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주간 아무런 닥터후 게시물을 쓰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글을 쓰려니 심란했습니다. 계속 주저하다가 겨우 써 봅니다. 이번 주 주말에 2화 리뷰를 올릴 예정입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은 제가 처음 본 스타워즈였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때 MBC에서 더빙으로 틀어줬죠. 명절이었는지 그냥 '주말의 명화'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 공중파에서 영화를 잘 틀지 않고, 끽해야 명절에 옛다 하고 틀어주죠. 그 시절엔 넷플릭스와 셋톱박스가 없어서 영화를 보려면 비디오 가게에 가거나 언젠가 방송국이 방영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신문에서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과 특선 영화를 따로 정리해 조그마한 꼭지로 실었습니다. 결제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보는 오늘날엔 이럴 필요가 없어서 방송국도 영화를 잘 틀지 않습니다.
아무튼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은 1탄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네 번째 영화죠. 옛날 에피소드 4, 5, 6이 나왔고 세월이 지나 에피소드 1이 개봉한 겁니다. 어린 저는 헷갈렸죠. 영화를 순서대로 개봉하지 않는다고? 그럴 거면 숫자는 왜 그따위로 붙인 건데? 나중에야 '프리퀄', 즉 나중에 나온 작품이지만 스토리는 더 과거를 다루는 작품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닥터후 포스트에서 스타워즈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이번 시즌 11 첫화를 보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MBC에서 스타워즈 1을 본 저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특수효과와 음악, 전투신과 전쟁신. 포드 레이싱은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오비완 케노비와 그 얼굴 시뻘건 놈이 싸우는 장면도 재밌었습니다. 자자 빙크스는 약방의 감초였고, 파드메 공주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은 기발했습니다. 그땐 그랬다는 말입니다.
지금이야 스타워즈 7편을 다 봤고(<라스트 제다이>라뇨? 다시는 그 얘기 꺼내지 맙시다.), 에피소드 1을 비난하는 팬들의 목소리도 꽤 들었습니다. 팬이 외치는 아우성을 듣고 다시 에피소드 1을 보면 안 보이던 결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은 멋지지만 CGI가 조금 과다합니다. 사건이 큼직하게 터지는 것 같아도 돌이켜 보면 '서사'라고 부를 것이 적습니다. 의외로 자자 빙크스는 지금 봐도 괜찮습니다. 저한테는요. 팬들이야 이완용 보듯이 하지만. 또 소개하고 늘어놓기. 에피소드 2, 3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고는 하지만 너무 닦다가 끝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특히 에피소드 2에서 남녀가 풀밭에 앉아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펼치는 걸 보면 에피소드 1에서 쌓아올린 것이 무색해집니다).
저는 몇 주 전 두근대는 가슴으로 시즌 11을 봤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샜습니다. 기대했고 또 걱정했습니다. 새 가능성을 상상했고 낡은 우려가 떠올랐습니다. 스타워즈에 벌어진 참사가 닥터후에도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이런 걱정 자체가 드라마같은 미디어에는 독이 됩니다. 즐거우려고 보는 드라마를 조마조마 본다면 분위기를 한 단계 낮추고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걱정시키면서 '재밌는 시간이 옵니다'라고 말한다면 모순이겠죠.
그렇게 1화를 봤습니다. 60분은 조용히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도 조용했습니다. 평화를 찾았냐고요? 글쎄요. 그보다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해야겠죠. 나빴냐고요? 조금요. 좋았냐고요? 조금요. 뭐가 기억에 남았냐고요? 음. 그다지요.
1화 <The Woman Who Fell To Earth>는 거진 리부트 에피소드입니다. 출연진은 싸그리 바뀌었고, 제작진도 거의 물갈이되었죠. 새 쇼러너 크리스 칩널은 '닥터후를 안 본 친구가 있다면 이 시즌부터 같이 봐라'라 말했습니다. 그래서 팬들도 제작자와 닥터가 바뀐 에피소드와 이번 에피소드를 곧잘 비교합니다. 2005년 러셀 T 데이비스가 되살려낸 닥터후 첫 에피소드 <Rose>나 2010년 스티븐 모팻이 쇼러너를 넘겨받고 11대 닥터를 소개한 <The Eleventh Hour> 등. 그러나 이번 에피소드는 초심자를 잘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습니다. 닥터와 타디스 등 닥터후를 보는 데 필요한 설정을 친절히 설명하지 않았고, 닥터후가 새롭게 박차고 나아갈 에너지를 뿜어내지 못했습니다.
에피소드는 꽤나 조용합니다. 음악도 힘찬 오케스트라 대신 미스터리하고 음울한 선율로 바뀌었습니다. 머레이 골드가 떠난 자리가 확 드러납니다. 음악가가 바뀌어서 그렇게 되었다기보단 시즌 분위기를 낮게 잡아 그런 음악이 태어났겠지만, 아쉬운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닥터가 싸우는 대상도 지구멸망이 아니라 지구를 사냥터처럼 쓰는 평범한(?) 폭력주의 외계인입니다. 그러나 조용함과 지루함은 구분해야겠습니다. '이제 더 큰 비밀과 반전이 드러나는 건가?' 싶으면 그 비밀과 반전은 사라집니다. 아니, 원래 없던 것으로 밝혀집니다. 굳이 비슷한 예를 찾자면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고질라(2014)가 있습니다. 전 고질라가 신나게 도시를 박살내는 모습을 기대하며 극장에 갔는데, 예산이라는 벽에 부딪혔는지 터질 만하면 장면을 전환하더군요. 이번 닥터후 에피소드도 뭔가 더 크고 신나는 게 나오려나 싶은 순간마다 뻔하고 평평한 길을 택했습니다. 이 '당연'스러움은 너무 적나라해서 '당혹'스러울 정도입니다. 칩널은 '가족 드라마로 회귀하겠다'고 말했는데, 그래도 좀 너무합니다. 할머니가 손주 먹으라고 총각김치를 입에 넣었다 빼고 줍니다.
에피소드의 무리한 다이어트는 닥터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몰개성'을 꼬집고 싶습니다. 조디 휘태커는 잘 연기했지만, 그 캐릭터가 '닥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닥터는 그동안 여러 단어로 표현되었죠. 능글맞음, 엉뚱함, 속내를 알 수 없음, 외로움, 정의로움, 다가오는 폭풍, 외로운 여행자. 이번 13번째 닥터가 첫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저 자기 이름을 잊음, 조금 엉뚱함, 사건 해결을 좋아함 정도에 그칩니다. 막말로 드라마 제목이 닥터후가 아니고 닥터가 타디스, 소닉 스크류드라이버 같은 고유명사를 말하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공상과학 드라마 속 괴짜 수사관이라 해도 믿었을 겁니다. 기발한 해결법은 과정 없이 후반부 대사 몇 줄로 나타났고, 살신성인은 닥터가 아니라 그레이스가 보여줬습니다. 차차 보여줄 것, 흔히 말하는 '빌드업' 중이라는 핑계를 대기에는 제작진이 첫 화를 낭비했다고 생각합니다. 첫 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팬들도 잘 아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에피소드는 간신히 시즌이라는 승용차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줄거리는 전형적이지만 통했습니다. 악당은 흐름을 위해 씹히다 뱉어졌지만, 그래도 기억에는 남았습니다. 이빨 얼굴은 닭살을 돋게 했고요. 구조는 헐거워서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비바람을 막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혼자 하는 생각인데, 정말 닥터가 옷가게에서 자기 옷을 골라야 했나요? 괜찮지만, 갈 길이 멉니다.
총평 : 표현되지 않았지만 등장은 했고, 발자국은 없지만 지나가긴 했다.
평점 :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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