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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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후 시즌11 (1)
시즌11 2화 <The Ghost Monument>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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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화 감상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1>로 시작했습니다. 이번 2화 감상도 뻔뻔하게 추억의 영화를 하나 꺼내며 시작할까 합니다. 바로 <부시맨>입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다 마신 콜라병을 비행기 창밖으로 던지고, 병은 어느 아프리카 부족마을에 떨어집니다. 하늘이 준 선물이라 생각한 부족 사람들은 병을 이리저리 써 보지만, 병 때문에 싸움마저 벌어지고 맙니다. 결국 이 세상에 속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사람들은 주인공을 보내 그걸 세상 바깥에 버리게 합니다. 어린 시절 비디오로 본 저는 '사물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며 신기해했습니다. 영화 장면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에 주인공이 거대한 폭포로 병을 떨어뜨리는 장면 하나는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20살 제가 봤다면 물질주의 비판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평가했을 겁니다. 뭐, 실제로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닥터후 시즌 11 2화 <The Ghost Monument>는 어찌 보면 SF판 부시맨입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스페셜에서 휘리릭 사라진 타디스가 어느 행성에 깜빡이며 나타납니다. 닥터와 친구들이 타디스를 쫓아 도착했을 땐 이미 타디스는 '유령 기념비'라는 전설로 불립니다. 제작진은 이 아이디어를 후반 반전으로 써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령 기념비가 타디스라는 사실은 초반에 밝혀집니다. 팬덤도 에피소드 제목이 공개되자마자 유령 기념비가 타디스가 아닐까 추측했으니 말 다 했습니다. '유령 기념비가 알고 보니 타디스였다!'고 끝부분에 반전으로 나왔으면 엄청 실망했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닥터 일행이 온 곳은 일명 황폐(Desolation)라는 행성으로, 우주 레이스 마지막 코스입니다. 레이스 결승점이 유령 기념비다 보니 닥터 일행은 마지막 두 선수와 함께 행동하게 됩니다. 기발하지만, 좀 억지 같습니다. 타디스가 유령 기념비로 나타난 행성이 하필이면 레이스 마지막 행성이고, 하필이면 닥터 일행이 행성에 왔을 때 선수들이 행성에 도착한다니요. 따지고 보면 닥터와 타디스는 늘 난장판 한가운데에 착륙해서 더 난장판을 일으키긴 했지만, 고개가 갸우뚱한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줄거리는 두 줄기를 뻗으며 시작합니다. 하나는 우주 레이스, 다른 하나는 타디스 찾기. 타디스는 후반까지 나타나지 않으니, 우주 레이스가 어떻게 끝날지 관심을 두게 됩니다. 누가 이기게 될까? 그러나 여러분이 중간까지 보시면 슬슬 예측이 됩니다. 자꾸만 도움과 협력을 강조하는 대사나 상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공동 우승이 되죠. 설마 했는데 진짜 공동 우승이 나옵니다. A 아니면 B인 상황에서 새로운 C가 나오면 신선하고 '이렇게도 되는구나!' 하면서 무릎을 치게 하는데 이런 예측 가능한 공동 우승은 맥만 빠집니다. 닥터 일행한테는 레이스보다 타디스가 중요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줄거리 중심에는 레이스가 있었습니다. 중심을 조금 게으르게 생각했다고 말해 봅니다. 정말 그렇게 전개해야 했나요?



  이번에도 닥터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고요. 어느 행성 사람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9대 닥터 초반부 에피소드는 닥터를 설명하고 넘어갔습니다. 2화에서 나무 외계인이 닥터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닥터와 말하면서 간접적으로 '닥터는 미스터리하며, 외롭다'는 사실을 시청자한테 비췄습니다. 닥터 본인도 여러 상황에서 '~ 같은 역사적인 상황을 직접 겪어봤다' 같은 대사를 쳐서 보는 사람들이 '이 사람이 우주를 여행하는구나'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2화까지 봤는데도 닥터는 가치관만 드러내고 개인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개인이 아니라 가치만 표현하는 인물은 헐리우드식 정의감 터지는 주인공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단점만 잔뜩 떠올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러다 다시 보게 되었는데, 처음보다는 볼 만했습니다. 먼저 비주얼이 좋습니다. 2화는 제가 본 닥터후 중에 제일 드넓은 풍경과 자연을 보여줬습니다. 닥터후는 언제나 세트장과 공터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제작비를 많이 받았나 봅니다. 그리고 줄거리는 이번에도 삐걱대지만 굴러는 갑니다. 처음 볼 때는 새로운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해서 실망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 보면 의외로 시청자가 지루할 때쯤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환기 포인트가 나타납니다. 다만 첫화처럼 그 농도가 옅어서 처음 보면 환기인지 알아채기 힘들어서 문제죠.



  드디어 타디스가 나왔는데, 내부 디자인 역시 드라마를 닮아 차분하고 침침합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타디스 조종실을 감싼 그 꽃게다리는 별로입니다.



  오프닝 이야기를 안 했군요. 이전 오프닝은 '나아가는' 식이었는데 지금 오프닝은 '제자리에서 도는' 식입니다. 답답한 느낌을 주지만, 몽환적이고 디테일은 역대급입니다. 그런 좋은 디테일이라면 더 길게 뽑을수록 멋있을 텐데요. 짧아서 아쉽습니다.



총평 : 편안하지만 여전히 추진력이 모자라다

총점 :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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