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션스쿨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학교였지만 종교색이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월요일에는 늘 기도 시간이 있었고, 몇 선생은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선생 하나가 생각납니다. 무슨 과목 담당인지는 잊었습니다. 중년이었고 머리에 가르마를 주고 다녔습니다. 솔직히 그 고등학교 선생들은 거의 신자가 아니었을 겁니다. 취직하려고 잠깐 믿는 척만 했겠죠. 그렇지만 그 가르마 선생은 진심이었습니다.
선생은 어느 날 책을 추천했습니다. ‘시크릿’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유명해서 여러분도 잘 알 겁니다. 바라는 것을 실감 나게 상상하면 곧 현실이 된다. 조금 사이비 같았지만, 저는 믿었습니다. 저는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좋은 PMP도 갖고 싶었고 재밌는 게임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엔 비전도 꿈도 없어서 바라는 것도 소박(?)했죠.
시크릿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다룬 책 중에서 제일 유명합니다. 시크릿 말고도 책이 있습니다. 이지성 작가가 쓴 꿈꾸는 다락방도 그 예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 다시 생각하면 정말 사이비 종교 같습니다. 믿으면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시크릿은 인기도서였습니다. 그때 교보문고에 가면 한 코너에 시크릿을 잔뜩 쌓아놓았죠. 청소년을 위한 시크릿도 나왔고, 시크릿 실전 가이드도 나왔습니다. 여러 출판사도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책을 냈습니다. 저도 한두 권 샀습니다.
정말 상상으로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을까요. 끌어당김의 법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긴 했을까요. 솔직히, 끌어당김의 법칙이 어느 정도는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말로 상상이 현실을 ‘끌어당긴’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소망을 상상하면 뇌에 메시지를 줍니다. ‘지금 나는 이걸 원해. 그러니 이걸 목표로 움직여.’ 자가 세뇌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에게 목표를 심으면 목표가 없을 때보다는 더 효율적이고 즐겁게 움직이기도 하겠죠. 목표를 머리에 넣고 살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사소한 기회를 잡기도 쉬울 거고요.
결국, 끌어당김의 법칙은 이름을 바꿔야 합니다. 소망을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본인이 쉽게 소망으로 가니까요.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로 간다고 광주를 ‘끌어당긴다’고 하진 않잖아요. 광주에 다다른다고 하지. 그러니 끌어당김의 법칙 대신 ‘다다름의 법칙’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삶은 고속도로보다 더 복잡하고 험난합니다. 인생에는 고속버스도 없고요. 그러니 다다름도 끌어당김 못지않게 힘들고, 따라서 다다름도 꽤 진지한 단어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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