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글쓰기와 닥터후, 엑셀, 통계학, 무료프로그램 배우기를 좋아하는 청년백수의 블로그
소설 (6)
[SF] 4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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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3차대전으로 부를 전쟁. 인류는 이 전쟁을 오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록하기엔 종이가 없고 기억하기엔 희망이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난 방공호를 나섰다. 어차피 죽는다면 바깥을 보고 싶었다. 밤마다 들리는 폭음, 멀리서 은은하게 오는 진동.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감각이 없었다. 죽더라도 고통스럽게 죽고 싶었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다 죽는 게 아니라.


  이유는 또 있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고 싶었다.





  '4분의 기적'.



  뉴스가 남아 있던 시절엔 그렇게 불렀다. 수십 년 전, 전쟁이 멈춘 적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도 마이애미에서도 카이로에서도 뭄바이에서도 오사카에서도. 단 4분. 4분 동안 세계는 평화로웠다. 어떤 병사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관자놀이에 총을 쐈고 방공호에 박힌 누구는 조용한 주위에 청력을 멀었다고 착각해 귀를 뜯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세계는 조용했고 그 4분은 확실히 일어났다는 것이다.


  폭격으로 많은 자료가 증발했다. 무슨 이유로 전쟁이 멈췄는지 아는 사람은 죽었다. 내가 사는, 아니 갇힌 방공호는 운이 좋아 자료가 보존되었다. 알 수 있는 사실은, 50km 떨어진 한 건물이 기적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건물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포탄이 만든 구덩이에, 콘크리트 조각과 철근, 탱크와 장갑차들로 가득했다. 유리조각과 뾰족한 쇠에 방호복이 스쳐 찢어졌다. 상관없었다. 오히려 기뻤다. 드디어 죽을 수 있었다.


  건물은 조그만했다. 무너진 문에 몸을 비집고 들어간다. 연구복을 입은 시체는 이미 미라화가 완료되었다. 이 건물은 연구소인 모양이다. 방마다 박살난 현미경과 플라스크가 흩뿌려져 있다. 지하로 내려간다. 기록이 살아있는 층은 지하 7층.


  컴퓨터를 찾아냈다. 방공호에서 가져온 전력공급장치를 연결한다. 컴퓨터를 켜고 기록을 추적한다. 기적의 4분. 그날의 기록.





  전쟁이 시작되기 전, 그들은 우주망원경을 쏘아올렸다. 지구상 가장 강력한 망원경. 우주 초기 모습까지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기술을 지닌 망원경이었다. 망원경은 몇 년 동안 우주 구석구석을 찍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날, 우주선이 결과를 냈다.


  조용한 우주. 그것이 망원경이 내린 결론이었다.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과 항성과 혜성이 있었다. 그러나 생명의 흔적은 없었다. 측정에 따르면, 우주에 생명을 지닌 행성은 지구뿐이었다.


  그랬다. 우주에 유일한 생명이 지구 위에만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전쟁을 멈추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손으로 우주 유일 생명을 파괴한다는 사실에 무기를 내려놓은 것이다.





  그럼 누가 전쟁을 재개했을까? 아마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4분의 기적을 깨뜨린 누군가도 기록에 남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컴퓨터를 뒤졌다.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4분의 기적을 깨뜨린 쪽도 연구소였다. 우주에 생명이 지구에만 있다는 결과를 낸지 4분 후, 망원경이 새로운 외계 문명의 징후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렇게 인류는 안심하고 다시 상대를 죽일 수 있었다.


  뭐야, 나는 호기심을 채웠다는 안도감에 드러누웠다. 이제 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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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쓰는 AI 셸리(Sh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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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엄청난 바둑실력을 보인 이래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조금 두려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직업을 대신한다는 무서운 가설이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회계사나 판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인공지능에 발맞춰서 사회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미래에 인공지능이 대부분 일을 한다면 직업이 없는 사람이 급속도로 증가하니까, 보편적 복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와중에도 예술계는 인공지능이 침범하지 못할 영역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색다른 것을 표현하는 창의성과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이 실제 일본 문예공모전 예선을 통과하고, 화가들의 화풍을 배워 사진을 특정 화풍으로 재생산하는 프로그램을 보니 인공지능의 능력이 만만치는 않나 봅니다.

 

 

 

 

 

  이번에 MIT에서 만든 셸리(Shelley)라는 인공지능은 소설, 그중에서도 공포 소설을 써내는 인공지능입니다. 셸리라는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작가 메리 셸리(1797-1851)에서 따 왔습니다. 셸리는 레딧 괴담 게시판(r/nosleep)을 딥 러닝으로 공부해 괴담을 트위터에 써내려갑니다. 셸리는 인간-AI 협력 공포 소설을 씁니다. 셸리가 트위터에 시작을 올리면 인간 유저가 이어서 쓰고, 다시 셸리가 잇습니다. 인간 유저가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메리 셸리

 

 

 

 

  여기 셸리와 인간이 쓴 괴담을 일부 소개합니다. 굵은 글씨가 셸리가 쓴 부분입니다.

 

사슬Chains

https://twitter.com/shelley_ai/status/924843325022187520

 

 나는 다시 숨을 쉬었다. 발목에 있는 사슬이 따끔거리고 그림자는 여전히 이쪽을 바라봤다. 숨죽인 울음과 일부 삶의 징후가 생겨났다. 알 수가 없었다. 난 발을 들어올렸다. 무언가 해야 했다. 무언가 봐야 했다. 그래야 했다. 찾아내려는 참이었다. 나는 여기서 벗어나려는 중이었다. 그것이 나를 잡게 둘 수는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용솟음치고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슬이! 사슬! 어떻게 여기서 달아나지? 나는 침착을 잃고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괴물은 저기서 나와 함께였다...

 

 

 

 

 

 

  셸리를 만든 제작자들은 작년 인공지능으로 사진을 무섭게 바꾸는 Nightmare Machine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한 바 있습니다. 사람 얼굴을 괴상하게 비틀고 풍경을 살풍경으로 바꾸는 인공지능이 신기합니다. 그러나 이번 셸리는 글을 쓴다는 점에서 더 신기하고 무서운 인공지능입니다.

 

 

셸리 사이트

http://shelley.ai/

셸리 트위터

https://twitter.com/shelley_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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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츤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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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평양. 일본에서 멀지 않은 한 섬나라. 일본과 가까운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섬나라의 지도자는 츤데레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국민들이 사랑한 그녀. 사랑했기에 그녀가 다음 지도자가 되어도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매주 국민들한테 츤데레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대강 이런 식이다.

 

국민 여러분! 수출사정이 안 좋아져서 세금을 올리기로 했어. , 절대 우리 경제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 뭘 보는 거야!”

 

군 복무 기간이 늘었다고? , 나랑 상관없잖아? 나는 지도자층이라 복무 의무가 없다고! , 그렇다고 내가 군인들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야! 뭘 자꾸 추측성 기사를 쓰는 거야, 이 나쁜 언론같으니! 변태!”

 

국민들은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의심이 싹텄다. 수출사정이 좋아졌는데 왜 세금이 다시 내려가지 않는가? 군인들 처우는 왜 개선되지 않는가? 추측성 기사인데 왜 증거가 쏟아지는가?

 

의원과 권력가들이 지도자를 찾아갔다. 그들은 해명을 원했다. 지도자는 차를 마시다가 그들이 들어오자 푸풋 뱉었다. 그러더니 침대에 드러누웠다.

 

변태변태변태! 남의 침실에 들어오다니! , 하지만 너희들이 원한다면 내가 해명을 해 줄 거라고! , 딱히 국민여론이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니깐

 

하지만 때는 늦었으니, 야당 당수는 순애보 히로인이었기 때문이다. 밀고 당기는 츤데레에 지친 국민들은 순애 당수를 밀어주었다. 결국 국회에서 높은 투표율로 지도자는 교체되었다. 지도자는 눈물을 그렁이며(절대 흘리지는 않았다. 지도자는 늘 그랬다. 글썽이되 흘리지 않기) 자택으로 떠났다.

 

그렇게 섬나라는 좋아졌을까? 그랬다. 군인들 처우는 개선되었고 세금은 절약을 통해 합리적으로 나아졌다. 실업률은 내려갔고 부동산 값도 올랐다. 하지만 국민들은 허전함을 느꼈다. 그렇다 무언가 빠진 것이다. 사람들은 빠진 것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정신과 의사들과 문화평론가들은 불행히도 그 빠진 것을 알아내고 책에 남겼다.

 

국민들은 츤데레를 그리워했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츤데레 지도자는 복권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순애가 왜 싫은가? 외신이 인터뷰한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뻔하잖아요. 저런 사람은 뒤가 구리겠죠. 나중에 어둠의 길로 빠지거나요. , 아무튼 저희가 지도자 시절이 좋다는 건 아니에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츤데레는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들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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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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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말하셨다.

세상은 해가 아니라 비로 완성된다.”

나는 그 의미를 전혀 몰랐다. 아버지도 내가 이해하리가 기대하지 않으셨다. 그저 매년 명절마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친척들한테 나를 소개했다. 내가 가업을 잇기 바라셨다.

 

나는 회계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시험문제는 지옥처럼 어려웠다. 실패인가? 내 지능은 수도권 대학으로 끝인가? 그때 아버지가 날 불렀다.

무엇보다 멋진 직업. 빛나는 대신 후려치는 직업.”

처음에는 무슨 무술가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시외 사무실로 나를 데려갔다. 비밀번호를 몇 번이나 입력하고 사람 키만큼 두꺼운 철문을 열어야 들어가는 곳. 햇빛이 비추지 않는 지하에 아버지의 직장이 있었다.

회계는 세상을 관리할 뿐, 발전시키지 못한단다. 흠집을 다듬는 사람은 결코 새 보석을 만들지 못해.”

아버지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옆 소파에 앉았다. 곧 아버지가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신이었다.

적어도 겉모습만 보면 그랬다.

 

“20년 전부터 시작했다. 고향 아는 형님 일을 물려받았지. 처음엔 놀랐어. 하지만 이건 누군가가 꼭 해야 하는 일이야.”

 

아버지는 자기의 업적을 자랑했다. 신발끈이 더 자주 풀리게 하기. 운동장에서 찬 공이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게 하기. 라면을 끓이는 사람이 가스불을 잊게 만들기. 버스카드를 찍으면 기계가 한 번은 다시 대주십시오라고 말하게 만들기. 우산 쇠살 사이에 머리카락 끼게 하기.

 

짜증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봤니?”

. 행복하겠죠.”

하지만 무덤덤하고 죽은 것 같겠지. 나무늘보처럼.”

 

아버지는 새 일을 시작하셨다. USB 꽂는 방향 헷갈리게 하기. 공인인증서 접속 오류내기. 인터넷에서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면 이미 만료된 페이지입니다를 띄우기.

 

애덤스는 이익을 보고자 하는 마음,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마음이 세상을 발전시킨다고 했단다. 하지만 아들아. 그들은 모두 틀렸다. 세상은 짜증으로 발전한단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 일을 물려주셨다. 몇 년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요즘 나는 꽤 보람찬 삶을 산다. 휴대폰은 절대 와이파이가 한 번에 잡히지 않게 하고 있다. 탄산음료는 어쩌다 한 번씩 아무 예고 없이 넘쳐흐르게 하고 있다. 특히 사격훈련에서 탄피 숨기는 일은 어찌나 재미있는지. 처음엔 아버지가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악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버지, 그리고 나는 신이 틀림없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어서 신을 짜증나게 했으니, 나도 인간들을 짜증나게 해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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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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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만 해도 귀신을 보는 사람은 적었다. 무당들, 심령술사들, 정신병자들.

하지만 그날부터 귀신은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해가 지고 밖이 어둑해지면 그들은 나타난다. 창백한 피부, 까뒤집힌 눈, 풀어헤친 머리칼. 첫날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경찰력과 군사력이 총동원되고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사람들은 문을 잠갔고 창문을 가렸다. 하지만 귀신들은 문과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공포의 연속이었다. 비명 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계엄령이 떨어지고 주식시장은 무너졌다. 이론물리학 책은 불탔고 민속신앙이 활개를 쳤다. 혼령을 부정하는 모든 종교는 무시당했고 무신론은 자취를 감췄다.

 

그들은 새벽 새가 울면 돌아갔다. 그리고 해가 지면 돌아왔다. 매일 이랬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적응했다. 귀신은 최소한 물리적인 힘은 없었다. 컵을 엎지르거나 사람을 넘어뜨리지는 못했다. 까뒤집힌 눈은 안 쳐다보면 그만이었다. 풀어헤친 머리칼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목욕을 하거나 섹스를 할 때 좀 불쾌하긴 했지만 그들은 프라이버시나 알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두자. 시민단체와 소수 정당이 외친 메시지는 급격히 퍼졌다. #투명하지않은공기일뿐. 무시하자. 무시하고 생업에 복귀하자. 기업연합과 보수정당도 열심히 외쳤다.

 

작년에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귀신을 차로 치었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차에 치인 건 귀신이 아니었다. 사람이었고 운전자의 전 여자친구였다. 운전자는 피해자가 귀신 놀이를 즐겼으며, 그날도 귀신인 척 했기에 그냥 페달을 밟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CCTV가 근처에 있었다. 모든 배심원과 판사는 여자가 귀신 흉내를 내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징역 15년으로 기억한다.

 

귀신을 반기는 집도 많았다. 우연히 자기 집에 들어온 귀신이 돌아가신 어머니인 집들. 눈이 까뒤집혔지만 죽은 가족을 본 그들은 행복했다. 가족, 친구, 남편, 부인, 자식이 그리운 사람들은 길을 나섰다. 생전 사진을 올리며 귀신을 찾았다. 아예 돈을 받고 원하는 귀신을 찾아 주는 서비스가 횡행했다. 귀신 사진을 찍어 올리고 귀신과 사진을 대조해서 찾는 앱을 개발한 개발자가 돈방석에 앉았다. 혹시 미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경찰은 실제로 미제 살인사건 피해자 귀신, 수배자 귀신을 찾아냈다. 하지만 귀신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왜 아무 말도 없을까? 눈길도 주지 않고 왜 돌아다니려고 할까?

 

지난 달 나는 이상한 제보를 받았다. 그 사람은 귀신이 자기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사람 집에 가서 며칠 묵었다. 정말 그랬다. 귀신은 이 집 근방에는 얼씬도 안 했다. 집주인은 불안했다. 귀신이 찾아오던 초기에는 기뻤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따로 노는 기분이 든다면서 몸서리쳤다.

 

조사 결과 귀신이 접근하지 않는 사람이 꽤 되었다. 나는 그들을 귀신 면역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불안해했다. 왕따 피해자들처럼. 사람들은 어느새 귀신을 바랐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귀신은 사람을 괴롭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누군가를 찾아가지 않는 것이 더 괴롭다고 생각하고 작전을 바꾼 것이 아닐까?


며칠 전부터 내 근처에도 귀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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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로 소설을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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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활동하시는 140자 소설(@gerecter2)님은 140자 이내로 소설을 써서 트윗에 올립니다. 인기가 붙었는지 지금까지 쓴 '소설'들을 종이책으로 인쇄해 판매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이 '소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설은 얼마나 길어야 소설로 인정받을까요? 신춘문예나 공모전에서는 단편소설 분량을 200자 원고지 80장으로 규정합니다. 장편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원고지 1000장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긴 쪽으로는 한계가 없어 보입니다. 재미만 있다면 1000장이든 10000장이든 상관이 없죠. 하지만 짧은 쪽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트위터라는 소셜 서비스가 등장할 때부터 우리는 예상했어야 했습니다. 트위터는 단지 일상을 전달하는, 즉 해변에 누운 자기 몸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사진만 올리는 서비스가 아님을. 비록 140자라는 한계가 있지만 엄연히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창구였음을. 메시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기업이나 정당 홍보, 자기PR, 요리법, 사자성어 등등. 물론 트위터도 엄연한 글이기 때문에, 문학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들은 트위터에 도전했습니다.


트위터가 종이책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트위터 그 자체입니다. 트위터는 빠릅니다. 종이책은 출판하고 독자에게 다가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트위터에 소설을 올리면 순식간에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독자가 서점에 들를 필요도 택배를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도대체 내 작품이 무슨 취급을 받는지 작가는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바로 반응이 올라오니까요. 어디서나 접속하고 어디서나 반응이 가능합니다. 트위터의 다른 특징은 매우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물론 소설은 현실이 아니라 허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트위터가 일상이라는 가정을 하기 때문에, 소설이 트위터로 전개되면 종이보다 더 긴장을 풀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실제 어느 외국 작가는 트위터 계정들을 만들고, 자기가 만든 등장인물들 계정으로 바꾼 다음에, 인물들을 조종하면서 일종의 '상황극', '혼자놀기'와 비슷한 문학을 만들어냈습니다.


140자가 소설을 쓰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확실히 140자 내에 기승전결과 갈등, 반전과 여운을 다 담기엔 역부족일 수 있습니다. 140자에 소설을 쓰려면 기승전결을 모두 포함시키거나, 모두 암시하거나, 아니면 모두 생략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짧은 글은 짧은 대로 매력적입니다. 다 설명하지 않아서 상상할 여지를 줍니다. 짧아서 읽는 부담도 덜하지만, 잘만 쓴다면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소설이 아니라 시라고 말할 겁니다. 누군가는 그저 호기심에 벌인 일이지, 진지한 소설이라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140자는 도전입니다. 확실히 성공하지 못하면 오히려 쓰는 자신이 다칠 겁니다. 요구사항도 많고 머리 싸맬 과제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140자, 그것도 소셜 네트워크에 등장한 소설들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이런 도전들이 그저 문학 주전부리로 끝날지 교보문고 진열대에 놓일지는 지금도 140자에 세계를 담으려는 작가들에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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