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IrozGaizka(GettyImage)
8년 간 닥터후를 빛낸 스티븐 모팻은 이번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물러납니다. 다음으로 닥터후를 맡은 사람은 바로 크리스 칩널(Chris Chibnall)입니다. 모팻이야 총책임자가 아니던 2005년부터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들을 쓰면서 이름을 날렸고, 드라마 <셜록>마저 만들었기에 닥터후 책임자가 되기에 부족함과 어색함이 없었죠. 과연 칩널도 그럴까요? 칩널은 누구이며, 과연 2018년부터 그가 맡은 닥터후는 어떤 분위기와 소재로 돌아올까요?
역시 덕후
2005년 닥터후를 부활시키고 2009년까지 닥터후를 이끈 러셀 T 데이비스(일명 RTD)는 어릴 때부터 닥터후 마니아였고, 닥터후 이전에 만든 드라마나 시트콤에도 닥터후 관련 대사를 집어넣었습니다. 모팻도 유명한 닥터후 '덕후'고 1999년에는 닥터후 패러디 에피소드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역사가 깊은 닥터후다 보니 제작자나 배우 중에도 어릴 때 닥터후를 보고 팬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크리스 칩널도 역시 닥터후 광팬입니다. 4살 때부터 닥터후를 보고 어렸을 때에 닥터후 팬클럽 회원이던 칩널은 실제 1986년 BBC 시청자 초청 프로그램인 Open Air에 출연해서 닥터후에 관한 의견을 남겼습니다. 당시 닥터후는 시청률 저하로 폐지 직전까지 가던 상황이었습니다(실제로 1989년을 끝으로 종영합니다).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으니 10대 칩널을 볼 수 있습니다.
칩널은 작가로 데뷔해 여러 연극과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인지도를 모읍니다. 그러다 2005년, 러셀 T 데이비스의 초청을 받아 칩널은 닥터후의 스핀오프인 <토치우드>의 공동 제작자이자 작가 자리에 오릅니다. 토치우드 에피소드로 좋은 반응을 이끌내고 이어서 2007년부터 닥터후 에피소드도 간간이 집필하게 됩니다. 첫 닥터후 에피소드는 2007년 방송한 <42>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2010년에 방송한 실루리안 2부작 <The Hungry Earth/Cold Blood>도 칩널 작품입니다. 시즌 7에는 <Dinosaurs on a Spaceship>과 <The Power of Three>를 만들었습니다. 정식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시즌 7 방송 전에 나온 미니 에피소드 <Pond Life>도 집필했습니다.
칩널은 닥터후 말고도 중간중간 여러 드라마나 영화 각본을 썼습니다. 그러다 2013년 대박을 터뜨립니다. ITV 방송사에서 방영한 <브로드처치>는 엄청난 시청률과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벌어진 살인을 다룬 브로드처치는 미국에서도 리메이크되면서 그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모두 범인처럼 보이는 드라마'라는 별명답게 매화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브로드처치는 시즌 3로 종영했으며 칩널은 이후 닥터후의 키를 잡고 항해를 나설 예정입니다. 칩널이 닥터후를 맡은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최근 닥터후에 참여한 작가 중에는 제일 대박을 낸 작가라서 뽑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칩널 후(Chibnall Who)?
칩널이 조종간을 잡은 닥터후는 2018년부터 어떤 모습일까요? 칩널이 집필한 토치우드, 닥터후 에피소드를 보면 약간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먼저 칩널은 가족을 중시합니다. 닥터후에서 칩널은 로리 윌리엄스의 아버지인 브라이언 윌리엄스를 등장시켰고, 실루리안 2부작에서도 한가족이 사건에 휘말립니다.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아들과 티격대면서 특유의 고집스럽지만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지구가 침략당하는 와중에도 미소를 짓게 합니다. <42>에서는 마사 존스가 에피소드 내내 가족과 전화통화를 합니다. 우주선 안에 갇혀서 미스터리한 괴물에게 쫓기는 와중에 하는 통화는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긴박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칩널은 차가운 우주와 따뜻한 가족을 대비시켜서 차가운 쪽은 더 차갑게, 따뜻한 쪽은 더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닥터후도 가족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애인, 배우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동반자의 가족과 집을 강조할 확률이 높습니다. 도나 노블 이후로 동반자의 집이나 가족, 평소 생활이 닥터후에 자주 나오지 않았는데 내년부터는 다르길 기대합니다. 어쩌면 닥터의 가족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누가 되었든 예전보다는 조금 화면에 잡히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칩널 에피소드는 가족이 아니어도 늘 조연으로 시끌벅적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에피소드만큼 어두운 에피소드도 칩널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실루리안 2부작을 들 수 있습니다. 먼 옛날 지구에 거주하다가 땅 속에서 동면한 실루리안 종족. 인간의 굴착 실험에 실루리안이 깨어나자 두 종족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돕니다. 두 종족은 닥터의 중재로 겨우 진정하지만, 결국 편견과 이기심에 파국으로 치닫고 말죠.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칩널은 닥터후 이전에 토치우드 각본을 썼습니다. '어른을 위한 닥터후'답게 토치우드는 선정적인 장면과 잔인한 장면이 매 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토치우드 1시즌 2화는 칩널의 첫 토치우드 각본인데 여기서는 외계인에 조종당해 남자들을 성행위로 빨아들여 죽이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6화는 여행객들을 유인해 잔인하게 죽이는 시골 마을 이야기인데 이것도 칩널 구상입니다.
칩널 각본은 외계인이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42>는 외계행성의 영혼이 들어간 사람이 우주선을 돌아다녔습니다. <The Power of Three>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지만, 줄거리는 외계인보다는 닥터와 친구들에게 집중합니다. <Dinosaurs on a Spaceship>도 문제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닥대는 멤버들의 '케미'가 주된 내용입니다. 이런 '케미'는 잘 되면 차가운 우주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꼬이면 될 것도 안 되게 만들고 오히려 공포가 됩니다. 칩널은 이렇듯 문제보다는 관계를 보는 작가 같습니다.
걱정과 기대
사실 칩널이 쓴 닥터후 에피소드는 평가가 좋지 않습니다. '나쁘진 않은데 기억에 남지도 않는' 에피소드들로 기억합니다. 대박이 난 브로드처치도 마지막 3시즌은 그저 그런 점수를 얻었습니다. 과연 칩널이 어쩌다 한두 편이 아닌, 몇 년에 걸친 큰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여성 닥터로 구설수에 오른 닥터후를 넘겨받아서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솔직히 팬들은 불안합니다. 1989년에 벌어진 종영 사태를 다시 겪을까봐 떨고 있습니다. 닥터후 팬인 칩널도 닥터후가 오래 가기를 바라겠죠. 무슨 이야기, 무슨 소재, 무슨 캐릭터로 닥터후를 이끌지 기대와 걱정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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