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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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후 시즌1 톺아보기(시즌10 KBS방영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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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쇼를 본 적이 있습니까? 마술사가 방금까지 손에 든 동전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어안이 벙벙한 적 있습니까? 닥터 후를 처음 만난 날 저도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닥터후 예고편이었습니다. 2005, 제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일입니다.

 


 

그날도 저는 학원에 가기 전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KBS로 채널을 돌렸습니다. KBS는 당시 개편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 개편은 계절마다 하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개편이었습니다. 그 개편 덕분에 닥터 후를 만나게 되었거든요. 아무튼 KBS를 틀다가 저는 이상한 예고를 봅니다. 새로 시작하는 외국 드라마 예고였습니다. 당시는 미드전성시대였습니다. 공중파 방송인 SBS가 프리즌 브레이크를 더빙 방송하고 인터넷 좀 한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미드 한두 가지는 갖고 다시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래서 KBS도 외국 드라마를 수입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고편은 이상했습니다. 먼저 제목부터 엉뚱했죠. 닥터 후라니. 무슨 제목이 그렇습니까? 제목만 봐서는 무슨 드라마인지 감도 안 잡혔습니다. 실제로 처음엔 무슨 의학드라마인 줄 안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고를 보는데, 외계인과 괴물과 특수 효과라니. 제 뇌는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닥터 후라는 제목과 눈으로 들어온 장면이 일치하지 못해 뇌가 혼돈에 빠졌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습니다. 몇 번 더 KBS 예고편을 봐도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저는 일요일 밤까지 기다려서 첫 화를 봤습니다. , 닥터는 주인공 이름이구나. 닥터는 외계인인데 무슨 우주 경찰처럼 나쁜 외계인을 잡는구나. CSI의 외계인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나(당시 모든 외국 드라마는 CSI로 수렴했습니다). 괜찮네. 재밌겠어. 저는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평가는 1화 마지막에 닥터가 타디스 문을 열고 이거 시간 여행도 돼라고 말하자마자 바뀌었습니다. 호의에서 열광으로요. 저는 기뻐서 팔짝 뛰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시간여행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직접 1화 마지막에 시간여행을 말해 주다니! 마치 저를 위해 만든 드라마 아닙니까. 저는 전율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에피소드에서 과거와 미래로 모험을 떠날 수 있겠네! 갑자기 제 앞에 가능성의 초원이 펼쳐졌습니다.

 

 


1시즌을 돌아보며

 

닥터 후 시즌 1은 일요일 밤에 2편씩 방송했습니다. 저는 일요일 밤에 닥터 후를 보고 월요일에는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졸았습니다. 그때는 닥터후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KBS 홈페이지 문구를 보고 알았지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옛날에 방송한 드라마를 리메이크라도 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닥터후가 있는 줄도 몰랐던 저에게도 시즌 1은 보기 쉬웠습니다. 제작진도 예전에 종영한 드라마를 되살리면서 처음 보는 시청자들을 배려했겠죠.

 

초보자를 위한 배려는 또 있습니다. 달렉입니다. 달렉은 시즌 1 최종보스입니다. 그런데 시즌 중간에 달렉이 먼저 나옵니다. 달렉을 모르는 시청자는 마지막 화에 대뜸 달렉이 나와서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하면 머리를 긁적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마지막 화 전에 한번 등장시켜서 달렉을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1편만 함께 여행한 아담 미첼이라는 캐릭터는 클래식 닥터 후에서 몇 편만 같이 여행한 동반자를 연상시킵니다. 전반적으로 닥터 후 시즌1은 클래식 시즌의 요소들을 압축해 놓았습니다. 작가인 러셀 T 데이비스부터가 닥덕후이니 어련하겠습니까.

 

닥터후가 부활하고 12년이 지났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9대 닥터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9대 닥터는 한 시즌만 나오기도 했지만, 따뜻한 동네 아저씨 같아서 저도 좋아했습니다. 여기서 러셀의 재능이 드러납니다. 분명 1화에서는 닥터는 괴짜 아저씨였는데 마지막 화까지 오면 신비스러운 영웅처럼 보입니다. 달렉이 지구를 침공하자 저도 모르게 닥터를 마음으로 찾았죠. ‘닥터는 여행자지 코믹스에 나오는 영웅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시즌 1과 러셀 시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 저도 압니다. 시즌 1은 클래식 닥터 후와 많이 다릅니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오겠지만 시즌4에 들어서 조금씩 드라마 자체가 힘이 빠지고 고갈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도 재밌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닥덕후 러셀 T 데이비스가 시즌 1 에피소드 대부분을 집필했습니다. 다음 시즌부터는 다른 작가들에게 에피소드를 양보합니다만, 러셀이 닥터후 팬이란 걸 알고부터는 조금 재밌습니다. 러셀이 드라마를 부활시키고 벼르면서 닥터후 에피소드를 쓰는 모습이 상상하면요. 모팻과 비교당하면서 까이기도 많이 까이지만 러셀은 엄연히 2005년에 닥터후를 부활시킨 주인공입니다.

 

시즌 2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에서 러셀은 시즌 1이 여러 나라에서 방송되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더빙한 닥터가 자기가 생각한 그 목소리라면서 극찬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이정구 성우의 능글맞으면서 진지할 때는 진지한 더빙은 훌륭했습니다. KBS는 개편을 맞아 지구 반대편 공영 방송의 드라마를 수입해서 지금까지 방송하고 있습니다. 수입 담당자가 닥터 후를 알고 수입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냥 영국 BBC 방송에서 야심차게 만든 드라마고, 개편 시기와 맞물리게 방송한 드라마라서 수입했겠죠. 하지만 저를 월요일에 꾸벅꾸벅 졸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을 비영어권 국가 중에서는 닥터 후를 유별나게 사랑하는 나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닥터후 시즌 톺아보기'는 매주 금요일에 연재합니다

(아마도)

 

닥터후 시즌 2 톺아보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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