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찬범의 파라다이스
글쓰기와 닥터후, 엑셀, 통계학, 무료프로그램 배우기를 좋아하는 청년백수의 블로그
닥터후 (58)
닥터후 시즌 10,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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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드라마에 불만이 하나 있다면, 너무 짧다는 겁니다. 웬만한 미국 드라마는 한 시즌이 23편인데 영국 드라마는 길어야 열 편이고 짧으면 아예 두세 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닥터후는 한 시즌에 열 편은 넘습니다.


  편수도 적은데다 2016년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빼고 방영되지 않은 닥터후는 그래서 더 기대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닥터후는 4월에 시즌 10을 시작했습니다. 케미 끝판왕 클라라 오스왈드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동반자 빌 포츠와 함께하는 시즌이자, 12대 닥터의 마지막 시즌이어서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요. 호불호가 갈리던 9시즌부터 예고된 걸까요. 시즌 10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9시즌은 호불호는 갈렸지만 에피소드마다 내용물은 꽉꽉 찬 반면 시즌 10은 뭔가 헐거웠습니다.






이번 시즌에서 닥터와 함께 모험한 빌 포츠



 시즌10에서 닥터의 친구가 된 빌 포츠는 클라라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다만 배우 펄 맥키한테는 잘못이 없습니다. 연기력은 좋았습니다. 클라라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누가 들어와도 충분치 않았을 겁니다. 지난 시즌까지 클라라는 닥터와 긴밀한 사이였습니다. 9시즌에서 닥터는 클라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둘은 너무 죽이 잘 맞아서, 둘은 서로 뭉쳐서 파괴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결국 둘은 헤어지고 말았죠. 극단까지 치닫은 동반자가 헤어졌으니 어떤 캐릭터가 그 자리를 채우겠습니까. 마치 로즈 타일러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마사 존스 같습니다. 빌 포츠는 소시민 캐릭터입니다. 외계인도 처음 보고 괴물이 나오면 일일이 놀라 줍니다. 닥터와 혼연일체이던 클라라와는 방향이 다릅니다만 식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거기다 빌 포츠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도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습니다. 캡틴 잭은 심지어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했지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각본이 굳이 그걸 끄집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빌 포츠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각본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미미한데도 굳이 대사로 드러냅니다. 동성애는 괜찮습니다. 동성애를 줄거리로 삼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나쁜 남자 나돌



  빌 포츠보다는 나돌이 괜찮았습니다. 나돌이야말로 이번 시즌의 영웅입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서 나돌은 바보 캐릭터로 등장했습니다. 올해부터는 무슨 멋이 들었는지 나쁜 남자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시니컬하고 유머 감각도 있는 나돌은 심지어 닥터보다 재미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시즌 종료 이후에 빌을 찾는 사람과 나돌을 찾는 사람이 비슷했습니다. 나돌이 지닌 인기를 아시겠죠.





  에피소드도 조금 별로였습니다. 1화는 캐릭터와 설정을 소개하니 괜찮다 쳐도, 2화부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예전 닥터는 인간을 죽이는 로봇은 무슨 사정이 있어도 작동을 중지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인간을 적대하는 로봇을 새 종족으로 인정해 줍니다. 그밖에도 차별이나 소수자를 간간이 언급합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차별, 혐오 문제가 생각이 났습니다. 차별이 아닌 것도 차별로 보고 혐오가 아닌 것도 혐오로 보는 잘못된 시선이 닥터후에 숨지는 않았나 걱정이 들었습니다.


  수도승 3부작은 용두사미였습니다. 스티븐 모팻이 시작한 첫 편은 괜찮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두 편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두 번째 편도 좋았습니다. 닥터후에 흔치 않은 3부작이다 보니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3편 결말이 생뚱맞았습니다. 이 줄거리에 3편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요?


  닥터후는 각 시즌마다 시즌을 관통하는 줄거리와 떡밥이 있습니다. 이번 시즌 떡밥은 미시였습니다. 미시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착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닥터는 미시를 방에 가두고 지켜봅니다. 시즌 초반에는 그 방만 나왔습니다. 시청자로 하여금 방에 누가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닥터후 팬들은 떡밥과 미스터리라면 질리게 당한 지라 여러 예측을 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팬들이 미시가 방에 있다고 예상했고 맞았습니다. 시즌 중반에 어쩔 수 없이 미시가 나왔습니다. 차라리 방의 비밀을 시즌 끝까지 밀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이렇게 중간부터 비밀이 드러나고, '미시가 착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은 시즌을 유지합니다. 저만 그런지는 몰라도 시즌을 관통하는 떡밥이 시즌 중간에 바뀌다 보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11화 홍보 이미지. 50주년 두 닥터의 포즈를 마스터가 대신 취하고 있다



  마지막화에는 미시가 최종 테스트를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스터가 등장합니다. 시청자는 예고편 등으로 마스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끝까지 숨겼다면 더 충격이 컸을 겁니다. 마스터는 최고였고 마스터가 나온 마지막 에피소드도 최고였습니다. 이 에피소드만으로 10시즌 전체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이버맨의 기원을 설명하고, 닥터후 역사상 최초로 마스터끼리 만나고, 아마 역사상 최고로 닥터가 몰락하고 심적으로 고생했습니다. 활기찬 우주/지구 구하기 모험이 아닌, 마치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했습니다. 10시즌 모든 에피소드는 마지막 두 편을 위한 예고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국 10시즌, 12대 닥터의 마지막 시즌이자 스티븐 모팻이 맡은 마지막 시즌은 12편으로 끝이 났습니다. 처음엔 기대했고 중간엔 실망했고 마지막엔 열광했습니다. 그래도 12대 닥터를 이렇게 떠나보내다니 아쉽습니다. 실망을 반영하듯 시청률도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래서야 11시즌은 발 뻗고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닥터후 팬들은 압니다. 모든 시즌 모든 에피소드가 재밌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팬이니까 재밌기를 바라지만, 54년짜리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재미가 있든 없든 역사가 됩니다. 한 서양 팬이 말했습니다. 닥터후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집 같은 거라고. 어떤 앨범은 훌륭하고 어떤 앨범은 실망스럽지만 그 가수 작품이라고(그래도 드라마는 재밌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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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후 오디오 드라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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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가 개봉을 앞둔 어느 날, 스타워즈 팬덤이 뒤집어졌습니다. 바로 스타워즈를 인수한 디즈니가 EU, 즉 확장 세계관을 폐기했기 때문입니다. 7~80년대에 스타워즈가 나온 이후 수많은 작가들이 스타워즈 세계관 위에 새 작품을 (물론 조지 루카스의 허락 하에) 지었습니다. 이를 확장 세계관이라고 불렀고, 비록 영화보다는 설정 설득력이 떨어졌지만 확장 세계관은 스타워즈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닥터후도 방송에서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여기도 정식 설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시 팬들을 흥분시키는 이야기들입니다. 바로 오디오 드라마 제작사 빅 피니시의 닥터후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빅 피니시는 오디오 드라마 전문 회사지만 특히 닥터후 오디오 드라마로 유명합니다. 90년대 후반부터 빅 피니시는 BBC에서 닥터후 관련 상표권을 구해 오디오 드라마를 만들고 있습니다. 닥터후뿐 아니라 토치우드나 UNIT 오디오 드라마도 제작 중입니다. 닥터후 스토리 상품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2대 닥터 시절에도 닥터후 코믹을 팔았고 지금도 닥터후 매거진은 매번 닥터후 코믹을 연재 중입니다. 애니메이션이나 관련 소설도 매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빅 피니시는 실제 닥터와 동반자 배우들을 섭외해서 오디오 드라마를 녹음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실제 배우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그림과 텍스트로 읽는 것과 차원이 다르겠죠. 각종 음악에 효과음도 만빵이라서 '낭독'에 가까운 오디오북이 아니라 드라마 음성 버전에 가깝습니다. 닥터 배우들이 작고한 경우에는 다른 성우들이 그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아예 스토리에서 닥터를 잘 다루지 않는 방향으로 녹음합니다.

 

  빅 피니시의 최고 업적이라고 하면 8대 닥터 오디오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대 닥터는 TV 극장판 한 편에만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2005년 닥터후가 부활하기 전에는 '과연 정식 닥터인가' 하는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빅 피니시가 8대 닥터 오디오북을 많이 만든 덕분에 8대 닥터는 그나마 체면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낮은 시청률과 짧은 출연 기간으로 평가가 박한 6대 닥터와 7대 닥터도 오디오북으로 그나마 명예를 되살렸습니다.



 

  2015년까지 빅 피니시는 8대 닥터까지만을 등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새로 판권을 얻어냈는지 11대 닥터까지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아직 11대 닥터, 맷 스미스가 빅 피니시에 나오지는 않았고 작품도 몇 편 되지 않긴 합니다. 10대 닥터 데이비드 테넌트는 현재 빅 피니시에서 도나와 함께 등장하는 오디오북을 한 차례 녹음했으며 올해 말에는 로즈 역의 빌리 파이퍼와 녹음한 오디오 드라마가 출시될 예정입니다. 9대 닥터를 맡은 크리스토퍼 에클레스턴은 캐릭터 고정을 우려해 닥터후를 한 시즌만 찍고 하차했고, 그래서 그런지 오디오북에는 한 차례도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오디오 드라마 가격은 실물 CD 2만 원 정도, 다운로드는 1 2천 원 정도입니다. 2시간 분량으로 2~30분 단위로 분할해 놓았습니다. 단편 오디오 드라마는 분량이 30분 정도에 3천 원이 조금 안 됩니다. 국내에서 회원가입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만 다운로드 속도는 답답한 편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저도 무료로 공개한 에피소드의 일부만 들어서 정확한 사실은 모릅니다.


빅 피니시 오디오 드라마 중에서 'TV 에피소드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은

5대 닥터의 Spare Parts


 

  빅 피니시가 칭찬만 듣지는 않는 것이, 팬들 중에는 빅 피니시는 진짜 닥터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에피소드를 제작하다 보니 실제 TV로 방송한 에피소드와 설정이 맞지 않기도 합니다.(그 예로 사이버맨의 기원을 들 수 있습니다. 빅 피니시에서는 5대 닥터를 주인공으로 해서 사이버맨의 기원을 설명한 에피소드를 발매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 사이버맨의 기원을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TV로 방송되었죠.) 닥터후 배우가 녹음하고 닥터후 판권을 사서 만들지만 엄연히 진짜 닥터후 줄거리와는 상관이 없는 셈입니다. 그래도 TV 에피소드가 빅 피니시 오디오북에 영감을 받기도 하고 8대 닥터가 나온 미니 에피소드 <Night of The Doctor>에서는 8대 닥터가 재생성 직전에 오디오 드라마 동반자들 이름을 열거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닥터후 팬으로서 이미 지나간 닥터와 동반자를 다시 듣는 일은 즐겁습니다. 닥터는 바뀌지만 '한 번 더 봤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거든요. 빅 피니시는 이렇게 닥터후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번 추석에 용돈이라도 받으면 한 번 CD를 구매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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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카팔디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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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닥터후에서 12대 닥터를 맡아 열연을 보여준 배우 피터 카팔디. 골수 닥터후 마니아답게 닥터가 나고 내가 닥터인 혼연일체의 연기를 보여서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번 2017년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끝으로 닥터후에서 하차하는 피터 카팔디. BBC 아메리카에서 팬들의 감사 영상을 받아 피터 카팔디에게 전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감사 인사를 보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메일 주소에

 

- 본인의 풀 네임

-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닉네임

 

과 함께 10초 이하의 영상을 보내시면 됩니다. 배경음악은 제작진이 따로 준비하므로 넣으시면 안 된다고 합니다. 감사 영상뿐 아니라 그래픽 아트, 그림, 사진, 코스플레이 영상 등도 받고 있다고 하니 팬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영상 접수는 한국 시간으로 97일 목요일 새벽 1시까지입니다. 좋은 연기로 닥터후를 한층 발전시킨 피터 카팔디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투어까지 오셨는데 한국에서도 보답으로 감사 인사를 보내면 좋겠죠? 닥터후 이전에도 여러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주신 만큼(특히 욕설 연기) 하차 후에도 더 나은 작품에서 (특히 욕설 연기로) 재회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보낼 메일 주소

- social@bbcamerica.com

 

자세한 사항은 이벤트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doctorwho.tumblr.com/post/164833465051/thank-you-peter-capaldi-a-fan-video-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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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칩널,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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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IrozGaizka(GettyImage)




  8년 간 닥터후를 빛낸 스티븐 모팻은 이번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물러납니다. 다음으로 닥터후를 맡은 사람은 바로 크리스 칩널(Chris Chibnall)입니다. 모팻이야 총책임자가 아니던 2005년부터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들을 쓰면서 이름을 날렸고, 드라마 <셜록>마저 만들었기에 닥터후 책임자가 되기에 부족함과 어색함이 없었죠. 과연 칩널도 그럴까요? 칩널은 누구이며, 과연 2018년부터 그가 맡은 닥터후는 어떤 분위기와 소재로 돌아올까요?



  역시 덕후


  2005년 닥터후를 부활시키고 2009년까지 닥터후를 이끈 러셀 T 데이비스(일명 RTD)는 어릴 때부터 닥터후 마니아였고, 닥터후 이전에 만든 드라마나 시트콤에도 닥터후 관련 대사를 집어넣었습니다. 모팻도 유명한 닥터후 '덕후'고 1999년에는 닥터후 패러디 에피소드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역사가 깊은 닥터후다 보니 제작자나 배우 중에도 어릴 때 닥터후를 보고 팬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크리스 칩널도 역시 닥터후 광팬입니다. 4살 때부터 닥터후를 보고 어렸을 때에 닥터후 팬클럽 회원이던 칩널은 실제 1986년 BBC 시청자 초청 프로그램인 Open Air에 출연해서 닥터후에 관한 의견을 남겼습니다. 당시 닥터후는 시청률 저하로 폐지 직전까지 가던 상황이었습니다(실제로 1989년을 끝으로 종영합니다).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으니 10대 칩널을 볼 수 있습니다.


  칩널은 작가로 데뷔해 여러 연극과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인지도를 모읍니다. 그러다 2005년, 러셀 T 데이비스의 초청을 받아 칩널은 닥터후의 스핀오프인 <토치우드>의 공동 제작자이자 작가 자리에 오릅니다. 토치우드 에피소드로 좋은 반응을 이끌내고 이어서 2007년부터 닥터후 에피소드도 간간이 집필하게 됩니다. 첫 닥터후 에피소드는 2007년 방송한 <42>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2010년에 방송한 실루리안 2부작 <The Hungry Earth/Cold Blood>도 칩널 작품입니다. 시즌 7에는 <Dinosaurs on a Spaceship>과 <The Power of Three>를 만들었습니다. 정식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시즌 7 방송 전에 나온 미니 에피소드 <Pond Life>도 집필했습니다.


  칩널은 닥터후 말고도 중간중간 여러 드라마나 영화 각본을 썼습니다. 그러다 2013년 대박을 터뜨립니다. ITV 방송사에서 방영한 <브로드처치>는 엄청난 시청률과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벌어진 살인을 다룬 브로드처치는 미국에서도 리메이크되면서 그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모두 범인처럼 보이는 드라마'라는 별명답게 매화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브로드처치는 시즌 3로 종영했으며 칩널은 이후 닥터후의 키를 잡고 항해를 나설 예정입니다. 칩널이 닥터후를 맡은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최근 닥터후에 참여한 작가 중에는 제일 대박을 낸 작가라서 뽑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칩널 후(Chibnall Who)?


  칩널이 조종간을 잡은 닥터후는 2018년부터 어떤 모습일까요? 칩널이 집필한 토치우드, 닥터후 에피소드를 보면 약간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먼저 칩널은 가족을 중시합니다. 닥터후에서 칩널은 로리 윌리엄스의 아버지인 브라이언 윌리엄스를 등장시켰고, 실루리안 2부작에서도 한가족이 사건에 휘말립니다.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아들과 티격대면서 특유의 고집스럽지만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지구가 침략당하는 와중에도 미소를 짓게 합니다. <42>에서는 마사 존스가 에피소드 내내 가족과 전화통화를 합니다. 우주선 안에 갇혀서 미스터리한 괴물에게 쫓기는 와중에 하는 통화는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긴박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칩널은 차가운 우주와 따뜻한 가족을 대비시켜서 차가운 쪽은 더 차갑게, 따뜻한 쪽은 더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닥터후도 가족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애인, 배우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동반자의 가족과 집을 강조할 확률이 높습니다. 도나 노블 이후로 동반자의 집이나 가족, 평소 생활이 닥터후에 자주 나오지 않았는데 내년부터는 다르길 기대합니다. 어쩌면 닥터의 가족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누가 되었든 예전보다는 조금 화면에 잡히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칩널 에피소드는 가족이 아니어도 늘 조연으로 시끌벅적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에피소드만큼 어두운 에피소드도 칩널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실루리안 2부작을 들 수 있습니다. 먼 옛날 지구에 거주하다가 땅 속에서 동면한 실루리안 종족. 인간의 굴착 실험에 실루리안이 깨어나자 두 종족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돕니다. 두 종족은 닥터의 중재로 겨우 진정하지만, 결국 편견과 이기심에 파국으로 치닫고 말죠.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칩널은 닥터후 이전에 토치우드 각본을 썼습니다. '어른을 위한 닥터후'답게 토치우드는 선정적인 장면과 잔인한 장면이 매 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토치우드 1시즌 2화는 칩널의 첫 토치우드 각본인데 여기서는 외계인에 조종당해 남자들을 성행위로 빨아들여 죽이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6화는 여행객들을 유인해 잔인하게 죽이는 시골 마을 이야기인데 이것도 칩널 구상입니다.


  칩널 각본은 외계인이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42>는 외계행성의 영혼이 들어간 사람이 우주선을 돌아다녔습니다. <The Power of Three>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지만, 줄거리는 외계인보다는 닥터와 친구들에게 집중합니다. <Dinosaurs on a Spaceship>도 문제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닥대는 멤버들의 '케미'가 주된 내용입니다. 이런 '케미'는 잘 되면 차가운 우주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꼬이면 될 것도 안 되게 만들고 오히려 공포가 됩니다. 칩널은 이렇듯 문제보다는 관계를 보는 작가 같습니다.



  걱정과 기대


  사실 칩널이 쓴 닥터후 에피소드는 평가가 좋지 않습니다. '나쁘진 않은데 기억에 남지도 않는' 에피소드들로 기억합니다. 대박이 난 브로드처치도 마지막 3시즌은 그저 그런 점수를 얻었습니다. 과연 칩널이 어쩌다 한두 편이 아닌, 몇 년에 걸친 큰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여성 닥터로 구설수에 오른 닥터후를 넘겨받아서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솔직히 팬들은 불안합니다. 1989년에 벌어진 종영 사태를 다시 겪을까봐 떨고 있습니다. 닥터후 팬인 칩널도 닥터후가 오래 가기를 바라겠죠. 무슨 이야기, 무슨 소재, 무슨 캐릭터로 닥터후를 이끌지 기대와 걱정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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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의 줄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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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DrwhoOnline




올해 닥터후 시즌도 끝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올해 에피소드는 크리스마스에 방영하는 에피소드 <Twice Upon a Time>입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1226일 새벽 2~3시에 방송할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1대 닥터가 등장을 예고했습니다. 201350주년 에피소드 이후 처음으로 닥터와 닥터가 만나는 에피소드라 팬들은 한창 기대 중입니다. 게다가 다른 닥터도 아니고 1963년 첫 방송을 함께 한 1대 닥터가 나온다는 사실에 팬덤은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는 12대 닥터인 피터 카팔디의 마지막 에피소드이자 최초의 여성 닥터인 13대 닥터가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는 에피소드입니다. 7년 가까이 닥터후를 이끈 천재 작가 스티븐 모팻이 쓰는 마지막 닥터후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로 의미도 기대도 큰 이번 에피소드는 도대체 어떤 줄거리일까요? 닥터후 사이트에서 공개한 예고편으로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최초의 닥터

 

올해 시즌 마지막 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1대 닥터가 나와서 시청자를 놀랬습니다. 12대 닥터는 사이버맨과 싸우다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입고 재생성 과정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친한 동료를 잃고 떠나보내는 아픔이 겹쳐 닥터는 재생성을 거부합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그 무언가를 잃고 자신마저 몸을 교체하는 사이클이 지겨워진 것이죠. 닥터는 눈밭에 내린 타디스를 나와 재생성을 억지로 참습니다. 그때 눈발 너머로 1대 닥터가 등장합니다.

 

원조라고 할 수 있지. The original, you might say.”

 

예고편이나 제작진이 공개한 정보를 살펴보면 이번 에피소드는 1대 닥터가 나온 마지막 에피소드인 <The Tenth Planet>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아마 이번 크리스마스에 만날 1대 닥터는 이 에피소드를 진행하던 시점으로 생각됩니다. <The Tenth Planet>1966년 방송한 에피소드로 아까 말했듯이 1대 닥터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1대 닥터는 동반자 벤과 폴리와 함께 1986년 남극 기지에 도착합니다. 기지는 지구 대기를 순찰하는 우주선을 관리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지는 사이버맨이라 불리는 종족한테 습격을 받습니다. 사이버맨은 본디 지구와 같이 태양계를 공전하던 쌍둥이 행성 몬다스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몬다스가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면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기 몸을 기계로 개조했습니다. 이렇게 기계몸이 되어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이버맨은 지구를 파괴해 몬다스 행성을 되살리려 합니다. 1대 닥터는 이 에피소드에서 사이버맨을 저지하려다 에너지가 뺏기면서 죽어갑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이 바뀝니다. 바로 닥터후 최초의 재생성입니다.


BBC가 공개한 예고편 첫 장면이 바로 이 당시 에피소드 장면입니다. 1대 닥터가 사이버맨에게 감정이 없냐고 물어보는 장면이죠. 당연하지만 실제 1대 닥터를 연기한 윌리엄 하트넬은 1975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올해 1대 닥터는 데이비드 브래들리가 연기합니다. 데이비드 브래들리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호그와트의 사감인 필치 역으로 유명합니다. 2013년에는 닥터후 50주년을 맞아 당시 제작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윌리엄 하트넬을 재연하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1대 닥터 배우를 재연한 배우를 데려다 1대 닥터를 시킨다니, 기발합니다. 갑자기 생판 모르는 배우가 1대 닥터를 맡으면 아무리 비슷하게 생겨도 좀 어색할 텐데 이렇게라도 한 번 관련을 지은 배우가 나오니 안심입니다. 어쩌면 2013년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부터 1대 닥터를 맡겨서 닥터후 본편에 등장시키자는 기획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마크 게이티스

 

1대 닥터 말고도 크리스마스엔 반가운 얼굴이 찾아옵니다. 바로 <셜록>에서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맡기도 한 마크 게이티스입니다. 마크 게이티스는 닥터후 출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7년 시즌 3에서 실험으로 젊음을 되찾은 과학자 라자루스 교수를 맡기도 했죠. 시청자들도 잘 모르는데, 201111대 닥터가 에이미 아기를 되찾는 에피소드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잠깐 나오기도 했습니다. 마크 게이티스는 2005년부터 거의 매 시즌 닥터후 에피소드 각본을 썼습니다. 다만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에서 마크 게이티스가 맡은 배역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팬들은 캡틴이라는 호칭으로 부릅니다. 예고편을 보면 캡틴은 1차 대전에서 싸우던 영국군 장교로 이유는 모르지만 두 닥터와 만나게 됩니다. 팬들은 닥터가 캡틴을 구하고 캡틴과 모험하면서 다시 살 의지를 불태울 것이라 예측합니다. 현재 닥터는 누군가를 구하다 희생하는 삶에 지겨워졌습니다. 그때 타디스는 닥터 말도 씹고 1대 닥터가 있는 곳에 착륙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타디스는 의지를 가진 기계입니다. 닥터가 닥터스러워지기 위해 일부러 1대 닥터를 만나게 하고, 다시 캡틴을 만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일부 팬들은 캡틴이 고든 레스브리지-스튜어트 준장의 아버지라고 주장합니다. 준장은 2대 닥터 시절에 처음 등장했고 3대 닥터 시절에는 특수부대 UNIT을 지휘하면서 지구를 지켜 왔습니다. 만약 캡틴이 준장의 아버지라면 닥터는 준장의 아버지를 구하면서 자기가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미래에는 결실로 돌아온다.’는 점을 깨달을지도 모릅니다.

 

 

닥터를 닥터답게

 

그 점으로 보자면 1대 닥터가 나온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1대 닥터는 아직 재생성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반면 12대 닥터는 재생성에 질렸습니다. 삶에 지친 12대 닥터에게 1대 닥터는 사람들과 여행하고 누군가를 구하는 즐거움을 다시 알려주지 않을까요? 설령 이 가르침이 메인 줄거리는 아닐지라도 분명히 둘이 갈등하는 장면과, 1대 닥터가 보여주는 천진난만함에 12대 닥터가 뭔가 깨닫는 장면은 있을 것 같습니다.

 

반대도 가능합니다. 12대 닥터가 1대 닥터한테 깨달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모팻은 신선한 반전과 충격을 좋아하니까 이런 식의 뒤집기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알고 보니 1대 닥터는 재생성이 두려워서 지금껏 늙어가며 살아왔다. 하지만 12대 닥터와 만나면서 자기 미래가 괜찮다는 것을 알고 무덤덤하게 재생성한다.’는 줄거리도 가능합니다. 우리 스티븐 모팻은 시청자들 예상을 늘 벗어나니까요.

 

예상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지경입니다. 앞으로 네 달 남았습니다. 과연 12대 닥터는 어떤 식으로 퇴장할까요? 13대 닥터의 첫 대사는 뭘까요? 모팻은 마지막으로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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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닥터의 동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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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닥터 조디 휘태커가 공개되면서 닥터후 다음 시즌에 대한 추측도 무성해지고 있습니다. 새 닥터의 패션과 버릇, 성격도 궁금해지고 다음 시즌부터 제작진이 물갈이되는 만큼 어떤 줄거리를 선보일지도 관심의 대상이죠. 새 닥터뿐 아니라 새 동료도 누가 될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닥터후는 오랫동안 닥터와 동반자가 시공을 여행하는 줄거리를 유지해 왔습니다. 동료의 개성과 동료와 닥터가 맺는 궁합도 닥터후의 또 다른 재미인데요. 과연 새 닥터의 새 동료는 누가 될까요?

 

첫 번째 추측 현대 인간 남성

 

최근 몇 년 간 닥터의 동료들은 시청자와 같은 시대에 사는 인간이었습니다. 2005년 닥터후가 부활하자마자 함께 한 동료는 평범한 인간 여성인 로즈 타일러였습니다. 그 다음은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는 마사 존스, 그 다음은 왈가닥 노처녀 도나 노블, 그 다음은 닥터를 동경하던 소녀 에이미 폰드였죠. 비록 직업이나 성격, 결말은 달랐어도 모두 시청자와 같은 해를 사는 인간 여성이었습니다. 닥터후 역사를 통틀어도 시청자와 동시대를 살던 동료들이 대부분이었죠.

 

현대 인간을 동료로 고르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첫째로 현대 인간은 쓰기 편합니다. 과거 동료라면 고증을 맞춰야 하고 미래 인간이나 외계인 동료라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반면에 현대 인간은 직업적 고증이나 캐릭터 구상을 빼면 머리를 굴려야 할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로 현대인을 동료로 하면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기 쉽습니다. 닥터는 외계인이고 신비스러운, 아니 신비스러워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렇기에 닥터후는 닥터의 모든 것을 표현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나 행동을 이따금 보여줍니다. 거기에 현대인을 넣고 현대인이 비상식적인 닥터와 비상식적인 외계인들을 보고 놀라게 하면 시청자들은 쉽게 이해합니다. 시청자들은 자기를 대입할 캐릭터가 필요한 법입니다.

 

셋째로 동료가 있으면 닥터가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닥터가 자기가 알던 외계 행성에 갔다고 가정합시다. 닥터는 행성을 알기 때문에 굳이 입 밖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옆에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가 있다면 어떨까요? “닥터, 여긴 무슨 행성이죠?” “, 넌 모르겠네. 여기는 말야.” 닥터후는 토요일 저녁에 방송하는 엄연한 가족 드라마입니다.

 

이렇듯 현대인을 캐스팅하면 시청자들이 쉽게 드라마에 빠지고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3대 닥터는 여성이니까 아마 현대 남성을 캐스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꼭 다른 성별이 같이 다녀야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같은 캐릭터라도 성별이 다르면 그 궁합(‘케미라고도 하는)이 잘 맞으니까요. 만약 현대 남성으로 정해진다면 직업은 뭘까요? 몇 살일까요? 가족은 있을까요? 성격은 물렁할까요? 단단할까요?

 

 

두 번째 추측 과거나 미래 인간

 

이 추측은 현대인 동료에 지친 팬들 일부가 바라는 추측입니다. 바로 과거나 미래 출신(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로) 동료를 영입하는 것이죠. 닥터가 옛날 동료를 데리고 여행한 적은 찾아보면 좀 많습니다. 먼저 2대 닥터는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만난 제이미 매크리먼, 19세기 영국에서 만난 빅토리아 워터필드와 여행했습니다. 미래 동료로는 역시 2대 닥터와 여행을 다닌 21세기() 우주기지 출신의 조이 해리엇, 4대 닥터와 여행한 미래 원시 인류 부족 출신의 여전사 릴라가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 동료는 시청자한테도 좋은 재미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제이미는 옛날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영국 레드코트만 보면 칼을 빼들고 덤벼듭니다. 릴라는 미래인이지만 문명이 몰락한 원시 부족 출신이라서 적을 만나면 무조건 싸우려고 들고 밥도 손으로 먹습니다. 닥터가 현대인들을 보면서 릴라한테 너희 조상들 좀 봐라고 놀리기도 했죠. 과거든 미래든 시간여행이라는 닥터후의 콘셉트와 잘 어울리고 닥터만큼이나 좋은 개성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시대에 살지 않는 동료는 생각할 거리가 많아집니다. 과거에서 동료를 고른다면 어느 시대, 어느 지방에서 골라야 할까요? 고른다면 그 당시 생활습관과 복장을 알아내야 하고, 거기에 맞는 캐릭터를 짜야 합니다. 닥터후가 현대 드라마이기 때문에 닥터는 의외로 현시대 영국으로 자주 갑니다. 그렇다면 과거나 미래 동료는 현대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요? 미래 동료는 역사를 어디까지 알까요? 사실 닥터후를 보다 보면 의외로 이런 질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아마 제작진들은 줄거리가 꼬이지 않도록 다 생각해 놔야 할 겁니다.

 

그래도 다른 시대 동료는 정말 보고 싶습니다. 쭉 현대인을 동료로 하면 아무래도 닥터한테 모든 개성이 쏠리게 됩니다. 그럼 역으로 동료가 너무 무개성해질 위험이 있죠. 이번 시즌 동료인 빌 포츠도 캐릭터가 밍밍하다는 평가를 좀 받았습니다. 제작자들은 밍밍한 동료를 막기 위해서 캐릭터 자체의 개성보다는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개성을 줬습니다. 11, 12대 닥터와 여행한 클라라 오스왈드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똑똑이 아가씨이지만 얼떨결에 닥터 인생을 바꿔 버렸죠. 여기서 포인트는 클라라가 아니었어도 그 스토리였다면 웬만한 동료들은 다 닥터 인생을 바꿨을 거라는 점입니다. 볼 때는 재밌는데, 돌이켜 보면 어떤 캐릭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른 캐릭터와 치환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팬들은 어쩌면 평범한 캐릭터를 만들고 거기에 스토리라는 양념을 듬뿍 친 동료에 싫증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우주적 관점으로 중요한 동료 말고, 그 자체로 튀는 동료를 원해!’라고 할까요.

 

 

세 번째 추측 외계인 동료

 

사실 닥터의 첫 동반자는 (인간 기준으로) 외계인이었습니다. 자기 손녀인 수잔이었죠. 수잔이 닥터를 떠난 이후로도 닥터는 몇몇 외계인과 여행을 다녔습니다. 4대 닥터는 자기 소꿉친구 로마나, 알자리우스 행성에서 온 천재 소년 아드릭과 여행했고 5대 닥터는 트라켄 행성의 귀족 네사, 인간으로 위장한 외계인 비즈롤과 여행했습니다. 닥터와 여행 다닌 외계인은 많지 않았고 큰 인기를 끌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작가였으면 굳이 외계인을 동료로 고르는 모험을 하진 않겠죠.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기도 어렵고 각본이 두 배로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닥터뿐 아니라 동료의 개성까지 소개해 버린다면 보는 사람이 피곤해질 수도 있고요. 그러고 보니 닥터의 동료는 너무 개성이 있어도 곤란하고 너무 개성이 없어도 곤란하군요.

 

 

네 번째 추측 혼자 여행한다

 

닥터는 혼자 여행하느니 식빵에 핀 곰팡이와 여행할 겁니다. 닥터후 역사에서 닥터가 혼자 여행을 다닌 적은 손에 꼽기 때문입니다. 동료와 헤어지고 다음 동료를 만나기 전 몇 번 혼자 돌아다닌 적은 있지만 한 시즌이 넘게 혼자 여행한 적은 아마 없을 겁니다. 동료가 없다면 위에서 말한 동료의 드라마 속 장점이 다 사라지거든요. 시청자들은 누구에게 감정 이입을 할 것이며(특히 처음 닥터후를 본 사람이라면 더욱) 닥터는 누구한테 자기 지식을 자랑할 것이며 닥터는 누구와 케미를 나눌 것이며

 

하지만 54년 만에 여성 닥터가 나왔으니 54년 만에 시즌 내내 혼자 여행하는 닥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나요? 닥터후도 2005년 부활한 이래 10시즌을 방송했으니 제작진도 이제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할 평범한등장인물이 굳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바뀌어버린 닥터를 시청자들에게 잘 각인시키기 위해 일부러 동료를 넣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만큼 호불호는 갈리겠지만요.

 

 

마치며

 

닥터는 인조인간이나 로봇 머리와 같이 산 적도 있습니다. 인조인간은 모형을 작동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얼마 되지 않아 자폭하든 각본으로 갔고, 로봇 머리는 일회용 출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능성도 무시 못 하죠. 객관적으로 따지면 현대 인간 남성이 가장 유력하지만 혹시 또 모르죠. 닥터후는 늘 새로운 것을 들고 나왔으니까요. 그 새로움이 닥터후가 장수방영 할 수 있던 비결이기도 했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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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닥터에 내가 찬성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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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가 여자라니!

 

  7월 16일, 한국 시간으로 일요일 자정을 갓 넘긴 무렵, 영국 공상과학 드라마 <닥터 후>의 시청자들을 숨을 죽이고 TV를 주시했습니다. 그들은 웸블던 남성 단식 결승전을 지켜보았죠. 그들이 테니스 팬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BBC가 결승전 중계가 끝난 직후 13번째로 닥터를 맡을 배우를 공개하기로 예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BBC를 생중계로 볼 방법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BBC가 배우를 공개하자 팬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13대 닥터를 연기할 배우는 바로 조디 휘태커라는 여배우로 밝혀졌습니다. 54년 역사를 자랑하는 드라마에서 최초로 여성 배우가 닥터를 연기하게 된 것입니다.

 

  닥터 후 팬덤은 충격에 벗어날 사이도 없이 싸움판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구는 찬성했고 누구는 반대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찬성파를 극단 페미니스트로 몰았고 한쪽에서는 반대파를 남성우월주의자로 몰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닥터후 팬들이 많지 않아서 분위기가 미지근했지만 외국 닥터후 팬덤은 그야말로 전쟁터였습니다. 제가 닥터후를 시청한 이래 최고로 뜨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꽤나 진정이 되었으니 한번 얘기해 봅시다. 과연 여성 배우가 닥터를 맡아도 되는가? 아니, 애초에 '되는가?'라는 질문이 되는가?

 

 

설정은 이상

 

  먼저 닥터후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닥터후는 영국 BBC에서 1963년부터 제작한 공상과학 드라마로, 갈리프레이 행성 출신 외계인 '닥터'가 타임머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닥터'네 종족은 죽을 위기가 되거나 죽기 직전이 되면 육체를 갈아치우는 '재생성'을 통해 새로운 몸을 얻습니다. 이 재생성 덕분에 닥터후는 배우를 바꿔 가면서 오랜 시간 방영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닥터를 맡은 배우는 스포일러상 언급이 불가능한 한 명을 제외하면 총 12명입니다. , 12명 모두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여성 닥터 반대론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54년 동안 남자인 주인공에 여성을 캐스팅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페미니스트들과 일명 SJW(Social Justice Warrior)들이 온갖 작품에 딴지를 걸고 '여기는 왜 여자가 안 나오냐', '왜 인종/문화권을 다양하게 배열하지 않느냐'라면서 문화계 전반을 괴롭히고 있는 마당에, 54년간 남자로 캐스팅한 배역을 여성 배우가 맡는다면 뜨악할 법 합니다.

 

  일단 팩트를 알아봅시다. 닥터네 종족은 재생성을 하면 성별도 바뀌는가? 대답은 일단 ''입니다. 닥터네 종족(일명 타임 로드Time Lord)은 재생성을 하면 성별이 바뀔 수 있습니다. 드라마 내에서 몇 번 언급되기도 했고 실제로 성별이 바뀐 등장인물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 경우들 모두 최근 몇 년 사이에 언급되거나 등장해서 조금은 어색합니다. 애초에 닥터를 제외하면 닥터네 종족은 드라마에 자주 나오지를 않고 재생성은 더욱 잘 안 나옵니다. 50년을 아무 말 없다가 몇 년 사이에 '타임 로드는 재생성하면 성별이 바뀐다!'고 말하더니 주인공 성별을 바꾸다니.

 

 

굳이 여자여야 하나?

 

  설정이야 제작진이 공인했으니 괜찮다고 쳐도 꺼림직합니다. , 여자 닥터는 설정상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꼭 여자로 바꾸라는 법은 없습니다. 굳이 여성 닥터를 고집해야 할까요? 모 팬은 '여자 닥터가 가능하다면 다른 인종, 장애인, 동성애자 닥터도 가능한데, 그건 왜 고려 안 하냐?'면서 반대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흑인 닥터나 동양인 닥터가 나오면 여성 닥터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뒤로 물러설 겁니다. '인종을 바꾸거나 성적 지향을 바꾸면 시청자들이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반박해 보았자 '그럼 여성 닥터는 적응이 가능해서 성별을 바꾼 거냐? 그렇게 되면 필요성이 아니라 그저 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할 것 같으니까 바꾼 거 아니냐? 그 말은 제작진들이 어떤 드라마적인 이유가 아니라 남성이 했으니 여성도 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냐?'라는 다른 반박에 부딪힙니다.

 

  왜 여성 닥터일까요? 저도 모릅니다. 제작진만 알겠죠. 훗날 제작진이 입을 열어서 제대로 해명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내가 여성 닥터에 찬성하는 이유

 

  처음 여성 닥터를 발표하자마자 저는 흥분했습니다. 물론 걱정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짜릿했습니다. 불안에서 오는 짜릿함.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새 닥터 발표를 3번 들었습니다. 11대 닥터, 12대 닥터, 마지막으로 13대 닥터 발표를 들었습니다. 11대 닥터를 맡은 맷 스미스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저는 불안했습니다. 10대 닥터 데이비드 테넌트도 젊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맷 스미스는 그보다 더 어렸습니다. 닥터는 지혜롭고 문제를 해결하는 나이 많은 외계인이라서 조금은 중년이 어울리다고 생각했거든요. 뭐 닥터후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맷 스미스는 미칠 듯한 연기력을 보이면서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닥터가 되었습니다. 12대 닥터 피터 카팔디를 발표했을 때도 조금 불안했습니다. 비록 늙은 닥터가 더 자연스러웠지만 정작 노배우가 캐스팅되니 불안했습니다. 10대 닥터와 11대 닥터가 보여준 액션을 보여줄 수 있을까. 에너지가 적지는 않을까 싶었지요. 하지만 피터 카팔디는 세계 최강의 닥터후 팬답게 본인이 닥터고 닥터가 본인인 혼연일체 연기력으로 닥터를 연기했고, 옛날 닥터로 귀환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닥터가 바뀌면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합니다. 알던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뀌면 누구라도 불안하겠죠. 특히 닥터는 재생성도 개성의 일부분입니다. 현 닥터 배우가 하차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팬들도 가슴을 졸이면서 다음 배우를 기다리고, 닥터도 자기 몸이 바뀔 때마다 난리법석을 치면서 난장판을 만드는데 그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영국 도박 사이트는 다음 닥터가 누가 될지를 놓고 돈을 모으기도 합니다(이상하게도 적중률이 높습니다). 닥터는 늘 튀어 왔습니다. 늘 조금씩 예상에서 어긋났습니다. 닥터는 신비스러운 존재이고, 드라마 중간중간 닥터는 인간이 100%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임이 표현됩니다. 제 생각에는 배우도 그 정체성에 맞춰서 조금은 예상 밖에서 캐스팅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납득이 가는 배우가 캐스팅되면 그게 더 불안할 지경이죠.

 

  여성 닥터는 신선합니다. 지금껏 한 번도 없었죠. 사실 저도 닥터의 재생성에 조금은 질려가던 차였습니다. 재생성을 여러 번 봐서 그런지 12대 닥터가 너무 닥터스러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뭔가 예전보다 덜 기대하게 되었습니다(12대 닥터가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짜잔! 여성 닥터라니!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예상을 해도 누가 감히 입 밖으로 꺼냈겠습니까? 모든 팬들에게 충격을 준다는 목적이라면 제작진은 성공했습니다. 명심하세요. 닥터후는 엄연한 TV 드라마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입니다. 사람들을 모아 높은 시청률을 만들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엔터테인먼트는 엇나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변화하면서 관심을 받아야 합니다. 페미니스트들 덕분에 온갖 작품에 불필요한 여성성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닥터의 성전환은 허용 범위 이내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고 안 할 이유가 없으면 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내가 바라는 것

 

  하지만 여전히 불안합니다. 내년 새 시즌에서 닥터가 여자가 남자보다 나은 것 같아라거나 지금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야?’같은 대사를 한다면 정말 끔찍할 겁니다. 닥터는 남자이던 시절에도 자기가 남자임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닥터가 여자가 된다면 남자 인간과 여행하면서 사랑에 빠질 확률이 크게 오르고, 여자 속옷을 입을 줄 몰라서 바둥댈 수야 있겠지만 여성임을 강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닥터고, 그래야만 제작진은 비난을 받지 않을 겁니다.

 

  남녀 성별이라는 정체성은 큽니다. 성별이 바뀐다면 아무리 닥터라도 좀 놀라고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도 적응하기 좀 어려울 겁니다. 여성 닥터는 도박수입니다. 이미 닥터후를 포기한 팬들이 속속 생기고 있습니다. 한번 돌아선 마음은 어지간해서는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작진은 이점을 명심하고 좋은 각본과 좋은 연출과 좋은 연기로 보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성 닥터가 그냥 시도해본 캐릭터가 아닌, 공들여 만든 캐릭터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기다리겠습니다.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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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닥터후> 스티븐 모팻이 말하는 글쓰기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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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Gage Skidmore(https://www.flickr.com/people/22007612@N05)

 

 

TV 드라마 거장이 전하는 비법

 

외국 드라마 좀 본다는 사람이면 다 봤다는 드라마 <셜록>. 전 세계를 사로잡은 것은 물론이고, 미국 드라마가 대세인 우리나라를 단숨에 매료했죠. 외화 방영이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지금도 <셜록> 새 시즌이 나오면 방송국에서 한 달도 안 되어 더빙 방송을 해줄 정도로 인기가 많고 잘 만든 드라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영국 드라마 하면 <닥터 후>를 빼놓을 수가 없죠. 1963년부터 시작된 공상과학 드라마 <닥터 후>5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방영 중이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널리 알려졌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현지 제작진도 놀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몇 년 전에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닥터 후> 제작진들이 월드 투어를 오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알려진 영국 드라마 두 편이 바로 <셜록><닥터 후>인데요. 이 두 명작을 집필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작가 스티븐 모팻입니다. 스티븐 모팻은 <셜록> 시리즈를 제작하고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집필했으며, 2005년부터 <닥터 후> 일부 에피소드를 집필했고 2010년부터는 메인 작가가 되어서 쇼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스티븐 모팻은 <닥터 후>2017년까지 집필하고 다른 제작자한테 넘겨줬죠. 모팻은 다양한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으며, <셜록><닥터 후> 팬들한테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비록 여러 논쟁에 휘말리기는 하지만 아무도 모팻이 TV 드라마의 거장이자 천재임을 부정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런 거장 스티븐 모팻이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기의 작가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V6vrk0436c)

 

 

 비법 1. 많이 써라

 

많이 쓰세요. 작가가 되려면 그저 많이 쓰세요.”

 

운동선수가 되고 싶으면 운동을 많이 하고, 요리사가 되고 싶으면 요리를 많이 하면 됩니다. 작가도 이와 비슷합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많이 써야죠. 물론 방법론은 따로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조언을 들으면 실망할 사람들이 많겠죠. ‘나는 글을 잘 쓰는 비법이 궁금하단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일 단순하면서도 제일 필요한 방법은, 바로 연습입니다.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고수가 됩니다. 연습 없이 고수가 된다면 그 사람은 천재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천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노력해야 합니다. 연습을 해도 실력이 안 늘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재능 탓이지, 연습이 부족한 탓은 아닙니다. 많은 작가들이 많이 쓰기를 강조합니다. 소설가 한승원은(<채식주의자>로 유명한 소설가 한강 씨의 아버지입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미국 공포문학의 거장 스티븐 킹도 뮤즈가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쓰다 보면 뮤즈가 찾아오니 그저 쓰라는는 식의 말을 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샐린저는 집 근처에 자기만의 글쓰기 공간을 만들어 두고 그곳에 틀어박혀 쓰기만 했습니다. 심지어 남들한테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요.

 

 

비법 2.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써라

 

사람들의 관심을 붙잡으세요. 그 관심을 끌고 나가세요.”

 

옳은 얘기, 진지한 얘기, 중요한 얘기도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혼자 쓰고 혼자 다락방 안에서 읽으면서 감탄할 글이라면 자기 위주로 써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람들이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고 싶다면 어느 정도는 사람들이 볼 만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합니다.

사실 이 의견엔 이견이 많습니다. 독자를 신경 쓰지 말고 자기만의,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잘 된다(최소한 더 뿌듯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누구는 철저히 독자 위주로 써라, 독자(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쓰는(생산하는) 작가(생산자)가 성공한다고 합니다.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독자는 진실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어떤 독자는 거짓이어도 화려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독자들도 그 이야기가 진실한지 화려한지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은 이상 어찌 알겠습니까?

 

 

비법 3. 그저 써라

 

엄청나게 좋은 소식이 있어요. 지금은 작가가 되기 딱 좋은 시대입니다. 원하는 대로 자료도 모을 수 있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도 찍을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옛날 <닥터 후>를 찍던 제작진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플랫폼을 골라서 여러분 작품을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뭘 망설이세요? 아무것도 당신을 막지 않아요.”

 

작가란 지루한 직업이라고 합니다. 쓴다고 원고지 글자 수만큼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쓰는 내내 옆에서 응원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들은 쫄쫄 굶고, 옆에서는 돈도 안 되니 그만두라고 투덜댑니다. 차라리 아주 느려서 시계 제작자처럼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서 결과물을 본다면 좋겠지만, 글은 기계처럼 조립으로 완성되지도 않습니다. 무슨 기계가 조립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반쯤 찢어진 조립 설명서를 들고, 기계에 필요 없는 부품까지 한가득 바닥에 뿌려놓고 조립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아서, 정교하기도 쏜살같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루키 표현을 빌리자면 걷는 것보다는 빠르고 자전거보다는 느린, 너무 어중간해서 답답한 속도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작가들은 의기소침해지는지도 모릅니다. 쓴다고 피드백이 오지도 않으니 쓸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무관심해지는 거지요. 모팻은 이렇게 정지 상태에 빠진 작가 지망생들에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당신을 막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물론 외부 조건이 너무 안 좋아서 펜을 쥘 수조차 없는 작가들도 있겠지만 여건이 된다면 쓰면 됩니다. 써야 작가입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 봅시다. 가끔은 무작정 밀고 나가 봅시다. <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는 창작하는 사람은 창작하는 순간부터 취직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 취직을 해도 돈이 안 들어오기는 하지만 취직은 취직입니다. 일한 노력과 보상이 비례하지는 않습니다만, 인정할 건 인정합니다. 노력에 비례하는 보상을 바라는 마인드로는 글쓰기 힘듭니다.

 

모팻은 2017년을 끝으로 <닥터 후> 집필과 제작을 그만둡니다. 잡지에 쓴 칼럼대로라면 영화사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고 하더군요. 아마 <셜록><닥터 후>의 뒤를 이을 대단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늘 새롭고, 늘 긴장되는 시나리오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준 모팻, 그가 말하는 비법이라면 한번 따라해 봐도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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