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글쓰기와 닥터후, 엑셀, 통계학, 무료프로그램 배우기를 좋아하는 청년백수의 블로그
글쓰기 (2)
5화 - 당신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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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읽지도 않은 <장미의 이름>으로 입 털기.

 

  솔직히 말해서, 아직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두께도 두께거니와 초반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요. 에코는 자기 작품 초반을 일부러 어렵게 썼다고 합니다. 독자를 자기 작품에 적응시키려 했다죠. 어쨌든 장미의 이름은 명작이라 불립니다. 아름답고, 철저하고, 깊은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언젠가 그걸 느껴보겠죠.

 

  그런데 오늘 할 얘기는 이게 아닙니다. 오늘은 저를 포함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습니다.

 

  누구든 장미의 이름이나 장미의 이름 수준으로 좋은 작품을 쓰는 건 불가능합니다. 천재로 태어나고 열심히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움베르토 에코한테는 아주 불가능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기호와 해석을 주제로 삼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50년대부터 중세 철학으로 책을 썼으며, 기호학자로도 유명합니다. 등장인물 이름 일부는 이미 있는 소설에서 따왔고요. 남자라면 군대 시절을 놓고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할 수 있듯이, 에코가 연구로 밥 먹고 살던 주제를 소설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죠.

 

  네, 압니다. 에코 수준에 올라야 <장미의 이름>이 가능하겠죠. 에코가 그 소설을 쓰느라 얼마나 힘을 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손쉽게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글을 쓸 때 여러분 근처를 뒤질 수밖에. 분명 여러분만이 지닌 지식, 경험, 감정이 있습니다. 고향이 어디입니까? 어느 풍경을 보며 아침을 맞이했습니까? 살면서 무슨 실수를 했고 무슨 장난을 쳐봤습니까? 어느 과목을 좋아했습니까? 어느 과를 전공했고 어느 부대를 어느 보직으로 나왔습니까? 여러분만 아는 특이한 지인, 사건, 아르바이트가 있습니까? 저는 취사병으로 복무했고 대검찰청 연구소에서 거짓말탐지기 시험대상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아무리 에코라도 취사병으로 복무하거나 거짓말탐지기 아르바이트는 못 해봤겠죠?

 

  여기에 증거 하나를 더 첨부합니다. 얼마 전에 들은 TED 강의입니다. 비토리오 로레토라는 수학자의 강연입니다. 이 수학자는 한 분야가 새로워지는 과정을 수학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Adjacent possible(가깝고 가능한)'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우리한테는 멀고 먼 이야기지만, 뉴턴과 아인슈타인한테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만유인력과 상대성이론이 가깝고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두 과학자 모두 공부와 연구를 거듭해서 그 상태에 도달했다고 비토리오 로레토는 말합니다.

 

  결론. 걸작도 만든 당사자한테는 불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쓸 수 있습니다. 그 쓴 글이 악취가 나는 쓰레기일 수는 있지만, 아무튼 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생각만 하고 안 쓰는 게으름뱅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라도 쓰면 그 많은 작가(진)보다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계속 찌르고, 2보 후퇴하는 한이 있어도 1보씩 전진하면 글은 완성됩니다. 글이 술술 써질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천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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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T 데이비스의 글쓰기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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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후 소식이 갑자기 뚝 끊겨 버렸습니다. 소식이 없지는 않지만(예를 들어 타디스 내부 사진이 유출됨), 타이밍을 놓침+ 나머지는 작은 소식이라 생각해 전해드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소식을 긁어모아 전해드리겠습니다.



출처 : Tony Hassall (https://www.flickr.com/people/10175361@N00)



  닥터후는 2005년부터 두 작가가 이끌어 왔습니다. 러셀 T 데이비스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스티븐 모팻이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닥터후의 쇼러너이자 메인 작가로 활동했죠. 올해 13대 닥터, 시즌11 부터는 <브로드처치>로 실력을 뽐낸 크리스 칩널이 스토리를 이끌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자와 팬은 러셀보다는 모팻을 대화 주제로 삼는 것 같습니다. 모팻이 만드는 이야기가 독특하고, 떡밥 등으로 보는 사람을 잠깐도 가만히 두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런 걸까요? 러셀 T 데이비스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장면과 캐릭터가 화제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시즌 2 마지막화에서 닥터와 로즈가 헤어지는 장면을 들 수 있겠죠. 웃길 때는 확실히 웃기고 슬플 때는 확실히 슬픈 장면들을 잘 만듭니다. 줄거리를 잘 만지는 모팻에 비해 러셀은 감정을 잘 만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모팻이 전하는 글쓰기 비법을 소개한 적이 있죠. 지금까지 러셀 VS 모팻으로 싸우는 닥터후 팬을 위해서라도 러셀이 알려주는 글쓰기 비법도 말해야겠죠? 닥터후를 되살린 작가한테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요? 





첫째,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BBC Writer Room 인터뷰에서 자신한테 가장 쓸모가 많던 조언을 묻자, 러셀은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너무 진지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하루종일 진지할 필요가 없는 존재다. (중략) 젊은 시절 누군가 나한테 말했다. '말하듯 쓰지 그래?'. 내가 말을 좀 웃기게 했다. 그게 제일 좋은 조언이었다."


  '모팻 후'와 비교하면 '러셀 후'는 확실히 가벼웠고, 어린이 드라마를 지향했습니다. <Midnight>, <Turn Left>처럼 각 잡고 무섭고 어둡게 쓴 에피소드도 있지만 러셀이 쓴 닥터는 유머감각을 잃는 법이 없었습니다. 늘 가족, 꿈, 우정, 미소가 닥터후와 함께였습니다.


  '글은 종이 위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러셀이 남긴 말은 아니고, 다른 책에서 본 말입니다. 글은 총알이나 야구공처럼 쏴서 박는 것보다는 가볍게 종이 위에 떨어뜨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글쓰기는 괴롭습니다. 써야 할 것이 부족하거나 너무 많아서 쓸 수가 없습니다. 글에 자기 꿈과 생계가 달리면 집착과 강박이 생기겠죠. 그러나 글은 원래 진지하고 딱딱한 매체입니다. 그러니 글 속이라도 물렁물렁하고 달달한 것이 괜찮겠죠.




둘째, 인물과 줄거리는 하나다


  

  같은 인터뷰에서 신인 작가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묻자, 러셀은 '줄거리를 쓰지 않는 것과 캐릭터와 줄거리 중 하나만 파는 것'을 들었습니다.


최근에 커플을 다루는 각본을 읽었다. 커플은 환상적일 수 있었지만 각본은 커플을 제외한 전부를 다뤘다. 웃기는 어머니와 모자란 아버지, 재밌는 사건과 요상하고 극적인 일들이 일어났지만 중심 커플은 비어 있었다. 얼마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 놀랄 지경이다. 자기 각본이 ABC를 다룬다면서 실제로는 XYZ로 각본을 쓰는 것이다. (중략) 많은 작가가 빈 공간을 채우려 한다. 그들은 시선을 이리 저리 던진다. 그러나 각본의 중심, 각본의 중심인물과 말하고 싶은 중심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다른 실수는 자신을 캐릭터 작가 아니면 줄거리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캐릭터 작가'는 줄거리를 만들 필요 없다는 듯이 편하게 앉는다. (중략) 그저 캐릭터 작가 같은 건 없다. 당신이 자신을 캐릭터 작가라고 하면서 캐릭터를 쓴다면, 실제 쓰이는 건 술자리 잡담이 된다! 당신이 그저 캐릭터 작가라면 지루한 인물만 쓰게 된다. 줄거리와 캐릭터는 분리할 수 없다. 둘은 같은 것이고, 캐릭터가 지나갈 줄거리가 있을 때야 캐릭터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는 조연이거나 등장 시간이 적지만 시선을 끄는, '신 스틸러'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장면(scene)을 훔치는(steal) 캐릭터는 그러나, 훔칠 장면이 있어야 훔칠 수 있습니다. 중심 줄거리와 인물이 없다면 이들이 재밌을까요? 약방의 감초라지만 감초만 파는 약방은 없습니다.


  몇 시즌 보면 알게 되지만, 닥터후는 1회성 조연이 많이 나옵니다. 당연한 이치죠. 닥터후는 옴니버스 방식 드라마로, 닥터는 타디스를 타고 늘 새로운 곳으로 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까요. 닥터후 작가라면 늘 이런 1회성 캐릭터를, 그것도 잘 만들어야 할 겁니다. 그래도 닥터와 동반자, 타디스처럼 중심이 되는 것들을 놓쳐서는 안 되겠죠.







셋째, 쓰는 것이 답이다




  NME 인터뷰에서 각본가가 되고 싶지만 어디부터 시작할지 모르는 청춘에게 주고 싶은 조언을 묻자 러셀은 '이미 조언은 많이 있으니 시작하라'고 답했습니다.


까놓고 말해, 어디부터 시작할지 모른다면 무식한 것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라. 수백만 설명과 커리어가 있다. (중략) 솔직히, '어떻게 시작하죠?'는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생긴 질문이다. 지금 그 질문은 '난 시작하기 무서워'나 마찬가지다. 괜찮다. 글쓰기는 늘 무섭다. 무서움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중략) 쓰기 시작해라. 그런 다음 당연히 각본을 끝마쳐라. 그걸 마치면,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보다 앞서게 된다. 언제나 마지막에 건네주는 조언이 하나 있다. '네 라이벌은 언제나 너를 앞선다. 그러니 서둘러라.'





  여기에 BAFTA Guru 인터뷰에서도 러셀은 비슷한 조언을 남깁니다. 경력을 시작하는 사람한테 하고 싶은 조언을 묻자 러셀은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라 말하죠.



불평하고 생각하며 평생 돌아다닐 수도 있지만 실제로 앉아서 쓰는 것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자료를 조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엔 자리에 앉아 글을 써야죠. 상상하고 구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 앉아 글을 써야죠. 아는 게 많다? 상상력이 좋다?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글을 써 내야 합니다.


  다 구상하기까지 펜을 쥐지 않는 작가가 있습니다. 반면에 쓰면서 생각하는 작가도 있죠. 두 작가가 반반이라 치면 여러분이 쓰면서 생각이 날 가능성도 반이나 됩니다. 사실, 글에는 구조가 필요해서 마구 쓰다 보면 막히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조사와 구상만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내는 것도 그리 좋은 버릇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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