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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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25)
끌어당김의 법칙? - 1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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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미션스쿨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학교였지만 종교색이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월요일에는 늘 기도 시간이 있었고, 몇 선생은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선생 하나가 생각납니다. 무슨 과목 담당인지는 잊었습니다. 중년이었고 머리에 가르마를 주고 다녔습니다. 솔직히 그 고등학교 선생들은 거의 신자가 아니었을 겁니다. 취직하려고 잠깐 믿는 척만 했겠죠. 그렇지만 그 가르마 선생은 진심이었습니다.

 




선생은 어느 날 책을 추천했습니다. ‘시크릿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유명해서 여러분도 잘 알 겁니다. 바라는 것을 실감 나게 상상하면 곧 현실이 된다. 조금 사이비 같았지만, 저는 믿었습니다. 저는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좋은 PMP도 갖고 싶었고 재밌는 게임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엔 비전도 꿈도 없어서 바라는 것도 소박(?)했죠.

 


시크릿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다룬 책 중에서 제일 유명합니다. 시크릿 말고도 책이 있습니다. 이지성 작가가 쓴 꿈꾸는 다락방도 그 예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 다시 생각하면 정말 사이비 종교 같습니다. 믿으면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시크릿은 인기도서였습니다. 그때 교보문고에 가면 한 코너에 시크릿을 잔뜩 쌓아놓았죠. 청소년을 위한 시크릿도 나왔고, 시크릿 실전 가이드도 나왔습니다. 여러 출판사도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책을 냈습니다. 저도 한두 권 샀습니다.

 




정말 상상으로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을까요. 끌어당김의 법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긴 했을까요. 솔직히, 끌어당김의 법칙이 어느 정도는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말로 상상이 현실을 끌어당긴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소망을 상상하면 뇌에 메시지를 줍니다. ‘지금 나는 이걸 원해. 그러니 이걸 목표로 움직여.’ 자가 세뇌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에게 목표를 심으면 목표가 없을 때보다는 더 효율적이고 즐겁게 움직이기도 하겠죠. 목표를 머리에 넣고 살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사소한 기회를 잡기도 쉬울 거고요.

 


  결국, 끌어당김의 법칙은 이름을 바꿔야 합니다. 소망을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본인이 쉽게 소망으로 가니까요.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로 간다고 광주를 끌어당긴다고 하진 않잖아요. 광주에 다다른다고 하지. 그러니 끌어당김의 법칙 대신 다다름의 법칙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삶은 고속도로보다 더 복잡하고 험난합니다. 인생에는 고속버스도 없고요. 그러니 다다름도 끌어당김 못지않게 힘들고, 따라서 다다름도 꽤 진지한 단어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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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와 평론 - 개인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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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이언맨>이 나올 때만 해도 다른 영화 주인공들이 뭉친다는 개념은 떠올리기 힘들었습니다. 이윽고 <인크레더블 헐크>가 개봉하고,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이 <어벤저스>라는 영화에 동반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 신기해하던 생각이 납니다. 슈퍼히어로는 배트맨, 슈퍼맨 등 DC코믹스 출신이 한국에서 지명도가 높았고 마블 쪽으로는 헐크가 고작이어서 더 신선했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십 년 전 아이언맨을 하는 한국인이 코믹스 팬 빼고 몇이나 되었을까요?

 

  저는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캡틴 아메리카>(한국에서는 퍼스트 어벤저로 개봉했죠)를 보고 어벤저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어벤저스는 추석 특집 영화로 봤습니다. 역시 재밌더군요. <윈터 솔저>와 <토르 : 다크 월드>는 케이블 채널로 봤습니다. <어벤저스 2>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놓치고 나니 뭐랄까, 조금 버거워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 본 마블 영화가 하나둘 쌓이고 지금은 어벤저스 3 예고편까지 나와 버렸습니다. 세계관이 이어지는 영화의 단점 중 하나가, 나중 영화를 잘 이해하려면 처음 영화를 봐야 한다는 거죠. 영화에 '진도'가 생겨서 따라잡아야 하는 겁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아무튼 이번엔 <블랙 팬서>가 개봉했습니다. <블랙 팬서>는 와칸다라는 가상의 왕국의 왕이 직접 히어로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산에서 촬영하기도 해서 한국 관객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 외적으로 인터넷에서는 <블랙 팬서>에 대한 평론이 화제입니다.

 

  <블랙 팬서>는 말씀드렸다시피 와칸다라는 왕국이 배경입니다. 와칸다는 아프리카에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주인공은 물론 흑인이고 주, 조연 중에도 흑인이 많다고 합니다. 포스터만 보아도 거의 흑인들입니다. 문제는 시네21이라는 영화잡지 평론입니다. 평론가들이 <블랙 팬서>에 한 줄 논평을 달았는데, 대부분 '흑인이 해냈다'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이 화를 냈습니다. 영화가 재미있는지보다 오로지 피부색만 놓고 영화를 평가했다는 점이 네티즌들의 심기를 거슬렀습니다.

 

  사람들은 왜 영화 평론을 볼까요? 일단 제일 직접적인 목적은 판단을 위한 정보겠죠. 새로 개봉한 영화가 재미있는지, 배우가 연기는 잘 하는지, 음악과 미술은 훌륭한지, 감동적인지, 무서운지, 액션이 스릴 넘치는지, 반전이 기가 막힌지, 스태프롤이 다 올라가고 보너스 장면은 있는지. 저를 포함해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전에 평론이나 별점을 보고 볼지 말지 고민합니다. 영화표는 공짜가 아니며, 설령 공짜라 해도 2시간에 달하는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에 질이 낮은 영화를 보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블랙 팬서>는 엄연히 오락 영화입니다. 관객들은 <블랙 팬서>가 얼마나 오락을 가져다줄지 궁금해하며 평론을 보았을 테죠. 그런데 재밌는지 아닌지는 온데간데없고 흑인이라는 소재에만 매달리니 짜증이 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먼저 평론가들을 변명하자면, 사회적인 눈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본인이 그렇게 보자는데 누가 탓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주인공이 영화에서 눈을 많이 깜빡일수록 좋은 영화다. 왜냐하면 나는 눈 깜박임에 페티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평론가가 있다고 해서 여러분이 뭐라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나중에 저 사람 앞에서는 눈을 부릅떠야지' 하면 끝입니다. 오락영화 속 재미를 발굴해서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메시지만 발굴하는 사람도 있을 법합니다. 이건 불법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행동도 아닙니다.

 

  영화 속 메시지나 사회적 상징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닐까요? 그것도 아닐 겁니다. <블랙 팬서>가 흑인의 권리나 사회상을 담은 예술영화, 다큐멘터리라면 저런 평론도 이해가 갑니다. 오락영화라 해도 감동적인 메시지를 주입해서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령 터미네이터 2는 어떤가요? 터미네이터2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오락영화입니다. 그리고 여러 번 보다 보면(세상에. 터미네이터2를 어떻게 한 번만 볼 수 있겠습니까) 그 속에서 '인간성이란 뭘까.'라든가 '과연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까.' 같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관객들이 1차로 원하는 것은 재미입니다. 재미가 없다면 아무리 웅장한 메시지라도 무슨 소용일까요? 재미가 없으면 돈을 못 벌고 영화가 망하게 됩니다. 영화는 한두 푼 드는 장사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더욱 재미있게 찍으려 노력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술영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관객들을 붙잡을 수 있도록 편집하고, 음악과 효과음을 삽입합니다. 세상에는 재미없는 영화라도 메시지만 좋다면 참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 안 그런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영화 배급사와 제작사는 자선단체가 아니고, 배우와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짜증 나는 점은(오락에 대한 평가가 없음을 제외하고) 바로 평론에서 느껴지는 평론가들의 태도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영화 평론가들의 이미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자꾸만 사회적으로 보는 시선 때문입니다. 영화의 재미, 퀄리티를 전부 제치고 한 가지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잣대가 도마 위로 오르고 있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자꾸 '여자가 많은 분량을 차지했는가'만으로 영화를 평가합니다.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암수감별사로 불러야 할 지경입니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주말엔 무슨 영화로 여가를 보낼까 인터넷을 들어갔는데 이런 평론을 보면 참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런 평론가들은 말합니다. '영화는 메시지를 담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회적인 편견이나 고정관념들이 영화에 담기므로 지적할 수밖에는 없다'고 말입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확실히 옛날 영화 중에는 인종, 성별, 국가에 대한 편견이 담긴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평론가들은 단순히 '부재'나 '존재'만으로도 영화를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 여자가 나오지 않으면(부재) 여성을 차별하는 영화라고 합니다. 영화에 웃긴 여자가 나오면(존재) 여성을 깔보는 영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엔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배경이나 웃긴 여자가 충분히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는 가상을 다루므로 설령 실존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차별일까요? 그리고 지금 평론가들이 차별이라고 내세우는 증거들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요?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평가를 평가하는 것도 자유인데, 어째서 그런 평론가들은 자신을 향한 비난도 '차별'이나 '혐오'로 규정할까요.

 

  영화가 클리셰를 깨고 실험적이라고 해서 꼭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까요? 실험은 말 그대로 실험이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한 실험도 가상하다면서 높게 평가해야 할까요? 영화에 들어간 '의도'도 평가 대상일까요? 적어도 많은 관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욕하는 평론가들은, 늘 '다양성'이니 '진보'니 중얼대면서 재미는 없는데 의도가 좋은 영화들을 추켜세웁니다. 그런데 관객은 의도를 보려고 티켓과 팝콘을 사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의도는 좋은데 재미가 없다면,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한테는 진지하게 다른 미디어(책이나 만화 등)를 권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일부 평론가들은 마치 '가르치려는' 태도로 평론을 씁니다. 우리는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을 뿐인데 자꾸만 철학책과 사회과학책을 인용합니다. 자신에게 덤비는 관객들은 어린아이 취급합니다. '이럴 거면 영화평론을 쓰지 말고 '영화로 배우는 사회'를 쓰라고!'라 외치고 싶습니다.

 


 

 

  본론도 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평론가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여가가 아닌 프로파간다로 보는 시각과 '메시지가 좋으면 좋은 영화야'라고 말하는 데서 풍겨지는 선민의식은 요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평론가들은 많은 영화를 보고 아는 것도 많습니다. '알수록 보인다'고 하죠. 그러나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감히 예상합니다. '메시지'와 '차별'을 말하는 평론가들 마음속에는 아직 '재미회로'가 있다고. 그들도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 분명 재미를 느끼겠죠. 머리로는 '저건 차별이야'라고 말하면서 클라이막스에서 주먹을 쥐고 영화에 맞춰 흥분하는 평론가를 상상하면 재미있어집니다. 그럼 그 '재미회로'를 막는 '저항'은 무엇일까요? 그건 제가 건드릴 분야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 '저항'을 치우지 않는다면 평론가들이 내리는 평론은 '도체'에서 '부도체'가 될 겁니다. 관객들이 평론을 외면하게 되겠죠. 영화잡지와 영화사이트가 그 사실을 아는 순간 평론가들은 '차별'보다는 수입을 걱정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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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명사]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

 

 

 

 

오후 두 시.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식곤증과 싸우는 시각. 그러나 트수들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어느 시간에든 방송을 볼 수 있다. 특히 두 시쯤 되어 방송을 켜는 한 여성 스트리머 방송은 트수들에게 인기가 많다. 닉네임부터 시청자들에게 질문하는 듯한 그녀는 바로 소풍왔니.

 

소풍왔니도 많은 트위치 스트리머처럼 아프리카TV를 탈출해 성공적으로 트위치에 자리잡은 방송인이다. 소풍왔니는 아프리카 시절부터 신인상을 받는 등,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젊은 혈기를 보여주었다. 다만 본인은 신인상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동영상을 매우 싫어하며, 스트리머가 싫어하는 건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시청자들은 그 영상을 매우 좋아한다.

 

다만 소풍왔니는 리그 오브 레전드 방송으로 유명세를 얻은 BJ(이제 이 단어를 쓰기가 어색하다)여서 나와는 관련이 없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흥미가 없는 나는 소풍왔니가 옷 안 벗고 욕 안 하는, 조금 희귀한 여성 BJ로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풍왔니가 게임하면서 보여준 발랄한 에너지와 백수스러운 인상은 감명이 깊었다. 그 덕분에 트위치를 떠돌던 내가, 혹시나 하며 소풍왔니를 다시 찾았는지도 모른다.

 

 

 

 

 

소풍왔니는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의 주인공처럼 주황색 모포를 머리에 덮고 게임한다. 방음부스 안에서 어머님이 조리해준 식사(시청자들은 사식이라 부른다)를 받아먹는다. 누누라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고양이가 스트리머보다 귀엽다. 세상 스트리머를 게임 잘 하는 맛에 보는 사람게임 못 하는 맛에 보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소풍왔니는 후자에 속한다. 줄거리와 게임 포인트를 잘 못 잡는 데다 피지컬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실력 덕분에 오늘도 트수들은 그녀의 방송을 보며 메모장을 켠다(욕을 하다간 트러블에 휘말릴 수 있으니 메모장에 대신 비난한다는 뜻. 설명충 같다고? 모든 인터넷 인구가 우리처럼 트위치 당직사관이 아니다).

 

 

그런데 소풍왔니에게는 부족한 게임실력을 메꾸다 못해 상회하는 매력이 있다. 모델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천사처럼 성품이 곱지도 않은 소풍왔니는, 어찌 보면 순수한 마음과 리액션으로 게임을 이어나간다. 트수들은 소풍왔니가 하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소풍왔니를 보는 셈이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이 점은 정말 칭찬하고 싶다. 작가들도 ‘A가 쓴 B라는 작품보다는 ‘B를 쓴 A’로 남고 싶으니까. 소풍왔니가 어떤 게임을 할 때만 트수들이 온다면 트수들은 그 게임 팬이지 소풍왔니 팬이 아니다. 그러나 트수들은 소풍왔니가 무슨 게임을 하든 넘어지고 깨지는 모습에 박수를 친다(물론 메모장도 켠다).

 

 

 

 

VR 공포게임을 하다 눈물콧물 다 흘리는 소풍왔니는 놀려먹기 좋은 조카나 사촌 같다. 또 진지한 게임을 하며 눈을 크게 뜨는 소풍왔니는 한두 살 어린 후배 같다. 또 어쩌다 게임을 캐리해서 신나하는 소풍왔니는 막역한 친구 같다. 어느 쪽이든 트수들은 좋아한다. 집은커녕 방도 제대로 못 나가는 나 같은 트수들에게 소풍왔니는 말 그대로 모니터 속에서나마 상쾌한 야외를 체험시켜주는 소풍 같은 존재다.

 

P.S. 옥자 합방은 언제 할까? 그때 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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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쓰는 AI 셸리(Sh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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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엄청난 바둑실력을 보인 이래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조금 두려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직업을 대신한다는 무서운 가설이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회계사나 판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인공지능에 발맞춰서 사회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미래에 인공지능이 대부분 일을 한다면 직업이 없는 사람이 급속도로 증가하니까, 보편적 복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와중에도 예술계는 인공지능이 침범하지 못할 영역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색다른 것을 표현하는 창의성과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이 실제 일본 문예공모전 예선을 통과하고, 화가들의 화풍을 배워 사진을 특정 화풍으로 재생산하는 프로그램을 보니 인공지능의 능력이 만만치는 않나 봅니다.

 

 

 

 

 

  이번에 MIT에서 만든 셸리(Shelley)라는 인공지능은 소설, 그중에서도 공포 소설을 써내는 인공지능입니다. 셸리라는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작가 메리 셸리(1797-1851)에서 따 왔습니다. 셸리는 레딧 괴담 게시판(r/nosleep)을 딥 러닝으로 공부해 괴담을 트위터에 써내려갑니다. 셸리는 인간-AI 협력 공포 소설을 씁니다. 셸리가 트위터에 시작을 올리면 인간 유저가 이어서 쓰고, 다시 셸리가 잇습니다. 인간 유저가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메리 셸리

 

 

 

 

  여기 셸리와 인간이 쓴 괴담을 일부 소개합니다. 굵은 글씨가 셸리가 쓴 부분입니다.

 

사슬Chains

https://twitter.com/shelley_ai/status/924843325022187520

 

 나는 다시 숨을 쉬었다. 발목에 있는 사슬이 따끔거리고 그림자는 여전히 이쪽을 바라봤다. 숨죽인 울음과 일부 삶의 징후가 생겨났다. 알 수가 없었다. 난 발을 들어올렸다. 무언가 해야 했다. 무언가 봐야 했다. 그래야 했다. 찾아내려는 참이었다. 나는 여기서 벗어나려는 중이었다. 그것이 나를 잡게 둘 수는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용솟음치고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슬이! 사슬! 어떻게 여기서 달아나지? 나는 침착을 잃고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괴물은 저기서 나와 함께였다...

 

 

 

 

 

 

  셸리를 만든 제작자들은 작년 인공지능으로 사진을 무섭게 바꾸는 Nightmare Machine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한 바 있습니다. 사람 얼굴을 괴상하게 비틀고 풍경을 살풍경으로 바꾸는 인공지능이 신기합니다. 그러나 이번 셸리는 글을 쓴다는 점에서 더 신기하고 무서운 인공지능입니다.

 

 

셸리 사이트

http://shelley.ai/

셸리 트위터

https://twitter.com/shelley_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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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테이프를 떼면 X선이 방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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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os Camara, Juan Escobar and Seth Putterman

 

 

 

  투명하고 가는 스카치 테이프. 사실 스카치 테이프라는 명칭은 3M의 고유 상표인데요. 포크레인처럼 상표가 고유명사처럼 굳은 사례입니다. 적당히 끈적해서 학교 미술실이나 사무실에서 자주 쓰는 스카치 테이프. 그런데 테이프를 떼면 X선이 방출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사실 테이프를 뜯으면 실제로 약한 빛이 발생합니다. 이를 마찰루미네선스Triboluminescence 효과라고 하는데요. 결정을 마찰시키면 순간 결정 사이에 전하가 발생하고, 그것이 빛에너지 형태로 방출되는 현상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설탕 조각을 부수다가 빛이 나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8년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이 스카치 테이프를 진공에서 초당 3cm 속도로 떼어보니, X선이 방출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얼마나 X선이 많이 방출되었는지, 손가락 뼈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스카치 테이프에 있는 접착물질은 결정보다는 액체에 가까운 물질이라서, 정작 이 현상을 발견한 과학자들도 정확한 원인을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진공상태에서 뗀 스카치 테이프에서 발견된 현상이니까, 사무실에서 테이프를 뜯으면서 방사선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사이트

 

https://www.technologyreview.com/s/411085/x-rays-made-with-scotch-tape/

http://www.nature.com/news/2008/081022/full/news.2008.11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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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율을 법으로 정할 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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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눈 값인 원주율. 그리스어 문자 파이(Pi)라고 불리며, 규칙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가 특징이다. 원주율의 값은 약 3.141592...이며 기억력 천재들은 몇 천 자를 외우고 우리는 그냥 3.14로 외운다. 3.14라는 값 때문에 3월 14일을 원주율의 날로 정하지만 기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학자가 3.141592...라고 하는 반면 공학자는 3이라고 줄여 말한다는 농담이 있다. 이론가는 정확성을 공학자는 실용성을 본다는 점을 풍자한 농담이다. 그러나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원주율을 법으로, 그것도 부정확하게 정하려는 해프닝이 있었다.

 


  의사이자 아마추어 수학자인 에드윈 굿윈은 원을 면적을 유지한 채 정사각형으로 바꾸는 법을 연구 중이었다. 아마도 성공했다고 믿은 걸까. 1897년 굿윈은 법안을 인디애나 주 하원의원인 테일러 레코드에게 보낸다. 의원은 법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246호 법안이 제출되었다.

 

  246호 법안은 사실 원주율의 값을 못박으려는 법안이 아니라, 원의 면적이나 둘레 등을 다시 규정하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면적과 둘레를 정한다면 역으로 원주율이 계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굿윈이 주장하는 계산법은 틀렸고, 따라서 그 계산에서 나온 원주율도 틀리게 되었다.

 

  법안에 쓰인 여러 공식들 중 일부를 소개하면...

 

  (1) 지름에 대한 원주의 비는 5/4 : 4다.(이때 원주율은 3.2다)

 

  (2) 원의 면적은 원 둘레의 1/4를 모서리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 (이때 원주율은 4다.)

 

  (3) 직각 원호의 길이와 원호 두 끝점을 잇는 선분의 길이 비는 8대 7이다. (이때 원주율은 약 3.23이다)

 

  굿윈은 자기가 발견한 공식을 인디애나 주 학교에서는 로얄티 없이 가르칠 수 있도록 했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 주에서는 로얄티를 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주 하원위원회는 246호 법안을 검토하고는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교육위원회로 법안을 보냈다. 교육위원회는 법안 통과를 권장하며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 상원으로 올라간 법안은 1차 독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당시 의회에는 대학 예산 일로 퍼듀 대학교 수학 교수인 클라렌스 왈도가 와 있었다.

 

 

 

 

  의원 하나가 왈도 교수에게 법안을 보여주고 혹시 법안 작성자에 대해 알려줄 수 없냐고 물었다. 이에 왈도 교수는 '알아야 할 만큼의 미치광이는 이미 많이 만났다already met as many crazy people as he cared to'고 답했고, 그날 저녁 의원들에게 법안을 설명해 주었다.

 

  왈도 교수의 강의가 통했을까. 상원 토의로 옮긴 법안은 의원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의원들은 이런 문제는 입법과는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법안은 연기되었고 곧 사라졌다. 그러나 의회를 지나가던 수학 교수가 아니었다면 인디애나 주는 틀린 원주율 값을, 그것도 법으로 정한 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출처

https://www.straightdope.com/columns/read/805/did-a-state-legislature-once-pass-a-law-saying-pi-equals-3/

http://www.agecon.purdue.edu/crd/Localgov/Second%20Level%20pages/Indiana_Pi_Story.htm

https://en.wikipedia.org/wiki/Indiana_Pi_Bill#cite_note-purdu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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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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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기 2.

나무위키 켜라





군대 선임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후임들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줬다. 자기 PMP에 케이블을 생활관 TV에 연결해서 다 같이 감상한 것이다. 그중에는 <기어와라! 냐루코양>이 있었다. 거기서 주인공 냐루코를 맡은 성우 아스미 카나의 목소리는 금방 나를 사로잡았다.

 

아스미 카나


아스미 카나는 중성적인 목소리가 매력인 성우다. 나무위키에 가면 아스미 카나의 출연작들을 거의 다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도 나무위키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래서 영어 웹도 찾아보고 아스미 카나 소속사 사이트까지 가 봤다. 그러나 나무위키만큼 아스미 카나의 출연작을 많이 늘어놓은 사이트는 없었다. 심지어 소속사 사이트는 몇 년째 아스미 카나 출연작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지금은 업데이트가 되어 있다).

 


여러분도 나도 인정하기 싫지만, 나무위키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방면으로는 꽤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진품(?) 위키인 위키피디아보다 자세하다. 위키피디아 아스미 카나 한국어 항목은 2014년까지만 출연작이 나오지만 나무위키는 2017년까지 정리되어 있다. 단순 텍스트 양도 차이가 난다. 위키피디아는 3430자인데 반해 나무위키는 12805자다. 나무위키가 거의 4배 많은 셈이다.

 


위키피디아 아스미 카나 문서와 나무위키 아스미 카나 문서



물론 위키피디아가 더 방대한 항목도 있다. 여러분 대학 리포트에 나무위키를 참고문헌으로 넣느니 위키피디아를 넣는 것이 훨씬 이롭다(물론 위키피디아도 넣으면 안 된다). 나무위키는 정확도도 떨어지고 사고도 많이 발생하고 게다가 조금 찐따같은 사이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무위키는 텍스트의 한계를 극복한 사이트다.

 

 


텍스트의 방향


글에는 방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일본은 위에서 아래로 쓴다(다는 아니지만).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알 자지라 같은 아랍 뉴스를 보면 뉴스 자막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간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텍스트는 방향이 있다. 거기다 순서가 있다. 글을 쓰려면 순서에 맞춰서 써야 한다. 철수 이야기를 하다가 영희 이야기로 갑자기 가면 독자는 어리둥절하다. 차선 변경할 때처럼 글을 쓸 때도 깜빡이를 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능 영어처럼 다음 문장 중 어색한 것은?’에 나오는 문장이 되어 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작법서 중 하나인 <한승원의 소설 쓰는 법>에서도 한승원 선생님은 문장과 문장은 서로 이어져야 한다며 문장의 밀도를 강조했다.

 


나도 꼴에 작가 지망생이라고 글을 쓰는데, 매 문장을 연결시키려니 죽겠다. 가끔은 아무 상관없는 문장으로 도망가고 싶다. 이럴 땐 나무위키가 부럽다. 나무위키에는 각주와 취소선이 있다. 각주와 취소선은 일방통행으로 나아가는 텍스트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각주는 텍스트의 선형성, 고정성, 유한성을 벗어나게 해 준다.



 

나무위키 아스미 카나 문서의 각주




내가 한 말 아니다. 김정운의 <에디톨로지>에 나온 말이다. 저자는 당연히 논문의 각주를 예로 들었다. 나무위키의 각주는 논문 각주에 비해 잡다하고 불필요하다. 일부 문서를 제외하면 아무나 고칠 수 있다. 심사 받다가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대학원생들이 쓰는 각주에 비하면 나무위키 각주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방통행 텍스트에 숨통을 트인다는 점에서 두 각주는 같다.

 


<에디톨로지>는 창조의 비결을 담은 책이다. 읽어봐라. 재밌다. 그런데 저 각주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나무위키가 떠올랐다. 불쾌했다. 김정운 선생의 말이 맞다면, 모두 나서서 꺼라고 하는 나무위키는 텍스트의 방향성을 극복함으로써 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사이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현실은 불쾌하고 씁쓸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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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왕성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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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기 1.

해왕성은 억울하다

 

 

 

2006년 세계천문협회는 새로운 행성의 기준을 발표한다. 첫째,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둘째, 충분한 자체 중량을 지닌 구 형태이며. 셋째, 공전 궤도 안에 비슷한 다른 천체가 없는 천체가 행성이라는 내용이었다. 명왕성은 세 번째 기준을 지키지 못했고, 따라서 행성에서 탈락해 왜행성이 되었다. 134340이라는 멋진 죄수번호(?)도 얻었다.

 

명왕성이 백의종군(?)을 하고 한동안 난리도 아니었다. 명왕성을 기리는 노래에 다큐멘터리에. 모두 명왕성이 궤도에서 사라지기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학생들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에서 한 글자를 덜 외워도 되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해왕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도 해왕성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해왕성의 기분을 헤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왕성이 행성에서 내려온 날, 해왕성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질량이 줄어든 것도 색이 바뀐 것도 아닌데, 오히려 계급이 강등되었는데도 더 애정을 받다니.

 

이제 해왕성이 꼴찌다.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한 1930년부터 2006년까지 해왕성은 자기보다 바깥인 행성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 손가락질하겠지만 세상 사람이 다 그렇다. 반대로 꼴등에게 박수를 치자는 놈이 위선자다. 그런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자기는 절대 꼴등할 일이 없거나, 절대 1등할 일이 없거나. 전자는 승자의 여유고 후자는 같이 죽자는 심보다.

 

패자에게 박수를’, ‘약자에게 온정을이라는 슬로건이 낳은 것들을 봐라. 소수자를 위한다는 원내정당이 벌인 짓과 여성이 약자라면서 페미니스트들이 벌인 짓들을 봐라. 이들은 탈락한 명왕성에 눈물을 흘릴 뿐이다. 이들, 아니 인류에게 마지막 궤도라는 프리미엄은 엄청나다. 과연 목성과 토성이 행성에서 탈락했어도 2006년만큼 격한 반응이 나왔을까.

 

해왕성은 억울하다. 명왕성은 궤도가 비틀어진 탓에 248년 중 20년은 해왕성보다 안에서 공전한다. 해왕성은 추측으로 모습을 드러낸 행성이다. 천왕성 궤도가 예상과 다른 것을 안 과학자들이 천왕성 바깥 행성을 추측했고 1846년 해왕성이 지구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해왕성 역시 예상과는 다르게 돌았고, 그렇게 명왕성을 가늠해서 찾아냈다. 다만 예상과 다른 궤도는 명왕성 책임까지는 아닌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유니세프나 난민기구 광고는 참 보기 불편하다. 늘 아사 직전의 여자아이가 펑펑 운다. 그 아이는 물론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저 광고에 몸 성한 아저씨가 전쟁으로 집을 잃었다고 펑펑 울어도 기부금이 그만큼 갈까. 여자, 아이들을 내세우는 광고는 아직 사람이 약자 컴플렉스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약자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저 사람이 진짜 약한지, 약자를 챙기느라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꼴찌만 동정하느라 뒤에서 2등은 놓치고 있지 않은지 다시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248년 중 20년은 꼴찌인데도 무관심을 한 몸에 받는 해왕성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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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엽! 풍월량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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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과 저녁의 공통점이 있다면, TV에서 나오는 방송일 것이다. 아침 정보방송과 저녁 정보방송은 소름이 끼치도록 비슷하다. 특히 트렌드뉴스가 그렇다. 요즘 학생들에게 유행한다는 트렌드를 잔뜩 설명하고(실제 학생들한테는 거의 끝물이다) 꼭 마지막에 문화평론가라는 직함들이 나와서 설명을 하지 않는가. 이 현상은 대중의 무엇무엇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사실 욕구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좋기 때문이다. 좋은 데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우에하라 아이의 매력을 엑셀 표로 분석하며 바지를 내리는 남자는 없다. 곱씹어야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만나자마자 좋은 것도 있다. 보고 듣는 그 순간부터 좋은 영화와 음악처럼. 오래 보아야 이쁘다고? 풍월량은 보자마자 이쁘다.

 

 

 

 

우가우가

 

  작년만 해도 보겸 방송을 자주 보던 나였다. 보겸은 아프리카TV 오버워치 대회에 출전했고, 그 출전자 중에 풍월량이 있었다. 풍월량 팀은 꼴찌를 했고 풍월량은 디바 코스프레를 한 채 PC방 청소를 해야 했다.

 

  당시엔 풍월량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배 나온 아저씨가 내가 본 전부였다. 나는 풍월량을 오해했다. 그때만 해도 아프리카TV는 소돔과 고모라였으니까. 그저 '대도서관의 유치함에 대한 반발로 인기를 얻은, 키보드 옆에 소주병을 까고 샷건을 내리치는 중년 철구'가 내 예상이었다. 내 예상이 깨지려면 시간이 좀 걸렸는데, 나는 재빨리 우왁굳과 머독 방송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대도서관이 일으킨 파도는 쓰나미가 되어 아프리카를 휩쓸었다. 그 와중에 홍쉐풍이 아프리카를 떠났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디바 쫄쫄이를 입던 아저씨가 삼대장 중 하나였다고? 그렇게 나는 풍월량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편-안

 

  풍월량 방송의 매력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오후 8시에 방송을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9시에 게임을 시작한다. 우왁굳은 저녁에 시작해서 내가 늘 놓치고 머독은 10시에 게임을 시작해서 조금 졸린데, 풍월량은 나한테 딱 좋은 시간에 방송을 켠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고, 시청자들에게 풍월량은 편안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풍월량은 고수가 아니다. 롤 티어는 브론즈고 방향감각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핑핑 도는 나침반과 같다. 그러나 그것이 매력이다. 다함께 웃고 즐길 만큼만 게임 실력이 떨어지는 풍월량은 서모 씨처럼 어금니가 갈릴 만큼 못하지는 않는다(오해는 말라. 나도 서모 씨 좋아한다).

 

  풍월량 방송은 '아재'라는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1세대 덕후를 자청하는 풍월량은 90년대 추억만 나오면 좋아 죽는다. 아재다운 컨트롤, 아재다운 단어 선택. 엽엽! 시꾸러! 공중파 개그맨이 했다면 참 유치할 대사지만 풍월량이라는 캐릭터에게는 잘 어울린다. 명예로운 베이비붐 세대에서 취업과 사회의 지옥문에 떨어진 트수들에게 이보다 편안한 방송인이 어디 있을까. 아, 나도 대중의 무엇무엇하고자 하는 욕구를 대는 문화평론가가 되고 말았군...

 

 

트통령

 

  풍월량은 트위치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있다. 본인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 듯하고 시청자들도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만큼 풍월량은 트위치계의 대물이며 시청자 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트수들이 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번듯한 사회생활을 하는 그날까지 풍월량의 트통령 임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풍월량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다행이다. 작년 바이오하자드7 방송 중에 스포하지 말라는 말에 가짜 스포로 드립을 쳤다가 영구 채팅정지를 당하고, 지난달에 메일을 보냈지만 풀리지 않은 채금이 풀린다면 더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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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우주파업, 스카이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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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1228. 나사의 직원들은 당황했다. 현재 지구 궤도를 돌며 임무를 수행해야 할 스카이랩 우주정거장이 먹통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연락두절은 태양풍에 의한 통신교란도, 부품 고장도, 외계인의 농간도 아니었다. 연락을 끊은 쪽은 스카이랩 정거장에 있는 대원들이었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기권 밖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스카이랩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은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1973년 발사해 지구 궤도에 안착했다. 곧이어 스카이랩 유인 임무가 시작되어 우주비행사들이 스카이랩으로 날아가 임무를 수행했다. 스카이랩 219735월에서 6, 스카이랩 37월에서 9월까지 실시되었으며 두 임무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스카이랩 4 미션 패치




스카이랩 세 번째이자 마지막 스카이랩 유인 임무인 스카이랩 4197311월에 시작해 19742월에 끝날 예정이었다. 장장 84일에 걸친 미션으로, 우주를 유영하고 태양에 접근 중인 코후테크 혜성을 촬영하고 여러 지구 표면을 촬영하는 과제를 포함했다. 스카이랩 4 우주비행사는 선장 제럴드 카, 과학 비행사 에드워드 깁슨, 조종사 윌리엄 포그로 이들 모두 이번 임무가 첫 우주비행이었다.

 

스카이랩 4 대원들. 왼쪽부터 제럴드 카, 에드워드 깁슨, 윌리엄 포그



어쩌면 문제는 초보 비행사들에게 84일짜리 임무를 내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카이랩 484일은 스카이랩 359일보다 25일이나 더 긴 기간이다. 스카이랩 359일로 신기록을 세운 점을 보면 84일이 만만치 않은 기간임을 알 수 있다. 스카이랩 4 대원들은 84일간 매일 16시간씩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다른 우주비행사들도 임무 시간에 우려를 드러냈지만, 결국 스카이랩 48416시간으로 정해진 채 시작되었다.


 

스카이랩 3 대원들이 장난으로 만들고 떠난 인형



어쨌든 대원들은 임무를 진행했다. 그러나 임무는 자꾸만 더디어졌다. 우주가 처음인 대원들이지만 그들도 엄연히 우주비행사들이었다. 혹독한 훈련과 학습을 거친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임무도 그에 못지않게 혹독했다. 나사는 분 단위 계획을 대원들에게 지시했지만 임무는 예정에서 계속 뒤떨어졌다. 지상은 결국 식사시간과 수면시간까지 줄일 것을 지시했다.


 

카가 포그를 들고 있다. 아니, 무중력이니까 '얹고' 있다고 해야 하나?


지상의 다른 우주비행사, 심지어 이전 스카이랩 대원마저도 스카이랩 4 대원들에게 휴식을 줄 것을 요청했으나 나사는 이를 묵살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스카이랩 359일 신기록을 세우면서 임무를 초과 달성했으니 더 힘든 임무를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스카이랩 우주정거장이 당초 계획보다 수명이 더 짧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스카이랩 4 대원들은 점점 한계에 다다랐다.







 

1223, 카는 지구로 요청사항을 보냈다.

 

우리는 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빡빡하지 않은 계획이 필요하다. 우리는 식사 후 운동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제대로 통제되는 삶이 필요하다.”

"We need more time to rest. We need a schedule that is not so packed. We don't want to exercise after a meal. We need to get things under control."

 

그러나 지상은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1228. 카는 지상과 연락하는 라디오를 껐다. 그렇게 대원들은 지시가 내려오지 않는 날을 즐겼다. 그들은 하루 종일 자기 볼일을 보았다. 휴식을 취했고 사진을 찍었다. 나사는 애가 탔지만 우주에서 다시 연락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1229, 나사와 대원들은 다시 연락했다. 나사는 대원들을 위해 분 단위 스케줄을 그날 해야 할 임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을 보장하기로 했다. 숨통이 트였는지 세 대원은 남은 6주 동안 밀린 임무를 모두 수행해냈다.


 

스카이랩에서 촬영한 코후테크 혜성



  197428. 스카이랩 4 대원들은 임무를 마치고 미국 서부 근처 태평양에 착륙했다.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다시는 세 대원에게 우주비행 임무가 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나사도 비행사들의 심리와 우주비행이 주는 스트레스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니 그들이 벌인 파업도 아주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자료출처

The Skylab 4 mutiny, 1973 - libcom.org

The day when three NASA astronauts staged a strike in space - LA Times

THIS DAY IN LABOR HISTORY: DECEMBER 28, 1973 - Lawyers, Guns & Money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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