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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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25)
머도기닷! 스트리머 머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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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들은 시대구분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도 구분해 보겠다. 트위치 스트리머 머독의 시대는 둘로 나뉜다. 대정령과 관련 있던 시대와 선을 끊은 시대. 본인한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BJ 머독이란 대정령의 꼬리표 같은 존재였다. 마치 머독이 모아드라는 이름으로 우왁굳 밑에서 활동했을 때처럼. 그때도 나에게 모아드는 우왁굳 클럽 일원 중 하나였다.

 


 

머독이 모아드이던 시절은 모른다. 방송을 안 봤다. 개복어나 크헐헐 방송도 볼까 말까 했는데 모아드를 왜 본다는 말인가. 난 오로지 우왁굳만 봤다. 그래서 훗날 머독 방송을 봤을 때도 그 사람이 모아드였다는 점은 나중에 알았다. 듣기로는 방송에서 영화를 틀다가 정지를 먹었다나. 그래서 이름을 가상밴드 캐릭터에서 따와서 머독이라고 했다나. 머독의 과거는 나보다 나무위키가 잘 알 것이니 그리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처음으로 본 머독 영상은 머독을 잡아라였다. GTA5에서 시청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살아남는 방송이다. 사실 머독을 잡아라는 재미는 있지만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작년 여름, ‘머독을 잡아라녹방을 보던 도중 어머니가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호흡곤란이 머독 탓은 아니다. 나도 안다. 그래도 머독을 잡아라, 일명 머잡이야기만 나오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머잡은 머독의 방송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시청자들한테서 도망가면서 온갖 욕설과 조롱을 날리는 머독. 시청자한테 따라잡히자 거품을 물면서(비록 캠 화면은 없었지만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살려달라고 비는 머독. 다시 도망갈 기회를 잡고 잡아봐, 등신들아!’를 외치는 머독. 결국 폭발에 휘말려 죽으면서 목청껏 비명을 지르는 머독. 극도의 시끄러움 사이에 간간이 극도의 여유가 끼어들어간 머독. 그 에너지만은 다른 방송인보다 훨씬 대단하다.

 


대정령이 불미스러운 일로 방송을 그만두고(그리고 복귀하고) 나는 머독 방송으로 발길을 옮겼다. 처음 나는 머독을 대정령의 대용품으로 보았다. 머독은 대정령과 방송을 많이 진행했기 때문에. 식혜가 떨어지고 수정과를 마시듯이 나는 머독을 봤다. 근데 그거 아는가? 수정과가 더 맛있었다. 아프리카 엑소더스 과정에서 머독도 트위치로 집을 옮겼는데, 트위치 첫날 방송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머독을 대정령 대체재로 보고 있었구나. 수많은 도네이션 행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네이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머독은 독특한 도네이션 문화를 지니고 있다. 다른 방송에 나오는 도네이션이 트위치 전반에 유행하는 영상이거나 다른 스트리머들의 영상인 데 반해 머독 도네이션은 머독과 시청자들이 같이 웃고 떠드는 상영물에 가깝다. 예를 들어 슬램을 들 수 있다. 온갖 음악에 스페이스 잼이라는 힙합 곡을 합성해서 보는 사람을 낚는 영상이다. 일단 스트리머 한 명한테만 유행하는 낚시 영상이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거기다 시청자들은 아이돌마스터 음악에 슬램을 섞어 버린다. 스트리머 한 명의 밈을 시청자들이 직접 제작해서 틀어버리는 일은 흔치 않다. 만든다 해도 다른 스트리머 방에 가서 자기 스트리머를 소개하거나 재미를 주지, 스트리머 본인한테는 잘 틀지 않는다.

 

이는 머독이 팬 관리에 힘쓰는 것도 한몫 할 것이다. 머독 방송은 꽤나 젠틀한 편이다. 누구는 선비 같다고 하겠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완벽에 가깝다. 그리고 조폭이 되느니 선비가 낫다. 팬 카페 관리도 철저하다. 모든 회원은 의미 없는 수열로 닉네임을 정한다. 퍼스나콘이나 닉 언급은 금지된다. 친목질과 네임드화를 머독은 철저하게 막는다. 그러면서도 영상 도네이션이 나오면 빠지지 않고 감사 인사를 한다. 그 영상이 아이돌마스터 힐링이든, 슬램이 나오는 딜링이든.

 

머독은 아이돌마스터를 언제 잊을까? 처음 나는 머독의 아이돌마스터 사랑이 콘셉트라고 생각했다. 다른 스트리머는 아이돌마스터를 잠깐 하다가 관두거나 다 깨더라도 그런 게임이 있었지라고 되새기는 반면에 머독은 아예 다른 게임을 찾아 나서고 음반을 산다. 내 깃털 같은 의심은 머독이 50만원이 넘는 등신대를 척척 사면서 깨졌다. 저건 콘셉트일 수 없다. 머독이 아이돌마스터를 사랑하는 동안 나도 전염이 되어 버렸다. 타카네. 나는 시죠 타카네가 좋다. 그러나 머독이 발에 페티시가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조금 의구심이 든다.

 


나는 머독을 즐겨 본다. 심지어 우왁굳보다 더. 저녁이면 늘 팬카페에 들어가서 오방있인지 오방없인지 확인한다. 노가리는 안 보지만 영상도네는 본다. 지난 주 머독은 트위치에서 구독을 열었다. 몇 시간이 넘게 사람들은 구독을 해 댔다.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머독은 아직도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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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계의 화석, 우왁굳(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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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오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왁굳과 재회했다. 복학하기 시간이 남아 충실한 잉여가 된 후였다. 피시방을 들락거리며 재미있는 것을 찾던 나는 다시 우왁굳 방송국을 들렀다. 우왁굳은 어느새 돌아와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우왁굳은 GTA 4를 했는데 다시 만난 우왁굳은 GTA 5를 했다. 그 외에도 유람선에서 사람을 죽이는 '더 쉽'이라는 게임도 했는데, 우왁굳은 그 게임을 아주 사랑했다.

 

사람들을 불러서 멀티플레이를 하는 일도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같은 방송인보다는 시청자들을 데리고 게임을 즐겼다. 시대가 변해서 시청자들도 접속하기 편해진 탓이었을까. 같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방송도 더 재미있어졌다. 물론 과거 아프리카TV를 주름잡던 시절보다는 시청자가 적긴 했지만.

 

아프리카TV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왁굳은 두 방송국을 지니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하나, 다음팟에 하나. 우왁굳은 두 방송국에서 동시 송출로 방송했다. 그래서 방송화면에는 채팅창이 둘 있었다. 나는 다음팟으로 봤다. 아프리카TV 아이디는 내 이름을 그대로 영어로 친 단어였고, 예전 조마문이라는 사람 방송에 들어갔다가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읽은 이후 난 아프리카 로그인을 꺼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팟은 돈을 쏘기도 더 쉬웠다. 초등학생이나 지을 법한 '별풍선'이라는 호칭보다야 그냥 현금을 쏘는 게 낫지. 거기다 프로그램도 더 안정적이었고 화질도 더 좋았다.

 

다시 만난 우왁굳은 게임 전문 스트리머가 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우왁굳은 GTA와 피파만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신작 게임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입수해서 플레이했다. 별풍선을 거절하던 우왁굳은 다음팟에서 만 원을 쏘면 '1억 원!'이라고 외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우왁굳에게 방송은 취미가 아니었다. 이제 공익의 몸도 아니었다. 하나의 직업이었다.

 

 

새로운 모습인가?

 

우왁굳이 아프리카와 다음팟에 방송을 동시 송출하던 시절이 그립냐고? 반반이다. 그립기도 하고 좀 별로기도 하다. 우왁굳이 여러 게임을 한다는 사실은 반가웠지만 신작 게임만 나오면 며칠만에 엔딩을 보는 방송인은 많았다. 그때는 대도서관을 재밌게 보던 터라 나에겐 우왁굳을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사라진 셈이다. 꼴에 '왁굳 부심'을 부렸다고나 할까.

 

거기다 채팅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시 송출 자체는 좋았다. 두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을 두 배로 끌어모았으니까. 문제는 두 플랫폼 시청자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프리카 시청자는 다음팟 시청자를 팟수라고 불렀다. 다음팟 시청자는 아프리카 시청자를 원시인으로 보았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듯이 반 장난으로 놀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리카와 다음팟은 반 장난으로 시작해서 안 장난으로 끝나며 서로 흙탕물을 뿌려 댔다. 게다가 말끝마다 ''를 붙이는 인간들이 틈만 나면 튀어나왔다.

 

우왁굳은 정말 심한 경우가 아니면 채팅창을 관리하지 않았다. 채팅 자유방임주의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괜히 관리하려다가 욕 먹는 사람들도 많다. 우왁굳은 최소한 귀찮아서 손을 떼지 않았다. 막 나가는 시청자들도 우왁굳 방송의 매력이다. 나는 그러나 그 채팅창과 분위기 때문에 우왁굳을 이전처럼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선비라고 놀려도 좋다. 선비가 왜구보다는 낫지 않은가.

 

 

신대륙으로

 

어느 날부터 우왁굳은 동시 송출을 중단했다. 아프리카TV에서 중지를 시킨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도 아프리카로 이사를 갔다. 하는 수 없이 내 본명이 담긴 아이디로 로그인 하거나 아예 로그인을 안 했다. 그때 내 컴퓨터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프리카 플레이어를 실행하려면 몇 번이고 다시 켜야 했다.

 

그러더니 '그 사건'이 벌어졌다. 시노자키 아이가 쏘아올린 불꽃은 아프리카TV라는 대륙에 불길처럼 번졌다. 아프리카TV는 언젠가 터질 폭탄이었다. 우왁굳이 방송을 시작하던 때엔 신대륙이었지만, 이제는 구대륙이었다. 구대륙이 강대륙 코스프레를 하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방송인들은 플랫폼을 옮겼다. 이미 신대륙은 많았다. BJ도 따지고 보면 콩글리시였다. 다른 대륙이 없어서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을 뿐. 많은 이들은 BJ 대신 '유튜버''스트리머'가 되었다.

 

아프리카TV라는 구대륙의 조상님이자 1세대 스타인 우왁굳. 우왁굳이 아프리카 조상님답게 구대륙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우왁굳을 모른다. 그는 시청자에게 툭하면 '닥쳐'를 외치는 까칠 노장이었다. 더 좋은 플랫폼이 있는데 무엇을 마다하리? 우왁굳은 다른 방송인과 비슷한 시기에 트위치로 새 둥지를 틀었다. 시청자들은 원래 좋았어야 할 화질에 감탄하고, 설치가 필요 없는 방송화면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이사 기념으로 집주인에게 자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러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았지만, 우왁굳은 떠났다.

 

 

다시 시작이다

 

우왁굳은 지금도 방송을 하고 있다. 사실 2009년보다 시청자 수는 적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지닌 충성도는 하늘을 찌른다. 이제 우왁굳은 GTA를 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 같은 게임만 할 건가. 30이 넘은 지금도 우왁굳은 새 게임을 찾아 나선다. 스팀 라이브러리를 감시하면서 재밌어 보이는 신작을 줍는다. 시청자들한테 '똥믈리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네이버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게임을 하는 우왁굳은 아직 젊다. 우왁굳보다 나이 든 인터넷 방송인들은 많지만, 우왁굳보다 먼저 방송을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시청자들은 '우왁굳이 하는 게임'을 보지 않고 '게임을 하는 우왁굳'을 본다. 인터넷 서핑을 하고 게임을 쇼핑하는 화면만 내보내도 시청자들은 좋아 죽는다. 좋은 소식이다. 이제 신작을 섭렵하는 방송인은 차고 넘친다. 다 똑같은 게임만 하는 세계에선 개성이 무기다. 우왁굳은 개성이 있다. 그렇다고 콜라에 밥을 비벼 먹거나 삭발쇼를 벌이지도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그는 '자본각'을 안전한 범위에서 지킬 줄 안다.

 

  2017, 유튜버와 스트리머가 쏟아지고 있다. 이미 인터넷 방송은 레드 오션이다. 끼어들 틈이 없다. 조만간 거의 다 나가떨어질 것이다. 실러캔스가 맛이 없는 이유를 아는가? 실러캔스는 진화를 하지 않아서 몸이 크레파스처럼 기름만 차 있다고 한다. 우왁굳은 실러캔스와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진화하면서도 본래의 맛을 잃지 않는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GTA를 그만 두어도 시청자들은 계속 우왁굳을 찾는다. 심심하면 쳐들어가는 친구네 자취방처럼 우왁굳은 언제나 시청자들 옆에 남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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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계의 화석, 우왁굳(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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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남아프리카 연안을 항해하던 어선은 신기한 물고기를 낚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물고기였다. 이 물고기는 곧바로 세계에 대서특필되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본 적 없는 물고기는 사실 인류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던 물고기였기 때문이다. 바로 실러캔스. 실러캔스는 3억 7천 5백만 년 전부터 바닷속을 살아왔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었다. 참고로 맛은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이 자기소개 시간에 장래희망을 인터넷 방송인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왔다. 유튜브 방송인, 유튜버들 중에는 연봉이 몇 억인 사람이 있다. 인터넷 방송인이 말을 하면 학생들의 유행어가 되고 공중파 방송국이 인터넷 방송 콘셉트를 가져와서 프로그램을 만든다. 인터넷 방송이 뜨긴 떴나 보다. 지금 이 시기에 나는 인터넷 방송의 실러캔스를 생각한다. 인터넷 방송의 살아있는 화석, 바로 우왁굳이다.

 

 

아이스크림 트럭

 

나에게 우왁굳은 한 게임 영상으로 다가왔다. 영상에서 우왁굳이라는 사람은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경주했다. 아이스크림 트럭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더니 바퀴에서 불이 났다. 그 게임에서 바퀴에 난 불은 폭발을 의미했다. 운전자는 차를 멈출 타이밍을 찾았다. 가까스로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그러나 연쇄폭발로 숨을 거뒀다.

 

그 차가 아이스크림 트럭이 맞았나?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영상은 확실히 아이스크림 트럭이었다. 우왁굳은 그 영상에서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고가도로 옆을 벽 타듯이 돌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꾸만 애꾸킹 토네이도!’를 외쳤다. 지금이야 인터넷 방송인마다 자기만의 유행어나 대사가 있다. 그때는 그러나 인터넷 방송의 초창기인 2009년이었다. 방송으로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벌 수단조차 없었다. 인터넷 방송은 직업이 아니라 취미였다. 지금이야 이름처럼 원시적인 몰골을 보여주는 아프리카TV가 당시로서는 최첨단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지금 20대 후반에 접어든 내가 그 영상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분명 요즘 애들은 이걸 보면서 웃는구나.'하며 쓴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애였고, 그 영상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사람들과 모여서 멀티플레이를 하다니. 피시방에 가면 스타 무한맵, 워크 영웅 키우기나 하던 나에게 시끌벅적한 멀티플레이는 신세계였다. 우왁굳은 GTA 4를 주로 했는데, GTA 4를 돌리던 엑스박스 360부터 콘솔시장에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점에서 우왁굳은 행운아였다. 아무도 하지 않은 신세계를 개척해 버렸으니.

 

게임 영상이 나와서 말인데, 우왁굳이 노숙자를 쫓아가다가 죽이는 일명 우왁굳 노숙자동영상도 유명하다. 지금 보면 정말 재미없는 동영상이고 심지어 보기조차 어렵다. 너무 오래 전 영상이라서 우왁굳 본인조차 소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행히 유튜브에 시청자가 올린 영상이 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재미없다. 이 영상이 아프리카TV의 전설로 남았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게임 스트리머 지망생 여러분. 여러분은 8년 일찍 태어나셨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게임이나 기타 영상에서 노숙자가 보이면 회자되는 일명 '노숙자의 도망'

 

 

 

 

전설

 

우왁굳이라는 사람은 유명했다. 방송을 시작하는 순간 방이 꽉 찼다. 돈이 없는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계방을 들어갔다. 그 중계방도 꽉 찼다. 우왁굳이 방송을 켜면 중계방이 몇 개는 줄줄이 생겼다. 가히 당시 1위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진짜 1위였는지는 몰라도 우왁굳은 1위 할 자격이 있었다. 지금처럼 콘솔기기가 많지 않은 때에 최신기종인 엑스박스360을 들고, PC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GTA4, 그것도 다른 방송인과 시청자를 불러서 대규모 멀티 플레이어를 하지 않았는가. 섬 뺏기, C4로 터뜨리면서 싸우기, OX 퀴즈 등. GTA가 자유로운 게임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성우를 연상하게 만드는 굵고 멋있는 목소리도 매력 포인트였다. 우왁굳이 떴다 하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먹었고 아프리카 TV 운영자가 방송에 들어왔다. 그때 네이버에 우왁굳을 치면 우왁굳 얼굴이라면서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의 사진이 나왔다. 진짜인지는 불확실하다.

 

우왁굳은 대기업이었다. 같이 방송하는 방송인들을 하청업체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 방송인들은 대부분 지금도 방송한다. 개복어, 크헐헐, 노지, 천양, 모아드 등. 아프리카TV는 방송 클럽 제도를 운영했는데, 왁굳 클럽은 거대했고 유명했다. 하지만 우왁굳이 더 유명했다. 개복어 방송, 크헐헐 방송을 보다가도 우왁굳이 방송을 켜면 시청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우왁굳은 시청자들에게 별풍선을 쏘지 말라고 했다. ‘이건 돈벌이가 아니다같은 이유로 기억한다. 그때는 유튜브도 안 유명했으니 별풍선을 제외하면 인터넷 방송을 하며 돈을 벌 방법은 별풍선뿐이었다. 하지만 우왁굳은 별풍선을 거절했다. 청렴한 사람이라 별풍선을 거절했다면 거짓말이다. 확실한 사실은, 별풍선을 받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더럽게 많았다는 거다. 그 시청자들한테서 동전 하나씩만 받아도 외제차를 살 수 있었을 거다. 지금이야 자본이 낳은 괴물 소리를 듣지만 그때 우왁굳은 인기가 높은 괴물이었다.

 

우왁굳은 공익이기도 했다. 실제 당시 아프리카TV에는 방송을 하던 공익이 많았다. 공익은 출퇴근이 가능하고 취미 핑계로 집안 눈치를 보지 않는 인터넷 방송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우왁굳이 별풍선을 받지 않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왁굳을 아직 잘 모르나 보다. 모르는 점은 또 하나 있다. 나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

 

 

 

일본으로

 

 

우왁굳은 공익을 끝내고 방송도 끝냈다. 그러고는 기독교에 빠졌다. 그러고는 일본으로 떠났다. 나는 당황했다. 물론 우왁굳이 GTA4 현실모드를 방송하고 시도 때도 없이 피파를 하던 즈음에는 좀 질리긴 했다. 그래서 좀 떠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허무했다. 우왁굳은 말했다. ‘논리를 떠난 영역에서 종교를 이해하게 되었다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일본이야 유학 갈 수 있다. 가지 말란 법 없다. 그래도 황당했다.

 

나는 며칠을 습관처럼 우왁굳 방송국에 들렀다. 회색 빈 화면과 방송 준비 이라는 문구를 클릭했다. 그리고 점점 우왁굳을 잊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바쁜 날을 보냈다. 인터넷 방송은 유치해 보였다. 서서히 여자들이 옷을 벗으며 별풍선을 받았다. 우왁굳 클럽원들의 방송을 좀 보긴 했다. 하지만 우왁굳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따지고 보면 우왁굳 방송 콘텐츠는 다른 방송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다는 정도? 다만 우왁굳에게는 타 BJ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냥 그뿐이다. 이게 무슨 자동차 사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방송은 콘텐츠와 매력이 같은 비중을 지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프리카TV를 잊고 살았다. MT를 가고 기말고사를 보고 군대에 들어갔다 나왔다. 세월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우왁굳을 만나게 되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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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쉽게쓰는 7단계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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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유익했다.’

 

사실 이 두 문장이면 충분한데 왜 학교에서는 독후감을 길게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이라도 재밌다면 모를까 교과서에나 나오는 지루하고 뻔한 책을 읽고 어떻게 독후감을 쓰라는 말입니까.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습니다.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것만큼 쓰기 싫은 글을 억지로 쓰는 것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먹기 싫은 음식도 양념을 치거나 튀기거나 구우면 먹을 만하듯이 억지로 쓰는 글도 약간의 노하우만 있으면 쓸 만해집니다. 백지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연습만 하면 1시간에 A4 두세 장짜리 독후감을 쓸 수 있습니다. A4 두세 장이면 200자 원고지 20장을 넘는 양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시간을 더 투자하면 몇 십 장짜리도 거뜬합니다. 덜 힘들고 더 빠른 독후감 비결을 알아봅시다.

 

준비물

독후감을 쓸 책

종이

 

 

0단계 : 부담 내려놓기

 

막힐수록 돌아가라. 글은 요가와 같습니다. 땀이 나도록 뛰는 달리기가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물 흐르듯 흘러가는 작업입니다. 어깨와 손에 힘을 주면 줄수록 글은 나오지 않습니다. 친구와 카페에 앉아서 커피 몇 잔 마시면서 하는 대화를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나올 겁니다. 그만큼 편하고 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긴장하면 막힙니다.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싸는것에 가깝습니다.

 

독후감 하면 생각나는 질문들 :

 

이 책의 주제는?

이 책이 주는 감명은?

이 책의 교훈은?

이 등장인물/소품이 상징하는 것은?

 

다 잊으시기 바랍니다.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독후감을 써야지, 문학평론을 쓰면 안 됩니다.

 

 

1단계 : 물꼬를 트기

 

여러분은 방금 책을 다 읽으셨습니다. 이제 책을 떠올려 보세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오히려 사소할수록 좋습니다. 표지가 초록색이었다든가, 등장인물이 짜증났다든가, 맞춤법이 틀렸다든가, 삽화를 잘 그렸다든가,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든가, 읽다가 너무 졸렸다든가. 그저 편하게, 생각이 나면 생각나는 대로 떠올리세요. 도중에 딴 생각이 나도 물리치지 마세요. 대부분 그런 딴 생각도 다 이유가 있어서 난 겁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리처드 세인트 존의 <돈없고 빽없고 운이 나빠도 리치(RICH)>라는 책입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했는데, 경제·경영 코너에 있으면서도 샛노란 표지가 눈에 띄어서 집게 되었습니다. 책 모양도 다른 책과 비율이 좀 달랐습니다. 넘겨보니 많은 그림과 표들이 파란색이어서 시원시원했죠.

 

물론 여기서 생각한 내용은 독후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에 시동을 걸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생각은 생각나라!’한다고 바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예열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동차처럼 시동을 걸고 엔진을 조금 덥힌 다음에야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동조차 걸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조금만 머리를 굴려 봅시다. 생각이 나면 바로 종이에 적습니다. 하지만 노트 필기 하듯이 똑바로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큼직큼직 쓰셔도 되고 그림으로 그려도 됩니다. 딴 생각이 나면 딴 생각도 한 번 적어 봅시다. 나중에 쓰일 수도 있습니다.

 

 

2단계 : 한 문장 찾기

 

어느 정도 책을 떠올렸으면 독후감에 필요한 단 한 문장을 써야 합니다. 단 한 문장이면 됩니다. 기억에 남는 책 문장도 되고 책을 읽으면서 느낀 문장도 됩니다. 책을 집자마자, 독후감 과제를 받았을 때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도 괜찮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의 감상도 괜찮습니다. 아까 적은 느낌에서 따 와도 좋고요.

 

이 책 괜찮네.

이 책 후졌어.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이 재미없는 책으로 무슨 독후감을 쓰라는 거야.

스토리가 너무 억지인데.

 

1단계가 생각의 물꼬를 텄다면, 2단계는 생각의 씨앗을 심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더 깊고 넓게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리치>를 읽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성공하는 비법은 단순할지도 몰라. 하지만 지키지는 쉬울까?’ 그 책은 성공한 사람들을 다수 인터뷰한 다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정리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3단계 : 쏟아내기

 

3단계는 이전 단계보다는 조금 힘듭니다. 하지만 전혀 힘 안 드는 방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2단계에서 한 문장을 쓰셨다면, 이제는 부연 설명을 하셔야 합니다. , 어째서 그 문장인지 털어놔야 합니다.

 

) ‘이 소설은 스토리가 엉망이네.’

주인공이 바보 같아.

등장인물이 그런 식으로 생각할 것 같지 않은데

고증이 어긋났어.

 

논리적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싸는겁니다. 그저 마음에서 쏟아내야 됩니다.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소리 내어 말하면 좋습니다. 일부러 느낌을 말해 보세요.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근거는 나중에 찾고, 틀렸다면 나중에 고치면 됩니다. 공책에 번호를 1부터 100까지 쓴 다음 모든 느낌과 생각을 100번까지 적어 보세요. 10번을 넘기고 막힌다면 역시 아무거나 쓰세요. 딴 생각, 상관없는 생각, 다른 주제에 대한 생각도 좋습니다. 아까 생각을 자동차에 비유했죠? 자동차는 도로를 따라서 규정 속도를 지키면서 달려야 되지만, 생각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온갖 방향으로 온갖 속도로 달려도 됩니다. 물론 나중에 정리해야죠.

(2단계와 3단계는 순서를 바꿔도 좋습니다. 생각을 잔뜩 쏟아낸 다음 거기서 하나를 골라서 글을 써 나가는 것이죠.)

 

 

4단계 : 설계하기

 

어느 정도 내용이 모였으면 그 내용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모든 글에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대부분 짧게 표현이 가능합니다. 주제는 나무의 줄기이고, 모든 가지는 이 줄기에서 뻗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리치> 독후감의 주제를 성공비결은 뻔하지만, 그만큼 지키기 어렵다로 정했습니다. 주제를 정한 다음에는 아까 생각한 내용들로 부가 내용을 채웁니다. ‘성공비결은 뻔하지만, 그만큼 지키기 어렵다. 사실 그 내용들은 어느 책에서나 볼 만한 내용들이 아닌가?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했다니 신뢰가 가기는 한다. ,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가 진짜 성공한 이유를 몰라서 왠지 그럴듯한 대답을 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일단 믿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 돈도 좀 많이 벌고, 조용한 집에서 사는 게 내 꿈이야.’

글은 크게 서론-본론-결론으로 구성됩니다. 서론은 일단 내버려두고, 본론을 채웁니다. 독후감의 결론은 이래야겠다조금 잘못된 것 같다’, ‘앞으로가 기대된다등 자신의 의지나 지적, 기대 등을 나타냅니다. 이 역시 지금은 채울 필요 없습니다.

 

 

5단계 : 제목, 서론, 결론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제목도 글의 일부입니다. 제목 잘 짓는 것도 실력이죠. 제목은 너무 쉽게 지어도 됩니다. ‘~를 읽고 나서도 진부하지만 엄연한 제목이죠. 색다른 것이 좋다면 아까 1단계에서 쓴 딴 생각에서 가져와도 됩니다. 아니면 지금 바로 옆에 있는 물건을 살펴보세요. 그 다음 그 물건이나 딴 생각과 독후감을 연결 짓는 겁니다. 지금 제 옆에는 카페에서 산 커피 잔이 있습니다. 이것과 <리치>를 연결해 봅시다. ‘성공의 비결커피 잔이라. 사람들은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십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손에 커피를 든 사람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죠. <리치>에서 소개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들은 대부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늘 인내하고, 새로운 생각을 고민하고, 열정을 쏟으라고 하죠. 그럼 제목은 점심 후 커피처럼 성공하기로 하고, 서론은 커피처럼 흔하지만 결국 당연하고 본질적인 성공 비결이라고 쓰면 좋겠네요.

 

결론부는 수미상관법을 쓰면 멋져 보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결판을 지어야죠. 서론부와 제목을 마지막에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결론에는 나는 커피를 늘 마실 것이지만, 성공 비결은 안 지킬지 모른다.’수많은 카페가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러나 성공 비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같은 문장을 써 보겠습니다.

 

 

6단계 : 진짜로 쓰기

 

여러분이 장편소설이나 책 한 권짜리 독후감을 쓰지 않는 이상, 너무 자세한 설계는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글은 설계와 실제가 다른 경우가 흔합니다. ‘이렇게 쓰면 되겠지?’ 하고 덤벼들었는데 써 보니 내용이 부족하거나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쓰다가 더 좋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싸는것을 설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실제 유명 작가들도 이성보다는 직감과 순발력을 믿고 쓰는 분들이 많고, 그렇게 써야 더 좋은 글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 작가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글이 그런 특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종이를 펼쳐놓고, 옆에는 설계를 가져다놓고 써 보세요. 웬만하면 멈추지 마세요. 쓰다가 삼천포에 빠지지만 않게 집중하시고, 그 외에는 글이 흘러가게 두세요. 초반에는 책을 대충 설명해 보세요. 누가 썼고, 대충 어떤 내용이고. 설계보다는 자세히 써 보세요. 바로 앞 문장을 설명해주는 사례, 부가 설명을 써 보세요. 전 문장과 연결이 되도록 써 보세요. 쓰다가 막히면 5단계처럼 바로 옆에 있는 사물이나 딴 생각을 넣고 버무려 보세요. 대학교 2학년 때 독일 시인 릴케 강의를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문학은 아가리다.’ 독후감은 논문이 아니니 여러분의 아가리를 발휘해 보세요.

 

 

7단계 : 고치기

 

다 썼으면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닦아야죠. 맞춤법에 어긋나는 곳은 없는지, 어느 문단이 비정상적으로 크거나 작은지(크다면 잘라내고 작다면 조금 궁리해서 다른 내용을 쓰면 됩니다), 제목이 좀 생뚱맞은지. 이 방법은 일단 쓰고 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고치는 데에 노력을 좀 줘야 됩니다. 실제로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데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 번 원고를 쓰면 죽어라고 고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과장 좀 섞어서 잘 고치는 사람이 잘 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빨리 독후감을 제출하고 놀아야 하니까 엇나간 부분만 고칩시다. 단어 단위로, 글자 단위로 고치는 일은 하루키 씨가 하게 두고요.

 

 

 

 이 7단계는 많이 부족한 방법이고 실제 작가님들은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조금 연습하고 개량한다면 더 길고 좋은 글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글을 잘 쓰고 싶은 설찬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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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게임> 포켓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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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구아나를 키웠습니다. 암수 한 쌍을 사들였는데 쌀쌀한 가을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죠. 생각해 보면 쓰다듬을 수 있는 동물을 키울 걸 그랬습니다. 적어도 키우는 저는 쓸쓸하지 않았을 텐데요. 아니면 튼튼한 동물을 키우는 건 어떨까요? 친구와 열심히 키운 다음 친구네 동물과 싸우게 시키는 겁니다.

 

미친 소리 같죠. 하지만 90년대부터는 미친 소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어린이들의 로망이 되었죠. 바로 포켓몬스터 말입니다. 두 사람이 싸웁니다. 싸우는 무기는 주먹이 아닙니다. 주머니에 넣은 공이죠. 공을 던지면 그 공에서 괴생명체가 뛰어나옵니다. 이들이 주머니 속의 괴물, 포켓몬스터입니다. 포켓몬스터, 일명 포켓몬은 서로 자신만의 기술을 써 가면서 다른 포켓몬들과 싸우죠. 포켓몬마다 다양한 특성과 기술이 있어서 머리를 쓰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서 불꽃 타입 포켓몬은 물 기술에 약합니다. 그러니 적에게 불꽃 포켓몬이 많다면 물을 쓰는 포켓몬으로 상대해야겠죠. 접근은 쉽되 마스터는 어렵게 하라. 포켓몬은 이 게임계의 지상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포켓몬은 대부분 휴대용 오락기로 나오죠. 요즘은 닌텐도 3DS로 나온다는군요. 하지만 저희 세대 포켓몬은 오락기가 아니라 컴퓨터에서 나왔습니다. 때는 초등학생 무렵, 컴퓨터 시간이었습니다. 컴퓨터 실습이 다 그렇듯이 학생들은 과제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선생 말을 들으면 다행이죠. 모두 선생이 강의에 정신이 팔린 사이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모니터가 참 불편했어요. 그냥 책상 위에 올리면 되는데 왜 굳이 책상 속에 넣었을까요? 그 덕분에 우리는 고개를 거북이처럼 숙여서 컴퓨터를 했습니다. 모니터도 웬 투명 유리 너머로 봐야 했고요. 시력이 나빠질까 봐 그딴 식으로 만든 것 같은데, 척추측만증과 목 디스크는 안중에도 없었나 봅니다. 아무튼 학교 컴퓨터를 켠 다음 딴 짓을 벌였습니다. 딴 짓은 학교 컴퓨터 시간 속 정언명령이었거든요. 누구는 지뢰를 찾고 누구는 벅스뮤직에서 공짜로 음악을 듣고 누구는 스타크래프트를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은 포켓몬을 켰습니다. 처음엔 포켓몬을 실행하는 방법조차 미스터리였습니다. 아는 형, 아는 친구한테 묻고 물어서 겨우 작동했죠. 그때는 에뮬레이터가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에뮬레이터뿐 아니라 게임보이도 생소하던 시기였습니다. 롬파일을 에뮬레이터에 놓고 실행하면, 메인 화면이 뜹니다. 오박사가 나와서 주저리주저리 설명합니다. 하지만 뭐 알아듣습니까? 당시 학교 컴퓨터실 포켓몬은 대부분 일본어였습니다. 영어도 잘 모르는 판에 일본어 문자는 웬 꼬부랑글씨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눌렀습니다. 마구 눌렀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태초마을에 집이 넷인 건 천운이었습니다. 집이 열 채만 되었어도 어디에 들어가나 헤맸을 테니까요. 오박사네 연구실에 가서 시작 포켓몬을 고르고 나옵니다. 그리고 떠납니다. 풀밭에 들어가서 좀 걸으면 다른 포켓몬이 뛰쳐나옵니다. 싸웁니다. 기술 특성이고 PP고 몰랐습니다. 그냥 스페이스바를 연타했죠. 오로지 단 하나, 숫자로 보이는 레벨만이 우리에게는 포켓몬 강함의 척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담임이 자유시간을 주면 컴퓨터실은 스페이스바 두들기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저장하는 법은 당연히 몰랐습니다. 컴퓨터실에 들어갈 때마다 늘 처음이었죠. 오박사네 집에 가서 포켓몬을 고르고, 풀밭을 돌아다니다 싸우고. 진행이라곤 없었지만 우리는 그런 플레이조차 입을 헤 벌리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인터넷의 힘을 빌렸습니다. 그나마 영문판을 알게 되면서 일이 풀렸죠. 최소한 YES, NO, SAVE 정도는 알았으니까요. 야후 코리아나 다음에 검색하면(그때 네이버는 지식인 서비스를 갓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포켓몬 공략 사이트가 많았습니다. 그 루트대로 갔죠. 치트키도 알아내서 잘 썼습니다. 치트 메뉴를 켜고 이상한 8진법인지 16진법 숫자를 입력하면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그 치트로 이상한 사탕을 마구 얻었죠. 이상한 사탕을 포켓몬에게 먹이면 포켓몬은 레벨이 올랐습니다. 너무 올려서 그만 포켓몬이 제 말을 듣지 않았죠. 말은 듣지 않아도 아주 강력해서 모든 체육관을 무리 없이 깼습니다. 결국 저는 스토리는 하나도 즐기지 않은 셈이죠. 지금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그래도 레드 버전을 처음으로 클리어한 날에는 여운이 깊었습니다. 제가 가진 포켓몬 목록이 좌르륵 나오더니 마지막에는 제 캐릭터가 떡하니 기록되었죠.

 

포켓몬은 RPG입니다. 엄연히 스토리를 음미하는 게임이죠. 따라서 제가 포켓몬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식은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저는 치트를 써서 모든 난관을 공짜로 돌파했으니까요. 영어를 이해한 것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포켓몬스터 골드 버전을 본 순간 제 마음속 불꽃은 살아났습니다. 포켓몬에 후속작이 있다니! 신기하죠. 어린 시절에는 후속작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으니. 아무튼 골드도 치트를 쓰고 공략을 보면서 진행했습니다. 포켓몬 숫자는 더욱 늘었죠. 게임은 흑백시절과 작별하고 컬러를 탑재했습니다. 이제 물 포켓몬이 쏘는 물대포가 파란색이고 불 포켓몬이 날리는 불꽃이 빨간색이었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골드버전을 깨고 나면 전작 지방에 다시 갈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추억 돋습니까. 배를 타고 전작 배경인 관동지방에 도착했을 때의 그 추억이란. 물론 용량 문제로 모든 관동지방을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면 아주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골드 마지막의 마지막은 전작 주인공과 벌이는 전투죠. “…….” 다음 시작되는 전투. 그리고 똑같이 …….”를 남기며 사라지는 전작 주인공.

 

훗날 골드가 한글로 나오면서(합법 한글화는 아니지만) 스토리를 더 잘 알았습니다. 아 참, 골드 버전을 이야기하려면 밀탱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아마 세 번째 체육관 관장이 밀탱크를 꺼냈을 겁니다. 밀탱크는 너무 강력했습니다. 때려도 아파하지 않았고 한 번 부딪치면 이쪽 포켓몬들이 나가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위급할 때 혼자서 체력까지 채워 버렸죠. 아마 골드 하면서 거기가 제일 힘들었을 겁니다. 물론 치트를 쓰지 않는 한에서 말이죠. 치트를 쓰지 않으면 ‘XX는 눈앞이 깜깜해졌다!’를 자주 보게 될 겁니다.

 

포켓몬, 포켓몬, 포켓몬! 그때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 소통량 부족을 고려하면 포켓몬의 인기는 지금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에 못지않았습니다. SBS에서 포켓몬 애니메이션을 방송했죠. 모든 애들이 봤을 겁니다. 포켓몬 빵도 나왔죠. 빵마다 포켓몬 스티커가 들었는데 아이들은 아버지 세대가 우표와 병뚜껑을 모으듯 스티커를 모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스티커를 물물교환하면서 시장경제의 발달을 간접 체험했죠. 아이들이 스티커만 빼고 빵은 버리는 바람에 평일 저녁 뉴스에서 보도까지 했습니다. 아쉬운 쪽은 스티커가 아니라 포켓몬을 방영한 SBS였습니다. SBS는 늘 포켓몬을 후반에 끊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어린이들은 지우가 리그에서 이기는지 지는지를 알 수 없었죠.

 

사실 지금도 포켓몬을 하고 싶습니다. 일부 마니아들처럼 기술표를 줄줄이 외우거나 개체치인지 뭔지를 알려고 데이터를 뜯는 짓은 못 하겠습니다. 그래도 포켓몬은 볼 때마다 흥미를 돋웁니다. 아까 말했지만 포켓몬은 RPG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줄거리는 단순하죠. 포켓몬을 키워서, 이기고, 모험을 떠나고, 모든 지방을 돌아보면서 성숙해져라. RPG의 가치가 모험과 여행에 있다면 포켓몬은 거의 완벽한 RPG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포켓몬은 기술적으로도 발달했죠. 포켓몬들이 삼차원 그래픽이 되어 움직이고, 터치펜으로 포켓몬을 만지고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과 포켓몬 대전을 벌이니까요. 다만 닌텐도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방이 넓은 것도 좋고 다양한 포켓몬이 나오는 것도 좋지만, 정말 여행과 모험을 떠난다는 기분이 들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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