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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후 최고의 에피소드 TO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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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닥터후가 재방송되고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백 편이 넘는 에피소드가 방송되었고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과연 이들 중 최고의 에피소드는 무엇일까요? IMDB 평점과 제 개인적인 의견을 섞어서 닥터후 베스트 에피소드 다섯 편을 골라 봤습니다.

 




5

Human Nature/The Family of Blood

시즌 3 8, 9

IMDB 평점 9.0/9.2

 

줄거리 : 닥터를 잡아 영생을 이루려는 외계인이 닥터를 쫓는다. 시간이동만으로는 도망칠 수 없게 된 닥터는 잠시 신체와 정신을 인간으로 바꾼 채 1차대전 직전 영국에 숨어서 교사로 살게 된다. 더는 외계인 닥터가 아닌 인간 '존 스미스'로 살게 된 닥터. 그러나 외계인 가족은 끝끝내 닥터를 추적해 오는데…….



 

Human NatureThe Family of Blood는 아름답고 진지한 2부작 에피소드입니다. IMDB 에피소드 순위에서 상위권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명 깊게 봐서 5위에 넣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닥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닥터와 똑같이 생겼지만 몸도 마음도 인간인 '존 스미스'가 주인공입니다. 아무 능력도 특별한 지식도 없는 교사 존 스미스는 자기 주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자 당황합니다. 외계인 가족은 인간으로 변장해 닥터를 쫓고, 닥터는 영문도 모른 채 맞서 싸웁니다. 에피소드 마지막에 자신이 시공간을 여행하는 외계인이며 그 외계인만이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말에 존 스미스는 분노합니다. '그럼 난 뭐야? 아무것도 아닌 거야?'. 자기가 사라져야만 사랑하는 여인과 이웃을 구할 수 있다는 비극적인 상황. 존 스미스는 결국 자신을 희생해 닥터를 되살립니다.

 

이 에피소드는 전쟁이라는 주제와도 연결됩니다. 미성년자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는 현실, 불안해지는 세계정세. 1차 대전을 몇 년 남기지 않은 배경에서 외계인 가족은 닥터를 찾으려 마을에 포격을 퍼붓습니다. 그 포격은 마치 참호를 사이에 두고 박격포를 쏘던 1차 대전을 연상시킵니다. 외계인이 만든 허수아비 부대가 학교를 공격했을 때도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총을 장전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학생들은 훗날 1차 대전 전장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모로 전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닥터의 분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매번 싱글벙글 웃으며 조잘대던 10대 닥터. 10대 닥터가 정말로 화가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 에피소드에서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음악과 연출이 공상과학 드라마보다는 비극적인 동화에 가깝습니다. 주제와 재미를 둘 다 잡은 명 에피소드입니다.

 

하나 더, KBS에서 이 2부작을 방송했을 때 외계인 중 하나를 강수진 성우가 맡았습니다. 10대 닥터는 김승준 성우가 더빙해서 이 2부작은 강수진 성우와 김승준 성우가 같이 나오는 몇 안 되는 닥터후 에피입니다. 두 성우의 연기대결을 보고 싶은 성우 덕후분들도 참고하시길.


 

 



4

The Empty Child/The Doctor Dances

시즌 1 9, 10

IMDB 평점 9.2/9.2

 

줄거리 : 정체불명의 신호를 따라 1940년대 런던에 착륙한 닥터와 로즈. 독일군의 공습에 신음하던 런던에서 닥터는 이상한 소년을 만난다. 방독면을 쓴 채 '당신이 내 엄마에요?'만을 묻는 괴소년. 심지어 사람들은 마치 전염병에 걸린 듯 소년처럼 얼굴이 방독면으로 변하고, 상황은 점차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데…….

 


옛날 닥터후는 '소파 뒤에 숨어서 보는 드라마'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괴상하고 무서운 에피소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The Empty Child/The Doctor Dances 2부작은 닥터후가 원래 무서운 드라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공포영화처럼 귀신이 놀래는 무서움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대단한 에피소드입니다.

 

언제나 방독면을 쓰고 '당신이 내 엄마에요?'만을 반복해서 말하는 소년. 그 소년처럼 변한 사람들. 에피소드 중간에 소년처럼 변하는 의사의 모습이 호러 그 자체입니다. 눈과 입이 튀어나와 방독면처럼 변하는 장면은 특수효과가 저렴한 닥터후인데도 소름이 돋습니다. 15살이던 저한테는 정말 무서운 장면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훗날 닥터후를 넘겨받은 스티븐 모팻이 집필했습니다. 모팻의 특징인 무서운 외계인과 감동 엔딩이 드러납니다. 유머와 있고 활기찬 러셀의 에피소드 사이에 있다 보니 더욱 감명이 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가끔은 러셀이 그립습니다. 이제는 모팻을 그리워할 차례지만요.

 

하나 더. 이번 2부작은 캡틴 잭 하크니스가 첫 등장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캡틴 잭은 옛날 런던에서 장교 행세를 하며 시간 여행자들을 등쳐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열혈남아가 된 지금과는 딴판입니다. 2부작은 동네 아저씨 같은 9대 닥터의 노련하고 따뜻한 면모가 잘 드러난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10대 닥터는 방독면을 쓰고 나서 '당신이 내 엄마에요?' 농담을 하면서 놉니다만……. 아무튼 그 소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정체불명의 신호는 뭐였을까요? 직접 보면서 확인하시길.

 



3

Midnight

시즌 4 10

IMDB 평점 9.0

 

줄거리 : 휴양 행성을 찾은 닥터와 도나. 다른 곳에서 놀기로 한 도나를 두고 닥터는 행성 관광 셔틀에 탑승한다. 셔틀은 날아가던 도중 고장이 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셔틀 주위를 맴돈다. 심지어 승객 한 명은 귀신이라도 쓰였는지 다른 승객들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하고, 승객들은 조금씩 서로 의심하며 분열하는데...

 


시즌 1부터 시즌 4까지 줄거리를 담당한 러셀 T 데이비스. 사람들은 러셀 각본이 유치하다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러셀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무거운 에피소드를 쓸 수 있습니다. Midnight 에피소드야말로 러셀이 마음먹고 무겁게 쓴 에피소드입니다. 좁은 셔틀 내부, 밖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셔틀 벽을 두들기는 존재. 사람들 말을 시간 차 없이 따라하는 여성. 더욱 공포에 질려 극단적으로 변하는 승객들.

 

다른 에피소드였다면 닥터가 나서서 사람들을 중재하고 문제를 해결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닥터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합니다. 승객들은 겁에 질려 닥터를 의심하고 몰아갑니다. 다른 에피소드였다면 당연히 넘어갔을 태도나 말도 승객들은 하나하나 걸고넘어집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닥터를 범인으로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다분히 비현실적인 괴물(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이 나오지만 사람들이 싸우고 의심하는 모습은 다분히 현실적입니다. 깊은 설정이 없고 배경이 제한적이라서 닥터후를 몰라도 보기 좋은 에피소드입니다. 러셀이 무겁게 쓴 에피소드가 더 궁금하시면 토치우드나 Turn Left(시즌 4 11)를 보시기 바랍니다. Turn Left는 닥터후 뉴 시즌 에피 중 가장 무겁고 어둡습니다.

 

 


2

Heaven Sent

시즌 9 11

IMDB 평점 9.6

 

줄거리 : 음모로 클라라를 잃고 반 강제로 순간 이동한 닥터. 닥터가 끌려간 곳은 알 수 없는 고성이었다. 이유도 목적도 없어 보이는 성에서 닥터는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성의 여러 장치와 괴물은 어떤 의미가 있는 듯한데…….

 


Heaven SentMidnight와는 다른 의미로 음울합니다. Midnight는 사람들이 불신하고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Heaven Sent는 아무도 없는 고성에서 혼자 고뇌하고 좌절하는 닥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말부를 제외하면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인물은 닥터와 클라라와 괴물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괴물은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고 클라라는 닥터 상상 속 존재기 때문에 실제로는 닥터 혼자서 고성을 헤매며 답을 찾습니다.

 

닥터 인생에서 최고의 단짝이라고 해도 좋을 클라라. 그 클라라를 잃고 닥터는 클라라를 죽게 만든 원흉에게 복수할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탈출구가 없는 고성에서 닥터는 조금씩 무너집니다. 그러다 닥터는 탈출구를 하나 찾게 되지만 그곳으로 탈출하려면……. 스포일러라 말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처절하고 웅장하고 눈물이 핑 돌게 합니다.

 

초반 고성의 웅장하고 미스터리한 모습, 다른 등장인물은 전혀 없지만 이상하게 놓이지 않는 긴장의 끈, 끝까지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스티븐 모팻의 필력, 에피소드 전체를 혼자서 이끈 피터 카팔디의 미친 연기,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결말이 어우러진 에피소드입니다. 조금이라도 설명하려면 스포일러가 되니 보는 즐거움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1

Blink

시즌 3 10

IMDB 평점 9.8

 

줄거리 : 어느 날 폐가에 놀러 갔다가 친구를 잃은 샐리 스패로우. 놀랍게도 사라진 친구는 과거로 떨어져 현재는 이미 자연사한 후였다. 친구 동생을 만나러 간 샐리는 웬 남자가 남긴 영상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자기와 대화하는 듯한 녹화 동영상에 놀라는 샐리. 그 와중에 그녀를 쫓는 생명체들. 그들의 정체는 천사 석상처럼 생긴 외계인이었는데...

 


IMDB 에피소드 평점 1위이자, 방영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닥터후 에피소드'를 꼽을 때 언제나 나오는 Blink 에피소드입니다. 명에피 제조기 모팻이 쓴 에피소드기도 한데,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쓴 에피소드라고 합니다. 허겁지겁 쓴 에피소드가 역사에 남을 에피소드가 되다니, 모팻 당신은 대체…….

 

이 에피소드는 우는 천사의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석상 형태를 취하지만, 남들이 보지 않을 때에는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우는 천사는 다른 사람들을 과거로 보내 그 사람이 살아야 했을 미래의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우는 천사는 누가 보고 있을 때는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보는 일을 막기 위해 손으로 눈을 가립니다. 그 모습이 마치 우는 모습과 비슷해서 우는 천사라고 불립니다. 우는 천사를 맞닥뜨렸을 때 눈을 깜빡이면 당합니다. 옛날 홍콩 영화에서 강시 앞에서 숨을 쉬면 당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무섭기도 하거니와 시간 여행이 보여줄 수 있는 센스를 최고조로 발휘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샐리는 닥터가 남긴 영상을 보면서 대본을 남기고, 나중에 그 대본을 닥터에게 전달합니다. 닥터는 훗날 그 대본을 보고 영상을 찍어 샐리에게 남깁니다. 옛날 녹화한 영상이 지금 대화하듯이 말이 통하는 장면은 소름이 돋습니다. 역시 모팻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닥터후 최고 에피소드 목록 5편 중 3편이 모팻 작품이군요. 거기다 IMDB 에피소드 평점 상위권은 모팻 천지입니다. 모팻, 당신이 짱 먹으세요.

 

참고. 이 에피소드 주인공 샐리 스패로우를 맡은 캐리 멀리건은 훗날 미국으로 가서 할리우드 배우가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에도 나왔습니다. 시즌 3가 나올 때만 해도 많은 닥덕후들이 샐리가 새 동반자가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예쁘잖아요. 그나저나 위대한 개츠비를 본 팬들이 닥터후 팬이 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Turn Left(시즌 4 11) : 러셀 에피소드. 아까 말했듯이 아주 어두운 에피소드. 잔인하거나 야하지는 않지만 음울하고 씁쓸함. 어린이가 봐도 되나 의심이 될 정도.

 

The Girl in The Fireplace(시즌 2 4) : 모팻 에피소드. 모팻답게 감동과 공상과학적인 상상이 돋보임.

 

Listen(시즌 8 4) : 모팻 에피소드. 어떻게 보면 Midnight보다 더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오는 에피소드.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보다가 기뻐서 실신할 수도 있음.


Vincent and The Doctor(시즌 5 10) : 고흐와 만나는 에피소드. 아름답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명성이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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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후 시즌 10,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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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드라마에 불만이 하나 있다면, 너무 짧다는 겁니다. 웬만한 미국 드라마는 한 시즌이 23편인데 영국 드라마는 길어야 열 편이고 짧으면 아예 두세 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닥터후는 한 시즌에 열 편은 넘습니다.


  편수도 적은데다 2016년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빼고 방영되지 않은 닥터후는 그래서 더 기대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닥터후는 4월에 시즌 10을 시작했습니다. 케미 끝판왕 클라라 오스왈드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동반자 빌 포츠와 함께하는 시즌이자, 12대 닥터의 마지막 시즌이어서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요. 호불호가 갈리던 9시즌부터 예고된 걸까요. 시즌 10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9시즌은 호불호는 갈렸지만 에피소드마다 내용물은 꽉꽉 찬 반면 시즌 10은 뭔가 헐거웠습니다.






이번 시즌에서 닥터와 함께 모험한 빌 포츠



 시즌10에서 닥터의 친구가 된 빌 포츠는 클라라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다만 배우 펄 맥키한테는 잘못이 없습니다. 연기력은 좋았습니다. 클라라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누가 들어와도 충분치 않았을 겁니다. 지난 시즌까지 클라라는 닥터와 긴밀한 사이였습니다. 9시즌에서 닥터는 클라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둘은 너무 죽이 잘 맞아서, 둘은 서로 뭉쳐서 파괴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결국 둘은 헤어지고 말았죠. 극단까지 치닫은 동반자가 헤어졌으니 어떤 캐릭터가 그 자리를 채우겠습니까. 마치 로즈 타일러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마사 존스 같습니다. 빌 포츠는 소시민 캐릭터입니다. 외계인도 처음 보고 괴물이 나오면 일일이 놀라 줍니다. 닥터와 혼연일체이던 클라라와는 방향이 다릅니다만 식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거기다 빌 포츠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도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습니다. 캡틴 잭은 심지어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했지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각본이 굳이 그걸 끄집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빌 포츠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각본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미미한데도 굳이 대사로 드러냅니다. 동성애는 괜찮습니다. 동성애를 줄거리로 삼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나쁜 남자 나돌



  빌 포츠보다는 나돌이 괜찮았습니다. 나돌이야말로 이번 시즌의 영웅입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서 나돌은 바보 캐릭터로 등장했습니다. 올해부터는 무슨 멋이 들었는지 나쁜 남자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시니컬하고 유머 감각도 있는 나돌은 심지어 닥터보다 재미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시즌 종료 이후에 빌을 찾는 사람과 나돌을 찾는 사람이 비슷했습니다. 나돌이 지닌 인기를 아시겠죠.





  에피소드도 조금 별로였습니다. 1화는 캐릭터와 설정을 소개하니 괜찮다 쳐도, 2화부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예전 닥터는 인간을 죽이는 로봇은 무슨 사정이 있어도 작동을 중지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인간을 적대하는 로봇을 새 종족으로 인정해 줍니다. 그밖에도 차별이나 소수자를 간간이 언급합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차별, 혐오 문제가 생각이 났습니다. 차별이 아닌 것도 차별로 보고 혐오가 아닌 것도 혐오로 보는 잘못된 시선이 닥터후에 숨지는 않았나 걱정이 들었습니다.


  수도승 3부작은 용두사미였습니다. 스티븐 모팻이 시작한 첫 편은 괜찮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두 편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두 번째 편도 좋았습니다. 닥터후에 흔치 않은 3부작이다 보니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3편 결말이 생뚱맞았습니다. 이 줄거리에 3편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요?


  닥터후는 각 시즌마다 시즌을 관통하는 줄거리와 떡밥이 있습니다. 이번 시즌 떡밥은 미시였습니다. 미시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착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닥터는 미시를 방에 가두고 지켜봅니다. 시즌 초반에는 그 방만 나왔습니다. 시청자로 하여금 방에 누가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닥터후 팬들은 떡밥과 미스터리라면 질리게 당한 지라 여러 예측을 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팬들이 미시가 방에 있다고 예상했고 맞았습니다. 시즌 중반에 어쩔 수 없이 미시가 나왔습니다. 차라리 방의 비밀을 시즌 끝까지 밀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이렇게 중간부터 비밀이 드러나고, '미시가 착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은 시즌을 유지합니다. 저만 그런지는 몰라도 시즌을 관통하는 떡밥이 시즌 중간에 바뀌다 보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11화 홍보 이미지. 50주년 두 닥터의 포즈를 마스터가 대신 취하고 있다



  마지막화에는 미시가 최종 테스트를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스터가 등장합니다. 시청자는 예고편 등으로 마스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끝까지 숨겼다면 더 충격이 컸을 겁니다. 마스터는 최고였고 마스터가 나온 마지막 에피소드도 최고였습니다. 이 에피소드만으로 10시즌 전체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이버맨의 기원을 설명하고, 닥터후 역사상 최초로 마스터끼리 만나고, 아마 역사상 최고로 닥터가 몰락하고 심적으로 고생했습니다. 활기찬 우주/지구 구하기 모험이 아닌, 마치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했습니다. 10시즌 모든 에피소드는 마지막 두 편을 위한 예고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국 10시즌, 12대 닥터의 마지막 시즌이자 스티븐 모팻이 맡은 마지막 시즌은 12편으로 끝이 났습니다. 처음엔 기대했고 중간엔 실망했고 마지막엔 열광했습니다. 그래도 12대 닥터를 이렇게 떠나보내다니 아쉽습니다. 실망을 반영하듯 시청률도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래서야 11시즌은 발 뻗고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닥터후 팬들은 압니다. 모든 시즌 모든 에피소드가 재밌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팬이니까 재밌기를 바라지만, 54년짜리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재미가 있든 없든 역사가 됩니다. 한 서양 팬이 말했습니다. 닥터후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집 같은 거라고. 어떤 앨범은 훌륭하고 어떤 앨범은 실망스럽지만 그 가수 작품이라고(그래도 드라마는 재밌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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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후 오디오 드라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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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가 개봉을 앞둔 어느 날, 스타워즈 팬덤이 뒤집어졌습니다. 바로 스타워즈를 인수한 디즈니가 EU, 즉 확장 세계관을 폐기했기 때문입니다. 7~80년대에 스타워즈가 나온 이후 수많은 작가들이 스타워즈 세계관 위에 새 작품을 (물론 조지 루카스의 허락 하에) 지었습니다. 이를 확장 세계관이라고 불렀고, 비록 영화보다는 설정 설득력이 떨어졌지만 확장 세계관은 스타워즈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닥터후도 방송에서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여기도 정식 설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시 팬들을 흥분시키는 이야기들입니다. 바로 오디오 드라마 제작사 빅 피니시의 닥터후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빅 피니시는 오디오 드라마 전문 회사지만 특히 닥터후 오디오 드라마로 유명합니다. 90년대 후반부터 빅 피니시는 BBC에서 닥터후 관련 상표권을 구해 오디오 드라마를 만들고 있습니다. 닥터후뿐 아니라 토치우드나 UNIT 오디오 드라마도 제작 중입니다. 닥터후 스토리 상품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2대 닥터 시절에도 닥터후 코믹을 팔았고 지금도 닥터후 매거진은 매번 닥터후 코믹을 연재 중입니다. 애니메이션이나 관련 소설도 매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빅 피니시는 실제 닥터와 동반자 배우들을 섭외해서 오디오 드라마를 녹음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실제 배우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그림과 텍스트로 읽는 것과 차원이 다르겠죠. 각종 음악에 효과음도 만빵이라서 '낭독'에 가까운 오디오북이 아니라 드라마 음성 버전에 가깝습니다. 닥터 배우들이 작고한 경우에는 다른 성우들이 그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아예 스토리에서 닥터를 잘 다루지 않는 방향으로 녹음합니다.

 

  빅 피니시의 최고 업적이라고 하면 8대 닥터 오디오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대 닥터는 TV 극장판 한 편에만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2005년 닥터후가 부활하기 전에는 '과연 정식 닥터인가' 하는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빅 피니시가 8대 닥터 오디오북을 많이 만든 덕분에 8대 닥터는 그나마 체면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낮은 시청률과 짧은 출연 기간으로 평가가 박한 6대 닥터와 7대 닥터도 오디오북으로 그나마 명예를 되살렸습니다.



 

  2015년까지 빅 피니시는 8대 닥터까지만을 등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새로 판권을 얻어냈는지 11대 닥터까지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아직 11대 닥터, 맷 스미스가 빅 피니시에 나오지는 않았고 작품도 몇 편 되지 않긴 합니다. 10대 닥터 데이비드 테넌트는 현재 빅 피니시에서 도나와 함께 등장하는 오디오북을 한 차례 녹음했으며 올해 말에는 로즈 역의 빌리 파이퍼와 녹음한 오디오 드라마가 출시될 예정입니다. 9대 닥터를 맡은 크리스토퍼 에클레스턴은 캐릭터 고정을 우려해 닥터후를 한 시즌만 찍고 하차했고, 그래서 그런지 오디오북에는 한 차례도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오디오 드라마 가격은 실물 CD 2만 원 정도, 다운로드는 1 2천 원 정도입니다. 2시간 분량으로 2~30분 단위로 분할해 놓았습니다. 단편 오디오 드라마는 분량이 30분 정도에 3천 원이 조금 안 됩니다. 국내에서 회원가입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만 다운로드 속도는 답답한 편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저도 무료로 공개한 에피소드의 일부만 들어서 정확한 사실은 모릅니다.


빅 피니시 오디오 드라마 중에서 'TV 에피소드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은

5대 닥터의 Spare Parts


 

  빅 피니시가 칭찬만 듣지는 않는 것이, 팬들 중에는 빅 피니시는 진짜 닥터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에피소드를 제작하다 보니 실제 TV로 방송한 에피소드와 설정이 맞지 않기도 합니다.(그 예로 사이버맨의 기원을 들 수 있습니다. 빅 피니시에서는 5대 닥터를 주인공으로 해서 사이버맨의 기원을 설명한 에피소드를 발매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 사이버맨의 기원을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TV로 방송되었죠.) 닥터후 배우가 녹음하고 닥터후 판권을 사서 만들지만 엄연히 진짜 닥터후 줄거리와는 상관이 없는 셈입니다. 그래도 TV 에피소드가 빅 피니시 오디오북에 영감을 받기도 하고 8대 닥터가 나온 미니 에피소드 <Night of The Doctor>에서는 8대 닥터가 재생성 직전에 오디오 드라마 동반자들 이름을 열거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닥터후 팬으로서 이미 지나간 닥터와 동반자를 다시 듣는 일은 즐겁습니다. 닥터는 바뀌지만 '한 번 더 봤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거든요. 빅 피니시는 이렇게 닥터후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번 추석에 용돈이라도 받으면 한 번 CD를 구매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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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카팔디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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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닥터후에서 12대 닥터를 맡아 열연을 보여준 배우 피터 카팔디. 골수 닥터후 마니아답게 닥터가 나고 내가 닥터인 혼연일체의 연기를 보여서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번 2017년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끝으로 닥터후에서 하차하는 피터 카팔디. BBC 아메리카에서 팬들의 감사 영상을 받아 피터 카팔디에게 전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감사 인사를 보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메일 주소에

 

- 본인의 풀 네임

-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닉네임

 

과 함께 10초 이하의 영상을 보내시면 됩니다. 배경음악은 제작진이 따로 준비하므로 넣으시면 안 된다고 합니다. 감사 영상뿐 아니라 그래픽 아트, 그림, 사진, 코스플레이 영상 등도 받고 있다고 하니 팬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영상 접수는 한국 시간으로 97일 목요일 새벽 1시까지입니다. 좋은 연기로 닥터후를 한층 발전시킨 피터 카팔디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투어까지 오셨는데 한국에서도 보답으로 감사 인사를 보내면 좋겠죠? 닥터후 이전에도 여러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주신 만큼(특히 욕설 연기) 하차 후에도 더 나은 작품에서 (특히 욕설 연기로) 재회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보낼 메일 주소

- social@bbcamerica.com

 

자세한 사항은 이벤트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doctorwho.tumblr.com/post/164833465051/thank-you-peter-capaldi-a-fan-video-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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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계의 화석, 우왁굳(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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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오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왁굳과 재회했다. 복학하기 시간이 남아 충실한 잉여가 된 후였다. 피시방을 들락거리며 재미있는 것을 찾던 나는 다시 우왁굳 방송국을 들렀다. 우왁굳은 어느새 돌아와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우왁굳은 GTA 4를 했는데 다시 만난 우왁굳은 GTA 5를 했다. 그 외에도 유람선에서 사람을 죽이는 '더 쉽'이라는 게임도 했는데, 우왁굳은 그 게임을 아주 사랑했다.

 

사람들을 불러서 멀티플레이를 하는 일도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같은 방송인보다는 시청자들을 데리고 게임을 즐겼다. 시대가 변해서 시청자들도 접속하기 편해진 탓이었을까. 같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방송도 더 재미있어졌다. 물론 과거 아프리카TV를 주름잡던 시절보다는 시청자가 적긴 했지만.

 

아프리카TV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왁굳은 두 방송국을 지니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하나, 다음팟에 하나. 우왁굳은 두 방송국에서 동시 송출로 방송했다. 그래서 방송화면에는 채팅창이 둘 있었다. 나는 다음팟으로 봤다. 아프리카TV 아이디는 내 이름을 그대로 영어로 친 단어였고, 예전 조마문이라는 사람 방송에 들어갔다가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읽은 이후 난 아프리카 로그인을 꺼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팟은 돈을 쏘기도 더 쉬웠다. 초등학생이나 지을 법한 '별풍선'이라는 호칭보다야 그냥 현금을 쏘는 게 낫지. 거기다 프로그램도 더 안정적이었고 화질도 더 좋았다.

 

다시 만난 우왁굳은 게임 전문 스트리머가 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우왁굳은 GTA와 피파만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신작 게임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입수해서 플레이했다. 별풍선을 거절하던 우왁굳은 다음팟에서 만 원을 쏘면 '1억 원!'이라고 외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우왁굳에게 방송은 취미가 아니었다. 이제 공익의 몸도 아니었다. 하나의 직업이었다.

 

 

새로운 모습인가?

 

우왁굳이 아프리카와 다음팟에 방송을 동시 송출하던 시절이 그립냐고? 반반이다. 그립기도 하고 좀 별로기도 하다. 우왁굳이 여러 게임을 한다는 사실은 반가웠지만 신작 게임만 나오면 며칠만에 엔딩을 보는 방송인은 많았다. 그때는 대도서관을 재밌게 보던 터라 나에겐 우왁굳을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사라진 셈이다. 꼴에 '왁굳 부심'을 부렸다고나 할까.

 

거기다 채팅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시 송출 자체는 좋았다. 두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을 두 배로 끌어모았으니까. 문제는 두 플랫폼 시청자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프리카 시청자는 다음팟 시청자를 팟수라고 불렀다. 다음팟 시청자는 아프리카 시청자를 원시인으로 보았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듯이 반 장난으로 놀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리카와 다음팟은 반 장난으로 시작해서 안 장난으로 끝나며 서로 흙탕물을 뿌려 댔다. 게다가 말끝마다 ''를 붙이는 인간들이 틈만 나면 튀어나왔다.

 

우왁굳은 정말 심한 경우가 아니면 채팅창을 관리하지 않았다. 채팅 자유방임주의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괜히 관리하려다가 욕 먹는 사람들도 많다. 우왁굳은 최소한 귀찮아서 손을 떼지 않았다. 막 나가는 시청자들도 우왁굳 방송의 매력이다. 나는 그러나 그 채팅창과 분위기 때문에 우왁굳을 이전처럼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선비라고 놀려도 좋다. 선비가 왜구보다는 낫지 않은가.

 

 

신대륙으로

 

어느 날부터 우왁굳은 동시 송출을 중단했다. 아프리카TV에서 중지를 시킨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도 아프리카로 이사를 갔다. 하는 수 없이 내 본명이 담긴 아이디로 로그인 하거나 아예 로그인을 안 했다. 그때 내 컴퓨터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프리카 플레이어를 실행하려면 몇 번이고 다시 켜야 했다.

 

그러더니 '그 사건'이 벌어졌다. 시노자키 아이가 쏘아올린 불꽃은 아프리카TV라는 대륙에 불길처럼 번졌다. 아프리카TV는 언젠가 터질 폭탄이었다. 우왁굳이 방송을 시작하던 때엔 신대륙이었지만, 이제는 구대륙이었다. 구대륙이 강대륙 코스프레를 하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방송인들은 플랫폼을 옮겼다. 이미 신대륙은 많았다. BJ도 따지고 보면 콩글리시였다. 다른 대륙이 없어서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을 뿐. 많은 이들은 BJ 대신 '유튜버''스트리머'가 되었다.

 

아프리카TV라는 구대륙의 조상님이자 1세대 스타인 우왁굳. 우왁굳이 아프리카 조상님답게 구대륙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우왁굳을 모른다. 그는 시청자에게 툭하면 '닥쳐'를 외치는 까칠 노장이었다. 더 좋은 플랫폼이 있는데 무엇을 마다하리? 우왁굳은 다른 방송인과 비슷한 시기에 트위치로 새 둥지를 틀었다. 시청자들은 원래 좋았어야 할 화질에 감탄하고, 설치가 필요 없는 방송화면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이사 기념으로 집주인에게 자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러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았지만, 우왁굳은 떠났다.

 

 

다시 시작이다

 

우왁굳은 지금도 방송을 하고 있다. 사실 2009년보다 시청자 수는 적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지닌 충성도는 하늘을 찌른다. 이제 우왁굳은 GTA를 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 같은 게임만 할 건가. 30이 넘은 지금도 우왁굳은 새 게임을 찾아 나선다. 스팀 라이브러리를 감시하면서 재밌어 보이는 신작을 줍는다. 시청자들한테 '똥믈리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네이버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게임을 하는 우왁굳은 아직 젊다. 우왁굳보다 나이 든 인터넷 방송인들은 많지만, 우왁굳보다 먼저 방송을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시청자들은 '우왁굳이 하는 게임'을 보지 않고 '게임을 하는 우왁굳'을 본다. 인터넷 서핑을 하고 게임을 쇼핑하는 화면만 내보내도 시청자들은 좋아 죽는다. 좋은 소식이다. 이제 신작을 섭렵하는 방송인은 차고 넘친다. 다 똑같은 게임만 하는 세계에선 개성이 무기다. 우왁굳은 개성이 있다. 그렇다고 콜라에 밥을 비벼 먹거나 삭발쇼를 벌이지도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그는 '자본각'을 안전한 범위에서 지킬 줄 안다.

 

  2017, 유튜버와 스트리머가 쏟아지고 있다. 이미 인터넷 방송은 레드 오션이다. 끼어들 틈이 없다. 조만간 거의 다 나가떨어질 것이다. 실러캔스가 맛이 없는 이유를 아는가? 실러캔스는 진화를 하지 않아서 몸이 크레파스처럼 기름만 차 있다고 한다. 우왁굳은 실러캔스와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진화하면서도 본래의 맛을 잃지 않는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GTA를 그만 두어도 시청자들은 계속 우왁굳을 찾는다. 심심하면 쳐들어가는 친구네 자취방처럼 우왁굳은 언제나 시청자들 옆에 남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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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계의 화석, 우왁굳(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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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남아프리카 연안을 항해하던 어선은 신기한 물고기를 낚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물고기였다. 이 물고기는 곧바로 세계에 대서특필되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본 적 없는 물고기는 사실 인류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던 물고기였기 때문이다. 바로 실러캔스. 실러캔스는 3억 7천 5백만 년 전부터 바닷속을 살아왔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었다. 참고로 맛은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이 자기소개 시간에 장래희망을 인터넷 방송인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왔다. 유튜브 방송인, 유튜버들 중에는 연봉이 몇 억인 사람이 있다. 인터넷 방송인이 말을 하면 학생들의 유행어가 되고 공중파 방송국이 인터넷 방송 콘셉트를 가져와서 프로그램을 만든다. 인터넷 방송이 뜨긴 떴나 보다. 지금 이 시기에 나는 인터넷 방송의 실러캔스를 생각한다. 인터넷 방송의 살아있는 화석, 바로 우왁굳이다.

 

 

아이스크림 트럭

 

나에게 우왁굳은 한 게임 영상으로 다가왔다. 영상에서 우왁굳이라는 사람은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경주했다. 아이스크림 트럭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더니 바퀴에서 불이 났다. 그 게임에서 바퀴에 난 불은 폭발을 의미했다. 운전자는 차를 멈출 타이밍을 찾았다. 가까스로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그러나 연쇄폭발로 숨을 거뒀다.

 

그 차가 아이스크림 트럭이 맞았나?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영상은 확실히 아이스크림 트럭이었다. 우왁굳은 그 영상에서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고가도로 옆을 벽 타듯이 돌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꾸만 애꾸킹 토네이도!’를 외쳤다. 지금이야 인터넷 방송인마다 자기만의 유행어나 대사가 있다. 그때는 그러나 인터넷 방송의 초창기인 2009년이었다. 방송으로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벌 수단조차 없었다. 인터넷 방송은 직업이 아니라 취미였다. 지금이야 이름처럼 원시적인 몰골을 보여주는 아프리카TV가 당시로서는 최첨단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지금 20대 후반에 접어든 내가 그 영상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분명 요즘 애들은 이걸 보면서 웃는구나.'하며 쓴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애였고, 그 영상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사람들과 모여서 멀티플레이를 하다니. 피시방에 가면 스타 무한맵, 워크 영웅 키우기나 하던 나에게 시끌벅적한 멀티플레이는 신세계였다. 우왁굳은 GTA 4를 주로 했는데, GTA 4를 돌리던 엑스박스 360부터 콘솔시장에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점에서 우왁굳은 행운아였다. 아무도 하지 않은 신세계를 개척해 버렸으니.

 

게임 영상이 나와서 말인데, 우왁굳이 노숙자를 쫓아가다가 죽이는 일명 우왁굳 노숙자동영상도 유명하다. 지금 보면 정말 재미없는 동영상이고 심지어 보기조차 어렵다. 너무 오래 전 영상이라서 우왁굳 본인조차 소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행히 유튜브에 시청자가 올린 영상이 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재미없다. 이 영상이 아프리카TV의 전설로 남았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게임 스트리머 지망생 여러분. 여러분은 8년 일찍 태어나셨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게임이나 기타 영상에서 노숙자가 보이면 회자되는 일명 '노숙자의 도망'

 

 

 

 

전설

 

우왁굳이라는 사람은 유명했다. 방송을 시작하는 순간 방이 꽉 찼다. 돈이 없는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계방을 들어갔다. 그 중계방도 꽉 찼다. 우왁굳이 방송을 켜면 중계방이 몇 개는 줄줄이 생겼다. 가히 당시 1위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진짜 1위였는지는 몰라도 우왁굳은 1위 할 자격이 있었다. 지금처럼 콘솔기기가 많지 않은 때에 최신기종인 엑스박스360을 들고, PC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GTA4, 그것도 다른 방송인과 시청자를 불러서 대규모 멀티 플레이어를 하지 않았는가. 섬 뺏기, C4로 터뜨리면서 싸우기, OX 퀴즈 등. GTA가 자유로운 게임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성우를 연상하게 만드는 굵고 멋있는 목소리도 매력 포인트였다. 우왁굳이 떴다 하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먹었고 아프리카 TV 운영자가 방송에 들어왔다. 그때 네이버에 우왁굳을 치면 우왁굳 얼굴이라면서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의 사진이 나왔다. 진짜인지는 불확실하다.

 

우왁굳은 대기업이었다. 같이 방송하는 방송인들을 하청업체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 방송인들은 대부분 지금도 방송한다. 개복어, 크헐헐, 노지, 천양, 모아드 등. 아프리카TV는 방송 클럽 제도를 운영했는데, 왁굳 클럽은 거대했고 유명했다. 하지만 우왁굳이 더 유명했다. 개복어 방송, 크헐헐 방송을 보다가도 우왁굳이 방송을 켜면 시청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우왁굳은 시청자들에게 별풍선을 쏘지 말라고 했다. ‘이건 돈벌이가 아니다같은 이유로 기억한다. 그때는 유튜브도 안 유명했으니 별풍선을 제외하면 인터넷 방송을 하며 돈을 벌 방법은 별풍선뿐이었다. 하지만 우왁굳은 별풍선을 거절했다. 청렴한 사람이라 별풍선을 거절했다면 거짓말이다. 확실한 사실은, 별풍선을 받지 않았지만 시청자는 더럽게 많았다는 거다. 그 시청자들한테서 동전 하나씩만 받아도 외제차를 살 수 있었을 거다. 지금이야 자본이 낳은 괴물 소리를 듣지만 그때 우왁굳은 인기가 높은 괴물이었다.

 

우왁굳은 공익이기도 했다. 실제 당시 아프리카TV에는 방송을 하던 공익이 많았다. 공익은 출퇴근이 가능하고 취미 핑계로 집안 눈치를 보지 않는 인터넷 방송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우왁굳이 별풍선을 받지 않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왁굳을 아직 잘 모르나 보다. 모르는 점은 또 하나 있다. 나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

 

 

 

일본으로

 

 

우왁굳은 공익을 끝내고 방송도 끝냈다. 그러고는 기독교에 빠졌다. 그러고는 일본으로 떠났다. 나는 당황했다. 물론 우왁굳이 GTA4 현실모드를 방송하고 시도 때도 없이 피파를 하던 즈음에는 좀 질리긴 했다. 그래서 좀 떠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허무했다. 우왁굳은 말했다. ‘논리를 떠난 영역에서 종교를 이해하게 되었다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일본이야 유학 갈 수 있다. 가지 말란 법 없다. 그래도 황당했다.

 

나는 며칠을 습관처럼 우왁굳 방송국에 들렀다. 회색 빈 화면과 방송 준비 이라는 문구를 클릭했다. 그리고 점점 우왁굳을 잊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바쁜 날을 보냈다. 인터넷 방송은 유치해 보였다. 서서히 여자들이 옷을 벗으며 별풍선을 받았다. 우왁굳 클럽원들의 방송을 좀 보긴 했다. 하지만 우왁굳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따지고 보면 우왁굳 방송 콘텐츠는 다른 방송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다는 정도? 다만 우왁굳에게는 타 BJ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냥 그뿐이다. 이게 무슨 자동차 사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방송은 콘텐츠와 매력이 같은 비중을 지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프리카TV를 잊고 살았다. MT를 가고 기말고사를 보고 군대에 들어갔다 나왔다. 세월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우왁굳을 만나게 되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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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도 쓰는 글쓰기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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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지망생을 위한 팁 하나 알려드릴까요? 아래아 한글이나 워드로 작업하신다면 당장 쪽 색을 검게 하시고 글씨는 하얗게 하세요. 그리고 웬만하면 모든 작업 표시줄을 없애세요. 모니터 흰색은 눈을 피곤하게 하고 여러 가지 메뉴는 집중을 방해합니다. 여기에 적응하면 흰색 워드프로세서 화면은 바라보기도 싫어질 정도입니다.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글 오래 쓰시는 분이면 꼭 참고하세요.

 

아니면 차라리 다른 프로그램을 쓰는 것이 어떨까요? 워드 프로세서는 문서를 만드는 프로그램이지 글을 쓰는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물론 조금이라도 효과가 들어간 글을 쓰려면 워드 프로세서를 켜야 하겠지만, 순수하게 텍스트를 쓰려는 사람한테는 워드 프로세서가 난잡하고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전문 작가들은 글쓰기 전용 프로그램을 씁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실제 작가들이 쓰는 여러 글쓰기 전용 프로그램(문서 작성 프로그램이 아닌)을 소개합니다.

 

 

Writeroom

 

http://www.hogbaysoftware.com/products/writeroom

 

글쓰기 전용 프로그램 중 가장 유명한 Writeroom은 요즘 핫한 작가인 김영하 소설가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에게 애용을 받는 소프트웨어입니다. 불행히도 MAC만 지원하고 윈도우즈용은 없지만 얼마나 유명한지, 오직 이 소프트웨어만을 위해 맥으로 갈아탄 사람마저 있을 정도입니다. 프로그램은 단순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켜면 모든 화면을 검게 만들고 텍스트만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바탕화면, 광고, 시작 메뉴 등 모든 외부 자극에서 벗어나 오로지 텍스트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꼴에 작가 지망생인 제가 단언하건대, 단순한 화면은 생각보다 집중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정말입니다.

 

Writeroom은 단어 수 세기 기능과 자동저장 등의 기능을 지원하며, 커서가 화면 정중앙에 있도록 유지해서 눈을 덜 피곤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윈도우즈는 지원하지 않으며, 유료입니다. 아이튠즈에서 9.99달러에 사실 수 있습니다.

 

 

 

Dark Room

 

http://jjafuller.com/dark-room

 

윈도우즈 유저와 9.99달러가 아까우신 분들을 위해 한 개발자가 발 벗고 나섰습니. 바로 Dark Room입니다. Dark Room은 기본적으로 Writeroom과 거의 똑같습니다. 검은 화면에 초록색 글자. 게다가 무료입니다. 사이트 소개를 보면 윈도우 2003까지만 지원하는 것 같지만, 제가 실행해본 결과 윈도 10에서도 실행이 됩니다. 혹시라도 안 되신다면 사이트에서 .NET 프레임워크를 받아서 설치해 보시고 그래도 오류가 나온다면 사이트에 오류 문의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Dark Room 역시 단어 수를 세고 단어를 찾는 기능이 있습니다. 글은 모두 메모장 txt 파일로 불러오거나 저장됩니다. 다 합쳐서 1mb도 되지 않는 초저용량 소프트웨어입니다. 무료지만 개발자도 사람이라서 사이트에서 기부를 받고 있습니다. 개발이 완벽히 끝난 소프트웨어가 아니기 때문에 버그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 남아있습니다.

 

 

Writemonkey

 

http://writemonkey.com/

 

Writemonkey 역시 무료 글쓰기 프로그램입니다. 배경과 글자색을 조절할 수 있고, 텍스트를 클릭만 하면 위키피디아 같은 사이트에서 검색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영어뿐이지만 유의어 사전을 지원하고 타이머와 진행 비율 바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한글을 잘 쓸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글을 쓰려고 하면 ㅎ ㅏㄴ처럼 되어 버립니다. 가볍고 쓸 만한 소프트웨어인데 너무 아쉽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영어로 글을 쓰시는 분이 계실까봐 일단 소개는 남겨 두었습니다.

 

 

Focuswriter

 

https://gottcode.org/focuswriter/

 

여러분이 보시는 이 포스트도 사실은 Focuswriter로 쓴 글입니다. Focuswriter는 무료 글쓰기 소프트웨어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합니다. 다 쓴 다음에는 아래아 한글에 넣어서 맞춤법 검사를 하지만 초고는 여기서 씁니다. Dark Room은 엄청 저용량이지만 기능이 조금 모자란 점이 있습니다. 사실 매번 검은 화면에 형광색 글자를 쳐다보기는 조금 질리거든요. Focuswriter는 배경 화면과 글자색을 직접 지정할 수 있습니다. 색뿐만 아니라 사진을 배경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수지나 아이유를 좋아하신다면 수지 얼굴을 띄워놓고 작업하지면 됩니다. 타이머 기능과 날짜별 출석 기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Focuswriter는 한글판이 있습니다.

 

 

 

결국은 취향

 

이렇게 네 가지 글쓰기 프로그램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지갑 사정이나 컴퓨터 사정, 기타 취향에 맞춰서 소프트웨어를 고르시기 바랍니다. 제가 방금 기타 취향이라고 했나요? 사실 취향이 제일 중요합니다. 다 좋지만 여러분이 제일 집중할 수 있고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최고의 소프트웨어입니다. 그게 메모장이 되었든 워드패드가 되었든 심지어 엑셀이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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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클럽 두 번째 시간(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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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클럽 두 번째 시간

 

안녕하세요. 새벽클럽의 주인 D입니다. 여름이 늦여름으로 바뀌면서 새벽이 춥습니다. 낮이 덥다고 방심하다가는 감기 걸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서늘한 새벽바람도 새벽클럽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또 다른 특권입니다. 한번 눈을 감고 바람을 만끽해 보세요.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고요하고 적막하고 서늘한 바람을. 여름에 서늘하다는 모순된 문장도 새벽클럽에서는 자연스럽습니다. 모든 욕망과 비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시간이 새벽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새벽 신호등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신호등은 낮에는 파란 불과 빨간 불을 번갈아 비춥니다. 하지만 야밤 도로 신호등은 노란 빛을 반짝이기만 합니다. 차가 한 대도 없는 길 위에서 반짝이는 노란 불빛은 심지어 시적이기까지 합니다. 아마 차가 없으니 신호를 줄 필요가 없어서 노란 빛만 내는 것이겠지요. 차가 없는데 신호를 주면 오히려 빈 도로를 낭비하는 꼴이니까 말입니다. 물론 언제나 차가 오가거나 중요한 교차로는 신호등이 쉴 틈 없이 일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곳 신호등은 퇴근은커녕 휴식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새벽에 깨어 있는 여러분들 중에는 아침에 출근과 통학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무 일도 없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새벽클럽에서는 깨어있기만 하면 직장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인인 저부터가 백수 아닙니까. 아니죠, 엄연히 클럽 주인인데 백수는 아닙니다.

 

 

지난주 클럽을 개장하면서 사연을 받았지만 아무 사연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부끄럽습니다. , 노력해야죠. 새벽은 붐비는 시간이 아니니까 많은 사람을 바라는 건 욕심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누구라도 좋습니다. 새벽에 깨어 계신 여러분이라면 누구나 새벽클럽의 VIP이고 손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비밀 덧글로 남겨주시면 제가 나중에 라디오 방송처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새벽클럽도 음악이 있어야 더 좋은 클럽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사실, 얼마 전에 책을 읽었습니다. <지적자본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대출기한이 다 되어서 끝까지는 못 읽었습니다. 그 책을 쓴 사람은 옛날에 책과 음악과 비디오를 같이 파는 상점을 열어 돈을 벌었습니다. 서점이면 서점, 레코드점이면 레코드점으로 구분하지 않고 손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여러 상품을 같이 파는 서비스. 생산자보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한 비즈니스. 저는 그 부분을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벽클럽은 손님들께 글만 읽혀드리지 않고 음악과 비디오와 사진까지 제공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첫 타자는 음악입니다. 새벽클럽 손님들의 품격에 맞는 음악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재즈가 맞을 것 같았습니다. 전 불행히도 재즈를 전혀 모릅니다. 그 유명한 암스트롱이라는 연주자도 저는 달 착륙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다른 장르가 품격이 낮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재즈가 시원하면서도 고요한 늦여름 새벽과 어울리기 때문에 재즈를 골랐습니다. 혹시라도 재즈 전문가 손님이 계시다면 클럽 사장으로서 감히 곡을 추천 받고 싶습니다. 덧글로 써 주시면 다음 새벽클럽에서 틀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유튜브가 추천해준 노래를 틀 수밖에 없겠군요. 유튜브에 재즈를 검색하니 카페에 틀기 위한 세 시간짜리 재즈가 나오는군요. 저희 클럽은 세 시간이나 열지 않고, 손님들도 세 시간이나 머물지는 않습니다만 제 짧은 재즈 지식으로 무슨 판단을 하겠습니까.

 

 

 

그럼 재즈 선율을 들으시면서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새벽클럽에 오신 모든 분들,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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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소설] 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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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부장


  김 부장은 조용히 살았고 죽어서도 조용했다. 김 부장 장례식은 간소했다. 살 적에도 지인이 몇 없었다. 게다가 하나뿐인 딸이 죽고 나서 더욱 연락을 끊고 살았다. 만약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딸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슬펐지만 울진 않았다. 영정사진에 두 번 절했다. 김 부장의 먼 친척과 악수했다. 부조금을 내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장례식은 처음이라 다 육개장을 먹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김 부장은 돈이 많지 않았다. 있던 돈도 딸이 죽고 정신이 나가서는 다 써버렸다. 돈이 된다 해도 이혼하고 딸마저 잃은 남자 장례식을 돌봐줄 이 누구인가. 비가 내렸다.


  김 부장은 딸을 사랑했다. 책상 위에는 딸 사진이 액자 속에 서 있었고, 회식이라고 갔다 하면 딸 자랑을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어야 했다. 그래서 김 부장은 더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14층에서 떨어진 딸이 아스팔트에 밟힌 지렁이처럼 으스러져 있는 모습을 봤을 때. 하필 오랜만에 정시 퇴근하는 그날, 주황색으로 타는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김 부장은 어깨에 양복을 걸치고 터덜터덜 돌아갔다. 한 손에는 딸에게 줄 치킨 한 마리를 든 채. 치킨은 따뜻했다. 김 부장이 방금까지 딸이었던 살덩어리를 발견하고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에도 치킨에선 흰 김이 났다.


  유서는 없었다. 하지만 일기장은 있었다. 그 일기장에도 입이 있었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하루도 빠짐이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학교위원회가 소집되었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 딸과 같은 반 '친구'들이 수사를 받았다. '친구'들은 김 부장 딸과 함께 화장실에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밤에 돈을 '빌리'는 친한 사이였다. '친구'들은 그러나 풀려났다. 물증이 없었다. 교장은 교양인답게 학교가 조용해지기를 바랐다. 교육청도 구청도 교양이 넘치는 곳이었다.


  사건은 흐지부지 끝났다. 살인사건도 아니고, 자살을 열심히 수사할 필요가 있을까? 친구들도 모두 딸과 잘 놀아 줬는데 말이다. '친구'가 많은 학생이 무엇이 아쉬워 죽는다는 말인가? 그렇다. 아마 아버지가 잘 놀아주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 밑에서 혼자 자라서 정신발달이 좀 늦지 않았을까. 원래 그 나이대는 예민하다잖아. 동네 아주머니들은 찜질방에서 맥반숙 계란을 까먹으며 앞으로 낮아질 집값을 걱정했다. '친구'들은 전부 훈방 조치되었다. 시의원 아들인 김 군이 제일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엔 중견기업 이사 딸인 박 양이 나왔다. 나머지는 경찰의 합리적이고 법치주의적인 원칙에 따라 사건이 여론에서 잊혀지고 나서 나왔다.




  김 부장은 경찰서 앞에서 1인시위를 하다가 쫓겨날 무렵에 정신이 나갔다. 김 부장은 재산을 집만 남기고 처분했다. 사내 서점에서 목격된 김 부장은 일본어 회화책을 고르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다른 가족처럼 외국으로 이민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밖에 김 부장은 점심시간 사무실에 남아 포장지 싸는 연습을 하는가 하면 이면지에다 각종 설계도를 그리며 시간을 때웠다. 컴퓨터로 삽과 곡괭이를 고르다가 들키기도 했다.


  "뭐라도 배워야지."


  참견쟁이 유 대리가 묻자 김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다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김 부장은 일본어를 중얼거렸다.


  하지메마시떼. 와따시노 나마에와...



  김 부장은 그렇게 일본어를 두 달 넘게 연습하더니 연차를 냈다. 평소 소처럼 일하던 김 부장이기에 사장도 휴가를 말리지 못했다. 연차를 낸 김 부장은 사라졌다. 문자를 보내도 반응이 없었다. 전화를 하니 해외전화로 연결되었다. 일본에 간 듯싶었다. 일본에 유명한 정신과 의사라도 있다면 모를까. 하필 성수기에 가서 돈은 돈대로 깨지고 시끄러울 텐데. 우리는 한 손에 커피를 쥐고 떠들었다.


  김 부장은 연차에 맞춰 돌아왔다. 생각보다 멀쩡했다. 오히려 평화로웠다. 저러다 총기난사라도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했다. 사장이 시켜서 나와 유 대리가 김 부장네 집으로 갔다. 문을 두드렸다. 김 부장은 문도 열지 않고 답했다.


  “지금은 안 돼. 내일 출근한다고 사장님한테 전해 줘.”

  “사장님이 얼굴도장 찍고 오라고 하셨는데요.”

  “미안해. 지금 울고 있어서.”


  우리는 하릴없이 돌아왔다.


  일본 여행이 정말 득이었는지 김 부장은 괜찮아졌다. 말도 잘 했고 일도 잘 했다. 사고 칠까 봐 걱정하던 사원들도 점점 평소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김 부장은 딸을 죽게 만든 '친구'들한테 기념품을 선물했다고 들었다. 아니, 아무리 착해도 저건 아니지 않나? 꼰대 사장마저 어이없어했다. 우리야 김 부장이 평상시대로 일한다면 기념품을 주든 돈을 주든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김 부장한테 감사했다. 이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일본 가서 깨달음이라도 얻고 용서를 배웠나 싶었다.


  하지만 하늘은 착한 사람을 싫어했다. 김 부장은 얼마 되지 않아 암 판정을 받았다. 김 부장은 바로 퇴사했고 두 달 만에 죽었다.


  장례식을 간 다음 날, 김 부장 친척한테서 전화가 왔다. 고인 소지품을 정리하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토요일에 김 부장이 살던 집으로 갔다. 나와 그 친척은 짐을 정리했다. 회사 서류나 물건이 있으면 내가 따로 뺐다. 재산을 처분했다더니 잡동사니가 많았다. 반나절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해가 지고 나서야 끝났다.


  일본 지도 세 장(김 부장은 일본 북부를 여행한 듯했다), 손전등, 위장 크림, 장화, , 두꺼운 장갑, 더 두꺼운 보호복, 나침반, GPS, 비상 식량, 침낭, 시계, 은빛이 나는 조그마한 상자, 끌과 공작용 칼, 줄자, 핀셋.


  “저 은색 상자는 뭘까요?”

  “뭔지는 모르는데 색이 납이랑 비슷하네요. 제가 화학 회사에서 일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서랍에서 주황색 탐지기가 나왔다. 무얼 탐지하는 기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스위치를 켜자 조금 치직대는 소리를 냈다. 뭘 탐지했길래 그런 불길한 소리를 내며 반응한 것일까? 하지만 이미 토요일을 다 보낸 나는 회사 것만 챙겨서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에서 조금 신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마 친하게 지낸 김 부장을 어이없게 잃은 데 대한 씁쓸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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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칩널,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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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IrozGaizka(GettyImage)




  8년 간 닥터후를 빛낸 스티븐 모팻은 이번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물러납니다. 다음으로 닥터후를 맡은 사람은 바로 크리스 칩널(Chris Chibnall)입니다. 모팻이야 총책임자가 아니던 2005년부터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들을 쓰면서 이름을 날렸고, 드라마 <셜록>마저 만들었기에 닥터후 책임자가 되기에 부족함과 어색함이 없었죠. 과연 칩널도 그럴까요? 칩널은 누구이며, 과연 2018년부터 그가 맡은 닥터후는 어떤 분위기와 소재로 돌아올까요?



  역시 덕후


  2005년 닥터후를 부활시키고 2009년까지 닥터후를 이끈 러셀 T 데이비스(일명 RTD)는 어릴 때부터 닥터후 마니아였고, 닥터후 이전에 만든 드라마나 시트콤에도 닥터후 관련 대사를 집어넣었습니다. 모팻도 유명한 닥터후 '덕후'고 1999년에는 닥터후 패러디 에피소드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역사가 깊은 닥터후다 보니 제작자나 배우 중에도 어릴 때 닥터후를 보고 팬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크리스 칩널도 역시 닥터후 광팬입니다. 4살 때부터 닥터후를 보고 어렸을 때에 닥터후 팬클럽 회원이던 칩널은 실제 1986년 BBC 시청자 초청 프로그램인 Open Air에 출연해서 닥터후에 관한 의견을 남겼습니다. 당시 닥터후는 시청률 저하로 폐지 직전까지 가던 상황이었습니다(실제로 1989년을 끝으로 종영합니다).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으니 10대 칩널을 볼 수 있습니다.


  칩널은 작가로 데뷔해 여러 연극과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인지도를 모읍니다. 그러다 2005년, 러셀 T 데이비스의 초청을 받아 칩널은 닥터후의 스핀오프인 <토치우드>의 공동 제작자이자 작가 자리에 오릅니다. 토치우드 에피소드로 좋은 반응을 이끌내고 이어서 2007년부터 닥터후 에피소드도 간간이 집필하게 됩니다. 첫 닥터후 에피소드는 2007년 방송한 <42>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2010년에 방송한 실루리안 2부작 <The Hungry Earth/Cold Blood>도 칩널 작품입니다. 시즌 7에는 <Dinosaurs on a Spaceship>과 <The Power of Three>를 만들었습니다. 정식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시즌 7 방송 전에 나온 미니 에피소드 <Pond Life>도 집필했습니다.


  칩널은 닥터후 말고도 중간중간 여러 드라마나 영화 각본을 썼습니다. 그러다 2013년 대박을 터뜨립니다. ITV 방송사에서 방영한 <브로드처치>는 엄청난 시청률과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벌어진 살인을 다룬 브로드처치는 미국에서도 리메이크되면서 그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모두 범인처럼 보이는 드라마'라는 별명답게 매화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브로드처치는 시즌 3로 종영했으며 칩널은 이후 닥터후의 키를 잡고 항해를 나설 예정입니다. 칩널이 닥터후를 맡은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최근 닥터후에 참여한 작가 중에는 제일 대박을 낸 작가라서 뽑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칩널 후(Chibnall Who)?


  칩널이 조종간을 잡은 닥터후는 2018년부터 어떤 모습일까요? 칩널이 집필한 토치우드, 닥터후 에피소드를 보면 약간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먼저 칩널은 가족을 중시합니다. 닥터후에서 칩널은 로리 윌리엄스의 아버지인 브라이언 윌리엄스를 등장시켰고, 실루리안 2부작에서도 한가족이 사건에 휘말립니다.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아들과 티격대면서 특유의 고집스럽지만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지구가 침략당하는 와중에도 미소를 짓게 합니다. <42>에서는 마사 존스가 에피소드 내내 가족과 전화통화를 합니다. 우주선 안에 갇혀서 미스터리한 괴물에게 쫓기는 와중에 하는 통화는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긴박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칩널은 차가운 우주와 따뜻한 가족을 대비시켜서 차가운 쪽은 더 차갑게, 따뜻한 쪽은 더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닥터후도 가족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애인, 배우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동반자의 가족과 집을 강조할 확률이 높습니다. 도나 노블 이후로 동반자의 집이나 가족, 평소 생활이 닥터후에 자주 나오지 않았는데 내년부터는 다르길 기대합니다. 어쩌면 닥터의 가족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누가 되었든 예전보다는 조금 화면에 잡히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칩널 에피소드는 가족이 아니어도 늘 조연으로 시끌벅적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에피소드만큼 어두운 에피소드도 칩널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실루리안 2부작을 들 수 있습니다. 먼 옛날 지구에 거주하다가 땅 속에서 동면한 실루리안 종족. 인간의 굴착 실험에 실루리안이 깨어나자 두 종족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돕니다. 두 종족은 닥터의 중재로 겨우 진정하지만, 결국 편견과 이기심에 파국으로 치닫고 말죠.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칩널은 닥터후 이전에 토치우드 각본을 썼습니다. '어른을 위한 닥터후'답게 토치우드는 선정적인 장면과 잔인한 장면이 매 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토치우드 1시즌 2화는 칩널의 첫 토치우드 각본인데 여기서는 외계인에 조종당해 남자들을 성행위로 빨아들여 죽이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6화는 여행객들을 유인해 잔인하게 죽이는 시골 마을 이야기인데 이것도 칩널 구상입니다.


  칩널 각본은 외계인이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42>는 외계행성의 영혼이 들어간 사람이 우주선을 돌아다녔습니다. <The Power of Three>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지만, 줄거리는 외계인보다는 닥터와 친구들에게 집중합니다. <Dinosaurs on a Spaceship>도 문제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닥대는 멤버들의 '케미'가 주된 내용입니다. 이런 '케미'는 잘 되면 차가운 우주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꼬이면 될 것도 안 되게 만들고 오히려 공포가 됩니다. 칩널은 이렇듯 문제보다는 관계를 보는 작가 같습니다.



  걱정과 기대


  사실 칩널이 쓴 닥터후 에피소드는 평가가 좋지 않습니다. '나쁘진 않은데 기억에 남지도 않는' 에피소드들로 기억합니다. 대박이 난 브로드처치도 마지막 3시즌은 그저 그런 점수를 얻었습니다. 과연 칩널이 어쩌다 한두 편이 아닌, 몇 년에 걸친 큰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여성 닥터로 구설수에 오른 닥터후를 넘겨받아서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솔직히 팬들은 불안합니다. 1989년에 벌어진 종영 사태를 다시 겪을까봐 떨고 있습니다. 닥터후 팬인 칩널도 닥터후가 오래 가기를 바라겠죠. 무슨 이야기, 무슨 소재, 무슨 캐릭터로 닥터후를 이끌지 기대와 걱정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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