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 닥터 조디 휘태커가 공개되면서 닥터후 다음 시즌에 대한 추측도 무성해지고 있습니다. 새 닥터의 패션과 버릇, 성격도 궁금해지고 다음 시즌부터 제작진이 물갈이되는 만큼 어떤 줄거리를 선보일지도 관심의 대상이죠. 새 닥터뿐 아니라 새 동료도 누가 될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닥터후는 오랫동안 닥터와 동반자가 시공을 여행하는 줄거리를 유지해 왔습니다. 동료의 개성과 동료와 닥터가 맺는 궁합도 닥터후의 또 다른 재미인데요. 과연 새 닥터의 새 동료는 누가 될까요?
첫 번째 추측 – 현대 인간 남성
최근 몇 년 간 닥터의 동료들은 시청자와 같은 시대에 사는 인간이었습니다. 2005년 닥터후가 부활하자마자 함께 한 동료는 평범한 인간 여성인 로즈 타일러였습니다. 그 다음은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는 마사 존스, 그 다음은 왈가닥 노처녀 도나 노블, 그 다음은 닥터를 동경하던 소녀 에이미 폰드였죠. 비록 직업이나 성격, 결말은 달랐어도 모두 시청자와 같은 해를 사는 인간 여성이었습니다. 닥터후 역사를 통틀어도 시청자와 동시대를 살던 동료들이 대부분이었죠.
현대 인간을 동료로 고르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첫째로 현대 인간은 쓰기 편합니다. 과거 동료라면 고증을 맞춰야 하고 미래 인간이나 외계인 동료라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반면에 현대 인간은 직업적 고증이나 캐릭터 구상을 빼면 머리를 굴려야 할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로 현대인을 동료로 하면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기 쉽습니다. 닥터는 외계인이고 신비스러운, 아니 신비스러워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렇기에 닥터후는 닥터의 모든 것을 표현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나 행동을 이따금 보여줍니다. 거기에 현대인을 넣고 현대인이 비상식적인 닥터와 비상식적인 외계인들을 보고 놀라게 하면 시청자들은 쉽게 이해합니다. 시청자들은 자기를 대입할 캐릭터가 필요한 법입니다.
셋째로 동료가 있으면 닥터가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닥터가 자기가 알던 외계 행성에 갔다고 가정합시다. 닥터는 행성을 알기 때문에 굳이 입 밖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옆에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가 있다면 어떨까요? “닥터, 여긴 무슨 행성이죠?” “아, 넌 모르겠네. 여기는 말야….” 닥터후는 토요일 저녁에 방송하는 엄연한 가족 드라마입니다.
이렇듯 현대인을 캐스팅하면 시청자들이 쉽게 드라마에 빠지고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3대 닥터는 여성이니까 아마 현대 남성을 캐스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꼭 다른 성별이 같이 다녀야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같은 캐릭터라도 성별이 다르면 그 궁합(‘케미’라고도 하는)이 잘 맞으니까요. 만약 현대 남성으로 정해진다면 직업은 뭘까요? 몇 살일까요? 가족은 있을까요? 성격은 물렁할까요? 단단할까요?
두 번째 추측 – 과거나 미래 인간
이 추측은 현대인 동료에 지친 팬들 일부가 바라는 추측입니다. 바로 과거나 미래 출신(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로) 동료를 영입하는 것이죠. 닥터가 옛날 동료를 데리고 여행한 적은 찾아보면 좀 많습니다. 먼저 2대 닥터는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만난 제이미 매크리먼, 19세기 영국에서 만난 빅토리아 워터필드와 여행했습니다. 미래 동료로는 역시 2대 닥터와 여행을 다닌 21세기(…) 우주기지 출신의 조이 해리엇, 4대 닥터와 여행한 미래 원시 인류 부족 출신의 여전사 릴라가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 동료는 시청자한테도 좋은 재미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제이미는 옛날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영국 레드코트만 보면 칼을 빼들고 덤벼듭니다. 릴라는 미래인이지만 문명이 몰락한 원시 부족 출신이라서 적을 만나면 무조건 싸우려고 들고 밥도 손으로 먹습니다. 닥터가 현대인들을 보면서 릴라한테 ‘너희 조상들 좀 봐’라고 놀리기도 했죠. 과거든 미래든 시간여행이라는 닥터후의 콘셉트와 잘 어울리고 닥터만큼이나 좋은 개성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시대에 살지 않는 동료는 생각할 거리가 많아집니다. 과거에서 동료를 고른다면 어느 시대, 어느 지방에서 골라야 할까요? 고른다면 그 당시 생활습관과 복장을 알아내야 하고, 거기에 맞는 캐릭터를 짜야 합니다. 닥터후가 현대 드라마이기 때문에 닥터는 의외로 현시대 영국으로 자주 갑니다. 그렇다면 과거나 미래 동료는 현대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요? 미래 동료는 역사를 어디까지 알까요? 사실 닥터후를 보다 보면 의외로 이런 질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아마 제작진들은 줄거리가 꼬이지 않도록 다 생각해 놔야 할 겁니다.
그래도 다른 시대 동료는 정말 보고 싶습니다. 쭉 현대인을 동료로 하면 아무래도 닥터한테 모든 개성이 쏠리게 됩니다. 그럼 역으로 동료가 너무 무개성해질 위험이 있죠. 이번 시즌 동료인 빌 포츠도 캐릭터가 밍밍하다는 평가를 좀 받았습니다. 제작자들은 밍밍한 동료를 막기 위해서 캐릭터 자체의 개성보다는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개성을 줬습니다. 11대, 12대 닥터와 여행한 클라라 오스왈드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똑똑이 아가씨이지만 얼떨결에 닥터 인생을 바꿔 버렸죠. 여기서 포인트는 클라라가 아니었어도 그 스토리였다면 웬만한 동료들은 다 닥터 인생을 바꿨을 거라는 점입니다. 볼 때는 재밌는데, 돌이켜 보면 ‘어떤 캐릭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른 캐릭터와 치환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팬들은 어쩌면 평범한 캐릭터를 만들고 거기에 스토리라는 양념을 듬뿍 친 동료에 싫증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즉 ‘우주적 관점으로 중요한 동료 말고, 그 자체로 튀는 동료를 원해!’라고 할까요.
세 번째 추측 – 외계인 동료
사실 닥터의 첫 동반자는 (인간 기준으로) 외계인이었습니다. 자기 손녀인 수잔이었죠. 수잔이 닥터를 떠난 이후로도 닥터는 몇몇 외계인과 여행을 다녔습니다. 4대 닥터는 자기 소꿉친구 로마나, 알자리우스 행성에서 온 천재 소년 아드릭과 여행했고 5대 닥터는 트라켄 행성의 귀족 네사, 인간으로 위장한 외계인 비즈롤과 여행했습니다. 닥터와 여행 다닌 외계인은 많지 않았고 큰 인기를 끌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작가였으면 굳이 외계인을 동료로 고르는 모험을 하진 않겠죠.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기도 어렵고 각본이 두 배로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닥터뿐 아니라 동료의 개성까지 소개해 버린다면 보는 사람이 피곤해질 수도 있고요. 그러고 보니 닥터의 동료는 너무 개성이 있어도 곤란하고 너무 개성이 없어도 곤란하군요.
네 번째 추측 – 혼자 여행한다
닥터는 혼자 여행하느니 식빵에 핀 곰팡이와 여행할 겁니다. 닥터후 역사에서 닥터가 혼자 여행을 다닌 적은 손에 꼽기 때문입니다. 동료와 헤어지고 다음 동료를 만나기 전 몇 번 혼자 돌아다닌 적은 있지만 한 시즌이 넘게 혼자 여행한 적은 아마 없을 겁니다. 동료가 없다면 위에서 말한 동료의 드라마 속 장점이 다 사라지거든요. 시청자들은 누구에게 감정 이입을 할 것이며(특히 처음 닥터후를 본 사람이라면 더욱) 닥터는 누구한테 자기 지식을 자랑할 것이며 닥터는 누구와 케미를 나눌 것이며…
하지만 54년 만에 여성 닥터가 나왔으니 54년 만에 시즌 내내 혼자 여행하는 닥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나요? 닥터후도 2005년 부활한 이래 10시즌을 방송했으니 제작진도 ‘이제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할 “평범한” 등장인물이 굳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바뀌어버린 닥터를 시청자들에게 잘 각인시키기 위해 일부러 동료를 넣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만큼 호불호는 갈리겠지만요.
마치며
닥터는 인조인간이나 로봇 머리와 같이 산 적도 있습니다. 인조인간은 모형을 작동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얼마 되지 않아 자폭하든 각본으로 갔고, 로봇 머리는 일회용 출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능성도 무시 못 하죠. 객관적으로 따지면 현대 인간 남성이 가장 유력하지만 혹시 또 모르죠. 닥터후는 늘 새로운 것을 들고 나왔으니까요. 그 새로움이 닥터후가 장수방영 할 수 있던 비결이기도 했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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