨이터가 말했다.

너도 잘 자.” 상대는 말했다. 웨이터는 전등을 끄고 자기와 대화를 이었다. 물론 조명도 중요하지만, 장소는 깨끗하고 즐거워야지. 음악은 안 돼. 음악은 안 되고말고. 이 시간에 갈 수 있는 곳이 바밖에 없다 해도 품위를 지키면서 바에 갈 수는 없지. 그 노인은 뭐가 무서워서 그랬을까? 무섭거나 불안한 건 아니야. 그건 노인이 너무 잘 아는 것, 였어. 모든 것은 무였고 사람도 무였어. 오직 그뿐이었지. 필요한 것은 빛과 어느 정도의 깨끗함과 질서였지. 어떤 사람은 그 안에 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지만, 노인은 알아챘어. 모든 것이 고 따라서 고 그래서 . 에 계신 우리 , 이름이 를 받으시오며 나라가 하옵시며, 뜻이 에서 이룬 것 같이 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날 우리에게 일용할 르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자를 하여 준 것 같이 우리 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하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에서 구하옵소서. 웨이터는 미소를 짓고는 바 앞에 섰다. 증기 커피추출기가 윤기를 빛냈다.

뭐 드시겠소?” 바 주인이 물었다.

.”

“Otro loco mas(또 미친 사람이군).” 주인은 말하고 돌아섰다.

작은 컵으로 하나요.” 웨이터가 말했다.

주인이 웨이터에게 한 컵 따랐다.

조명도 꽤 밝고 분위기도 즐겁지만, 바가 더럽네요.” 웨이터가 말했다.

주인은 웨이터를 슬쩍 보았지만 대답하진 않았다. 얘기하기엔 너무 늦은 밤이었다.

한 잔 더 드릴까?” 주인이 물었다.

아닙니다.” 웨이터는 말하고 나갔다. 웨이터는 바도 보데가도 좋아하지 않았다. 깨끗하고 밝은 카페는 이들과 다른 존재였다. 이제 웨이터는 딴생각 없이 집과 방으로 들어갈 것이다. 침대에 누워 마침내 햇빛과 함께 잠에 들 것이다. 애초에 웨이터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아마 불면증만 걸린 거라고. 많은 사람이 걸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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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폭풍이 지나가고(After The Storm) -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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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텍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3년 출판한 단편집 <Winner Take Nothing>에 수록된 단편 <After The Storm>을 번역한 글입니다.


※ 헤밍웨이는 1961년 사망했으므로 현재 이 작품은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After The Storm>은 미국소설학회 헤밍웨이 작품명 번역 통일안에서 <폭풍 후>라는 번역제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 원본 텍스트는 fadedpage.com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역과 오역이 많습니다.


※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텍스트를 블로그, 사이트, 출판 등에 인용하실 때는 덧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는 하지 않겠지만, 덧글을 쓰지 않으신다면 최소한 이 글 링크나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 어니스트 헤밍웨이


 

주먹을 날릴 일이 전혀 아니었지만 우리는 맞붙었는데, 내가 넘어지자 그는 내 가슴팍에 무릎을 올려 눕히고는 양손으로 목을 졸랐다. 그는 날 죽일 기세였고 나는 내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풀려나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취해서 그를 떼어놓지 못했다. 그가 내 목을 조르고 머리를 바닥에 찧는 사이 나는 칼을 꺼내 펼쳤다. 그러고는 팔 근육을 제대로 그어버렸다. 그는 나를 풀어줬다. 잡고 싶어도 못 잡았을 것이다. 그가 몸을 굴리더니 베인 팔을 부여잡고 울기에 말했다.

내 목을 졸라서 어쩌려고?”

난 그를 죽일 뻔했다. 일주일은 뭘 못 삼켰다. 그도 내 목을 지독하게 아프게 했다.

, 난 거기를 나왔다. 많은 이가 그한테 붙었고 몇몇은 나를 쫓아 나왔다. 나는 방향을 바꾸어 부두로 내려갔다. 거기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거리에서 살인이 났다고 했다. 난 말했다. “누가 죽였대?” 친구는 말했다. “살인범은 몰라도 누가 죽긴 죽었나 봐.” 바깥은 어두웠다. 물기가 거리에 들끓었고 불빛은 다 나가고 창문은 박살 나고 선박은 죄다 마을까지 올라오고 나무는 터져 떠내려갔다. 만물이 다 터져 나갔고 나는 조각배를 얻어 타고 나갔다. 난 망고 키에 정박한 내 보트를 찾아냈고 보트는 물로 가득할 뿐 전부 괜찮았다. 그래서 난 물을 빼고 펌프로 배수했다. 달은 떴지만 수많은 구름도 떴고 아직 날씨는 아주 지독했다. 난 달을 따라 내려갔다. 햇빛이 비칠 즈음엔 동쪽 부두까지 나간 후였다.

형제여, 그 정도면 폭풍이라 부를 만했다. 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고 나간 사람이었다. 그런 물길은 너도 본 적이 없을 거다. 물은 잿물 담은 통처럼 뿌옜고 동쪽 부두에서 남동 만까지 해안선을 알아볼 수 없었다. 해변 정 가운데를 흐르던 큰 도랑도 터졌다. 나무고 뭐고 다 터져 나가 도랑은 잘려나가고 물은 분필처럼 허옜다. 그 위로 만물이 떠다녔다. 나뭇가지도 나무도 죽은 새도 뭐고 전부 떠다녔다. 삐져나온 모래톱에 전 세계 펠리컨이 모였고 온갖 새가 날았다. 폭풍을 예감하고 온 그곳에 틀어박힌 것이다.

난 남동쪽 모래톱에 종일 누웠다.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간 사람이었다. 돛대 하나가 떠내려가서 어디선가 난파선이 있다고 확신했다. 난 그 배를 찾아 나섰다. 그 배는 찾았다. 돛대가 셋인 스쿠너(범선의 종류)였고 부러진 돛대들만이 밑동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배는 너무 깊이 가라앉아서 내가 뭘 빼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걸 찾기로 했다. 내가 1번 타자였으니 뭘 발견하든 내 것이었다. 세 돛대짜리 스쿠너를 떠나 모래사장을 내려갔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미 꽤 멀리 나갔다. 난 갯벌로 나갔지만 역시 허탕이었다. 그래서 계속 찾았다. 레베카 등대(플로리다 남단에 있는 등대)가 보이는 곳까지 간 그때 온갖 새들이 뭉쳐 날았다. 난 그쪽으로 가서 뭔지 알아보았다. 그냥 날아다니는 새 무더기였다.

물 밖으로 삐져나온 돛대 비스름한 게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니 새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올라 내 주변을 감쌌다. 그곳 물은 맑았다. 정말 수면 위를 살짝 삐져나온 돛대였다. 나는 다가갔다. 물밑은 기다란 그림자처럼 컴컴했다. 바로 앞까지 가니 물밑에 있던 것은 정기선으로, 온 세상처럼 커다란 몸집을 하고 그저 물 아래에 드러누웠다. 난 배를 타고 그 정기선을 가로질렀다. 정기선은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웠고 후미는 깊숙이 잠긴 후였다. 관측창은 꽉 닫혔고 유리창이 물속에서 빛났다. 사실, 배 전체가 빛났다. 태어나서 본 배 중 가장 큰 놈이 그곳에 있었다. 난 정기선 전체를 따라서 갔다. 정기선 위를 넘어간 다음 닻을 내렸다. 선미에 둔 뗏목을 밀어내서 물에 띄우고 나를 덮어쓴 새들과 함께 노를 저었다.

설거지에나 어울리는 물안경이 있었는데, 손이 떨려서 들지도 못할 정도였다. 정기선 전체를 훑었고 보이는 관측창은 전부 닫혔지만, 바닥으로 내려가면 어딘가 열렸을 것이었다. 계속 물건들이 떠올랐으니. 무슨 물건인지는 아리송했다. 그냥 쪼가리들. 새들은 그 쪼가리들을 따라 날았다. 너는 그렇게 많은 새를 본 적이 없을 거다. 모든 새가 내 주변을 날며 미친 듯이 울었다.

모든 것이 뚜렷하고 선명했다. 시야에 정기선이 잠긴 끝부분이 들어왔는데 물밑 깊이가 1마일은 되는 것 같았다. 정기선은 맑은 흰 모래 둑 위에 누운 채였고 돛대는 앞돛대 같기도 하고 비스듬히 드러누워 물 밖으로 기울어진 낚싯대 같기도 했다. 정기선 뱃머리는 그렇게 깊진 않았다. 뱃머리에 새긴 배 이름에 발을 대어도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관측창까지 가려면 3, 4는 내려가야 했다. 이삭 터는 장대를 내리면 창에 닿기에 장대로 창을 깨보려 했지만 깨지지 않았다. 유리가 꽤 두꺼웠다. 그래서 난 배로 돌아가서 렌치를 꺼내 이삭 터는 장대 끝에 감아 붙였지만 그래도 깨지지 않았다. 정기선 창문 너머로 모든 것이 있었고 내가 처음으로 이 배에 도착했는데도 들어가지를 못했다. 분명 속에 있는 것들은 5백만 달러는 나갈 것이었다.

정기선이 분명 품었을 것들을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제일 가까운 관측창을 보니 뭔가 있었지만 내 물안경으로는 정체를 알지 못했다. 장대는 소용이 없어서 난 옷을 벗고 몸을 편 다음 두 번 숨을 들이마시고 뱃머리에서 다이빙했다. 손에는 렌치를 들고 헤엄쳐 내려갔다. 관측창 끝부분에 가니 잠깐 여유가 생겨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한 여자가 머리칼 전체를 둥둥 띄웠다. 여자는 가만히 떠다녔다. 나는 렌치로 유리창을 두어 번 힘껏 후려쳤다. 빠직하는 소리가 났지만 창문은 부서지지 않았고 나는 물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난 뗏목에 몸을 걸치고 숨을 골랐다. 다시 올라가 두 번 숨을 들이마시고 뛰어들었다. 아래로 헤엄쳐 내려가 관측창 모서리를 손으로 잡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렌치로 창을 때렸다. 물안경 너머로 여인이 떠다녔다. 여인의 머리칼은 잠깐 머리에 달라붙더니 다시 사방으로 퍼졌다. 한 손은 반지 여럿을 꼈다. 여인은 관측창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나는 두 번 더 창을 때렸지만, 창은 금도 가지 않았다. 수면으로 올라갈 때는 숨을 쉬어야 하기 전에 못 올라가는 줄 알았다.

나는 다시 잠수했다. 이번엔 창에 금을 냈다. 금만. 수면으로 올라오니 코피가 났다. 난 맨발로 정기선 뱃머리 배 이름 위에 서서 머리만 물 위로 내놓았다. 거기서 쉬고 뗏목으로 헤엄쳐 돌아갔다. 뗏목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두통이 멎기를 기다리며 물안경을 쓴 채 바닥을 내려보았다. 그러나 피가 나서 물안경을 씻었다. 그런 다음 난 뗏목에 누운 채 손으로 코를 쥐고 코피를 막았다. 머리를 뒤로 기울이고 누우니 수백만 새들이 내 주위를 날았다.

코피가 멎고 나는 다시 물안경을 썼다. 이번엔 내 배로 돌아가서 렌치보다 무거운 놈을 찾았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해면 캐는 갈고리조차. 정기선으로 돌아가니 물은 훨씬 맑아졌다. 흰 모래 제방 위를 떠다니는 모든 것이 보였다. 난 상어가 있는지 살폈지만, 상어는 없었다. 정말 멀리 나가면 상어를 만났을 것이다. 물은 꽤 맑았고 모래는 하얬다. 뗏목에는 닻을 다는 고정장치가 있었다. 난 장치를 떼고 갑판으로 나와 장치를 들고 잠수했다. 장치 덕분에 나는 곧장 가라앉았다. 나는 관측창을 지났다. 창을 잡았지만 잡을 곳이 없어서 나는 계속 가라앉았다. 둥근 정기선 옆면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장치를 놔야 했다. 장치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내가 수면으로 올라오기까지 평생이 걸리는 것 같았다. 뗏목은 조류를 따라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는 코피를 바다에 흘리며 뗏목으로 헤엄쳤다. 상어가 안 나타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난 지쳐 버렸다.

머리통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난 뗏목에 누워 쉬다가 다시 정기선으로 돌아갔다. 슬슬 오후였다. 난 렌치를 쥐고 다시 잠수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렌치는 너무 가벼웠다. 큰 망치, 쓸만할 만큼 무거운 게 아니면 다이빙해 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난 렌치를 다시 장대에 감고 물안경으로 물속을 보면서 창을 내리치고 찍어댔다. 그러다 렌치가 사라졌다. 물안경으로 보니 아주 확실하게 렌치는 정기선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다 정기선에서 떨어지고는 진흙 속으로 잠겼다. 이제 하릴없었다. 렌치도 없었고 고정장치도 잃어버렸다. 난 배로 돌아갔다. 뗏목을 배에 올리기엔 너무 피곤했다. 해는 꽤 기울었다. 새들은 정기선을 떠났고 나는 뗏목을 데리고 남동쪽 모래톱으로 갔다. 새들은 내 위와 뒤에서 날았다. 정말 노곤했다.

그날 밤, 폭풍이 불었다. 폭풍은 일주일을 불었다. 정기선을 다시 찾으러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나한테 내가 벨 수밖에 없던 녀석은 팔만 빼면 괜찮다고 알려주었다. 난 마을로 돌아갔고 벌금 5백 달러가 선고되었다. 나중엔 다 잘 풀렸다. 그 녀석이 도끼를 들고 날 쫓아갔다고 증언한 몇몇 친구 덕분이다. 그러나 증기선에 다시 돌아가 보니 이미 그리스인들이 배를 열어젖히고 속을 비워낸 후였다. 그리스인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써서 금고를 빼냈다. 얼마나 챙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기선은 금을 날랐는데 그들이 다 가져갔다. 그들은 배를 홀라당 벗겨 먹었다. 나도 정기선을 뒤졌지만, 동전 하나 챙기지 못했다.

알고 보니 정기선은 아주 진국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정기선이 허리케인이 몰아치던 날, 하바나 항구에서 겨우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정기선은 항구에 들어갈 여지가 없었거나 항구 쪽에서 선장한테 들어올 기회를 주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선장은 시도라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기선은 폭풍과 함께 나아갔다. 캄캄한 바다에서 그들은 레베카 등대와 토르투가스 등대 사이로 만을 통과하려 기를 쓰고 달렸다. 그때 정기선은 펄에 끼었다. 방향타가 빠졌을 수도 있다. 방향키로 조종 중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뱃사람들은 그곳이 펄임을 알 방법이 없었다. 배가 멈추자 선장은 분명 밸러스트 탱크를 열어서 자세를 가다듬으려 했을 거다. 그러나 배가 닿은 바닥은 펄이었다. 선원들이 탱크를 열자 배는 후미부터 꺼졌고 앞머리까지 가라앉았다. 배에 탄 승객과 선원은 450명이었고, 그들은 내가 배를 발견할 즈음에도 모두 탑승 중이었다. 분명 선원들은 정기선이 갇히자마자 탱크를 열었을 것이고, 바닥에 닿자마자 펄은 배를 잡아당겼다. 그다음 화덕이 폭발하고 조각들이 나왔을 것이다. 상어가 없었다니 조금 웃기다. 아예 물고기도 없었다. 있었다면 맑고 하얀 모래를 배경으로 내가 봤겠지만.

지금은 물고기가 잔뜩이다. 제일 큰 것은 돔이다. 정기선은 몸체를 대부분 모래 밑에 묻었지만, 제일 큰 돔들이 정기선 안에 산다. 몇몇은 150에서 180이나 나간다. 가끔 우리도 가서 몇 마리 잡는다. 정기선이 가라앉은 곳에 가면 레베카 등대를 볼 수 있다. 지금 정기선이 있는 곳에는 부표를 띄웠다. 만 끝자리 펄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 정기선이 있다. 배는 겨우 100도 안 되는 거리를 남기고 만을 통과하지 못했다. 폭풍 속 암흑에서 선원들은 등대를 놓쳤다. 그렇게 비가 내렸으니 레베카 등대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그런 폭풍에 젬병이었다. 정기선 선장은 그처럼 재빨리 나아가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다. 정기선은 늘 경로가 있고, 정기선 선원들이 방향만 맞추면 배는 알아서 가니까. 폭풍이 불던 날 그들은 자기 위치를 몰랐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다. 그래 보았자 방향타를 잃었을 테지만. 여하튼 걸프만까지 온 이상 멕시코로 가기까지 펄 말고 부딪힐 건 없었다. 그런 비바람에 갇힌다면 혹시 모를까. 결국, 선장은 선원에게 탱크를 열라고 시켰다. 그 폭풍과 빗속에선 갑판을 지키고 설 수도 없다. 모두 갑판 아래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선원이라고 갑판 위에 살림을 차릴 수는 없다. 안쪽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 같았을 것이다. 알다시피 정기선은 재빨리 멈췄으니까. 내 렌치도 그렇게 모래에 빠졌다. 선장이 이곳 물속을 모르는 이상 밑에 있는 것이 펄임을 알기란 불가능했다. 최소한 바위는 아니라고만 인지했을 것이다. 선장은 함교에서만 보고 들었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을 때쯤 진짜 상황을 알아챘겠지. 난 정기선이 가라앉던 빠르기가 궁금하다. 선장에게 저승길 동무가 있었을까. 선원들은 함교에서 죽었을까, 아니면 바깥에서 운명을 받아들였을까. 사람들은 시체를 못 찾았다. 하나도. 아무도 둥둥 뜨지 않았다. 그들도 구명튜브와 함께 먼 길을 떠났다. 분명 배 안에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 그리스인들이 다 가져갔다. 말 그대로 전부. 엄청 서둘러 왔음이 분명하다. 그리스인들은 정기선을 비워냈다. 처음엔 새들이, 다음엔 내가, 그다음엔 그리스인들이 왔는데, 새가 나보다 정기선에서 얻어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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